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꺾정 칼럼. 43화] 위기의 대한민국, 정서적 양극화를 넘어 정책 경쟁으로. (안용흔 /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4분)
22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유권자의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읍소하며 당선된 300명의 국회의원이 과연 유권자를 위해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때입니다. 이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안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니까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의 시각에서 22대 국회와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차악’ 대선의 재현?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대한민국은 또다시 조기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2025년 6월 3일로 예정된 이번 대선은 단순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을 넘어, 심각한 정치적, 경제적 위기 속에서 국가의 미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약 6개월간의 리더십 공백 상태를 끝내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겠지만, 차기 지도자는 극심한 국내 정치 분열과 예측 불가능한 국제 정세라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 양상은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 경쟁보다는 상대 진영에 대한 반감과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정서적 양극화에 기대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 유권자들의 정서적 양극화 경향은 특히 지난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정치학계의 여러 연구는 지지 정당에 대한 긍정적 태도보다 상대 정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투표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민주주의 다양성 프로젝트(Varieties of Democracy Project)의 양극화 지표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해당 지수는 2012년 0.087, 2017년 0.527, 그리고 2022년 0.650으로 심화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서적 양극화에 기반한 선거 운동은 국민을 정책과 비전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특정 진영에 감정적으로 동원되는 대상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크다. 정당들 또한 정책 비전과 문제 해결 능력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하는 선거 전략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 평가받았던 20대 대선에서처럼, 유권자들은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 이는 결국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고,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더욱이 경제 위기 극복과 사회 통합이라는 시급한 과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자본 형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다.

정책 중심의 ‘정치 시장’을 열어야
경제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기업의 홍보 내용과 이에 대한 제품 리뷰 등을 바탕으로 각 제품의 장단점을 꼼꼼히 비교하여 결정을 내린다. 마찬가지로, 정치 시장에서 유권자들도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때, 그들이 제시하는 정책 비전과 실행 계획,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 및 학계 전문가의 평가 등을 바탕으로 각 정당과 후보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당과 후보들은 당면한 국가적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경쟁해야 한다. 단순히 추상적인 구호나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 당면한 국가적 과제와 과 극단적 정치 대립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과 로드맵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토론과 정책 경쟁을 벌여야 한다. 차기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대표적인 것만 예시해도 이렇게 많다.
- 경제 회생과 민생 안정
- 저출생·고령화 심화 대응 정책 수립
- 사회 안전망 강화
- 지역 불균형 해소
- 외교·안보 전략 수립 등
따라서 각 정당은 이번 대선에서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나 정서적 동원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선거 전략에서 벗어나, 자당 후보의 정책적 강점과 비전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후보 간 감세 구상과 증세 필요성 주장이 맞서는 등 정책적 차별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중국 외교 노선 등 외교 안보 정책에서도 각 정당과 후보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차별점을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하여 치열하게 토론하고 국민적 이해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권자들은 각 후보의 국정 운영 능력과 정책적 지향점을 명확히 비교·평가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호 비방이나 감정적 선동이 아닌, 정책의 우수성과 비전의 설득력으로 경쟁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선거는 비로소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나아가는 건전한 정치 시장으로 기능할 것이다.
양극화 촉진 제도를 개혁해야
이와 함께, 한국 정치를 극단의 대립과 배제의 정치로 몰고 가는 정서적 양극화 현상을 완화하려면, 각 정당과 후보 간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 제도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는 승자독식의 정치 구조가 지목된다.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구조와 단순 다수(대표)제에 기반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정치를 고착화시키며, 정당 간 타협이나 연대의 동기를 약화시킨다. 연립정부 구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집권당은 차기 선거의 유력경쟁자가 될 수 있는 정당과는 연정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강력한 양당제가 자리 잡은 정치체제에서는 정당 간 정책적 협력이나 연립정부 구성이 성사되기 어렵다.

이러한 배경에서 정당체제를 다당제로 변환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절실하다. 우선, 대통령 선거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다시 투표하는 결선투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는 당선자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1차 투표에서 소수정당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의사가 결선 과정에서 정책 연대 등을 통해 반영될 가능성을 높인다.
또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불비례성을 완화하고 다양한 소수 의견이 국정에 반영될 통로를 넓히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 비율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다양한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고 소수 정치 세력의 원내 진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당제 정착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정서적 양극화를 완화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이는 정서적 양극화에 기대는 선거 전략에서 벗어나 정책 중심의 경쟁을 유도하고, 여야 간 타협 없는 정치적 교착상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치체제의 안정성을 높여, 탄핵과 같은 정치적 위기로 인한 조기 대선이라는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