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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된 지 얼마 안 된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정신없이 서랍 속을 가지런히 정리 중인데 카톡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내용을 확인하고선 카톡 창을 연 채로 가만 쳐다보고 있다가 그냥 닫았다. 몇 년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미안하다는 사과.

그 사과가 와서 닿아야 할 분노는 이제 내 안에 없어서 나는 아무 답변도 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그의 무반응을 감내해야 했던 나에게서 그는 그날 영원한 무반응을 얻어냈다. 이제 그가 내게서 발생시킬 수 있는 감정은 오직 지루함뿐이다. 난 다시 서랍 정리에 몰두했다.

나는 너에게 무기를 준 적이 있었다.
나는 너에게 무기를 준 적이 있었다. ©aprilis

파이라는 소년이 리차드 파커라는 맹수와 태평양을 건너는 이야기가 골자인 소설 [파이 이야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맹수가 네 번 치명적인 공격을 했다면, 그건 맹수가 죽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면, 맹수는 그냥 단번의 공격으로 죽이지 상처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접근해.
여기를 넘으면 내가 공격할거야.
하지만 널 죽이고 싶지는 않아.’

더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죽이게 되니까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기 전에 미리 보내는 신호로서의 공격. 그것은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다. 죽이고 싶지 않은 거라고.

“내가 바다에서 동물을 조련하고 목숨을 건졌다면, 그건 리처드 파커가 날 공격하고 싶어 하지 않은 덕분이다. 호랑이는, 아니 모든 동물은 우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폭력을 쓰려 하지 않는다. 동물이 맞붙어 싸울 때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고, 이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잘 안다.

(중략)

결국, 나는 그가 보내는 경고를 감지하는 법을 익혔다. 리처드 파커는 귀와 눈, 수염, 이빨, 꼬리, 목구멍을 동원해서 단순하고 강력한 언어를 표현했다.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내게 들려 주었다. 나는 그가 앞발을 공중에 올리기 전에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 [파이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파이는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의 죽음의 압박을 생의 희망으로 해석하며 버틴다. 파이와 맹수의 ‘관계’는 서로의 생존을 위한 거래였고, 그만큼 절박하고 치열했다. 죽음의 압박 속에서 서로를 묶어버린 이상 죽음이 그 둘을 갈라 놓을 때까지 절대 놓을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한 동거에서 긴장을 깨버리는 종속 관계는 곧 죽음이다. 서로의 생의 의지를 유지시키려면 상대를 제압하되 위협적인 존재로서 남겨야 했다. 그래서 그 둘은 끊임 없이 서로에게 자기의 힘을 과시하고 공격한다. 죽임을 당할까봐 두렵고 상대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라이프 오브 파이

가끔 누군가와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이 장면을 떠올린다. 상처가 남았다고 해도 서로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냥 신호를 보냈던 것일 지도 모른다고… 모든 관계는 불안하고 불투명할수록 그 버티는 힘이 약하다. 경계를 지키며 버티는 것도 어느 정도의 내공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멋대로 기대하다 마음에 안 들면 툭 놓아버리는 가벼움에 시달라다가 저 너머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움직임을 발견하면 그 발톱에 상처가 날 걸 알면서도 서성이게 된다. 죽음과 불안에 짓눌린 놀라운 생명력은 미약해도 아름답기 때문에…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내민 손등에 끊임 없이 생채기가 나도 자꾸만 핑계를 댄다.

‘그래도 날 죽이진 않았잖아.
저건 신호일지도 몰라.’ 

세상에 완벽한 미움은 있을 수 없다. 내밀었던 손을 거두고 돌아서게 만드는 사람은 완벽하게 미워하기 전에 지루한 존재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움의 발생은 어느정도의 욕망을 포함한다. 싸우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모순된 욕망. 그리고 그 모든 욕망은 나 자신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파이가 맹수를 기른 것도 그 맹수를 자꾸만 옹호하는 것도 결국 생존 본능이었을 뿐이다.

파이는 라처드 파커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자기가 굶어도 호랑이를 먹이고 호랑이를 버릴 수 있었던 순간에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둘은 작별 의식 없이 헤어졌고 파이는 호랑이를 그리워할지언정 다시 자신의 일상에 소환하진 않는다. 이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부드럽고 헌신적이며 따뜻하고 필수적인 것 같지만 ,존재의 상황에 따라 간단히 소거되기도 한다.

본인이 죽을 것 같아서 따스함이 필요해서 붙든 관계는 살만해지기 전까지 절대 놓지 않으며 삶을 걸고 지켜낸다. 그리고 더이상 자신의 삶과 존재가 위협받지 않는 상황이 되어 지루하거나 성가신 감정으로 변온되는 순간 모든 이성이 그 변화를 합리화하는데 총동원된다. 그래서 그렇게 바보같고 치사한 소리를 늘어놓는, 한때 사랑했던 변절자가 내 앞에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엄청 살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이제 상황이 변했나보다.’ 

슬픔 외로움 연인 실연 이별

생존을 위해 이용당한 건 리처드 파커다. 그는 파이를 위해 살인을 했고 육식을 했고 길들여 졌고 사랑받았고 필요 없는 상황이 된 걸 알았을 때 군말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모든 사람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 해도 이기심에서 시작된 생존형 사랑을 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리처드 파커에게 몰입했다가 간단하게 빠져나왔는지…

먹이고 보호하고 아껴주며 치명적인 공격까지 감내하며 사랑이라 우긴 것은 표류하는 외로운 삶이 무서웠기 때문이지 공정하고 건강한 관계 때문이 아니었다. 원망할 일도 미워할 일도 없는 오직 건조한 사실 확인만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이기적이어서 양심의 짐을 벗겨줄 습관적 사과를 하고 싶다면 기억해야 한다.

리처드 파커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파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랑이라고 착각한 거래였다. 따라서 미움도 없다.

“이 이야기는 해피앤딩이다.” 

– [파이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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