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으로 아일랜드에 간다고 말했다. 친구가 말했다.
“아일랜드에 가는 이유를 세 가지만 말해봐.”
잠시의 주저도 없이 내가 대답했다.
“맥주, 펍, 기네스.”
친구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건 다 같은 거잖아.”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대답했다.
“그건 완전히 다른 거야.”
그렇다. 그 셋은 완전히 다르다. 기네스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흑맥주다. 기네스 하나만을 위해서도 아일랜드는 충분히 갈 만하다. 처음, 아일랜드에 도착해서 기네스를 마시는 순간 말했다.
“뭐야, 지금까지 내가 먹은 기네스는 다 가짜였잖아.”
물론, 여행 마지막 날 더블린 기네스 팩토리에서 기네스를 마신 이후에도 같은 말을 했다.
“뭐야, 지금까지 내가 먹은 기네스는 다 가짜였잖아.”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입증하듯 기네스는 더블린 기네스 팩토리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맛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일랜드에는 기네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Murphy’s, Kilkenny, Beamish 등 기네스만큼이나 색깔 있는 맥주들이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펍이 아일랜드에는 있었다. 펍을 단순히 ‘술집’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다정한 사람들과 다정한 아일랜드 전통음악, 다정한 맥주들과 안주들 그리고 다정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다정함의 색깔과 온도는 백 개의 펍이 있다면 백 개가 모두 달랐다. 그러니 맥주, 펍, 기네스를 위해 아일랜드를 간다는 건 어이없는 짓이라기보다는 매우 합리적인 짓이었다. 적어도 나와 남편에게는.
아일랜드 여행책을 수개월간 뒤적거린 결과, 나는 특히 딩글에 가고 싶어졌다. 더블린도 아니고 골웨이도 아닌 딩글. 아일랜드 서쪽의 작은 바닷가 마을. 시내버스도 택시도 없는 마을. 그러니까 그런 게 도무지 필요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 도시 전체를 다 둘러본다고 해도 30분이 안 걸리는 마을.
하지만 나는 꼭 그 마을에 가고 싶었다. 골웨이에서 킬라니로 간 다음 다시 그곳에서 버스를 두 번 더 갈아타고 딩글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딩글에 가고 싶었냐고? 딩글에는 무려 50개가 넘는 펍이 있었다. 서울의 가로수길보다 작은 도시에 50개가 넘는 펍이라니. 나는 그 숫자가 도대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딩글에 도착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CD가게였다. 아일랜드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건 아일랜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가는 펍마다 아일랜드 뮤지션들을 만났고, 그들은 일상처럼 아일랜드 민속 음악을 연주했다. 한 번도 아일랜드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그 음악은 묘하게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편했고, 흥겨웠다. 덕분에 술도 생각보다 많이 마시게 된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CD가게를 쭉 둘러보다가 아일랜드 음악 코너에서 CD 한 장을 뽑아들고 물었다.
“이 음악은 어떤 음악이에요?”
주인은 말없이 내 손에서 CD를 빼앗더니 포장을 뜯어버렸다. 그리고 CD플레이어로 그 음악을 들려주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포장을 뜯어버리다니. 사야 하는 건가. 설마. 설마 아니겠지. 복잡한 내 머릿속은 상관도 하지 않고 주인장은 그 음악에 맞춰서 악기를 들고 함께 연주를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또 들어보고 싶은 음악 있으면 물어봐요.”
“저렇게 포장을 뜯어버리면 어떡하나요.”
주인장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괜찮아요”라며 계속 연주를 했다. CD 몇 장의 포장이 뜯겨나갔다. 한참이 지났다. 음악은 계속되었고, 연주도 계속되었다. 어렵게 몇 개의 CD를 골랐다. 계산을 하다 말고 주인아주머니가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이요. 신혼여행으로 왔어요.”
“와! 이 가게에 한국 사람이 온 건 처음이에요. 처음이니까…….”
주인아주머니가 허리를 굽히고 카운터 아래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일랜드 위스키였다. 그리고 잔도 세 개를 꺼냈다. 콸콸콸콸. 순식간에 잔 세 개에 위스키가 가득 찼다. “반가워요. 슬란챠!”[footnote]아일랜드말로 ‘건배’라는 뜻.[/footnote]라더니 아주머니는 단숨에 위스키를 비웠다. 우리는 이게 무슨 일인지 다 파악하기도 전에 위스키를 비워야 했다. 한낮에. CD가게에서. 단숨에. 가득 찬 위스키를. 각자 한 잔씩 마셨다.
알딸딸한 상태로 생각했다.
‘진짜 술쟁이들의 나라에 왔구나. 드디어 술쟁이들의 마을에 도착했구나.’
위스키 한 잔은 취기와 함께 화장실 욕구도 선물했다. CD가게를 나와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화장실이 너무 급해져서 아무 문이나 밀고 들어갔다. 들어간 후에야 거기가 펍이라는 것을 알았다. 입구에 서서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중 한 사람이 소곤거렸다.
“이 사람들, 신혼여행으로 여기에 왔대.”
오호라, 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은 다시 우리를 훑어보았다. 우리는 한국말로 속삭였다. “벌써 마을 전체에 소문난 거야?” 그렇게 우리는 예상치도 못한 세계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펍의 이름은 Dick Mack’s. 백 년이 된 바였다. 물론 아일랜드에서 백 년 정도 된 바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거긴 뭔가 그보다 더 오래전의 공기가 멈춰져 있었다.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었고, 뒷벽에는 백 년도 더 된 것 같은 구두상자들이 듬성듬성했다. 그 위로 무성의하게 액자들이 달려 있었다. 묘했다. 멋을 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유능한 인테리어 업체가 와도 이보다 더 멋스럽게 꾸밀 순 없을 것 같았다. 공기와 먼지까지 꾸밀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펍 주인의 할아버지가 구두장이였단다. 할아버지는 펍 2층의 방에서 태어났고, 이제는 그 자신도 할아버지가 된 손자가 1층에서 펍을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신발상자를 듬성듬성 쌓아두고. 백 년 전처럼 그대로.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의자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앉거나 서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면 우리에게 술을 권했다. 거의 다 마실 때쯤이면 앞자리든 옆자리든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한 잔 더?”
술쟁이들은 옳다. 아니, 어떤 술쟁이들은 옳다. 나는 아일랜드 술쟁이들을 좋아한다. 내가 아일랜드에서 술쟁이가 되었을 때를 좋아한다. CD가게의 주인아주머니 이야기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수십 번을 말했다. Dick Mack’s를 비롯한 수많은 펍들에 대해서도 수년 간을 자랑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 술쟁이들이 그리워졌다. 낮이든 밤이든 펍에 들어서면 아일랜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 술쟁이들의 성전이 그리워졌다. 낮이든 밤이든 거기서 술을 몇 잔씩이나 시켜먹는 술쟁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모르는 우리에게도 술잔을 들어 건배를 하며 “슬란챠!”라고 말하는 술쟁이들. T로 시작하는요일엔 술을 마셔야 한다고 말하면서, Sunday를 Thunday라고 바꿔 말하는 술쟁이들. 좋은 술도 좋은 펍도 여행하지 않으니, 우리는 늘 다시 아일랜드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제는 어제의 술을 마셨으니, 오늘은 오늘의 술을 마셔야 하는 것처럼. 그럴 수밖에 없다.
[box type=”note”]이 글은 [모든 요일의 여행] 중 일부입니다.[/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