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매일 똑같던 일상이 어느 순간 힘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어느 날 문득, 어디로든 떠나 힐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길이 있다. 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힐링의 길, 바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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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선 까미노가 무엇인지, 언제쯤 떠나야 하는지, 준비해야 할 교통 편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긴 여정에 있어, 이제 남은 것은 짐을 싸는 것과 자신의 마음가짐만이 남았다.
짐을 싸기 전 알아둬야 할 것
걷는 동안엔 짐을 다른 곳에 맡겨두고 걷는 것이 아니라 항상 배낭을 메고 함께 한다. 그래서 짐을 싸는 데 있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내 짐을 내가 메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짐을 들고 오면 걷는데도 무리가 가고, 결국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짐을 가볍게 하다가 만약 필요한 짐을 가지고 가지 못했을 땐 어떡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까미노 길을 걷다 보면 여러 도시와 상점을 지나치게 된다. 필요한 게 생긴다면 그때그때 구입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마음가짐
아무리 계획을 잘 세우고, 준비를 잘해서 간다 하더라도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면 순례길을 걷다 포기하는 상황이 생긴다. 까미노는 확실히 힘든 길이다. 군대에서 행군을 경험한 20대 건장한 남자들도 쉽지 않은 길이라고 말할 만큼 다양한 길을 걷게 된다.
또한, 까미노는 하루 이틀 걷는 여정이 아니다. 한 달 넘게 걸어야만 한다. 그래서 인내심도 필요하다. 매 순간을 걷는 것에 집중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광활한 스페인 땅을 가로질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다다를 수 있다. 이런 고행의 길을 각오 없이 간다는 것은 좌절과 상처만 남긴다.
그렇기에 비록 걷는 것이 힘들고, 외로움이 밀려오더라도 끝까지 극복하고 순례길을 완주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까미노 준비물
배낭
배낭은 순례하는 동안 내내 나와 한몸이 될 물건이다. 필요한 모든 짐이 배낭 속에 있다. 배낭 자체를 순례에 적합한 것으로 쓰는 것은 물론이고, 순례하는 내내 잘 관리하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배낭 용량은 남자라면 40~45리터, 여자라면 35~42리터가 적당하다. 여름과 비교하면 겨울에는 짐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계절도 고려해 배낭 용량을 고르자. 일반적으로 배낭을 선택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 등판 방식
- 무게 분산이 잘 되는지(어깨 힘만으로 배낭을 메고 가면 장시간 걷는 것이 힘들다.)
- 레인 커버 여부
- 배낭 재질
- 수납공간 여부
[box type=”tip”]“무조건 크고 비싼 배낭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내 몸에 맞는 배낭이 가장 좋은 배낭임을 명심하자.”[/box]
침낭
순례하면서 중요한 게 숙면이다. 매일 오랜 시간을 걷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잘 자야 피로가 충분히 풀리고, 꾸준히 걸을 수 있다. 침낭은 그런 좋은 잠자리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고, 상황에 맞게 준비해야만 한다.
침낭은 구분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지만, 일반적으로 순례를 위해 침낭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보온과 무게, 부피다. 여름이라면 가볍고 적당한 보온만 된다면 충분하겠지만, 겨울에는 다소 무겁더라도 충분한 보온이 되는 침낭을 챙겨가야만 한다.
[box type=”tip”]“만약 겨울 까미노에 가벼운 침낭을 들고 갔다간 패딩까지 껴입고 침낭에서 추운 밤을 보내야 한다.”[/box]
등산화
긴 여정에 있어, 두 발을 보호할 등산화 역시 중요한 장비 중 하나이다. 순례길의 다양한 환경을 버텨주어야 하므로 튼튼한 등산화를 사는 것이 좋다. 또, 자기 발에 맞는 등산화를 신는 것이 중요한데, 발에 맞지 않으면 걷다가 발에 물집이나 상처가 생기고, 오랜 시간 동안 걷는데 무리가 간다.
만약 등산화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가기 전 길들이는 편이 좋다. 가벼운 산행이나 운동을 통해 등산화에 익숙해지도록 하자.
슬리퍼
알베르게(숙박시설)에서조차 등산화를 신고 다니는 것은 하루를 고생한 발을 벌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적어도 알베르게에선 편하게 신고 다닐 수 있을 슬리퍼를 챙기자.
장갑
안전과 보온을 위해서 장갑은 필수다. 특히나 겨울에는 장갑 없이 걸으면 동상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 항상 끼고 다니도록 하자.
등산 스틱
등산 스틱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사용하면 무릎 하중을 줄여주고 미끄럼을 방지해준다. 그러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안 쓰는 것보다 못하고, 순례하면서 항상 들고 다녀야 하므로 불편할 수도 있다.
만약 등산 스틱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나뭇가지를 꺾어 스틱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고, 순례자의 느낌을 물씬 낼 수 있다.
판초 우의
가을이나 겨울 까미노를 가는 순례자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판초 우의를 꼭 챙겨야 한다. 특히나 갈라시아 지방은 날씨가 매우 변덕스럽고 안 좋은 날이 많아서 거의 모든 구간을 판초 우의를 입고 걸어야 한다.
좋지 않은 재질의 판초 우의를 사용하면 금방 찢어져서 버리게 되므로,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재질을 사용하도록 하자.
의류
옷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날씨가 추울수록 부피가 크고 챙겨가야 할 옷이 많아진다.
일반적으로 여름은 1겹, 봄과 가을은 2~3겹, 겨울은 3겹 이상 입는 것이 좋다. 평상시 입고 다닐 옷은 등산복이나 스포츠용 기능성 옷이 좋은데, 위·아래로 2벌 정도로 해서 교대로 입는 것이 좋다. 양말과 속옷은 적어도 3벌 이상 챙기도록 하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항상 세탁해서 다음 날 쓸 수 있게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옷 같은 경우엔 꼭 한국에서 준비해서 가지 않더라도, 외국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 필요한 물품이 생기면 그때그때 근처 매장을 이용해 구매하도록 하자. 또한, 스패츠나 무릎 보호대, 마스크나 선글라스 등 계절마다 부가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이 더 있으므로, 자신이 가는 계절에 맞춰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말자.
서류
까미노를 하면서 챙겨가는 서류들은 어쩌면 제일 중요한 물품들이다. 가방에 넣어 두기보다는 항상 소지하는 편이 좋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자.
- 여권(여권, 여권 복사본, 사진)
- 예매티켓(TGV, 부엘링, ALSA, 라이언에어 등)
- 크리덴시알
- 신용카드
- 현금
- 핸드 노트
기타
- 의약품: 감기약, 배탈약, 소화제, 소염진통제, 바셀린 등(순례하면서 무슨 돌발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비상약품은 반드시 챙기자)
- 화장품: 선크림, 스킨, 로션
- 샤워용품: 바디워시, 샴푸, 폼클렌징(많이 들고 갈수록 짐이 되므로 적당량만 가지고 가자)
- 편의용품: 지퍼백(빨래나 여러 물품을 구분할 수 있다), 다용도 칼(일명 멕가이버 칼. 언제든 유용하게 쓰인다), 조미료&라면 수프(입맛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도움이 된다)
- 전자물품: 스마트폰, 카메라, 폰 충전기(스마트폰은 챙겨가는 편이 좋지만, 카메라는 꼭 챙겨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두고 가자. 카메라도 DSLR보다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질문하는 사람들은 아마 ‘800km의 길을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도대체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거기선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진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개인차가 물론 있긴 하겠지만, 아쉽게도 순례자들은 저 물음에 그들이 바라는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진 않았다고 얘기한다. 또 이렇게 말하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순례자는 오히려 산티아고에서 허무함을 느꼈다고 한다.
[box type=”tip”]“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800km를 걸었는데, 거기에 해답이 없었다면 무얼 위해서 걸었던 걸까?”[/box]
산티아고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면, 애초에 순례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까미노의 숨겨진 의미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까미노를 통해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산티아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서 자신이 아직 찾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하며, 그런 허무함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머리로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까미노의 끝인 산티아고가 아닌, 순례 과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즉, 까미노의 진정한 해답은 끝이 아닌 과정에 있는 것이다. 800km를 걸었던 것이 단순히 산티아고를 가기 위한 과정으로만 끝나는 것일까? 매일 새로운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고, 고생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값진 경험이 아닐까? 까미노는 우리에게 아마 현재에 더 집중하고 충실하라는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까미노 순례길은 마치 인생을 축소해 놓은 것과 같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갖고 머나먼 길을 조금씩 걸어간다. 그 과정에선 길이 평탄할 때도 있지만, 숲길과 자갈길같이 길이 험난할 때도 있고, 날씨가 좋다가도 비바람이 물거나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극복하고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다 보면 결국엔 나만의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까미노가 당신의 인생에 제2의 전환점이 되길 바라며, Buen Camino!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말 짐을 간편하게 만드는게 좋다. 계속 걸어다닐 거면 말이지. 캐논 M10 같은 가볍고 색감 좋은, 게다가 셀카 찍을 수 있는 카메라면 환상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