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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6월 6일), 페이스북을 지웠다. 아니, ‘다시’ 지웠다고 해야 맞겠다. 8년 전 이맘 때(2010년 5월)에도 페이스북 탈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아래 글 참고: ‘페이스북을 지우다’). 하지만 당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3개월여 만에, 집 나갔던 탕자가 패배를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오듯, 다시 페이스북으로 자진 복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맨 아래 글 참고: ‘페이스북으로 다시 돌아오다’).

그때나 지금이나, 페이스북은 늘 꺼림칙했다. 그곳에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 마다, 특히 그것이 개인적인 내용일 때는, 마음 한 구석이 늘 찜찜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이 터진 직후에는 그런 찜찜함과 불안함, 페이스북에 대한 배신감이 더욱 커졌다. 무슨 특별한 신뢰감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이어갈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는 뜻이니까.

직업적 특성 때문에 남들보다 디지털 프라이버시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고, 더 자주 의식한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워버리자는 결심에는 이르지 못했다. 또 다시 페이스북을 섣불리 지웠다가 다시 돌아가는 과거의 민망한 행태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 같은 이민자에게는 여느 사람들보다 페이스북을 지우기 어렵게 만드는 더욱 강력한 요인이 있었다. 페이스북은 내게, 나 같은 이민자들에게, 한국의 가족, 친구, 지인 들과 소식을 주고받는 더없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채널이었다. 8년 전 페이스북 탈출에 실패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태 직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겸 CEO. 이 사진에 대해 '이용자가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벌어지는 디지털 감시와 추적의 상황을 빗댄 장면' 같다거나, '인터넷을 이용할 때 달라붙는 쿠키들을 보는 것 같다'라는 촌평도 나왔다. (출처: 뉴욕타임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태 직후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설립자 겸 CEO. 이 사진에 대해 ‘이용자가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벌어지는 디지털 감시와 추적의 상황을 빗댄 장면’ 같다거나, ‘인터넷을 이용할 때 달라붙는 쿠키들을 보는 것 같다’라는 촌평도 나왔다. (출처: 뉴욕타임스)

하지만 최근 며칠간 터진 페이스북 소식은 ‘도저히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굳게 했다. 페이스북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만 8천7백만 명의 개인정보를 자의적으로 넘긴 게 아니었다. 뉴욕타임스의 6월 3일 자 특종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최소한 60개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데이터 공유 제휴’를 맺고 이용자와 그 친구들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허용했다. 이 중에는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블랙베리 등이 포함되었다 (뉴욕타임스 기사: Facebook Gave Device Makers Deep Access to Data on Users and Friends).

그뿐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은 미국 정보기관들에서 요주의 대상으로 삼는 — 조금 더 나가면 잠재적인 ‘적’인 — 중국의 대기업들, 특히 화웨이와도 데이터 공유 파트너십을 맺고 개인정보를 제공했다. 화웨이만큼 파장이 큰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 제조사인 레노버를 비롯해 오포(Oppo), TCL 등도 포함되었다 (뉴욕타임스 기사: Facebook Gove Device Makers Deep Access to Data on Users and Friends). 화웨이 측은 페이스북으로부터 데이터를 제공받은 바 없다고 즉각 부인했지만,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화웨이가 아니라 페이스북이 문제였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그 당사자에게는 전혀 알리지도 않은 채 제 멋대로 전용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화웨이

내게 뉴욕타임스의 저 기사들은 최후의 결정타였다. 그래 접자. 이제 더 이상 페이스북은 믿을 수가 없다. 로봇처럼, 혹은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정작 문제를 바로잡을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는 마크 저커버그나, 그와는 다르게 말은 번지르르하고 세련되지만 그래서 도리어 더 위험한 교언영색의 셰릴 샌드버그를 보더라도, 페이스북에 더 이상 걸 만한 기대나 신뢰는 없다.

따지고 보면,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어떤 변화나 수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면도 없지 않다. 페이스북이 어떤 기업인가? 소셜미디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바탕으로 돈을 번다는 뜻이다.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정보가 곧 페이스북의 자산이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그리고 그 이용자들이 더 자주, 더 많은 정보를 주고 받을수록, 페이스북의 자산도 늘어난다. 그 자산으로, 페이스북은 돈을 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직접 요인은 페이스북의 비밀주의거짓말이었다.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를 자산 삼아 벌이는 비즈니스’의 속성을 이용자들에게 솔직히 공개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좀 더 투명하게 알리면서 개인 당사자의 허락을 더 적극적으로 구했다면 문제는 덜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개인정보를 일종의 화폐로 삼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속성은 변할 수 없다. 말하자면 페이스북으로는 일종의 땜질식 처방은 가능할지언정, 근본적 치유는 불가능한, 존재론적 문제라는 뜻이다. 자신의 개인정보가 다른 광고 회사나 데이터 분석 기관에 넘겨지는 게 싫다면, 궁극적인 해법은 페이스북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페이스북 회원이 되는 것은, 페이스북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것과 같다. 그 감옥 안에서 개인정보 공개나 공유는 최소화하면서, 늘 어깨 너머로 어떤 위협이 있지나 않을까 경계하며 머무르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면 과감하게 탈출하는 길밖에 없다. 탈옥이다.

나는 어떨까? 또 몇 개월 뒤에, 페이스북으로 투항하게 될까? 이번에는 다를까? 두고 볼 일이다.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돈벌이하는 걸 막는 방법은 이용자로선 '탈퇴'밖에 없다.
페이스북이 개인정보를 이용해 돈벌이하는 걸 막는 방법은 이용자로선 ‘탈퇴’밖에 없다.

페이스북 삭제 과정

다음 스크린샷들은 페이스북 삭제 과정을 담고 있다. 8년 전에 견주어 놀라울 정도로 간단해졌다. 한편으로 누군가 당신을 그리워할 거라는 둥, 이러저러한 기업이나 기관들과 맺은 관계를 정녕 끊을 거냐는 둥, 탈퇴를 막으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못해 찌질하게까지 느껴졌다.

1. 설정→ 일반 → 계정과 정보 삭제  

페이스북의 '설정'→ '일반'→ '계정 관리'→ '계정과 정보 삭제' 순으로 선택한다.
페이스북의 ‘설정’→ ‘일반’→ ‘계정 관리’→ ‘계정과 정보 삭제’ 순으로 선택한다.

2. 확인 테스트

로봇이 장난 치는 것 아니냐며 이런 테스트를 두 번 노출시킨다. 내 경우는 사진에서 자동차가 포함된 패널들을 선택하라는 문제. '다음' 버튼을 누르면 다음과 같은 화면으로 이동한다.
로봇이 장난 치는 것 아니냐며 이런 테스트를 두 번 노출시킨다. 내 경우는 사진에서 자동차가 포함된 패널들을 선택하라는 문제. ‘다음’ 버튼을 누르면 다음과 같은 화면으로 이동한다.

3. ’14일 유예’ 메시지 

'당신의 계정은 향후 14일간 휴면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 14일 동안 본래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삭제 요청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당신의 계정은 향후 14일간 휴면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 14일 동안 본래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삭제 요청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4. ’14일 유예’ 안내 메일 

잠시 뒤, 메일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결심을 번복할 기한이 앞으로 14일이라는 내용.
잠시 뒤, 메일로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결심을 번복할 기한이 앞으로 14일이라는 내용.

아래 글은 8년 전인 2010년 5월 4일, 처음 페이스북 탈출을 시도했을 때 쓴 글이다. (필자)

페이스북을 지우다

오늘 페이스북 계정을 지웠다. 휴면 계정으로 만든(deactivate)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올렸던 모든 글이며 사진, 링크, 정보를 완전히(permanently) 지워 버렸다(delete). 그 동안 고민이 많았다. 페이스북이 시도 때도 없이 프라이버시 정책을 바꾸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바꾼 내용이 이용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쪽으로 왜곡되는 것이 더욱 불안하고 싫었다. 아무리 공짜 서비스라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페이스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계기는 뉴욕타임스의 비츠(Bits) 블로그 필자중 한 사람인 닉 빌튼(Nick Bilton)의 트윗 — “저커버그는 프라이버시 같은 거 안믿어” — 이었다. 그래도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사람이 얼만데.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오늘, 페이스북 계정을 지우려 이리저리 애쓰는 과정에서, 이 서비스와 완전히 인연을 끊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다음은 그 (짧은) 사연이다.

1. 오늘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접속하자마자 팝업 창이 뜨면서 묻는다. “당신의 프로필을 다음 26개의 페이지와 연결하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소속되어 있는 앨버타주 주정부부터 과거에 일했던 온타리오주의 각 부처 페이지, 토론토 시청, 토론토 대학, 심지어 내가 좋아한다고 어디에 써둔 배우들, 게리 쿠퍼, 제임스 스튜어트 같은 인물의 팬 페이지, 모짜르트, 말러, 베토벤, 브람스 등 내가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팬 페이지 등이 죽 열거되어 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불쾌감이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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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질문에 대한 선택 버튼은 두 개, ’26개 모두를 내 프로필과 연결하시오’‘다음에 물으시오.’ 하나하나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은 왼쪽에, 버튼 모양이 아니라 텍스트로 작게 표시되어 있다. 얄팍한 술수라 아니할 수 없다.

3. 하나하나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누르니, 그들 26개 페이지 옆에 체크 박스가 나타나고, 맨 아래에는 ‘모든 페이지 선택’ ‘선택사항 저장’ 옵션이 나온다. 체크 박스를 모두 제거하고 ‘저장’을 누르자, ‘이들 페이지로부터 당신 정보를 제거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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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시간 낭비하기보다는 본래 계획대로 지워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 ‘프로필 설정’에 가니 흥미롭게도, 아니, 정말 짜증스럽게도, ‘계정 삭제’ 선택이 없다! 휴면계정으로 바꾸기(deactivation)만 나와 있다.

5. 혹시 휴면계정에 ‘삭제’ 옵션이 있나 싶어 클릭했더니 이런 페이지가 뜬다. 나를 아는 누구누구가 그리워하게 될 거다. 그래도 휴면 계정으로 바꿀래? 하는 동정심 유발 작전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왜 그러려고 하는지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끝내, ‘계정 삭제’ 옵션은 눈에 띄지 않는다.

나와 관련이 있는 이들의 얼굴은 일부러 흐리게 처리했다.
나와 관련이 있는 이들의 얼굴은 일부러 흐리게 처리했다.

6. 구글로 ‘페이스북 계정을 어떻게 삭제하나?’라고 물으니, ‘어떻게 하면 페이스북 계정을 영구히 삭제할 수 있는가?’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뜬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페이스북의 공식 정보 페이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튼 거기에 나와 있는 링크를 따라가니, 이런 간단한 페이지가 뜬다. “두 번 다시 페이스북을 쓰지 않을 것 같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여길 누르십시오.” (아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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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출(submit) 버튼을 누르니, 빨간 글씨로, 정말 할 거야? 라고 묻는다 (아래 그림). 그리고 보안 확인을 위해 글자를 쳐넣게 돼 있는데, 거기에 나온 표현이 또 걸작이다. Characteristics Uplift – 페이스북을 삭제하면 내 인생이 꽃필 거라는 뜻인가, 아니면 그 반대? 아무튼 인생의 또다른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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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지막 메시지: 당신의 계정은 휴면 처리되었으며, 앞으로 14일 뒤에 영구히 삭제됩니다. 다음 14일 안에 다시 로그인 하면 당신의 계정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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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안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으로 페이스북과는 영영 이별.


그리고 3개월 남짓 뒤인 2010년 8월 5일,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왔다. 이런 변명 글과 함께.

페이스북으로 다시 돌아오다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한 지 석달 만에 다시 등록했다. ‘면목 없는 면책(面冊) 복귀’라는 말장난이 떠올랐다. 페이스북을 한자로 쓰면 결국 면책(面冊)이 될테니까… 그때 삭제한 이유는 페이스북이 하고한 날 제멋대로 프라이버시 정책을 바꾼 — 그것도 부정적인 쪽으로 — 데 화가 나고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불과 석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진 걸 감지한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정책이 중뿔나게 좋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개인정보를 얼마나 공개하고 공유할지를 결정하게 해주는 통로가 너무 많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다.

가장 크게 감지하는 부분은 페이스북을 쓰는 한국 사람이 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폭발’이라는 표현을 써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친구 요청이 제법 많은데 – 그것도 과거와 견주면 ‘엄청 늘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 이걸 다 받아들여야 좋을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이 ‘친구’라는 말 자체가 난감하고 당혹스럽고 모호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출처: comics.com http://comics.com/drabble/2010-08-05/
출처: comics.com

이를테면 내게 A라는 이가 친구 요청을 해왔는데,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관계를 보니 나와 친구 관계에 있는 사람과 친구이거나, 한 다리 더 건너서, 말하자면 내 친구의 친구의 친구다. 하 참… 또는 그 역으로, 나로부터 친구 요청을 받은 어떤 사람들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 나는 기억하는데 — 혹은 기억하긴 하지만 아슴하고, 그래서 내가 A에 대해 갖는 당혹스러움과 비슷한 고민을 안을 게 분명하다.

페이스북이 내게 던진 고민거리는 비단 프라이버시만은 아니다. 페이스북이 쓰는 수많은 용어도, 내가 그저 안이하게 생각해 온 정의와는 사뭇 달라서,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친구’라는 단어가 그렇고, ‘좋아한다’라는 ‘like’도 도대체 어떤 맥락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종종 고민스럽다.

몇달새 감지하는 또다른 변화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더없이 분주해졌다는 점이다. 나와 친구 관계를 맺은 이들중 많은 경우가 트위터나 다른 미디어와 연결되어 있어서,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 페이스북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루에 10건 이하만 트윗하는 경우라면 페이스북과 연동해도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그 이상 하는 경우는 세일 기간의 백화점 주변이나 크리스마스 연휴중의 쇼핑몰 부근처럼 지나치게 붐비고 막혀 보인다. 불편하다.

페이스북을 왜 다시 열었나. 물론 ‘소통’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 사이트와 회사에 대한 신뢰는 여전히 바닥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상기한다. 또 하나, ‘소통’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그 말도 맥락에 따라 사뭇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아래의 만화처럼.

출처: comics.com http://comics.com/drabble/2010-08-03/
출처: comic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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