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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자살, 충격 고로케의 풍자: 젊은 개발자 이준행을 만나다

한국 저널리즘, ‘고로케 기사’인가 아닌가!

최근 미디어다음은 ‘충격 고로케’에서 언급한 기사는 편집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새소식은 아니다. 기존 편집 방침을 거듭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내 눈길을 끈 건 ‘충격 고로케 기사’라는 표현. ‘충격 고로케’가 매체 비평 전문지에 의해 기사를 평가하는 표준의 하나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미디어오늘, “충격 ‘고로케’ 기사, 다음에선 안 건다, 2013년 1월 12일 참조) (주: ‘충격 고로케’는 이른바 ‘제목 미끼’성 기사를 가장 많이 올린 언론사 순위를 산정해주는 서비스)

이제 한국의 저널리즘은, 그래 과장하겠다, 고로케 기사인가 고로케 기사가 아닌가로 대별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고로케 기사’라는 명명은, 그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건 더 이상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 저널리즘은 커녕, ‘충격 고로케 기사’는 저널리즘을 교란하고, 독자의 아까운 시간을 빼앗는 저널리즘의 적이다.

여전히 문제는 포털이다

현재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이 지닌 그 수많은 문제의 출발점과 종착지는 포털이다. 적어도 저널리즘 문제들을 독자의 합리적 비평권력 상실과 플랫폼 유통권력 확장, 이 와중에 언론사의 자발적 종속화라는 콘텐츠 유통과 순환의 메커니즘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그렇다. 언론사닷컴들의 ‘미끼 제목 장사’는 이런 구조적 메커니즘에서 생겨났다.

물론 이 상황을 알리바이 삼아 언론사가 면책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의 근엄하기 짝이 없는 종이신문들은 온라인을 ‘서자’ 취급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참고. “온라인 뉴스팀은 종이신문 기자의 하위집단에 머물고 있다”는 강정수의 지적). 온라인이 주력인 언론사들 역시 온라인에서 독립적이고, 자생력 있는 토대 구축에 실패했다. 시대가 부여하는 저널리즘에 대한 도전을 회피하고, 네이버 트래픽이 주는 손쉬운 광고수익과 미래를 맞바꿨다. 저널리즘 정신도 없었고, 미래 전략도 없었다. 그리하여 이제,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온라인 언론사 대부분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

그러니까 오늘, 문제는 네이버다

‘충격 고로케’를 만든 개발자 이준행에게 네이버가 지배하는 유통 권력의 문제를 물었다. “(오직) 네이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네이버 첫 화면 뉴스캐스트에서 이 문제들이 ‘발현’되었고, 이에 대해 네이버는 책임이 있다”면서 “큰 틀에서 네이버 없으면 다 망할 (언론) 회사들 아닌가”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다음(Daum)은 어떤가. 다음은 ‘미디어다음’이라는 브랜딩에 걸맞은 행보를 최근 수년 동안 보여주지 못했다. ‘미디어다음’이라는 브랜드는 이제 폐기된 전략이다. 그리고 다음의 현재 브랜딩은 ‘모바일다음’이라고 봐야 옳다. 하지만 네이버의 그늘에 가린 2등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족쇄라기보다는 다음이라는 기업의 표상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더불어 다음이라는 뉴스 유통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저널리즘이 회생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야말로 난망이다. 그리고 이제 공은 PC 모니터를 가득 채우는 포털 첫 화면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지배하는 모바일로 이동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모바일이다

점점 더 콘텐츠 유통권력 문제는 네이버냐 다음이냐가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위시한 SNS, 그리고 이들과 강력하게 결합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네이버는 대한민국 인터넷 그 자체다. 그리고 온라인 저널리즘의 ‘토대’에 해당하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네이버의 뉴스캐스트 전략 변화는 의미심장하다. 뉴스캐스트에 관한 “네이버의 마지노선” 네이버 뉴스스탠드가 그것이다(써머즈의 ‘분석, 평가, 전망’ 참조). 네이버는 뉴스스탠드를 통해 온라인 뉴스 유통시장을 장악하면서도 자승자박한 언론사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복안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제 뉴스 소비 행태 역시 PC 모니터의 네이버 안에서만 머물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네이버로부터의 ‘엑소더스'(exodus. 대탈출)가 지금 당장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조건은 조금씩 성숙하고 있다. 엑소더스는 머지 않은 미래에 분명히 현실화할 듯 하다.

이준행은 감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달고 이렇게 전망했다. “최근 대선정국에서 모바일 트래픽이 PC 트래픽을 현저히 앞질렀”다. “네이버 뉴스스탠드의 성공 여부는 판단이 어렵겠지만’, “웹 자체가 향후 5년 안에 사라진다.” 그는 그러면서 “USA 투데이 같은 곳을 보면 이제 PC 전략은 포기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전적으로 적응하는 모바일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너무 성급하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청년 개발자 이준행의 말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체험이죠. 어린아이에게 전화기나 태블릿을 두면 한두 살 아이들까지 쉽게 적응해요. 불빛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흐르니까 쓱하고 자연스럽게 쓰더라고요(아이폰의 ‘밀어서 잠금 해제’). 그래서 윈도우8이 (태블릿과 모바일에 적응하기 위해) 그렇게 ‘이상하게’ 나온 거고요.”

이준행, “저널리즘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충격 고로케 작업에서 재확인된 한국 저널리즘의 현주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 그와의 대담은 4시간 가량 진행되었다. 그 대화에 관한 녹취를 여러 번 듣고, 정리하고를 반복하다, 다시,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좀 더 정돈된 생각을 글로 받아보고 싶었다.

“고작 이 사이트 하나 가지고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개선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 모아서 보니 재밌네, 웃기네…’ 하고 또 지나가겠죠. 충격고로케조차 그런 소비행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봐요. 하물며 방문자 수가 고유 방문자(Unique Visitor) 기준으로 1주일 지나 이제 3만 명인데요. 포털 첫 페이지 방문자가 전국 3천만 명이란걸 생각해보면 1000분의 1밖에 안 되죠. 저야 좀 놀라운 방문자 수치였지만 시장 전체를 관망하는 분들 입장에선 ‘그 정도 가지고 뭘..’ 하고 말 겁니다. 나머지 독자들, 충격 고로케를 접하지 않은 독자들이 절대 다수이니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야 괜찮아-라고 언론사도 네이버도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벌써 ‘입에 풀칠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당당하게 변명하는 기자들도 나오기 시작했고요. 이게 그 정도 선에서 무마될 일이 아니라 언론사들의 위기상황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극단적인 불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건 신호탄이라고,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의미부여를 해주어야겠죠. ‘입에 풀칠하려면’ 이야기가 나와서 덧붙이는 이야기인데, 기사제목이 저렇게 나온 것도 결국 시장논리였고, 이슈 대응이나 리스크 대응도 시장 관점에서 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집요하게 ‘저널리즘’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조차 ‘저널리즘’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주기를 바라고요.

뭐하러 기자생활 시작했느냐고 묻는 것이죠. 뭐하러 왔느냐고,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서 제목을 그렇게 고치고 계시냐고.  70년대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이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싸웠는지, 지금 TV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MBC KBS YTN 해직기자들 해직아나운서들 파업징계기자들 파업징계아나운서들이 저널리즘 그게 뭐가 대단하다고 처자식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고통을 껴안으며 그렇게 버티고 있는지, 댁들 동료가 이 추운 날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러고 있는 건지 좀 돌이켜보라는 거죠.”

여전히 퇴행을 거듭하는 한국만의 저널리즘

저널리즘 권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특히 온라인 안에서도 언론사닷컴에서 포털로 이동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언론사들은 스스로 비극적인 타락의 길을 걸었다. 여전히 일부 보수신문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호령하고, 그런 거대 보수신문이 대통령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가 통용되고 있지만, 적어도 온라인 저널리즘은 고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네이버는, 그 수로만 보면 우리나라 언론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 대한민국 온라인 언론사들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비극적인 조건에서 끝없는 미끼질의 향연이 펼쳐지고, 독자들은 매일 같이 스스로를 붕어로 만드는 이상한 나라의 저널리즘에 동참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저널리즘이 도달한 슬픔이다.

충격 고로케 첫 화면

충격 고로케 첫 화면.
이준행도 의외라고 밝혔던 결과지만, 소위 메이저 중앙일간지에서 미끼질에 더 열심이다.

기성 언론이 차지했던 권력은 이제 태어난 지 30년이 되는 인터넷, 그 안에서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는 포털에 의해 꾸준히 잠식당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최근의 모바일 열풍은 방송을 제외한 고전적인 종이 매체로서의 언론권력에 중대한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있다. 몇몇 거대 신문사를 중심으로 여전히 포털, 특히 네이버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간헐적으로 감지되지만, 역부족이다.

이준행의 지적처럼 해외 유수의 언론사들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저널리즘 환경, 특히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널리즘의 지형은 그야말로 대륙이 서로 이어져 붙고, 갈라지는 수준으로 지각변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태지 투로 말하면, 해외 언론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 한국의 저널리즘은 ‘방안 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미끼질에 쓸 노력을 저널리즘의 혁신과 자생력, 그리고 미래 전략에 투자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적어도 온라인 기사들에선, 여전히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자살이 불러온 충격고로케의 풍자와 웃음

충격 고로케는 확실히 풍자적이다. 김지하는 ‘풍자냐 자살이냐’라는 시론을 통해 민초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은 비극(자살)이 아니라 풍자가 되어야 함을 명확히 했다(물론 최근 이 노시인의 행보를 보면 스스로 ‘위대한 복수’를 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충격 고로케를 처음 찾은 방문자들은 아마도 이 사이트를 접하면서 폭소를 터뜨렸으리라. 하지만 그 웃음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 저널리즘은 끝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로케의 풍자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동시에 한국 저널리즘의 깊은 좌절과 슬픔, 그리고 언론종사자들의 피눈물을 상징한다. ‘미끼 제목’ 짓느라 고심하는 그네들이라고 ‘헉!’ ‘충격!’ ‘경악’으로 점철된 미끼질로 자신의 노동을 채우고 싶을까. 한국 저널리즘은 기자들을 미끼 기능공으로 전락시킨 ‘숨막히는’ 현실을 탈출할 기회를 이미 놓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더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 질문해야 한다. 한국 저널리즘, 이대로 좋은가. 이 질문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당신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질문이다.

충격 고로케는 아주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과연 충격 고로케를 통해 독자들의 뉴스 소비 행태가 개선될 수 있을까. 미끼질에 무뎌진 감수성을 깨울 수 있을까. 이준행에게 물었다.

“처음 사이트 만들때엔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요. 결과적으로 사이트에 이 기사 더미들이 쌓이면서, 지금까지 독자들이 열광적으로 클릭하며 시간을 허비해왔던 기사들이 바로 이런 기사들이더라고 보여준 셈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이트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퍼 나르는 현상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언론사들의 각성이 촉구된 것 같네요.

제가 그렇게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독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견해는 있긴 했습니다. 독자들이 그렇게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비판적으로 일단 클릭하고 마는데 지표는 어쨌든 올라가니까 에디터들도 데스크들도 적극적으로 자극적 제목을 달았던 것이겠죠. 문제는 그런 식의 먹이사슬이 언론사의 본질적 의미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해 독자 탓으로 돌리는 건 핑계에 불과하고 언론사 스스로 고민하고 고쳐가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언론’은 그러면 안 되고 언론 종사자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언론은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체거든요. 그리고 이제 스스로에게도 그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거죠.”

젊은 개발자 이준행을 만나다

“그때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십대들을 위한 사이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만들었어요.”

중3, 그러니까 15살 때였다. ‘십대가 만드는 십대를 위한 커뮤니티, 아이두!’ (www.idoo.net) 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중3짜리 소년은 “거기 그냥 살았다'”.  학교에서는 ‘통하는 친구’를 찾지 못했던 아이들이 아이두에서 ‘살고’, 수다 떨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 보는 게 15살 개발자에게 가장 큰 보람이었다. 익명 공간이었고,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개발자 자신도 ‘중성’을 선택해 ‘익명’으로 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회원 10만 명의 사이트로 성장했다.

‘아이두’를 만들고 두 번 쫓겨나다

아이들은 아이두를 근거지 삼고 ‘자기 머리카락’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큰 싸움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개발자는 운영진에서 두 차례나 쫓겨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몸소 체험하고,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실험실에서 벌어진 ‘쿠데타’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아이두 재단’을 꾸렸다. 재단이라고는 하지만 대단한 건 아니다. 왕년의 아이두 스태프들이 만든 “고기 먹는 모임”이면서, 아이두 유지가 어려울 때 원조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그렇게 젊은 개발자는 여전히 아이두를 멀리서 뒷바라지하고 있다.

아이두를 만든 건 십대를 위한 사이트는 십대가 가장 잘 안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내가 ‘당사자’니까. 사춘기 중3에 십대 당사자로서 ‘아이두’를 만들었다면, 한두 시간 만에 뚝딱  만들었다는 ‘충격고로케’는 언론소비자로서의 황당함과 호기심이 만들어낸 또 다른 걸작이다. 아이두와 충격 고로케를 만들고, 스프링노트와 레몬펜 프로젝트에 기획자로 참여한 젊은 개발자 이준행(필명 ‘레이니걸’) 을 지난 1월 10일 목요일 저녁 그의 직장이 있는 을지로입구에서 만났다.

우리는 4시간을 먹고, 마시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막차 시간을 걱정해 겨우 대화를 마쳤다. 이준행과의 만남을 계기로 한국의 저널리즘과 ‘충격 고로케’, 그리고 모든 문제의 시작인 포털의 문제를 새삼 다시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 이 글은 그 만남에 대한 기록이면서 그 고민에 관한 기록이다.

'충격 고로케'를 개발한 젊은 개발자 이준행

‘충격 고로케’를 개발한 젊은 개발자 이준행

이준행이 생각하는 요즘 십대, 애착하는 서비스들

이준행은 그 자신이 십대 때부터 사이트 개발을 통해 청소년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경험이 있다.  요즘 십대 청소년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무엇이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던 ‘이해찬 2세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요즘 십대들은 이제 생산자에서 소비자성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직접 만든 서비스들 가운데 가장 애착하는 서비스는 인디스트리트(Indistreet.com). “인디밴드들이 공연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란다. 그와의 대화가 만나고, 엇갈리면서 이 젊은 개발자는 확실히 사람의 목소리(콘텐츠)가 어떻게 엮이고, 그런 목소리, 사람들의 관심이 어떻게 직접 사람들을 이어주는지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개발자가 아닌 그저 유저로서 가장 좋아하는 사이트는 뭘까.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가 답했다. “부산에 사는 한겨레 문학상 받은 작가 ‘서진’이 운영하는 ‘한 페이지 단편소설’“. 이준행이라는 개발자를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그에게 썩 잘 어울리는 사이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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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민노씨
슬로우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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