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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도서출판 부키 주최로 열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와 간담회에서 가운데 나온 이야기를 인터뷰 형태로 정리했습니다. 장 교수는 최근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기념판 발간을 맞아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좀 거칠긴 하지만 최대한 워딩을 살려서 정리했으니, 대화 메모 정도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18년 7월 19일 
  • 인터뷰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 인터뷰어: 이정환 미디어오늘 사장 (+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 
  • 정리: 이정환  
장하준 교수 (사진 제공: 도서출판 부키)
장하준 교수 (사진 제공: 도서출판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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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한국은 사회적 대타협이 어려운가

이정환 :

오랜만에 뵙죠? 제 질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질문이 약간 다른 측면의 같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장 교수님을 처음 인터뷰했던 게 거의 15년 전입니다. 월간 [말]에서 일할 때였는데요. 장 교수님을 인터뷰하면서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과 사회적 대타협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를 비판했고, 성장과 복지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여러 차례 썼죠.

그 뒤 스웨덴에 두 차례 다녀오면서 느꼈던 건 오랜 역사의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도 계속해서 도전에 부딪히고 있으며 타협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고 심지어 보수 정당에 정권을 뺐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회적 연대와 복지국가의 근간을 지키려는 사회적 합의가 강력하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나가는 시스템을 가져다 이식하면 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문화를 만들고 토론을 통해 답을 찾아 나가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왜 한국은 사회적 대타협이 안 되는가. 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진영 논리가 강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의 주장이 있고 한겨레는 한겨레의 주장이 있죠.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기사들이 넘쳐나죠. 보수와 진보가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고 서로 불편한 질문을 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장하준 :

스웨덴은 세계에서 제일 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죠. 임금뿐만 아니라 고위직 남녀 비율이나 임금 격차나 육아 휴직도 맘대로 나눠 쓸 수 있고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재벌이 있습니다. 발렌베리와 비교하면 삼성은 경제력 집중도 아니고, 총수 일가 자산은 얼마 안 되는데 지배적 주주로 군림하고 있죠. 에릭슨을 비롯해 발렌베리 그룹의 시가 총액을 다 합치면 스웨덴 주식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회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 도저히 양립 불가능할 가치가 공존하는 나라가 스웨덴입니다.

스웨덴도 1920년대는 파업률이 세계 최고였고. 1932년에서야 소득세를 도입했고요. 지금이야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로 꼽히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사회적 연대의 전통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제가 처음 영국에 유학 갔더니, 스웨덴 친구가 좌파 정권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난리더라고요. 사회민주당이 집권하면서 GDP(국내총생산) 대비 정부 예산을 55%까지 늘렸는데 이걸 적어도 4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한국은 13% 정도밖에 안 되는데? 자칭 우파라는 친구가 생각하는 수준이 45%였습니다. 복지국가를 보는 관점도 조금씩 다른 거죠.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펠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19세기 말 당시 유럽의 최빈국이었던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일을 찾아 이주한 늙고 힘없는 아버지와 전설적인 노동운동가로 성장하는 펠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정복자 펠레’ (빌 어거스트, 1987)

왜 한국은 안 될까. 저는 사회학자가 아니니 모르겠지만, 일단 진영 논리가 강하죠. 우리 편은 이거이거. 너희 편은 저거저거. 너는 도대체 왜 이래. 제가 ‘개혁의 덫’이란 책을 썼더니 어떤 기자가 인터뷰에서 너는 좌파냐 우파냐 묻더라고요. 이게 딱 나눠서 답을 하기 어려운 게 좌파와 우파를 시장주의냐 개입주의냐로 구분하면 거기서는 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좌파라고 할 거고, 자본이냐 노동이냐 물으면 나는 타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중도파라고 할 수 있을 거고, 점진적인 개혁이냐 급진적인 개혁이냐 물으면 원래 우파는 점진적이고 좌파는 급진적이고, 왜 이렇게 무슨 종합 선물 세트를 만들어서 맞지 않으면 배척하고 우리 편 네 편 나누겠죠.

중앙은행 독립도 말이죠.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관치 금융을 비판하고, 중앙은행 독립을 찬성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우파들이 중앙은행 독립을 요구합니다. 좌파 정부가 돈 찍어서 고용을 늘리자 하니까 그런 거 못하게 중앙은행 독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정치 논리가 개입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이죠.

뭐가 좌파고, 뭐가 우파고, 어떤 게 맞고 틀리는 게 아니고, 역사가 그럴 뿐이죠. 어느 나라나 진영 논리가 있긴 하지만요. 1960~1970년대 영국 노동당이 프랑스나 일본에서 하는 선별적 산업 정책을 하겠다고 하니 좌파 정책이라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프랑스나 일본 사람들은 무슨 소리냐 그거 우파 정책인데, 그렇게 말하죠.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드골이,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산업 정책을 펼쳤죠.

진영 논리에 집착하니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저편이니까 저걸 지지하고 우리 편은 이걸 지지하고 그러니까 나는 이걸 지지해야 하고, 둘이 만나서 대화해서 잡종을 만들어 보자 이런 생각보다 저걸 어떻게 깨야 이길까 그런 생각으로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거죠. 저는 사회학자도 아니고 문화학자도 아니지만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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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직도 사회적 대타협은 가능한가 

이정환 :

두 번째 질문은 사회적 대타협 논쟁 그 이후입니다. 제 자랑이 아니라 ‘삼성만 잡으면 된다’는 제목의 기사가 꽤 화제가 됐었죠. 주주자본주의의 공습에 맞서 차라리 재벌 체제를 일부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장하준 교수님과 정승일 선생님, 그리고 이종태 기자의 대담에 이은 후속 기사였습니다. (나중에 이 대담이 [쾌도난마 한국경제]로 발전했죠.) 삼성을 해체할 게 아니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삼성의 약점을 잡고, 자본 파업을 끝내고 일자리 창출과 국민 경제에 공헌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장 교수님의 주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1. 주주자본주의가 성장을 잠식하고 불균형을 키운다
  2. 그래서 재벌이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3. 여전히 성장은 중요하고 제조업이 성장의 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4. 재벌의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고
  5. 국가와 기업의 공존이 필요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 이건희
일러스트: nooe

단순히 재벌 해체가 해법이 아니라는 장 교수님의 주장은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했죠. 이재용의 3세 승계를 용인하는 조건으로 일자리 창출과 장기 투자를 요구하고, 복지국가의 초석을 만드는 사회적 대타협을 해보자. 장 교수님의 주장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재벌의 사회적 통제는 실패했습니다. 주주자본주의에 맞서기는커녕 재벌이 주주자본주의와 결탁해 지배력을 강화하고 기득권 권력의 핵심이 됐죠. 두 번째 질문은 아직도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연간 53조 6,450억 원에 이릅니다. 세금도 많이 내고 있고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15년 전에는 삼성에 약점이 있었으니 주고 받을 게 있었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삼성과 무엇을 거래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재벌 체제를 용인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낼 부분이 있다고 보십니까?

장하준 :

사회적 대타협을 하자고 제안한 건 스웨덴을 베끼자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이쪽에서는 우리는 죽어도 우리 것 지키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가더라도 해체해야 한다고 하니까, 다 안 되겠다 해서 생각한 게 어떤 형태로는 대타협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대타협을 해보자는 제안을 내놓은 겁니다. 그런데 진영 논리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죠.

제가 재벌을 공격하는 외국 자본을 욕하니까 국수주의자라고 하고, 재벌의 앞잡이라고 하죠. 재벌을 이 씨나 정 씨가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기업 집단 구조가 우리 경제에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 투기자본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건데 한쪽에서는 재벌의 앞잡이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이상한 좌파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좌파가 욕이니까요.

오해를 안 받아보려고, 재벌과 타협을 하는데 그냥 주자는 게 아니라 사회적 통제와 대가를 주고 받아야 한다고 말한 거죠. 경영권을 보호한다든지. 처음에는 신선해서 그랬는지 반향이 있었는데, 진영 논리에 안 맞으니까 다들 무시하더라고요. 저도 같은 소리 하는 게 한계가 있고요. 오해만 받으니까 질려서 안 하다가 가끔 가다 생각나면 한 마디씩 하고 그랬죠. 어떻게 주의를 환기 시켜볼까 하고 말이죠.

두 얼굴의 삼성

영국에서는 장기 주주에게 투표권을 더 주는 방안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주주 자본주의 논리를 바꾸지 않고도 장기 투자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죠. 노동자 주주에게 의결권을 더 주는 것처럼. 이탈리아와 프랑스도 법을 바꿔서 2년 이상 갖고 있으면 1표 더 주고, 영국은 주주자본주의 체제가 강고하기 때문에 미국 보다는 덜하지만, 단기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지잖아요. 영국에서도 무조건 1주 1표는 아니라는 겁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폭스바겐처럼 여러 가지가 있고 합칠 수도 있고, 새로운 걸 발명할 수도 있고 이야기해봐야 하는데, 재벌들은 여전히 황금주(인수 관련 주주총회 결의 사항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니 포이즌 필(Poison pill; 독약 조항 또는 주주권리계획; 일종의 경영권 방어수단)이니 하는 주문만 외우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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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액주주운동과 경제민주화 

이정환 :

세 번째 질문은 소액주주운동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것입니다. 장 교수님과 논쟁을 벌였던 장하성 교수님(장 교수님의 사촌 형님이시죠)은 지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계시고, 김상조 교수님은 공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당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했던 참여연대는 SK그룹을 공격했던 소버린자산운용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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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재벌 개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강조하는 건 위험하죠. 시장을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고요. 경제 민주화 담론 역시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 교수님이 비판했던 분들이 지금 정부의 요직을 맡고 있습니다. 이게 세 번째 질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하준 :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들여온 게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라는 걸 아세요? 정부가 간섭을 많이 하니까 SK그룹 최종현 회장이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이런 논리를 끌어들인 거죠.

그런데 장하성 교수가 “당신들이 주인 맞아요? 5% 밖에 안 되는데 왜 주인 행세를 하느냐”고 공격하고 나선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죠.

저는 어떻게든 재벌 구조의 좋은 점을 취하고, 가족 지배의 이상한 모습을 없애고, 국민경제 성장과 고용을 위해서 뭔가 했으면 좋겠다 해서 스웨덴 대타협부터 장기 보유 주주에게 가중 투표권을 주는 등 온갖 이야기를 다 했는데 어렵더라고요. 진영 논리에 맞지 않으니까.

소액주주운동은 뜻있는 운동이긴 합니다. 그런데 사실 소액주주운동은 펀드 매니저들이 하는 거에요. 우리도 장부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고, 집중투표제 해서 이사회에 영향을 미치게 하고, 그런데 그게 경제 민주화라고 포장된 건 좀 엉뚱하긴 하죠.

장하성 교수님이 직접 펀드를 만들기도 했지만, 소액주주운동을 통해서 재벌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 거니까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는 의미있는 운동이었는데 결국 이게 약간 수정하긴 했지만, 주주자본주의 논리에서 이야기를 하니까 틀을 깨지 못하신 거죠. 우리가 미국보다 돈이 많으면 주주자본주의를 해도 되는데 그게 아니면 먹힐 수밖에 없으니 걱정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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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그냥 주주권이란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업이라는 건 개인이 만드는 게 아니고, 사회가 다 같이 만드는 거고, 만약 정부가 주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지 않고 도로와 항만 등 인프라를 제공해주지 않고, 세금으로 노동자들 교육 시켜서 공급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국책 연구소 통해서 기술 공급을 해주지 않으면 기업의 독자적인 역량으로 혁신을 할 수 있나요? 기업은 사회가 다 같이 만드는 건데 주주들의 이익만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죠. 자본을 댔으니까 자격은 있지만 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고 법을 만들어놓고 그걸 받아들이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죠.

1990년인가 삼성에서 만든 디지털 카메라를 가져갔는데 반년도 안 돼서 고장이 나더라고요. 영국에서 살았으니 더 좋은 제품도 많았지만, 한국 사람이니 국산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니콘이나 캐논이나 수입도 안 되거나 높은 세금 물리게 해서 국산 잘 팔리게 도와줬더니 혼자 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키면서 나라 경제에 공헌하고 사회 경제에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데 노조도 인정 안하고,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처럼 엽기적인 행동을 하니까 사회적 대타협이 말도 꺼내기 어려운 거죠.

"만약에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우리 유미(딸)처럼 많은 사람들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려서 죽었는데,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 이 영화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
“만약에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우리 유미(딸)처럼 많은 사람들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암에 걸려서 죽었는데,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오늘 이 영화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 황유미 씨의 부친, 황상기 씨)

재벌 체제의 대안이 시장 논리냐 하면 결코 그건 아닙니다. 이 씨나 정 씨나 재벌 집안 사람들 쫓아내는 건 좋지만, 주주들에게 단기 이윤을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윤의 95%까지 배당하고, 자사주 매입해서 갖다주고, 투자 안 하고, 하청 기업 쥐어짜고, 팔고 나가면 되니까요.

그게 GM이에요. GM이 망한다는 건 소련이 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적인 일이죠.

1955년에 일본에 자동차 회사 11개가 있었는데 7만 대를 만들었습니다. GM은 350만 대를 만들었죠. 미국이 700만 대를 만들었는데 절반을 GM이 만든 겁니다. 그때 ’50년만 더 있으면 도요타가 세계 자동차 1위 될 거다’, 그렇게 말했으면 비웃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엄청난 GM이 망한 거에요.

GM 초기 로고 (1920년대)
GM 초기 로고 (1920년대)

GM은 소액주주운동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죠. 가족 지배 없고, 포드는 차등 의결권을 최대 40%까지 갖고 있었지만, GM은 지배주주가 없었어요. 칼 아이칸이 제일 많을 때 11% 정도가 최고였고요. 이사회 전원이 사외 이사고, 단기 이윤을 꼬박꼬박 갖다 바치고, 그러다가 성장 잠재력을 잃고 공적자금 투입하고 국유화해서 기울어진 거죠.

제가 자본주의 병리 현상이 발달한 영국에 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면 어떨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폭스바겐이나 도요타처럼 계속 남아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거냐, 아니면 GM처럼 흐지부지 되면서 없어질 거냐, 이런 걱정을 하게 됩니다. 현대자동차가 망하면 중국이 사겠죠. 이미 쌍용자동차는 중국 회사에 팔렸다가 이제 인도 회사가 됐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LP 판이 튀는 느낌이라 한 소리 또 하고 하는데 지겨워서 이야기 안 하려다가 또 오면 하고 하고 하는데. 제가 주장하는 게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재벌 논쟁의 초점이 잘못된 거 아닌가, 기업이 투명하게 경영하는 게 좋겠지만, 투명한 목표가 뭐냐가 중요한 거 아니에요? 당장 배당 많이 받고, 주가 오르는 데 관심 있는 펀드 매니저들 입장에서 기업 지배구조도 말끔하게 돼 있고 투명하다고 좋아하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는 겁니다.

튀는 판을 또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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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신기주 :

(함께 간담회에 참석했던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의 질문이다.)

질문을 하나만 더 해도 되나요? 최근 국민연금 관련해서 발언하신 것도 꽤 화제가 됐는데요. 장하준 교수님이 한국 경제에 본격적으로 참전하시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참고기사: 

장하준 :

외국 연기금은 한국처럼 삼성전자 지분을 8%나 갖고 있고 이런 게 많이 없어요. 특이한 현상인데, 저는 이게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 피땀을 빨아먹고 자란 기업들을 국민들이 소유주가 돼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이 기업들은 통제할 수 있게 된 거죠. 완전히 통제는 안 되지만, 그래도 큰 주주거든요. 지렛대인데 이걸 반대하는 분들은 정부를 믿을 수가 없는데 정권 바뀔 때마다 사익에 쓸 수도 있고, 사실상 그동안 그렇게 하기도 했죠. 최 씨네 딸 말 사주고 말이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주요 기관 투자가들이 투자할 때 마치 주인 대신 집안일을 대신하는 ‘청지기'(스튜어트)나 집사처럼 돈을 소중하게 여기도 최선을 다해 운용해야 한다는 지침) 이야기 나오는 것도 위탁 경영을 해서 영향을 못 미치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해는 되지만, 그런 식으로 중요한 걸 다 위탁하려면 정부가 왜 있습니까. 매킨지나 보스턴 컨설팅에 외주 줘서 경영하죠. 민주주의 원칙에 독립성과 분리는 필요하지만, 이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정환 :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위원장은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연금을 동원해 보육시설을 늘리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보편적 복지 혜택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연금 재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을 내 돈 맡겨놨다가 찾아가는 강제 저축으로 이해하면 운신의 폭이 좁죠.

장하준 :

동의합니다. 일부에서 연기금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는데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건 자본주의 논리인데 부자가 자기는 사치스럽게 먹고, 가난한 사람들 왜 사치스럽게 노느냐고 비난하는 꼴입니다. 다 같이 돈 모아서 행사하겠다는 건데 그게 사회주의입니까.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는 욕이 되는 거죠.

그리고 사실 사회주의도 아닙니다. 지극히 자본주의 논리를 갖고 통제 하겠다는 건데, 연금 사회주의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냉전 시대 사회주의라고 하면 다 재낄 수 있다고 보니까. 기왕 그래도 어찌됐건 모였는데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국민연금의 의무는 저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거니까 정치 논리에 휘둘리게 하면 안 된다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별 의미가 없죠. 다른 펀드 같은 식으로 운영하려면 의미가 없죠. 뭐하러 정부가 운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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