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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라진 넷플릭스

넥플릭스

한국에서 서비스되는 넷플릭스의 외국 영화나 드라마들에는 한국어 자막이 동반되어 있다. 자막의 품질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극장에 걸리는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넷플릭스는 영상물의 외국어 자막을 만들기 위해 전세계에서 번역자를 온라인으로 지원받아 일정한 시험을 거쳐 경쟁 선발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꾸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등장인물이 대화를 할 때 나오는 2인칭을 그 사람 이름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마이클: 지점장이 실적을 올리라고 자꾸 압박하네.
데이브: 나는 이번달에 5건 밖에 못했는데. 마이클은 얼마나 했지?
마이클: 데이브보다는 조금 많은 정도야.

지미: 어제 시내에 나갔다가 토미네 형을 봤어요.
토미: 그래요? 무슨 이야기 했어요?
지미: 토미의 집 지하실 수리를 하려고 자재를 사러 나왔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원문에 쓰인 말은 그냥 ‘you’다. ‘당신’, ‘자네’라고 옮기면 그만인데, 이걸 굳이 상대방 이름으로 번역하곤 한다. 대사 앞에 말하는 사람 이름을 달아두면 좀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그런 이름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누구 이야기인지 종잡을 수가 없게 된다.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이름 때문에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하게 된다는 것.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등장인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어서 잘 주목되지 않는다. 더구나 주인공도 아닌 사람들인 경우 이름은 큰 의미가 없다. 이렇게 주목하지 않은 이름이 갑툭튀하니 순간적으로 제3자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

둘째는 이것이 유치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말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대화를 할 때 자신이나 상대방을 3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대화 주체와 객체 사이의 언어적 상대 관계를 아직 인식하기 전이어서 1인칭과 2인칭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빌리: 빌리조니에게 빵을 줄 거야.
조니: 아니야. 조니 빌리에게 빵을 줄 거야.

어린애들도 아닌 회사 CEO나 FBI 책임자가 대화를 하며 상대를 자꾸 실명 이름으로 부르니, 극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덜 떨어진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무슨 가이드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한 명, 혹은 일부 번역자의 습관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다. 여하튼 부자연스럽고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번역이다. ‘You’를 돌려주세요.

 

 

아래는 [임페리엄] (2016, 다니얼 래거시스)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이다.

임페리엄

↑ 갑자기 나온 제리가 누구지? 왼쪽 인물이 오른쪽 인물에게 묻고 있는 장면이다. “글쎄요. 당신은 어때요?”면 된다. 원문은 “Hmm… What about YOU?”

 

임페리엄↑ 방송을 하는 당사자를 앞에 놓고 하는 말임에도, 제3의 누군가(혹은 심지어 도시)에 대한 말을 하는 듯 느껴진다. 원문은 “He’s very excited about expanding YOUR reach.”

 

[스위트 버지니아] (2017, 제이미 M. 대그)라는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들이 나온다.

스위트 버지니아↑ 등을 보이는 사람이 정면으로 보이는 상대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원문은 “YOU and Mitchel didn’t get three years of marriage.”

 

444↑ 모텔 주차장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한다. 등을 보이는 샘이 시내에서 열린 은퇴 파티에 다녀온다니까 멀리 보이는 상대가 ‘당신 은퇴 파티는 아니지?’ 하고 농담하는 장면이다. 원문은 “Hope it wasn’t YOUR own.”

 

555↑ 그러는 너는 왜 아직 안 자? 상대방을 앞에 놓고 이름을 대고 있어서 마치 데리고 있는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원문은 “How about YOU? What are YOU doing up so late?”

 

 

[임페리엄]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를 막기 위해 그들의 조직에 FBI 요원을 침투시키는 이야기다. ‘해리 포터’로 나왔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주연이다. 소재는 흥미롭지만, 구성도 엉성하고 박진감도 떨어져서 권할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언더커버(undercover; 위장 근무)를 다룬 영화로는 [도니 브래스코][디파티드] 같은 걸작이 있다.

하지만 이런 시시한 영화에서도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멋진 대사가 나온다.

본질을 잘 들여다보면, 파시즘을 낳는 핵심적인 단 하나의 재료가 있다. 바로 피해의식이다.

Because when it comes down to it, there really is only one essential ingredient to fascism… It’s victimhood.

책이라면 형광펜으로 죽죽 긋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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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허광준(deulpul)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들풀넷 운영자 / 연구 및 강의 노동자, 매체 비평가, 콘텐츠 생산자 / 들풀미디어아카데미 대표 / 과거에 [(원)시사저널] [포린 폴리시(한국어판)] [미디어 미래] [미디어 오늘] 등에서 기자, 편집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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