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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 애런 스워츠가 말하는 열정의 자세

2013년 1월 11일, 정보자유 활동가 애런 스워츠(Aaron Swartz)가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관련글) 국내 대다수 언론에선 ‘천재 해커의 자살’ 정도로 이 비극을 다뤘지만, 우리가 그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해외에선, 특히 영미권 학계를 중심으로, 그의 실천과 뜻을 기리기 위해 학술논문 무료 공개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부터 해킹자유보호법 추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많은 업적을 이뤄낸 열정적인 개발자 스워츠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강연을 통해 그 열정의 비밀을 슬로우뉴스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스워츠의 조언을 읽다보면, 달착지근한 ‘멘토’ 메시지나 무턱대고 채찍질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접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슬로우뉴스가 스워츠를 추모하며 번역 소개하는 이 강연 원고는 그가 2007년 NIT 칼리컷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이고, 2008년 자신의 블로그에 최종 편집해 실은 것입니다. (편집자)

애런 스워츠

애런 스워츠 Aaron H. Swartz (1986. 11. 8 ~ 2013. 1. 11.)
(dsearls CC BY_SA)

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

애런 스워츠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은 연설을 할 때 제목을 늘 ‘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이라고 붙이고는, 원하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좀 반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는 아무 내용이나 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인터넷의 미래나 집단 협업의 힘 같은 것에 대해 교조적으로 잠깐 떠들어대기보다는, 아마도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것은 ‘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는 어떻게 지금 같은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요? 의심할 여지 없이, 첫 단계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됩니다. 저는 미국인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은 꽤 잘 살았고, 아버지는 컴퓨터 업계에서 일하셨죠. 불행히도, 이러한 요소들을 선택할 방법은 저도 모르니까 별로 여러분께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제가 이 세계의 일을 시작할 때 저는 미국 중부의 작은 마을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처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기술을 몇 개 찾아내야 했죠. 인생사가 조금은 덜 불공정했으면 하는 희망을 담아, 이제 그 기술들을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1단계: 배워라

제가 처음으로 한 일은, 아마 여러분도 이미 거치셨겠지만, 컴퓨터, 인터넷, 인터넷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한 무더기 읽었고 엄청난 양의 웹페이지를 읽었으며 또 이런저런 일을 시도해 봤습니다.

처음 저는 메일링 리스트들에 가입해서 거기서 벌어지는 토론을 이해하고자 했고, 이윽고 대화에 뛰어들어 참여해도 편안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 뒤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보고 제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죠.

결국 웹 애플리케이션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웠고,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13살이었습니다.

2단계: 시도하라

제가 처음 만든 사이트의 이름은 ‘get.info’였습니다.

이 구상은 누구나 자신의 웹 브라우저에서 내용을 편집하거나 추가하거나 재분류할 수 있는 무료 온라인 백과사전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이트를 구축하고, 멋진 기능들을 많이 달아놓고, 모든 종류의 브라우저에서 테스트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물에 매우 자랑스러워 했죠. 사실 그 해 최고의 신규 웹 애플리케이션 중 하나라는 상도 탔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때 제가 알던 사람은 우리 학교 학생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에 항목을 채워넣어 줄 사람이 없었죠. (몇 년 뒤에 엄마가 ‘위키피디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이트가 다행스럽게도 제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이트는 ‘my.info’였습니다.

이 구상은 인터넷에서 온갖 종류의 서로 다른 웹페이지를 돌아다니면서 뉴스를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웹 페이지의 뉴스를 긁어모아 한 곳에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었죠.

사이트를 구축했고 실행하였는데, 당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저뿐만이 아니었더군요. 많은 사람이 당시 ‘신디케이션’이라 불리던 이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그룹은 빠져나와 RSS 1.0이라는 규약을 작업하고자 했고, 저도 그쪽에 합류했습니다.

3단계: 떠들어라

여름이라서 학교 학기는 끝났는데 저는 딱히 일자리도 없었고, 그래서 자유시간이 많았습니다. RSS 1.0 관련 메일링 리스트를 집요하게 읽고, 온갖 이상한 작업들 또는 어쨌든 누군가는 해야 할 일들을 하는 데에 그 시간을 모두 썼습니다. 곧 그들은 제게 그룹의 멤버가 될 것을 제안했고, 저는 결국 RSS 1.0 규약의 공동 저자, 더 나아가 공동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RSS 1.0은 RDF라고 불리는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RSS 메일링 리스트에서 뜨거운 논쟁의 소재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RDF에 대해 더욱 심도 깊게 파고들었고 RDF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했죠.

글들을 읽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면서 천천히 내용을 파악해 갔습니다. 곧 저는 RDF 동네에서도 알려지게 되었고, 그들이 차기 RDF 규약을 개발하기 위한 새 워킹 그룹을 발표하려고 할 때 저도 슬쩍 발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먼저 제가 끼어도 되는지 워킹 그룹 멤버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로 그 그룹에 참여하고 싶었기에 다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 워킹 그룹을 운영하는 표준 의결기구인 W3C의 내규를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규칙에 따르면 원래 워킹 그룹은 어떤 개인의 가입 요청도 거절할 수 있지만, W3C의 공식 산하 조직이 누군가를 워킹 그룹에 가입시키라고 추천하는 경우에는 그럴 수 없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W3C 산하 조직의 리스트를 보고, 가장 친절해 보이는 조직을 찾아서 저를 워킹 그룹에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해주더군요.

워킹 그룹의 멤버가 되는 것이란 매주 다른 모든 회원과 전화 통화를 하고, 많은 양의 메일링 리스트와 인터넷 채팅 회의에 참여하며, 종종 낯선 도시에 날아가서 직접 대면하기도 하면서,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RDF에 관해서는 진정한 숭배자였기에, 다른 사람도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열심히 일했습니다. 로렌스 레식이라는 교수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라는 새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음을 알게되었을 때, 저는 그분께 이메일을 보내서 RDF를 그 프로젝트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며칠 뒤 그분은, “좋은 생각이군. 와서 해주지 않겠나”라고 답장을 보내셨죠.

그래서 저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에 합류했고, 온갖 컨퍼런스와 파티를 돌아다니며 결국 더욱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다른 분들이 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저는 다양한 장소와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4단계: 만들어라

그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학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을 다녔는데, 항상 태양이 내리쬐고 잔디가 푸르며 애들이 바깥에서 선탠을 하는 캘리포니아의 느긋한 작은 학교죠. 위대한 교수님들이 좀 계시고 확실히 배운 것도 많지만, 굉장히 학구적인 분위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의 학문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해 말 즈음, ‘와이 컴비네이터(Y Combinator)’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시한다는 폴 그레이엄이라는 분의 이메일이 왔습니다.

와이 컴비네이터는 정말 유능한 프로그래머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여름 동안 보스톤으로 불러들여 약간의 돈을 주고 서류 업무를 지원하며, 새로 회사를 창업하도록 하자는 발상이었죠. 프로그래머들은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진짜 열심히 일하면 되고, 동시에 그들에게 사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투자자와 사업가들을 연결해 주는 등의 프로젝트였죠. 폴은 제게도 지원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원해 합격했고, 많은 고통과 괴로움과 고군분투를 거친 뒤, 레딧(Reddit.com)이라는 조그마한 사이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레딧

레딧의 당시 첫 번째 특징은, 저희도 저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희에겐 저작용 소프트웨어(production software)를 만든 경험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저희는 우리가 만든 것이 도대체 왜 제대로 굴러가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서버가 다운은 안 됐는지, 스팸으로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았는지, 사용자들이 모두 떠나버린 것은 아닌지 체크할 따름이었습니다.

처음 레딧에서 시작했을 때, 성장은 느렸습니다.

사이트는 작업 개시 몇 주 안에 일찌감치 온라인에 띄웠지만, 첫 3개월 동안은 쓸만한 RSS 피드의 최저선 정도인 하루 3,000명의 방문자를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몇 주 동안의 마라톤 코딩 작업을 거쳐, 우리는 사이트를 리스프(Lisp)에서 파이썬(Python)으로 옮겼고, 이에 관한 내용을 제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그 글이 많은 관심을 얻었는데, 오늘날까지도 파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제가 레딧에서 일했다고 하면 “아, 리스프에서 옮겨온 그 사이트?”라는 반응을 얻곤 합니다. (리스프 팬들은 무시당하면 지옥의 불길처럼 발끈하죠.)

그 즈음에서 트래픽이 급증했습니다.

이후 3개월 동안 트래픽이 두 번이나 두 배로 늘었습니다. 아침마다 트래픽 그래프를 보면서 저희가 한 작업의 결과를 보았습니다. 새로 올린 기능이 더욱 관심을 끌어왔는지, 사이트의 소문이 더 퍼졌는지, 사용자들은 아직도 모두 떠나버리지 않고 있는지 말입니다. 숫자는 매일 더 늘어났습니다. 사실 저희가 사이트에 무언가를 작업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을 때에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들었지만 말이죠.

그런데 저희는 여전히 수익을 낼 방법은 전혀 몰랐습니다.

사이트에서 티셔츠를 판매했지만, 돈을 조금씩 벌 때마다 더 많은 티셔츠를 주문하느라 썼습니다. 주요 웹 광고회사 대변인과 만나서 광고 판매 계약을 맺었지만, 문자 그대로 매달 몇 달러 정도보다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또 다른 구상은 ‘레딧 기술’에 라이센스를 내서, 다른 사람들도 레딧 같은 사이트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라이센스를 받아가겠다는 사람이 없더군요.

레딧은 곧 월 방문자가 수백만에 도달했습니다.

웬만한 미국 잡지의 평균을 넘어서는 수치였죠. 제가 이 수치를 아는 건 당시 잡지 발행인들과 많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레딧의 마술을 어떻게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그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수락했습니다. 운 좋게도 그런 식의 대처가 제대로 먹혔습니다. 그들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공식 계약으로 써내는 속도보다, 우리가 프로그래밍하는 속도가 빨랐으니까요.

게다가, 레딧이 엄청난 양의 트래픽을 자기 사이트로 몰아올 수 있다는 것을 온라인 뉴스 사이트들이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기사마다 ‘Reddit this’라는 버튼을 달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죠.

제가 아는 바로는, 그런 링크를 걸어놓는 것은 레딧 상에서 인기를 얻는데 도움이 안 됩니다(사이트를 보기 흉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죠). 하지만 저희에게는 공짜 광고가 되어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트너십 제안들은 인수합병 이야기로 바뀌어 나갔습니다.

인수합병! 우리가 늘 꿈꿔왔던 것이죠. 더는 돈 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기 어떤 회사가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저희는 그냥 부자가 되기만 하면 되는 것 말입니다. 우리는 인수합병자들과 협상하느라 다른 모든 것에 손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냥 손 놓은 채로 방치되었죠.

협상에는 여러 달이 걸렸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가격을 놓고 논쟁했습니다. 기획서와 스프레드시트를 준비했고, 회사 본사를 찾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끝없는 회의와 전화 통화를 소화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저희가 제시한 가격을 거절했고, 우리는 거래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태도를 바꿨으며 결국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중요한 요인에 대해서 협상을 해야 했고, 또 거래에서 물러났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내용의 계약을 맺을 때까지 세 번이나 네 번 거래를 결렬시켜야 했던 것 같습니다. 진짜 작업들은 한 6개월 동안 내버려뒀습니다.

돈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생각해야 한다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스트레스와 함께,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저희 모두는 민감해졌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고, 서로 말을 안 하기 시작했고, 다시 함께 작업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해보다가 결국 다시 소리를 질러댔죠. 계약이 성사되기 전에는 거의 회사가 무너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희는 변호사 사무실에 들어가서 모든 계약서에 서명했고, 다음 날 아침 계좌에 돈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모든 게 이뤄졌습니다.

저희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와이어드 뉴스(Wired News)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와이어드(Wired)‘ 를 비롯, 많은 잡지들을 출판하는 콩데 나스트(Condé Nast)라는 대형 출판사에 인수되었죠.)

기분이 비참했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를 견딜 수 없었어요. 사무실 생활도 견딜 수 없었어요. 와이어드도 견딜 수 없었죠. 그래서 긴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었습니다. 병도 얻었죠. 자살도 생각했습니다. 경찰로부터 도망도 다녔죠. 월요일 아침에 다시 출근했을 때, 퇴직 권고를 받았습니다.

5단계: 자유

일자리가 없던 처음 며칠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집에서 어슬렁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햇빛을 쬐었습니다. 책도 좀 읽었습니다. 하지만 곧 새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심리학에 관한 모든 흥미로운 연구를 집대성해서, 연구 결과로서가 아니라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매일 스탠포드의 도서관에 가서 조사를 했습니다. (스탠포드는 심리학자에게는 훌륭한 학교죠.)

하지만 어느 날 브루스터 케일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디지털화하여 웹에 올려놓는 ‘인터넷 아카이브’라는 놀라운 조직을 설립했었죠. 그는 예전에 거론한 적이 있던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어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에 관한 정보를 한 곳에, 무료 위키로 모아보자는 구상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작업에 참여했고, 사이트를 온라인에 올리기 위해 그 뒤 몇 달 동안 도서관에 전화하고 프로그래머들을 연결하고 디자이너들과 일하고 기타 온갖 이상한 일들을 했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결국 ‘오픈 라이브러리(Open Library)‘가 되었는데, 데모 버전은 demo.openlibrary.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이트의 많은 부분은 매우 재능 있는 인도 프로그래머 아난드 치티포투의 공입니다.

또 다른 친구 세스 로버츠는 고등교육을 개혁할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왔습니다. 좋은 솔루션이 무엇인지 합의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아이디어 하나는 합의해 냈죠. 바로, 여러 종류의 직업들이 실제로 어떤지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위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는 곧 런칭될 것입니다.

또 다른 좀 오랜 친구인 사이먼 카스텐슨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데 저와 함께 회사를 창업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창업하기 좋은 아이디어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그중 최고의 것을 골랐습니다.

그 아이디어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텍스트 상자에 글자 채우는 것만큼이나 간편하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몇 달 동안 우리는 이를 더욱 간단하고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작업했습니다(좀 더 복잡해지는 부분도 있었고). 그 결과로 몇 주 전에 Jottit.com을 런칭했습니다.

저는 또 ‘섬머 오브 코드(Google Summer of Code)‘ 프로젝트 2개에 대한 멘토 역할을 해주기로 했는데, 둘 다 매우 야심 찬 기획이었죠. 운이 아주 좋으면 조만간 런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널리즘에도 발을 넓히기로 했습니다. 제가 쓴 최초의 인쇄 기사가 지난주에 발행되었죠. 또한, 과학 관련 블로그도 몇 개 시작했고, 단독 저술로 학술 논문도 시작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수행했던 연구에 기반하고 있는데, 위키피디아를 실제로 작성하는 이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위키피디아의 대표격인 지미 웨일즈를 비롯한 어떤 이들은, 위키피디아는 결국 그렇게 대단히 분산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실은 500여 명 남짓한 사람이(그들 상당수는 그와 친하답니다) 대부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간단한 연구를 몇 개 했는데, 저는 수치들을 더 신중하게 분석하고서 그와 정반대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위키피디아 대부분의 내용물은 자신의 계정을 만드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신입 편집자들에 의해, 여기저기 몇 문장씩 추가되는 식으로 작성됐다는 것입니다.

웨일즈는 왜 그렇게 큰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그는 각 사용자가 위키피디아에 가한 변경 사항의 건수만 봤지, 변경 사항의 크기는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키피디아에서 어마어마한 건수의 변경 작업을 수행하는 게 이 500명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변경하는 부분은 매우 소소합니다. 철자를 고치고 포맷을 바꾸는 정도의 일인 것입니다. 그 500명이 사전의 상당 부분을 쓴다기보다 그저 편집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더 합당해 보이죠.

조언들

비결은 무엇일까요? 제가 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하며 최대한 듣기 좋게 포장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1. 호기심을 가지세요. 폭넓게 읽으세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세요. 제 생각에는, 많은 이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그냥 호기심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세요. 저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거절을 못 합니다. 프로젝트든 인터뷰든 친구들과의 무엇이든 말이죠. 그 결과 저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되고, 그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 무언가는 해낸 셈이 되죠.

  3.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 분야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이들이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다 시도해봤으리라 믿고, 그냥 시도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방법을 정말 아는 사람은 드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들은 더욱 드뭅니다.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이 무언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꽤 잘해낼 것입니다.

저는 이런 규칙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열 몇 개쯤 진행 중이고, 스트레스가 또다시 지붕을 뚫을 기세죠.

매일 아침 저는 이메일을 체크하며, 어떤 프로젝트에서 사고가 났는지, 어떤 마감 스케줄에 이미 뒤처졌는지, 어떤 연설문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기사를 편집해야 하는지 파악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언젠가는 저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제 말이 뭔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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