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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물을 휘저어보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잘못된 말과 일이 지적되지 않으면 대중은 잘못된 사실을 진실인 양 오해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오해로부터 삿된 이익을 취하기도 하니 몇 자 써 보자.

‘소설 성역화’ 사건 개요:

1) 8월22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 비서관들과 함께 있는 사진을 홍보용으로 올렸다.

2) 8월25일 그 강용석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청와대 사진이 비슷한 구도를 가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3) 8월26일 청와대는 페이스북에서 청와대 사진이 백악관 사진보다 더 먼저 나온 것이라고 해명하며, 사실 확인 없이 강용석 주장을 기사로 쓴 언론을 비판했다.

4) 같은 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개인 트위터에 똑같은 취지의 비판을 내어 ‘뉴스는 소설과 달리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고 썼다.

고민정 트윗

5) 8월29일 공지영 소설가는 이에 대해 트윗 댓글을 달아, 거짓말의 의미로 소설이란 말을 쓰는 것은 문학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지영 트윗

6) 9월6일 공지영은 다시 일련의 트윗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합리화했다. 독자 편의를 위해 시간 순서대로(즉 트윗 역순서로) 배열했다.

공지영 트윗

공지영의 선언식 서술은, 그 음조는 웅장한 것 같아도 포장을 조금만 걷어 보면 곧 허술함이 드러난다. 개 발에 편자를 대려는 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여하튼 인상적인 것부터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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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25″]1.[/dropcap] “생각해보라. 김대중이나 노무현 대통령 혹은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소설 쓰지마십시오” 같은 저자거리의 용어가 나온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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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생각해 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팩트는 개인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무조건 사실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경향신문] 2009년 4월 8일
[경향신문] 2009년 4월 8일
[동아일보] 2007년 9월 11일
[동아일보] 2007년 9월 11일
노무현이 쓴 ‘소설 같다’ ‘소설을 쓴다’ 같은 말은 고민정이 쓴 말과 완전히 같은 뜻이며, 그 맥락도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것으로 보이는) 언론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다.

공지영은 노무현에게 ‘노무현도 쓰지 않은 저잣거리 말을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꼴이다.

노무현뿐만 아니라 ‘노무현재단’도 똑같은 말을 썼다.

[미디어오늘] 2013년 7월 18일
[미디어오늘] 2013년 7월 18일
심지어, 거짓말의 의미로 소설이란 말을 쓰면 문학을 모욕한다고 주장하고 있던 바로 그날 공지영이 올린 또 다른 리트윗은 이렇다.

공지영 리트윗

이것도 완전히 같은 뜻,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김부선은 청와대 직원이 아니어서인지, 공지영은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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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25″]2.[/dropcap] “나에게는 언어의 왜곡이 맞춤법보다 중요하다. 짜장면이 표준어가 된지 몇해 안됐지만 그 훨씬 전부터 짜장면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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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짜장면 사례를 쓴 것은 맞춤법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예시를 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물론 짜장면은 그도 썼듯 맞춤법이 아니라 표준어의 문제라서 자기 말에 적합한 예가 아니다. 게다가 짜장면의 경우는 모르거나 무신경해서 틀리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틀리게 쓰는 것이다. 나도 오래 전부터 짜장면은 짜장면으로 썼다.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그래서 여기선 필요없지만), 공지영의 트윗에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섞여 있다. 오타나 의도적으로 잘못 쓴 말이 아니라 주의하지 않아서 틀린 말로 보이는 것들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몰라도 소설가가 그런 지적을 받고 나서 “나에게는 OOOO이 맞춤법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런 태도야말로 단어와 문장으로 축조되는 예술인 문학에 대한 모욕일 것 같다.

물론 여기서 언어의 왜곡을 말한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나치는 자유라는 말이 가지는 상식적인 의미를 배반하고 실질적으로 죽음이라는 의미를 넣어 왜곡했지만, 고민정이나 청와대가 소설이라는 말에 거짓말이라는 의미를 독자적으로 부여해 왜곡한 바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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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25″]3.[/dropcap] “소설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악이고 고의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쓴 사람은 이명박이었다. 그는 대선기간 중 BBK를 감추기 위해서 “여러분, 이거 다 소설인 줄 아시죠”, “소설 쓰는 겁니다” 등의 용어를 구사했다. 그런데 그가 왜 “거짓말이라는 단어 대신 소설이라는 단어를 대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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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제일 먼저 그런 말을 공식적으로 썼다는 것은 망상이다. 어학자나 역사학자들조차 근거를 대기가 아주 어려운 ‘제일 먼저 어떤 말을 썼다’와 같은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란 대체 어떤 이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이 “여러분, 이거 다 소설인 줄 아시죠”라고 했다는 것도 망상에 가깝다. 이명박이 소설이란 말을 쓴 적은 있겠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 그는 정확하게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라고 했다. 대입하고 어쩌고는 사실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의 착종된 기억일 뿐이다.

YouTube 동영상

설령 이명박이 ‘대입’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가 ‘소설을 쓰다’라는 문구가 가진 ‘거짓말을 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지, 소설을 폄하하거나 모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는 뜻으로 ‘콜라를 마시다’라는 말이 있어 ‘콜라 마시고 있네’ 같이 쓰인다면, 이명박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왜 갑자기 문학 장르로서의 소설이 피해자로 둔갑하여 등장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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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opcap font=”arial” fontsize=”25″]4.[/dropcap] “세상 어떤 나라도 예술의 한 장르를 폄하해 이렇게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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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들 중간에 있는 희한한 소설 ‘강좌’도 흥미롭지만, 건너뛰자.

공식적이라는 말, 혹은 ‘민주 정권’이 그랬다는 말, ‘민주 정부의 공식 언어’라는 말을 자꾸 쓰는데, 그것은 발화자가 청와대 부대변인이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공직자이긴 하지만 공식 SNS도 아니고 개인 트위터에 쓴 것을 ‘정부가, 정권이 그랬다’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것이다.

그건 둘째치고, 여전히 근거 없는 단정으로 웅변하고 있다. 저런 결론을 내리는 데 근거가 되는 어떠한 조사를 수행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언젠가 모아둔 자료를 정리하겠지만) 글이나 말에서 근거 없이 최상급 표현이나 유일성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주장을 내놓는 사람들의 관심과 목표는 사실의 확인과 그에 기반한 토론이 아니라 감성적 설득, 그리고 이슈에의 참여일 뿐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사람들이 쓰는 ‘소설’로 인해 사실이 오해되고 잘못된 사실이 확산되는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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