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깨.
이 낱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길어깨는 일본어 로카타(路肩, ろかた)를 순화한 말이다. 좀 더 힌트가 필요하다면 영어 숄더(shoulder)를 일본말로 옮긴 것이 로카타이고, 이걸 ‘순화’한다고 한 말이 길어깨다.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 갓길이라고 하면 금방 알아들을 게다.
갓길은 1991년 10월초 한글날을 앞두고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이 제안해 당시 국무회의에서 채택한 말이다. 당시 주로 쓰였던 일본식 한자어 노견(路肩)과 종종 쓰였던 길어깨를 대신하는 말이었다. 갓길이라는 말이 생명력을 얻으면서 길어깨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여전히 도로 확장 공사를 알리는 입간판 같은 데서 가끔 볼 수 있다.)
갓길과 함께 ‘순화어’ 후보로 올랐던 길섶이나 곁길을 더 선호하는 학자들이 당시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갓길이라는 말은 지금껏 ‘국어순화’의 모범답안처럼 받아들여지는 일이 많다. 왜일까. 물론, 거부감 없이 널리 쓰이기 때문이다. 구글 트렌드에서 갓길과 노견, 길어깨의 검색 빈도를 비교하면 갓길이 단연 많이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럼 왜 갓길이 거부감 없이 널리 쓰이는 것일까. 불문학자 출신의 문학평론가 정과리가 칼럼을 모아 엮은 책 “문명의 배꼽”에서 우리는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갓길이 주는 느낌에 대해 ” ‘노견’이라는 가금(家禽) 종자 같은 이름을 벗어던지고 새로 차려 입은 우리말이 상큼한 여성성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노견이나 길어깨와 달리 갓길은 아름답다. 사이시옷을 발음하기 위해 혀끝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의 쾌감을 우리는 이 낱말을 읽으면서 알게모르게 느낀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갓길’과 ‘가길’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 말을 쪼갰을 때 나오는 ‘가’와 ‘길’은 모두 토박이말이다. 따라서 이해하기도 쉽다. 어깨길과 달리 이 말을 처음 보는 사람이 있더라도 앞뒤 맥락만 살피면 금세 무슨 뜻일지 짐작할 수 있도록 직관적이라는 것도 이 말의 장점이다. 게다가 짧다. 길어깨보다 갓길이 한 음절이 더 적다. 경제적이다.
이데올로기가 된 ‘국어순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갓길 이후의 ‘국어순화’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듯하다. ……왜일까.
어쩌면 ‘국어순화’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다듬는다고 하면 그것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우선이 돼야 할 것이다. 앞서 예를 든 갓길은 노견이나 길어깨보다 이해하기가 쉬워서 당장 운전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도 않는다.
[우리말 다듬기] '누리터 쪽그림'은 '웹툰'을 다듬은 말입니다. "유명세를 얻어 책 등 상품을 내는 누리터 쪽그림 작가도 있다."처럼 다듬은 말 '누리터 쪽그림'을 쓸 수 있습니다. #다듬기
— 국립국어원 (@urimal365) January 16, 2013
가령 최근 국립국어원이 웹툰의 ‘순화어’로 권고한 누리터 쪽그림은 과연 누구를 위한 말일까. 길 가는 사람 100명을 붙잡고 이 말을 쓰게 될 것 같냐고 물어본다면 몇 명이나 고개를 끄덕일까. 일단 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직관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적이지도 않다.
웹(web, 거미줄)이라는 말이 거미줄처럼 오밀조밀 짜인 인터넷의 세계를 은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과 달리 누리터는 전혀 그런 맛이 없다. 당장 들었을 때도 놀이터나 누린내 따위가 떠오른다. 음절의 길이는 3배로 늘었다.
툰은 아마 카툰(cartoon)을 줄인 말일 것이다. 길이가 짧고 젊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만 중장년층이나 노인들에겐 낯설 수도 있다. 쪽그림은 무언가 그림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쉽지만 모두에게 낯설다. 낙서 그림을 말하는 것일까? 쪽지에 그린 그림을 말하는 것일까? 입을 맞추는 그림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여기서도 음절의 길이가 3배로 늘었다.
결과적으로 웹툰이 누리터 쪽그림이 된다면 우리는 여기서 은유와 직관성과 경제성을 모두 희생해야 한다. ‘노는 토요일’을 모두 말하기가 귀찮아서 ‘놀토’라고 줄이고, ‘여성가족부’를 모두 발음하기가 번거로워 여가부라고 줄이는 게 한국어 사용자들이다. 그들이 누리터 쪽그림이라는 말을 쓰게 될까? 아마 웹툰 대신 그 말을 쓰려면 힘이 들어서 아마 밥을 더 먹어야 할 것이다.
웹툰이라는 말을 다듬고 싶다면 웹툰을 그리는 사람과 웹툰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스마트폰이라는 말을 다듬고 싶다면 스마트폰 사용자의 관점에서,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다듬고 싶다면 기업인들이나 경영학도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외래어니까 순화해야 한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어순화’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순화는 불순한 것을 순수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어순화’라는 말에는, 어떤 낱말은 순수하고 어떤 낱말은 불순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노견이나 숄더는 불순하고 갓길은 순수하다는 것이다. 웹툰은 불순하고 누리터 쪽그림은 순수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지니게 되면 ‘국어순화’는 이념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님은 순화를 이념적으로 하십니까? 그러나 사실 순수한 언어라는 것은 없다. 언어를 순화한다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국어순화’라고 부르는 과정은 단지 외국어 또는 유사외국어(이른바 콩글리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일 뿐이다. ‘국어순화’가 별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좋은 번역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번역이 드문 이유는, 번역어를 선택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에서 ‘순화어’를 선정하는 절차는 다름아닌 투표다. 문제는 이게 한국어 전문가들인 국어학자들의 투표도 아니고, 한국어 이용자들 대다수를 포괄하는 일반 투표도 사실상 아니라는 점이다. ‘국어순화’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일부가 자주 이 사이트를 찾아와 인터넷 투표를 한다. 당연히 편향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 인터넷 투표에서 경애하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1위를 한 것이나 세계 7대 자연경관의 하나로 제주도가 뽑힌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직관성과 아름다움을 상실한 ‘순화어’
최근 한겨레가 몇몇 외래어와 ‘순화어’의 검색 빈도를 구글 트렌드에서 조사하면서 언급한 낱말인 댓글은 주목할 만하다. 2007년부터 쓰이기 시작해 2009년께까지 리플과 경합했지만 2010년 이후에는 리플을 압도했다. ‘대(對)’라는 말이 토박이말은 아니지만 댓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한자어가 섞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거부감이 없다. 짧고, 직관적이기까지 하다. 한겨레는 댓글이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쉽고 간편하고 설득력이 있기에 사회적 생명력을 획득한 경우”라고 평가했다.
‘다시 보기’도 성공했다. 주문형 비디오를 뜻하는 VOD(Video On Demand)를 ‘순화’한 사례다. 이름 지은 방법은 간단하다. 이미 방송했던 것을 다시 틀어서 보기 위한 것이니까 다시 보기라는 것이다. VOD라는 말은 배워서 아는 말이지만 다시 보기라는 말은 처음 보는 사람도 넉넉히 알기 쉬운 말이다. VOD를 아는 사람이 AOD(Audio On Demand, 주문형 오디오)를 알려면 공부를 또 해야 한다. 하지만 다시 보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다시 듣기 정도는 알 수 있다. 이런 게 직관적인 언어다. VOD를 다시 듣기로 바꿨다고 하면 음절 수가 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한국인이 VOD를 /브이오디/로 읽기 때문에 음절 수도 넷으로 같다.
반대 사례로는 앞서 잠깐 언급한 블루오션을 들 수 있을 터이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는 블루오션의 ‘순화어’로 대안시장을 선정했다. 블루오션은 프랑스 앵세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와 르네 마보안 교수가 제시한 경영학 방법론 블루오션 전략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전략을 요약하면, 피비린내 나는 경쟁 시장인 붉은 바다(red ocean)를 벗어나 경쟁이 없는 푸른 바다(blue ocean)에서 장사하라는 것이다. 그럼 녹조 바다는 어떨까? 이름 자체가 은유다. 그러나 이 말을 대안시장이라고 ‘순화’하는 순간 이 말에 있던 은유의 맛은 온데간데없어진다. 더구나 “블루오션전략”을 읽어보면 이 전략이 대안시장이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경영과는 다르다고 따로 강조하는 내용도 나온다.
그냥 푸른 바다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를 보면 푸른 바다는 애초 후보에도 없었다. 당시 후보군은 이랬다: 길트기 시장, 숫시장, 늘품시장, 청정시장, 녹색성장, 대안시장. ‘국어순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의 생각만 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블루오션을 대신하는 말로 대안시장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있기는 있을까. ‘순화어’가 한국어 사용자들로부터 받아들여지려면 푸른 바다처럼 크고 아름다워야 쉽고 아름다워야 할 일이다.
쉽고 아름다운 말로 웹툰을 대신하려면 어떤 말이 좋을까. 특별히 웹에서 구현되기에 드러나는 속성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면, 나는 ‘만화’ 이상으로 좋은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웹이라는 말이 안 들어갔다고 지적할 사람이 많을 터이다. 그러나 웹툰에서 웹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지 그 만화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올렸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 물론 종이책으로 나온 만화와 웹툰은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내용도 다르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만화가 아닐까? 웹툰을 모아 책으로 내는 일이 있다. 그러면 그 책에 실린 만화는 웹툰일까 그냥 만화일까? 필름으로 찍은 영화와 디지털로 찍은 영화는 필름영화와 디지털영화로 구분해야 할까? 파피루스 성서와 두루마리 성서와 종이책 성서와 전자책 성서 중에 어떤 것은 성서고 어떤 것은 성서가 아닐까? 만화는 만화고 영화는 영화고 성서는 성서다. 다음 웹툰은 다음 만화, 네이버 웹툰은 네이버 만화라고 하면 그만이다.
정작 다듬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웹툰을 만화 대신 누리터 쪽그림이라고 ‘순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점도 있다: 이걸 ‘순화’한 사람이나 그 ‘순화’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모두 정말 다듬어야 할 말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순화어’가 낯설면 낯설수록 사람들은 ‘국어순화’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 된다; 나중에는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엉터리 ‘순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국어순화’의 적이다.
우리가 시급히 다듬어야 할 말은 저런 새 외국어들 말고도 많다. ‘차례차례 승차합시다’를 ‘차례차례 탑시다’로 바꾸는 일이라든가, ‘폐문’을 ‘잠긴 문’이라고 바꾸는 일, ‘광어’를 ‘넙치’로 바꾸는 일, ‘골키퍼’를 ‘문지기’로 바꾸는 일 등 익숙하고 확실한 대안이 있는 말을 먼저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대세 선수는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표현하는데, 그에게 있어서 이 말은 매우 익숙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바꿔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나는 거꾸로 ‘국어순화’를 비난하는 사람도 조금쯤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타제석기(打製石器)와 마제석기(摩製石器)를 뗀석기와 간석기로, 지석묘(支石墓)를 고인돌로, 반월형석도(半月形石刀)를 반달돌칼로,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무문토기(無紋土器)와 즐문토기(櫛文土器)를 민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로 바꾼 고고학계를 보면 그렇다. 토박이말로 된 새말들은 이제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해서 어린 시절부터 배운 덕분에 익숙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무척 어색했을 것이다.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김기림이 1950년에 냈던 “문장론신강”에서 언급한 사례들을 봐도 그렇다. 기림은 생물과 무생물을 각각 산것과 안산것이라고 바꾼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상사형(相似形)과 대각선, 반경(半徑)을 닮은꼴과 맞모금, 반지름으로 각각 바꾸는 것에는 부정적이다. 파충류와 포유동물을 길동물과 젖빨이동물로 옮기는 데는 동의하면서 양서류를 물뭍동물이라고 옮기는 데는 반대한다. 변성암을 ‘변해 된 바위’, 화성암을 ‘불에 덴 바위’라고 옮기는 것을 찬성하기도 한다. 기림 정도의 언어 감각을 가진 사람도 60여년 뒤 독자들의 감수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증거가 될 테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난한 ‘순화어’가 나중에 한국어 사용자로부터 널리 인정받아 쓰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누리터 쪽그림이 언젠가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있다. 제가 방금 뭐라고 그랬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누리터 쪽그림이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좋다 못해 아름답고 그래서 널리 읽히면 좋은 글
(일부러 순 우리말로만 써보는 댓글)
국어순화에서 거품을 빼면 사실은 그냥 번역이라는 말씀인가요?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한글화? 우리말화? 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중국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하네요. 혹시 아시나요?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는데, ‘전지모란문 화병’보다 ‘모란넝쿨무늬 꽃병’이 좋더군요. 이건 잘 바꾼 것 같습니다. :D
우리말에 대한 걱정이 고맙고, 말에 대한 깊은 생각이 돋보이며 글 솜씨가 빼어납니다. 이렇게 한글로 써보니 엔디님의 글을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은 참 고운데 말이죠……..일상적인 부분이야 고쳐야겠지만 각 언어 고유어로 만들어진 전문용어나 철학적 – 함축적 의미를 가진 단어까지 파헤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소위 지식층이라는 사람들이 허구헌 날 그놈의 ‘팩트’ 타령은 좀 안 했으면 합니다. 아니 도대체 영어권 나라 토론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는걸 한국 토론에서 더 많이 들어야 하는건 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좋아요, 참 좋아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한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인데, 덕분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꼭 탐독해야 할 것 같네요.
공감가는 글입니다. 현재의 관 주도의 국어순화는 그야말로 “순화를 위한 순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언중들이 국립국어원을 불신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순화를 할 때 “음절 수”와 “발음의 편의성” 문제는 꼭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는 필자 이름은 엔디네요.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