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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외신들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변화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자, 미국의 핵심 동맹국 중 하나이며, 중국·일본과 밀접한 관계고, 전 세계가 당면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한 축을 차지하는 북한 문제의 최대 변수 중 하나가 한국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고, 주변에 중요 강대국도 없었다면, 1인당 GDP는 3만 달러가 아니라 1,500 달러고,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했다면 탄핵이든 혁명이든 이는 소수의 전략분석가들이 짤막한 페이퍼 하나만 쓰고 말 이슈에 불과했으리라.

아프리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아니라면 작년 서아프리카를 뜨겁게 달군 감비아의 정치적 격변과 주변국의 개입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나 격동의 광화문과 3월 박근혜 탄핵심판을 외신이 주목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민주주의와 관련한 정치적 변화 중에 최근 드물게 긍정적인 의의를 가진 변화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물게’라는 말이 중요하다.

만약 민주주의에 관한 신념이 세계적으로 공고하고, 각국에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착근하며, 각국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고,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활발했다면, 남한 사례가 이토록 주목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관심을 끈 이유는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와중에 홀로 큰 진전을 이루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모습. (2016. 11. 19. 광화문, 사진 제공: 옥토)
’16년 말 한국의 ‘촛불혁명’에 전 세계 언론은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퇴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의 모습. 2016. 11. 19. 광화문, 사진 제공: 옥토)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후퇴’ 

2010년대, 외국 소식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런 흐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에티오피아의 타락한 선거 

최근 동아프리카의 가장 활기찬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에티오피아는 1990년대부터 20년 간 장기집권한 멜레스 제나위 총리가 2012년에 죽고, 민주적 변화를 기대할만 했다. 그러나 집권당인 인민혁명민주전선은 멜레스 제나위 사후 치러진 첫 총선에서, 야당 후보의 등록을 방해하고 돈으로 지지자를 매수하고 반대파를 폭력으로 위협하여 압승을 거뒀다. 2012년에 권력을 얻은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총리(아래 사진)는 다음 5년도 권력독점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2011, 출처: CC BY SA 2.0) https://www.flickr.com/people/15237218@N00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2011, 출처: CC BY SA 2.0)

2012년 시리아, 현재까지 이어지는 내전 

시리아는 더 절망적이다. 이 나라에서는 민주적 변화를 향한 요구가 내전으로 비화되어 40만명이 죽고 700만 명이 나라를 떠났는데 아사드 정권은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내전

2013년 이집트

2013년, 이집트에서는 전횡적 권력을 휘두르려던 무슬림 형제단의 무르시를 몰아내고, 군부의 엘 시시가 권력을 잡았고, 지금까지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이집트판 '전두환',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판 ‘전두환’, 압델 파타 엘 시시

2013년 터키 

이슬람 민주주의의 최선두라고 자부하던 터키는 그 민주적 변화를 이끌어낸 에르도안 총리가 2013년부터 급속도로 권위주의로 나라를 다시 이끌었고, 본인의 권력을 추가로 연장하는 대통령제 개헌에 성공했다.

터키판 '개발독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2017)
터키판 ‘유신헌법’,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2017)

2014년 태국

태국에서는 친 탁신 세력의 레드 셔츠와 반 탁신 세력의 옐로우 셔츠가 ‘셔츠 전쟁’을 벌이다 못해 2014년에 군부가 개입하여 모든 정치적 갈등을 힘으로 찍어눌렀다.

옐로우 셔츠 vs. 레드 셔츠 (출처: asiasociety.org) http://asiasociety.org/
옐로우 셔츠 vs. 레드 셔츠 (출처: asiasociety.org)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과 러시아 침공 

2004년 오렌지 혁명은 우크라이나의 민주적 변화를 이끌어냈으나 얼마 안 가 러시아가 지지하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귀환했다. 2014년에는 유로마이단 운동이 야누코비치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러시아의 침공으로 국가는 심각하게 분열됐고, 전망은 밝지 않다.

2014년 2월 19일, 타고 남아버린 무역 연합 빌딩의 잔해 (출처: Amakuha, CC BY 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User:Amakuha
2014년 2월 19일, 타고 남아버린 무역 연합 빌딩의 잔해 (출처: Amakuha, CC BY SA 3.0)

2016년 브라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한편 라틴아메리카의 지도적 국가로 민주적 변화를 선도해온 브라질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으로 몸살을 앓았고,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테메르 역시 국정 지지율이 7%(’17년 6월 기준)로 추락한 상태다.

2016년 8월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2016년 8월 탄핵된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2016년 필리핀

필리핀에서는 2016년 6월 20일까지 다바오 시장이었던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같은 달 30일 필리틴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마약 전쟁을 빌미로 극도로 폭력적인 철권 통치를 실시하고 있다. 그는 사형제 폐지(2006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2016)
로드리고 두테르테 (2016)

2014년 홍콩, ‘우산혁명’

“경찰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 우산 운동(雨傘運動) 또는 우산 혁명(雨傘革命)”으로 불리는 2014년 홍콩 시위. ‘우산 혁명’은 이름은 혁명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미 질식되어가는 홍콩 민주주의의 장송곡이 아닐까 의심받고 있다.

홍콩의 우산 혁명 (2014)
홍콩의 우산 혁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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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NbXLbHrMds

우산 혁명 비공식 주제가, “발언하지 않는 자 누구인가”(誰還未發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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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는 정말 끝도 없다. 시리아, 이집트, 태국, 에티오피아, 우크라이나, 브라질, 필리핀, 터키는 그저 일부일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과 온라인의 자유 상황을 감시하고, 지표로 만드는 프리덤하우스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무려 11년째 민주주의가 진전한 나라보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나라가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를 찍어누르고, 비선실세에 휘둘리며 앞장 서 비리를 저지르며, 전횡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를 시민이 평화적으로 몰아내고, 선거를 통해 빠르게 정국을 안정시켰으니 한국 상황은 확실히 이례적이라 할만한 것이다. 이는 프리덤 하우스에서도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승리다.

다만, 한국은 전체 자유 지수(Freedom Status)로는 “자유국(FREE)”으로 분류되지만, ‘언론'(Press) 자유 지수와 ‘온라인'(Net) 자유 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7년째 부분적 자유국(Partly Free)로 분류된다. 당연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영향으로 보인다.

한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덕분에 여전히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다. (출처: 프리덤하우스 2017)
한국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덕분에(?) 여전히 ‘부분적’ 언론 자유국이다. (출처: 프리덤하우스 2017)
한국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영향으로 7년째 부분적 언론 자유국, 부분적 온라인 자유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출처: 2017 프리덤하우스 보고서 중에서) https://freedomhouse.org/sites/default/files/FH_FIW_2017_Report_Final.pdf
2017 프리덤하우스 보고서 중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앞서 언급한 오렌지 혁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그루지야와 키르기스스탄에서 각각 장미 혁명 (2003)과 튤립 혁명 (2005)이 일어나던 2000년대 초반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연쇄적으로 대중적 저항이 촉발되었던 ‘아랍의 봄’ 때에도 이런 확신은 어느 정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 세계 각지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기 시작한 걸까?

미국외교협회의 연구원이자 동남아시아 전문가인 조슈아 컬랜칙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원제: Democracy in Retreat, 후퇴하는 민주주의)는 이런 문제의 원인과 대책에 관해 탐구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11년에 저술되어 2013년에 출간되었는데, 사실 이 시점에만 해도 내가 위에 언급한 사례들은 아직 일어나기 전이었다(단적으로 에르도안의 터키와 정의개발당은 아직도 민주적 이슬람주의의 모델이었다). 그 점에서 저자가 분석한 내용은, 불행하게도, 상당수 들어맞은 셈이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저자는 우선 민주화의 ‘물결 이론’에 대한 소개로 책을 시작한다. 이는 미국 정치학계의 거물인 새뮤얼 헌팅턴이 개념화한 것인데, 민주주의가 연쇄적으로 마치 물결처럼 확산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 나라에서 이루어진 민주적 변화는 다른 나라의 변화를 자극한다. 즉, 타국 활동가들은 이전 사례를 참고하여 자국에서도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고, 권위주의 정부를 위협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앵글로 색슨 계열의 국가와 프랑스와 저지대, 북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로 전환했는데, 이것이 민주화의 첫 번째 물결이었다. 이 첫 번째 물결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중부유럽의 제국들이 해체되고 새로 만들어진 민족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며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풍이 찾아왔다. 중부유럽의 민주국가들은 경제위기와 대내외적 민족갈등 속에서 취약함을 보여주었고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을 필두로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 등이 연달아 권위주의로 전환했다. 이는 제1의 역물결이었다.

나치당

이후 이들 국가들이 전쟁에서 패전하고 민주주의로 다시 전환되고, 구 제국의 식민지 또한 민주주의 국가들로 독립하면서 민주주의는 지역적이 아닌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민주화 제2의 물결이었다.

그러나 이 신생독립국들은 역시 경제적 취약함, 약한 시민사회의 기반, 강한 군부와 냉전 논리에 따른 외세의 권위주의 인정 등의 요소로 연달아 독재자의 손에 떨어지게 된다. 이는 제2의 역물결이었다. 그리고 제2의 역물결을 뒤집는 것은 바로 1974년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에서 시작되어 남유럽과 터키,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 한국과 대만으로 퍼져나가 끝내는 공산권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는 제3의 물결이었다.

제3의 물결과 함께, 당시 진행되던 경제 시스템의 변화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논의와 맞물려 미국 당국자들은 하나의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였다. 민주적 선거에 더하여 방만한 국영 부문을 약화시켜 권위주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시장경제 속에서 개인들의 재산권과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일련의 개혁 패키지가 채택되었다.

이후 구소련의 위성 국가들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을 중심으로 또 새로운 민주적 변화의 물결이 관찰되는 것으로 보였는데 몇몇 학자는 이를 ‘제4의 물결’이라고 부르면서 환호했다.

장미 혁명(2003년) 당시, 트빌리시 자유광장에 모인 사카시빌리와 군중들 (출처: Zaraza, CC BY SA 3.0)
장미 혁명(2003년) 당시, 트빌리시 자유광장에 모인 사카시빌리와 군중들 (출처: Zaraza, CC BY SA 3.0)

제4의 물결인가, 제3의 역물결인가 

문제는 이것이 제4의 물결이 아니라 오히려 제3의 역물결이 아닌가 의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내가 생각하기에) 세 가지 관점에서 보여준다. 각각 새로이 등장한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일어난 변화, 권위주의 강대국들의 역습, 적절한 지원을 제공해줄 외부 행위자들의 무능이다.

위싱턴 컨센서스의 실패 

하나씩 살펴보자. 책의 4장, ‘문제는 경제야, 워싱턴 컨센서스의 실패’에서 저자는 말라위의 사례를 들며 워싱턴 컨센서스가 실질적으로 개도국들에 적절한 성장 전략을 제시해주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사회갈등과 불평등만 확대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정착에 굉장히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민주화와 함께 경제 성장과 번영, 평등한 사회가 찾아올 거라고 기대에 부푼 해당 국가 국민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불신하고 권위주의 시대에 향수를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을 거부하는 중산층… ‘군부 소환’ 

이런 취약한 상황에 맞물려서 신생 민주국가들에선 이전의 민주화 물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상황이 등장한다. 바로 민주화의 기수라고 여겨지는 중산층이 오히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거부하는 현상이다.

저자는 5장에서 이를 논한다. 경제적 불안과 만연한 부패,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빈곤 계층 대중의 분노는 대체로 포퓰리즘 성향을 가진 “선출된 독재자”를 당선시키는 경향이 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나 태국의 탁신과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빈곤 계층 유권자의 분노로 뽑힌 "선출된 독재자" 유형에 속하는 우고 차베스(왼쪽)과 탁신 전 태국 총리.
빈곤 계층 유권자의 분노로 뽑힌 “선출된 독재자” 유형에 속하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왼쪽)과 탁신 전 총리.

이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되기는 하였으나, 권위주의 시절의 정치문법에 굉장히 익숙하며 반대파를 아주 적극적으로 탄압한다. 또한, 자신의 지지층인 빈곤층의 지지를 항구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민족주의적 수사를 동원하고, 중산층의 경제적 이권을 희생시켜 강력한 경제적 보조와 재분배를 단행한다.

이런 취약한 경제를 가진 신생 민주국가의 중산층은 수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에 강한 불만과 공포를 품는다. 그들의 선택은 그래서 민주적 수단을 우회해서 선출된 독재자를 교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태국에서 성공하고, 베네수엘라에서 실패한 방법은 바로 군부를 소환하는 것이었다.

부패를 확산하는 민주주의의 ‘파생효과’ 

신생 민주국가에서 정치가 취약해지고, 포퓰리스트의 발호를 불러오는 것은 민주화된 직후 부패가 실제로 늘어나거나 그런 인상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6장에서 이 내용을 다룬다. 기존 권위주의 정부는 중앙의 독재자 혹은 당이나 군부에 집중된 권력이 통제하는 촘촘한 후원 네트워크를 통해서 운영되었다.

이는 분명 몹시 부패한 상황이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성과 나름의 규범이 존재하는 상황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강력히 통제되는 언론을 통해 사회 일반에 드러나지가 않았다. 민주주의는 분명 이런 부패를 건전한 감시를 통해 막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취약하고 후원 네트워크가 사회와 경제를 관리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초기 국면에서 민주주의는 부패를 확산하는 파생효과를 낳을 수가 있다. 기존의 권력중심이 사라지니 관료와 이익집단들이 평소 활용하던 후원 네트워크가 통제되지 않고, 이곳저곳에 손을 뻗치게 되는 것이다.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다면 특별법을 적용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한편, 실제로 부패가 늘지는 않았어도 자유 언론의 등장은 부패에 관한 폭로기사로 이어져 체감상 부패가 늘어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것들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효능감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흔든다. 가령, 우리 정치사에 대입하면, ‘박정희는 청렴했지’라든지.

떠오르는 중국

외부적 요인은 이 위기를 더 부채질했다. 90년대에 워싱턴 컨센서스와 그 집행자인 IMF가 해당 국가 국민의 삶을 파괴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련이라는 강력한 반대자의 죽음으로 다른 대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7장에서 중국이 부상하면서 사태가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분명 중국의 경제는 위태로우며, 민주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중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전히 의문스러운 상태가 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개도국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자수성가는 계급화하는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마치 평등한 것처럼 위장하는 기만적인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과 그 영향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매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건 어쨌든 실재하는 현상이라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인접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많은 관료가 번영하는 상해의 시가지를 보면서, 또 중국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은연 중에 중국의 논리를 내면화한다.

즉, 시민 사회를 억압하면서도 경제 발전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고, 이를 정권의 정당성으로 삼으면 된다는 발전주의 논리 말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과 달리 민주적 개혁이나 인권 상황에 참견하지 않고 엄청난 현금을 풀어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자금원은 민주주의로 체제를 바꿔야 하는 유인을 감소시킨다(유사하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피포위 의식  

8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러시아다. 푸틴 정부는 자국의 불안한 민족 구성과 인구학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응집력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권위주의로 러시아를 끌고 갔다.

특히 나토의 지속적인 동진과 색깔 혁명의 확산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피포위 의식을 자극했다. 서방이 러시아를 약화시키고, 끝내 최종적으로 또 다시 해체하려고 한다는 공포를 일깨운 것이다. 중국도 유사한 문제 의식을 공유하여 두 나라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확산을 방해하기 위한 노력을 펼쳐왔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대통령 (출처: 위키백과 공용, CC BY) https://ko.wikipedia.org/wiki/%EB%B8%94%EB%9D%BC%EB%94%94%EB%AF%B8%EB%A5%B4_%ED%91%B8%ED%8B%B4#/media/File:Vladimir_Putin_-_2006.jpg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푸틴의 러시아는 관제 청년 조직을 인접한 구소련 위성 국가로 확대하였고, 우크라이나와 같은 곳에서는 선거에 공공연하게 개입하기도 했으며, 그루지야와는 아예 전쟁까지 불사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또 서구 민주주의가 내부의 정치적 사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타국의 주권을 주제넘게 침해하지 말라는 논리를 선전한다. 미국의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나 유로존의 위기는 이 두 국가에 매우 좋은 소재거리다.

또한, 다수의 신생 민주국은 멀리는 식민지 경험, 가까이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휘둘린 트라우마가 있기에 ‘내정 간섭’이라는 테마에 잘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물론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내정 간섭을 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민주화’ 신흥 강국들의 실패 

7장과 8장에서의 외부적 요인이 ‘도전자’의 발흥이라면, 9장과 10장에서는 ‘수성자’의 약화를 다루고 있다. 9장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해당 권역에서 민주화의 기수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한 신흥 강국들의 실패를 다룬다.

남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인도와 라틴아메리카의 브라질, 아프리카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이 이들이다. 이 국가들은 분명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가치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변국에 영향력을 발휘할만큼 충분히 적극적이지 않다.

인도

첫째, 이들 국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권과 내정간섭 논의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그 때문에 미국과 유럽에 고분고분 협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룰라의 브라질은 그런 이유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결코 비판하지 않았다.

둘째, 이들에게 주변국의 정치 체제 전환을 꾀하는 건 너무 큰 지정학적 리스크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남아공에게 무가베의 짐바브웨는 분명 국경지대의 불안정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무가베가 사라지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한 짐바브웨는 더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떄문이다. 이는 주로 남아시아에서 인도가 직면한 위협이다. 중국은 미얀마의 군부정권에 어떤 참견도 하지 않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고 항구 개발 계약까지 따낼 수 있었다.

만약 인도가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따진다면, 미얀마는 인도와의 어떤 협력도 흔쾌히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뉴델리의 정책 결정자들로서는 감당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미국와 유럽의 무능 

10장에서는 민주주의 전파에서 그동안 가장 중요할을 담당했던 미국과 유럽의 무능을 다룬다. 당연히 주로 미국에 관해 서술한 분량이 많다. 요약하면, 미국은 “선거주의의 오류”에 빠졌다는 것이다. 민주적 선거만 충족되면 민주화는 끝난 것이라고 여기는 오류는 민주적 선거는 첫단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

선거 투표

아프리카와 캄보디아 등지에서는 오히려 선거가 유권자 매수 혹은 반대파에 대한 린치 등으로 이어져 정치적 폭력을 늘렸다. 감시와 견제 기능이 부족해 권력이 모든 자원 분배를 사적으로 집행하면, 선거는 모 아니면 도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는 특히 부족적, 지역적 전통이 강한 곳에서 더욱 그렇다. 케냐에서는 키쿠유족과 루오족과 칼렌진족 사이에 선거의 향방을 놓고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만약 키쿠유족이 집권한다면 다른 두 부족은 자원 분배와 투자에서 소외될 것이 뻔하고, 이는 키쿠유족의 장기 집권을 위한 토대가 되어 영원히 뒤쳐질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튼튼한 시민사회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잘 행해야하는데 신생 민주국가들에서는 찾기 힘든 토양이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제반 사항을 신경쓰지 않고, 선거만 치르면 민주화가 끝났다는 단순한 접근법으로 이후 관리를 사실상 방기했다. 또한, 미국은 자국과 친한 거물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다양한 정치세력이 민주주의 규범을 익히고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때로 질식시키기까지 했다.

이는 결국 미국이 원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국 입맛에 맞는 괴뢰 정권에 불과하다는, 러시아 측의 선전 재료로 활용되기까지 했다(어느정도 사실인 측면도 있다). 그리고 각국의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 패키지를 제공함으로써 발칸에서 적용된 모델이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에 동시에 적용되는 황당한 일들을 자초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모범이 되주지 못했다.

미국, 유럽, 일본이 하나같이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민주주의 이후 마치 낙원이 찾아올 것처럼 선전을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주주의 오래 한 너희는 왜 예산안도 제대로 못 통과시키는데?”하면 대답이 궁색해지는 것이다.

문 닫은 미국 연방정부 (사진: KAZVorpal, CC BY SA)
문 닫은 미국 연방정부 (사진: KAZVorpal, CC BY SA)

상황이 이럴진대, 많은 당국자들은 기술결정론과 낙관론에 빠져들었다. 인터넷이 새로이 시민들을 연결시켜 민주적 변화를 자동적으로 이끌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2011년에 SNS로 튀니지와 이집트의 독재자들이 무너지며 이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양날의 칼이다. 권위주의 정부는 인터넷을 통해 친정부적 선전을 유통시키기도 쉽고, 민주화 활동가의 프라이버시를 추적해 탄압하는 데도 유용한 도구가 되어준다. 인터넷은 특정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다른 상황에서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당시에 서구 정책결정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민주주의 후퇴 방지할 처방 

마지막인 11장에서는, 앞서 논의한 내용을 종합하며 민주주의의 후퇴를 방지할 처방들을 제시한다. 결과를 보면 그다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우선 저자는 왜 민주주의가 여전히 중요하며, 미국 입장에서도 민주국가를 정착하는 게 이익인지 이야기한다. 민주주의는 경제 성장에서 권위주의와 본질적인 차이를 빚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훨씬 안정적이며, 경제위기 극복에도 마찬가지의 장점을 보여준다.

또한, 민주 국가에서 사는 사람은 대체로 비슷한 소득대의 사람보다 기대수명도 더 높다. 정부가 시민의 압력에 반응하며 여러 완충 장치를 마련해놓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미국이 추진하는 바에 완전히 협조를 하지는 않을지라도 권위주의 정부들보다 더 잘 협조해주는 편이며, 국가 간 갈등이라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에서 여전히 민주주의의 후퇴는 우려해야할 현상이며 미국에도, 해당 국가에도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루스벨트 민주주의

처방들은 이렇다. 하지만 일단 민주주의가 찾아온다고 유토피아는 오지 않는다. 권위주의 정부가 이미 실정을 저지른 상황이라 그 실정을 바로잡는 데도 한 세월이다. 오히려 초기에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 부패와 정치적 불안정이 빚어내는 경제적 불안정은 힘든 시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따라서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 지도자들은, 넬슨 만델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국민의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고,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약속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는 자신의 민주주의에도 문제가 있고, 스스로 이를 인지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신뢰를 줘야하며, 선거 =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조언한다.

신생 민주국에게 미국이 조언할 때, “선거는 첫 단추이며 이거 한다고 뭐 세상 천지개벽하진 않습니다”라고 명백히 인지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부패 감시를 위한 국제적 협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좋고, 행정부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여러 제동장치을 많이 마련해놓을 수록 선출된 지도자가 선출된 독재자로 변신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은 각국의 상황에 따라 맞춤형 처방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고, 이를 어느 정도 지수화 해서 원조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지표로 활용하여 효율적인 자원 투여를 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프리덤하우스 2017
프리덤하우스 2017

 

보유: 책을 읽고 나서 

책 내용은 좋다. 한국에서 별로 관심을 못 끄는 지역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유라시아의 정치 상황을 상세히 예시로 들어주기에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한 처방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마 실현 가능성이 급전직하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럴수록 세계의 변화상을 쫓아가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찾아보니 저자는 2016년에 [국가자본주의: 국가통제주의의 귀환이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가]라는 책을 냈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에 이어 같은 문제의식 하에 시야를 경제로 확장해서 보여주는 책 같다. 이 책도 나중에 읽어볼 가치가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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