2018년 11월 20일(현지 시각 기준), 프랑스 하원이 ‘정보조작 대처에 관한 법안들’(Les propositions de loi contre la manipulation de l’information; 이하 ‘정보조작대처법’)을 통과시켰다. 상원에 의해 두 번 연속 거부됐던 법안들이 긴 진통 끝에 가결된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그동안 ‘유럽의 가짜뉴스 퇴치법’ 혹은 ‘유럽의 가짜뉴스 규제법’ 등의 표현을 쓰며 이 법안을 언급해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유럽에서 가짜뉴스 퇴치법’을 만든다는 기사나, 그런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나, 정작 ‘유럽의 가짜뉴스 퇴치법’,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정보조작대처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를 독자에게 알리는 데는 무심했다.
정보조작대처법, 구성과 핵심 내용
정보조작대처법은 크게 두 가지 법안으로 구성된다.
- 하나는 국가 조직법의 차원에서 발의됐다. 즉, 허위 정보 대처에 관한 통상법에 의해 이미 확립된 법적 조치들을 대선 캠페인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헌법 제6조에 따라 공화국 대통령 선거 방식은 국가 조직법으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이러한 적용을 목적으로 하는 법안은 국가 조직법의 개정안으로 간주된다. 이 법안은 183 : 111로 통과됐다.
- 나머지 하나는 통상법의 범주에서 선거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허위정보를 이용해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시도들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법안은 347 : 204로 통과됐다.
정보조작대처법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거기간 동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정보의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이 법안은 허위정보의 배포를 판사가 중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사적인 정보는 그것이 선거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혹은 언론이 보도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허위정보의 유포를 중지시키기 위해 짧은 시간 내에 법원이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판사가 아무 때나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판사의 개입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정보는 ‘명백하게 허위’여야 하고, 의도적(인위적)이며, 대량으로 배포되어야 한다(¹명백한 허위, ²고의, ³대량).
또한 디지털 플랫폼,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 이들이 수수료를 받는 콘텐츠, 즉 광고 콘텐츠에 한하여 투명성 의무 조항을 부과하고 있다.
아울러 시청각최고위원회(Conseil superieur de l’audiovisuel; 이하 ‘CSA’)에는 한 국가가 의도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허위정보를 배포하는 경우, 그 국가의 영향 아래 통제되는 방송서비스에 한해, “방송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누구나 짐작하듯 이는 러시아 방송채널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다.
끝으로 이 법은 온라인 공중 커뮤니케이션 사용 방식, 비판적으로 정보 읽기 등을 의무적으로 교육하게 하는 등 미디어 교육에 관한 조치들을 포함한다.
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
이 법안들은 내년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를 대비해 마련된 조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마크롱의 중도신당 LREM(전진하는 공화국, 308석)과 Modem(민주노동당, 42석)의 다수파 여당 연합의 활약(?)으로 선거기간 내의 허위정보는 강력한 법적 규제 하에 놓이게 됐다.
나머지 좌·우파 정치세력은 이 법안들을 “쓸모 없고”, “잠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다”면서 반대를 하거나 기권했다. 법안 상정 논의 과정에서 LFI(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당수, 장 뤽 멜랑숑은 이 법안들이 규정한 허위정보 개념의 문제를 지적하고, 또한 CSA의 방송중지명령 조항, 즉 CSA에게 한 국가가 의도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허위정보를 배포하는 경우, 그 국가의 영향 아래 통제되는 방송서비스에 한해 ‘방송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한 조항에 대해 비판했다. 만약 프랑스에서 러시아의 글로벌 채널 RT의 방송을 정지시킨다면 러시아에서도 프랑스24를 방송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같은 당 소속 의원인 미셸 라리브는 허위정보를 규제하는 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기 보다는 언론 윤리위원회를 창설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현명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문화커뮤니케이션부 장관, 프랑크 리에스터는 허위정보를 규제하는 법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필요하다면서, 콘텐츠의 투명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비판
이 법안이 통과되기에 앞서 대다수 언론사와 언론단체, 언론학자, 야당 정치인은 이 법안에 대해 ‘적용이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며,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이 법안을 둘러싼 주요 논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허위 정보 정의의 모호함
이 법안에 대한 주요 비판 중 하나는 “허위 정보”라는 용어의 광범위한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 문화교육위원회에 의해 수정된 법안은 허위정보를 “허위정보를 구성할 가능성이 있는, 검증 가능한 요소가 부족한 사실에 대한 모든 주장이나 비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허위 정보의 정의가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하며, 검열의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어떤 장치도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다.
2. 허위 정보에 대한 판사의 전문성
법안에 따르면 만약 누군가 선거기간(선거 3개월 전부터 선거일까지) 동안 “다가올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허위정보”를 공표한 경우, 판사는 긴급하게 플랫폼에 “허위정보의 배포를 막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정보의 진실성과 관련해 이의가 제기된 이후 판사는 48시간 이내에 관련 콘텐츠의 진실성 여부를 파악한 후, 이에 대한 삭제 명령을 내려야 한다.
선거 기간 동안 허위 정보의 파급력이 크긴 하지만, 48시간은 매우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앵수미즈(France Insoumise)의 소속 의원들은 “허위 정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판사 혼자서, 그토록 짧은 시간 내에 사안을 이해하고, 양측의 상반된 주장을 듣고, 추가 서류 등을 요청하고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나? 이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적어도 72 시간으로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72시간이든 48시간이든 판사에게 이런 권한을 맡기는 것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3. CSA의 권한 확대
법안은 CSA에 정보 조작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즉, CSA에게 “외국 국가에 의해 통제되거나 외국 국가의 영향 하에 있는” TV 방송이 프랑스 국가의 근본적인 이해를 침해하는 경우, 이들의 중계를 중단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CSA의 행정적 권한 강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좌파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의원들은 “외국 국가의 영향력에 대한 기준이 너무 애매하고 따라서 임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법에는 “영향력”으로 판단하는 것을 뒷받침할 그 어떤 근거도 명시하시 않고 있어, 영향력이 너무 주관적으로 판단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 ‘온라인 플랫폼의 투명성과 정보에 대한 의무’ 조항의 문제
이 조항에는 공적 토론과 관련된 정보의 홍보와 관련하여 개인 데이터 사용에 대한 공정하고 명확하며 투명한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CSA와 협력하여 공공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투표의 진정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허위 정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조치가 검열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가 독일처럼 엄청난 벌금을 내야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컨텐츠를 신속하게 삭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회사들은 차라리 엄청난 검열을 선호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트위터 등 주요 거대 디지털 플랫폼이 모여 만든 협회인 Asic(Association des services Internet communautaires,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 협회) 역시, 지난 10월 CNIL(프랑스 정보자유국가위원회)와 유럽 위원회에 이 조항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이 법안이 개인 정보 보호에 관한 일반 규정과 상충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중요한 투표를 앞둔 선거기간 동안, 정보 조작 대처에 관한 법안은 디지털 플랫폼 운영자에게 ‘공적 토론과 관련된 정보 콘텐츠’를 홍보하기 위해 기금을 지불한 이의 신원에 대해 공정하고 명확하며 투명한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Asic은 “이 의무는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인에게도 적용된다”면서 “자연인의 신원에 관한 투명성에 대한 의무는 기존의 법률과 상충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아울러 이 법안이 규제 대상 콘텐츠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배포되지 않은 콘텐츠를 포함, 정보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에 적용” 하고 있기 때문에, 사적인 성격의 정보 콘텐츠가 공개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5. 이미 존재하는 허위정보 관련법과의 관계
허위 정보의 유포를 차단하기 위한 ‘정보 조작 대처에 관한 법안’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허위 정보에 관한 법적 규제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허위뉴스를 규제하는 언론법 제27조가 대표적인 조항이고, 아울러 선거법 97조는 투표의 진정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규제한다.
언론법 전문 변호사인 바질 아데르(Basile Ader)는 굳이 새로운 법을 제정할 필요 없이 1881년 언론법으로 지금 벌어지는 허위정보를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언론법의 허위뉴스 전달과 명예훼손 범죄 조항을 통해 선거기간 동안의 허위정보에 대처 가능하다.
그는 “허위뉴스가 공공의 안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면 검찰은 언제든지 이를 기소할 수 있는데, 바로 선거 결과에 관한 허위 뉴스가 그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언론법은 선거 기간에 한해 그러한 허위뉴스에 대해 긴급한 조치를 할 것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거 후보자에 대한 허위정보의 경우, 그것이 개인의 명예나 평판을 해치는 경우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
아울러 정치학자, 제랄딘 뮐만은 언론법의 허위 뉴스 조항의 경우처럼, 정보조작대처법이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예훼손처럼 대부분 약식 기소는 판사에게 아직 확립조차 되지 않은 범죄를 가지고 잠재적 손해의 예외적인 중대성을 고려하도록 요청하고 있는데, 단순한 위험을 이유로 판사가 긴급하게 근본적인 자유를 침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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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 넥스트인팩트(NextInpact), Le Senat rejette encore la proposition de loi contre les ≪ fake news≫
- 르몽드(Le Monde), Loi sur les ≪ fake news ≫ : ≪ Il faut refuser ce bidouillage juridique ≫
-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L’OBS), Fake news : la loi permet deja en France de sanctionner, assure un avocat du barreau de Paris
- 넥스트인팩트, Rees, M. (2018. 10. 22), Loi anti-fake news: l’Asic interroge la Commission europeenne et la CN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