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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전쟁: 3. 메갈리아의 역설

2017년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은 데일 만큼 뜨거운 주제입니다. 함부로 끼어들지 못합니다. 할 말은 많지만 침묵합니다. 갈등은 대화를 만나지 못하고, 서로를 가두는 증오와 편견만을 끝없이 잉태합니다. ‘젠더 전쟁’ 4부작을 통해 작은 대화의 공간이나마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하게도 이 글 소재에 대한 다양한 보론과 비판 기고를 환영합니다. (편집자)

  1. 전쟁으로 가는 길
  2. 또다시 갈라진 세계
  3. 메갈리아의 역설
  4. 전장의 가장자리에서

2016년 7월의 어느 날, 한국 거대 게임 회사 중 하나인 넥슨 본사 앞에서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넥슨이 자사 게임의 성우를 교체한 것에 대해 항의하고자 본사까지 찾아왔다. 그 발단은 한 장의 티셔츠였고, 티셔츠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Girls do not need a prince.” 

"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소녀는 왕자가 필요하지 않다”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1. 2015년 전염병 메르스가 한국에 퍼졌을 때, 디시인사이드에 개설된 메르스 갤러리를 시작으로 온라인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다.
  2. 메르스 갤러리를 점령한 여성 유저들은 이곳을 기존의 여성혐오를 거울에 비추어 남성에게 돌려주는 ‘미러링’ 커뮤니티로 만들었다.
  3. 곧이어 페이스북에 ‘메갈리아’라고 하는 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이는 과거부터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인용되곤 하던 ‘이갈리아의 딸들’과 ‘메르스 갤러리’를 합친 말이었다.
  4. 메갈리아는 메르스 갤러리의 게시글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옮기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스북 코리아는 해당 페이지를 삭제했다.
  5. 이어 메갈리아2, 메갈리아3 페이지를 개설했지만, 이 역시 삭제되었다.
  6. 마침내 메갈리아4 페이지는 안착에 성공했지만, 페이스북의 정책을 비판하고, 기존 페이지의 삭제에 항의하기 위한 소송을 준비한다.
  7. 이 소송 비용을 모금하기 위해 ‘Girls do not need a prince’ 문구가 쓰인 티셔츠 판매.

거대한 소용돌이 

티셔츠 판매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넥슨이 운영하는 게임 중 하나인 클로저스에서 ‘티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 성우도 그 구매자 중 하나였다. 그는 이 티셔츠를 사서 자신의 트위터에 인증했다. 그런데 클로저스 유저들을 중심으로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그들의 요지는 이랬다:

‘메갈리아는 남성을 공격하는 반사회적 혐오 사이트이다. 페이스북의 메갈리아4 페이지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메갈리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메갈리아4가 판매하는 티셔츠를 인증한 것은 많은 게임 유저를 혐오하는 사이트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유저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성우를 교체하라.’

넥슨은 이 요구에 응하여 성우를 교체했다. 그러자 일각에서 다시 반발이 일었다. 요지는 이랬다: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 것에 직업상 불이익을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는 여성혐오에 근거한 탄압에 가깝다.’

이런 논지는 트위터를 통해 퍼졌고, 특히 일부 웹툰 작가들이 이슈를 확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넥슨의 조치를 지지하는 측과 넥슨의 조치에 비판적인 측끼리의 논쟁은 이제 게임과 웹툰을 넘어서 다른 곳까지 번졌다. 정의당이었다.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는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고, 논쟁은 정의당 내부로 확대됐다.

메갈리안

점점 심화하는 갈등과 함께 정의당 내부에서는 이제 2015년부터 시작된 온라인 페미니즘의 의미를 따져보는 논쟁까지 일어났다. 여기서 논점은 과연 해당 성우가 인증한 티셔츠를 판매한 메갈리아4가 정의당이 추구하는 여성주의와 같거나 혹은 접점이 있다고 봐야 하는가였다. 문예위 논평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그런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즉, 이들에게 메갈리아는 ‘반사회적 남성혐오 사이트’이고 메갈리아4도 결국 메갈리아였다(이에 대해서는 4만 붙이면 달라지는 거냐고 해서 ‘4의 일족’ 놀이가 생기기도 했다).

한편 문예위 논평을 지지하는 측은 지금 언제적 메갈리아 얘기를 하느냐고 응수했다. 일단, 미러링은 여혐과 절대 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둘째, 메갈리아는 이미 분열한 지 오래고, 당신이 망상하는 극단파는 ‘워마드’라는 사이트로 옮겨갔다. 메갈리아4는 이제 단순히 미러링 사이트가 아니라 충분히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적 분위기에 맞서는, 정치적 운동으로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에 대한 지지가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정의당

성우 교체가 부당해고였는지, 깔끔한 계약해지였는지에 관한 건 모두 차치하고, 메갈리아4의 성격에 대해서는 확실히 문예위와 그 지지자의 의견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때만 해도 원래 메갈리아 사이트는 이미 황폐해진 지 오래라, 하루에 올라오는 게시물의 양이 채 10개도 안 됐다. 2015년 당시 폭풍을 몰고 왔던 그 사람들은 각자의 길로 헤쳐 모였다.

메갈리아는 게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논란을 시작으로 내부에 다양한 입장 차이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메갈리아4는 그런 다양한 움직임 중 하나다. 주로 메갈리아4는 미러링의 의의와 성과를 존중하면서도, 게이와 같은 다른 소수자들과도 연대하여 페미니즘 활동을 전개하자고 주장하는 그룹이었다. 그러니 초기 메갈리아에서 파생한 다양한 분파를 ‘하나의 메갈리아’라고 부르며 그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메갈리아의 분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메갈리아의 기원 

한편, 메갈리아의 기원에 관해서는 다음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우선 메갈리아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설(메르스 기원설): 

메르스가 퍼졌을 때, 홍콩 당국의 격리조치를 거부한 여성들이 있다고 알려졌고, 한국 인터넷에서는 늘 그랬듯이 이에 여성 혐오적인 인신공격을 이어갔다. 당시 연관 검색어에 ‘메르스 홍콩녀’라고 뜨는 걸 보면 확실히 이런 현상은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착오로 판명 났고, 오랜 기간 한국 인터넷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여성 혐오적 분위기에 억압받고 살아오던 여성들이 메르스 갤러리를 미러링이라는 행위를 통해 축제의 공간으로 바꿔냈다는 것이다.

반면 메갈리아에 비판적인 이들은 메르스 기원설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2설(남연갤 기원설):   

메르스 갤러리에서는 소위 ‘홍콩(녀)’ 논란이 일기 이전부터 남성 혐오적인 글이 있었고, 이는 디시인사이드 남자 연예인 갤러리(약칭 남연갤) 유저가 주도했다. 그리고 그 남연갤러은 이전부터 그러한 혐오 발언을 하던 사람들로, 여성혐오에 맞서는 페미니즘과는 애초부터 관계가 없던 이들이다. 오히려 이는 갤러리의 소문을 듣고 유입된 페미니스트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한 논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1
판단컨대, 메갈리아 전체에 대한 입장과는 별개로, 메르스 갤러리가 메갈리아가 되는 과정만으로 판단 범위를 좁히면, 남연갤 기원설의 설명에 좀 더 실증적 근거가 두터워 보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점은 상반된 위 주장이 모두 각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 메갈리아는 분화하여 메갈리아4, 워마드,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분파로 파생했다. 이들의 모든 차이를 뭉뚱그려 없는 것 취급하거나 남연갤 기원설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메갈리아는 남연갤러의 남혐이 기원이나 이후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유입해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에 저항하기 위해서 초기 의도와는 다르게 발전했으며, 그것이 워마드와 같은 극단주의 사이트와 우리가 연대해야 할 페미니스트 집단인 메갈리아4 등으로 분화했다는 이야기일까?

나는 성급하게 결론 내릴 생각이 없다. 그전에, 당시 불붙었던 논쟁을 더 살펴보자. 만약 한국 사회에서 젠더 폭풍을 몰고 온 혁명적 맹아, 즉 ‘메갈리아 정신’이 있었고, 그 메갈리아가 이후 분화와 진화의 과정을 거쳤다면, 그 집단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메갈리아 정신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시 논쟁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여전히 해석이 분분하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질문은 메갈리아의 정신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정신을 직접 계승한 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비도덕적이고, 파괴적인 패륜과 배타적인 혐오가 또 다른 누군가에는 자신을 둘러싼 기만적인 세계의 껍질을 찢어버리는 초석적 폭력이었다.

그래서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이들은 메갈리아의 정신이 배타적 혐오이고, 이는 워마드라는 상종할 수 없는 혐오 집단과 공유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메갈리아의 의의를 높이 사는 이들은 그 정신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멈추는 것이며 모든 페미니즘 운동과 공유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논쟁은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논쟁 당사자들이 잠정적으로나마 동의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논쟁에서 워마드가 차지하는 위상이었다. 사람들이 메갈리아4의 성격과 메갈리아의 실체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는 동안, 워마드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워마드는 메갈리아 옹호자와 메갈리아 비판자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부정적으로 인용되었다. 워마드를 놓고 다음과 같은 주장이 대립했다.

A: 워마드는 명시적으로 남성혐오를 주장하는데, 그것이 너희(범 메갈리아 혹은 메갈리아4)의 본질 아니냐.

B: 워마드는 이미 우리(메갈리아4)와 게이 논쟁으로 갈라진 이들이고, 우리 중에서도 극단파일뿐이며, 때에 따라서 연대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A와 B는 대립했지만, 둘 다 워마드는 가장 극단적이고 어떤 면에서 비상식적인 행위자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리고 이는 언급할 필요도 없는, 논쟁의 상식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워마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이 사태를 설명하는 데 있어 큰 구멍을 남겨놓겠다는 것이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메갈리아가 어떻게 세워지고 분화했는지 다른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그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리는 메갈리아의 기원 혹은 본질에 관해 추측해볼 수 있다. 그리고 ‘남연갤 가설’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시 한국의 인터넷 사회를 들여다보자.

1. 끼리끼리

그동안 한국 인터넷 문화는 명백히 남성이 주도했다. 디시인사이드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진입한 여성은 남성과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를 점차로 구축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인터넷 문화가 정착되자 커뮤니티 간 성별 분리가 일어났다.

이렇게 형성된 여초 사이트 중에서 2000년대 초반의 시기를 풍미한 가장 강력한 집단은 어디였을까? 아이돌 동방신기 팬클럽인 ‘카시오페아’다. 카시오페아는 80만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초거대 커뮤니티였으며 인터넷을 하지 않던 사람까지 이름은 알 정도로 명성을 자랑했다.

‘빠순이’ 라이징 

군 가산점을 둘러싼 제1차 젠더 전쟁으로 인터넷에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빠르게 형성하던 시점에서 크고 막강한 여초 커뮤니티의 등장은 역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를테면 당시 국민적 안티를 모았던 문희준을 항상 따라다니던 키워드는 ‘빠순이’였다.

‘오인용’의 ‘연예인 지옥’을 비롯한 인터넷 컨텐츠에 이들이 어떤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되었는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코드는 조롱과 경멸이었지만, ‘빠순이’의 동원력과 커뮤니티 전쟁에서 보여주는 힘은 공포 수준으로 묘사되곤 했다.

한편 개그맨 윤형빈이 연기한 개그콘서트 캐릭터 왕비호는 ‘절대 깔 수 없는’ 성역에 있는 사람을 까면서 흥행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이런 유명 남자 아이돌 그룹의 팬덤을 의도적으로 적으로 돌린다는 컨셉이었다. 인터넷 아이돌 팬덤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 남성 인터넷 유저의 인식은 대체로 이랬다.

그러나 아이돌 팬덤을 단순히 남성 지배적인 시선이 보듯, ‘이성을 잃은 빠순이’ 집합소로만 보는 것은 부당하다. 더불어 이들을 비이성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부당하다. 아이돌 팬덤 현상 역시 한국식 압축성장의 산물이다. 전통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해체되고,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로 향했다. 도시는 돈이 넘치는 소비의 천국이었지만, 인간은 소비를 넘어 존재에 대한 욕구도 있다.

그리고 비슷한 선호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뭉치고 싶다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을 충족해주는 사회적 자본은 돈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농촌에서 연고도 없이 도시로 올라온 많은 기성세대는 교회를 통해 사회적 자본을 채워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이후에 태어난 후기 산업사회의 새로운 세대는, 입시 경쟁과 같은 사회적 압박과 그들에게 주어지는 빈약한 사회적·문화적 자본 때문에 그들만의 플랫폼을 갖추기 어려웠다.

아이돌 팬덤은 그렇게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은 어찌 보면 과거에 종교가 만들어지고, 교회가 세워지며, 도시가 생기는 과정과 유사했다. 소외된 도시의 아이들에게 아이돌은 일종의 정령이었다. 폭우, 가뭄, 눈, 낙뢰와 같은 자연의 변덕스러운 질서는 정령 신앙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었다(따지고 보면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인 EXO도 무슨 초능력을 쓰는 컨셉을 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같은 신앙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같은 사회적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태어난 여성 청소년들은 대체로 정령을 공유하는 집단을 조직해 그에 소속되기(혹은 스스로 소속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수와 스타가 좋아서 만든 팬덤이었지만, 이 팬덤 네트워크 속에서 창발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팬덤이 집합행동을 위한 플랫폼이 된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애정하고, 애착하는 빠순이면서 빠돌이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 애착하는 존재가 아이돌이라고 해서 왜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애정하고, 애착하는 빠순이면서 빠돌이다. 그것이 왜 잘못인가. 애착하는 존재가 아이돌이라고 해서 왜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

노사모 창립자 노혜경은 “노사모는 H.O.T 팬덤을 본떠서 만들었다”라고 했다.2 노혜경은 ‘메갈리아 해방전쟁’이라는 강연도 했다.

메갈리아 해방전쟁

인터넷 아이돌 팬덤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는 같은 세대의 여성이 유례없는 규모로 뭉치는 조직이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때로는 친구를 사귀고 때로는 인터넷 전쟁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체득해갔다. 인간 대다수는 그런 식으로 무언가를 공유하는 집단에 소속돼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아이돌 팬덤의 특수함은 단지 압축 성장을 겪어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이 풍성하지 못한 후기 산업사회의 특정 세대, 그리고 특정 성별을 포괄한다는 점뿐이다.

사실 그 특수함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단순히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으로 뭉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어떠한 문화적, 사회적 기반이 그들을 아이돌에 열광하게 했다면, 연결된 그들은 다른 형태의 집합행동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 이런 인터넷 아이돌 팬덤 문화는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여초 커뮤니티 전반에 그대로 유전된다. 그리고 2009년, 마침내 다음 카페 [여성시대]가 만들어진다.

여성시대는 여성 일반이라면 누구나 들어가서 정보, 일상 이야기 등을 나누는, 회원 수 60여만 명의 거대 커뮤니티로 성장한다(2017년 3월 6일 현재 회원 수 678,526명). 18세기에 본격적으로 여론과 인쇄 매체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연결되자 자유주의가 발생했듯이, 이런 인터넷 커뮤니티는 같은 사회적 조건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의 공유지식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된다. 그리고 여성 커뮤니티들에서 어떤 것들이 공유될지는 상당히 명백하다.

2. 다 같은 끼리끼리는 아니다

하지만 세대와 성별만큼 중요한 게 계층이다. 아이돌 ‘팬질’은 20대에 들어서면서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데 이는 팬질을 대체할 다른 사회적 자본의 축적 기회가 대학을 중심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20대가 되어 대학에 가면 훨씬 넓은 사회적 환경과 인적 네트워크에 접속할 기회를 얻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접속하는 네트워크의 모습에 따라 거기서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은 아주 달라진다.3

한쪽은 풍부한 사회적 자본을 제공 받는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진 집단이다.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고 피해를 보는지 인지하고 있으며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몰라도 괜찮다. 같은 네트워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려줄 테니까. 이들은 유리 천장을 바라보며 그것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편에는 그렇지 못한 집단,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지 무엇이 차별인지조차도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 피해인지는 알아도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무엇을 조직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문제는 앞으로도 알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 바닥 위에서 산다. 그리고 그 바닥 밑에는 상어가 입을 벌리는 심해가 자리한다.

대화

대학가를 중심으로 (그마저도 소수로) 유통되던 페미니즘이 과연 유리 바닥을 딛고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지 나는 회의적이다. (이에 대한 실증적인 반증 사례가 있다면, 그러니 페미니즘을 통해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획득한 사회적 소외 계층의 사례를 알고 있다면, 진심이다, 알려주시길 바란다.)

여성 내부의 계층 분화는 실재하는 것일까. 많은 경우 여성은 종속적으로 묘사되든 주체적으로 묘사되든 단일집단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단일 집단일 리는 없다. 집단 구성원을 가르는 가장 큰 단층선은 성별이 아니라면, 단연 계층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계층에 따라서 겪는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는 여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청년 여성의 계층 분화 

20대, 30대 초반의 청년 여성의 계층 분화와 생활상에 대한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몇몇 연구가 여성의 계층 분화가 IMF 이후의 현실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청년층은 아닐지라도 현재 노동시장에 진출한 세대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찾기 쉽다.

1. 고졸 여성의 생애주기 비표준화 

과거에는 고졸이든 대졸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교육을 마치고 취업을 한 뒤 결혼을 하는 표준적 이행을 거쳤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유일하게 고졸 여성 집단만이 취업 전에 결혼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 생애주기의 비표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에 진출한 세대들의 성인기 이행 과정의 차이를 분석한 김혜경, 이순미(2012)의 연구로 드러났다.

2. 노동시장에서 기혼여성의 양극화와 동질혼 경향  

기혼여성의 노동시장이 IMF 이후 양극화해 안정적 정규직 노동시장과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분화되었음을 김영미, 신광영(2008)의 연구는 보여준다. 또한, 이는 동질혼 경향과 맞물려서 가구 간 소득 불평등 증대의 핵심적 원인이 되고 있다.

3. 여성의 경력 단절과 하향 재취업 

동시에 IMF 이후 가구 내에서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이 계층적 차이를 빚고 있음을 이순미(2014)의 연구는 역시 지적한다. 맞벌이를 지속하여 경력을 쌓는 여성은 고학력 정규직 여성의 생애 유형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경력 단절 후 하향 재취업을 선택한다. 이 역시 여성 내부의 계층분화를 반영한다.

4. 2차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이 계층 분화가 여성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낳고 있음을 김영미(2015)의 연구는 입증했다.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과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으로 분화된 분절적 노동시장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가 다르게 구성되는 것을 밝힌 것이다.

김영미에 따르면, 1차 노동시장은 공식적인 업무 평가와 제도화된 규범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동일노동에 성차별을 둘 수 없다. 따라서 이곳의 임금 격차는 직접적 차별의 결과라기보다는 배치 상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크다. 이곳에서 차별이 이루어진다면, 직접적이라기보다는 암묵적으로 업무 배치에 차이를 두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반면 2차 노동시장은, 노동력 간의 구성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격차가 발생하였는데 이는 비슷한 노동을 하더라도 직접적인 성차별의 결과로 여성이 더 적은 임금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곳은 노골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 성 역할 담론이 기승을 부리는 곳이고, 성폭력 등에 대해서도 더 취약할 가능성도 더 크다.

여자 갈등 여성 실루엣

계층 분화의 필연: 서 있는 자리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지 

이와 같은 연구를 종합하였을 때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젠더 불평등은 분명 계층을 가리지 않고 실재한다. 하지만 IMF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는 여성 집단 내에서 계층적 차이를 심화했고, 그 계층적 차이는 각 여성이 겪는 삶의 경험의 분기로 이어지리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노동시장에 이미 진출한 사람이 계층 분화를 겪고 있다면, 2008년 경제 위기 이후에 더욱 불안해진 사회를 사는 현재의 20대 청년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수저 담론과 헬조선 담론, 그리고 계층적 불만을 해소할 키워드로 떠오른 ‘죽창’은 이런 경향을 보여준다. 청년층에서 여성 내부에서의 계층 분화와 이어지는 경험의 차이에 관한 박기남(2011)의 연구는 이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2008년 이후 전반적인 노동시장이 청년층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고, 이는 청년층 전반이 부딪히는 현실이다.

박기남은 그중에서도 20대~30대 비혼 여성들을 인터뷰했는데, 이들은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갈망했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해줄 직장을 원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직장을 얻지 못해 고민하기도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는 자신의 바람(이 논문에서는 주로 결혼)을 유예하는 것을 선택했다.

여자 여성 피해자 슬픔 우울 고독

흥미로운 점은 계층적 배경에 따라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여성이(이건 남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택하는 대안이 나뉜다는 것이다. 중상층 여성은 취업을 미루면서 가족에게 의존할 수 있지만, 중하층 여성은 잦은 이직으로 대변되는 비정규직의 악순환 속에 바로 진입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비정규직의 직업 생태계에서는, 직접적 차별이 더 심할 가능성이 크다(김영미, 2015).

예를 들어 여성이 종사하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시장은 성 불평등의 장기지속(durable inequality)으로 확대되고 유지되던 것이다(권현지, 김영미, 권혜원, 2015). 여기서 여성은 약한 시장 경쟁력을 가지고, 신분적으로 취약하며, 고객과 장기지속적 신뢰관계를 쌓는 업무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기업이 신분제적 고객 관계를 이용한 대고객 서비스 전략을 채택할 수 있게 해주며, 그 속에서 ‘갑질’이 정당화된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악순환에 걸려들 수밖에 없는 낮은 계층의 여성은 이런 갑질에 대한 노출이 더 심했을 것이다. 한국의 전근대적 소비자 관행이 저임금 노동의 여성화 경향과 맞물린다면 이런 현상은 당연해 보인다.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연구들의 함의는 이렇다. 노동시장에 한정에서 보자면, IMF 이후 여성들은 명백히 분화했다. 그리고 이는 동질혼 경향, 노동시장의 분절성 심화와 맞물려 계속해서 심화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인터넷에서 끼리끼리 뭉쳤지만, 그들은 다 같은 끼리끼리가 아니었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3. 메갈리아를 건국하다

이제 제2차 젠더 전쟁을 위한 모든 주인공이 모였다. 미러링의 진짜 단초는 201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남성들은 그들만의 공론장이었던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 보았다. 많은 커뮤니티에서 ‘연애 시장의 권력을 쥐고 흔들며 남성에 기대 이익을 편취하고자 하는 비양심적 여성들’이라는 스테레오타입(신화, 환상, 혐오 등의 이름을 붙여도 무방하다)을 ‘김치녀’라고 이름 붙이고, 이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여초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점차 온라인에 정착하자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불만을 토로할 공간이 됐다. 그리고 남초 커뮤니티와 여초 커뮤니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플랫폼은 공히 자신의 집단에서 겪은 현실의 불만을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온라인에서 공유하면서 공유지식을 만들어냈고, 그 공유지식을 바탕으로 집합행동에 들어갔다.

제2차 젠더 전쟁은 그런 면에서 산불과 유사했다. 남성의 몰락과 여성의 (제한적) 부상을 받아들여야 했던 젊은 남성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김치녀 담론을 생산해나갔다. 한편 아이돌 팬덤을 기원으로 한 여초 커뮤니티는 여성들의 공유지식을 생산해냈다.

함께하는 대화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모여서 공유지식으로 퍼지며, 결국 집단행동으로 이어진다.

함께하는 대화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는 모여서 공유지식으로 퍼지며, 결국 집단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남연갤’은 그 과격성 면에 있어서 전위대와 같은 곳이었다. 한국 인터넷 사회는 이제 마치 가뭄으로 말라가는 숲처럼 되어 갔다. 숲에 떨어진 작은 불씨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산불로 이어지듯이, 한국 인터넷의 젠더 이슈는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화염으로 점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거대한 산불로 번졌다.

일찍부터 아이돌 팬덤 간의 전쟁으로 단련됐고(이는 상당히 방대한 전투사를 자랑하나, 사회 일반에 이것이 상세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만의 공유지식을 만들어낸 이들이 인터넷에서 한 공간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왜 2015년인가?”에 대한 답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우리는 그 공간을 2015년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된 메갈리아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미니즘보다는 아이돌 팬덤을 매개로 한 디시인사이드 특유의 전투문화의 결합이 메갈리아의 요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2015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IMF 이래로 여성의 계층 분화와 인터넷 커뮤니티의 확장이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에 불과했다. 그 폭발성은 순식간에 웹 공간을 휘몰아쳤다.

어째서 메갈리아는 이렇게 폭발적일 수 있었던 것일까? 많은 사람이 메갈리아 활동을 통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아니구나”, “나만 이런 게 불편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던 사람들이 연결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유지식을 축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시대’를 비롯한 숱한 여초 커뮤니티들도 이전부터 해오던 것이었지만, 메갈리아는 온전히 젠더 갈등이라는 주제를 잡고 굉장히 특정한 공유지식을 만들어내는 장소였다. 메갈리아는 자신들만의 서사와 경험을 서로 공유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집단경험을 조직해내는 곳이 된 것이다. 임계점을 넘은 갈등에 불이 붙자 그 자기 조직화의 힘은 실로 엄청났다.

교양파와 죽창파 

그동안 활동하던 여성계 인사들과 대학가의 페미니스트들은 본격적으로 여성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기치 아래 사회운동을 전개한다고 생각하면서 열광했다. 실제로 여성민우회의 후원금도 상당히 늘었다. 페미니즘 도서가 판매 순위 상위권을 하나둘 채우기 시작했다. 집합행동이 창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신호에 흡족해하며 한국 사회에서 억압받던 여성들이 드디어 코르셋을 찢고 나온 사례라고 얘기하곤 했다. 많은 교양 있는, 페미니즘에 익숙한 여성들이 메갈리아로 달려갔다.

여자 걸 소녀 여성

하지만 초기 메갈리아에서 이들(페미니즘에 익숙한 교양 있는 여성)이 환영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직 당시의 메갈리아가 그 성격이 불분명한 회색지대였기 때문이었다. 메갈리아는 사회적 자본이 상대적으로 더 많고, 페미니즘과 같은 교양이 통용되는, 예컨대 상위권 대학의 ‘방실방실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계층적인 기반을 가진다.

초창기에는 이들 간의 차이가 극적으로 드러날 일이 없었다. 리눅스 개발자 리누스 토르발스는 “생존하라, 사회화하라, 즐겨라, 그것이 진보다!”라고 했다. 초창기 메갈리아는 진보를 위한 이상적인 플랫폼인 것 같았다. 그들은 여성으로서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고 대책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 “미개한 헬조선”의 억압받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사회화했다.

유입된 ‘교양파’는 이 점에서 활약했을 것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매력적인 문화 자본을 제공해주었다. 많은 사람이 이를 통해서 개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갈리아는 재밌었다. 메갈리아의 본류라고 할 ‘죽창파’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뿌리라고 할 디시인사이드는 모든 도덕을 거침없이 조롱해도 좋으니 ‘웃기기만 하면 좋은 곳’이었다. 웃기지 못하면 그것이 곧 비도덕이었다.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단련된 사람들이 마음껏 도덕을 조소하며(혹은 코르셋을 찢으며) 온갖 ‘드립’을 공유하는데 그게 어떻게 재미없을 수 있겠는가?

초창기 메갈리아 사이트를 회고하는 몇몇 글을 본 적이 있다. 초창기 메갈리아야말로 정말 최고였다는 반응이 보였다. 나는 그 반응이 충분히 이해된다. 창조성은 서로 다른 사회집단 간의 교류 속에서 만개한다. 메갈리아가 얼마나 생산적인 창조성을 보여주었는지는 평가에 따라 갈리겠지만, 적어도 그들 입장에서 그것은 하나의 변곡점이나 다름없었다.

유리 천장을 바라보는 ‘교양파’ 중 일부는 ‘죽창파’의 전략을 차용하여 훨씬 과격해지고, 격렬한 언어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더 적극적으로 집합행동에 나섰다. ‘죽창파’의 일부는 페미니즘 도서를 구매하고 읽으면서 자신의 갈증을 풀었다.

이것만큼 아름다운 자매애를 잘 보여주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금방 사태가 명확해졌다. 이들은 중심을 지탱하지 못하고 와해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메갈리아 사이트의 왕성한 활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메갈리아는 사실상 공동화했다.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회색지대는 초기의 혼란이 가져온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균형이었다. 커뮤니티가 자리 잡기 시작하자 안개가 걷히고, 두 집단 사이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균열로 메갈리아는 분열한다.

4. 메갈리아의 역설

“혹자는 여성들이 다른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오히려 모두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 내 차별 경험의 상이함이 드러내는 정치적 함의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차별의 형태에 따라 여성들의 대응전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김영미(2015): 230-231

메르스 갤러리에서 처음 ‘미러링’을 시작했던 사람들은 이 ‘다름’을 직감했던 것 같다. 메갈리아는 한국 인터넷에 엄청난 충격을 준 뒤 급속히 갈라지기 시작한다. 쟁점은 게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냐는 것이었다. 기존 페미니즘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 메갈리아가 인터넷에 격변을 일으킨 것을 보고 유입된 사람들은 게이들도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희생자들로 간주했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여성이 전략적으로, 그리고 도의적으로 이들 게이 그룹과 연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었다.

그러나 메갈리아라는 공간을 최초로 만들어낸 핵심 유저들은 전혀 생각이 달랐다. 이들은 기존 페미니즘 논리를 이해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 그동안 여성으로서, 사회의 피해자로서 겪은 경험을 증오의 언어로 토로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들의 논리구조 아래에서는 선명성과 극단성의 언어가 우세를 점하기 쉬웠다. 그리고 역시 그들만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게이도 그저 ‘한남충’으로 보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둘 사이에는 해소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 결과는 메갈리아 본진의 황폐화였다. 메갈리아에 호의적이었던 기존 페미니스트들은 메갈리아4 페이지와 트위터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갈리아 1세대들은 워마드로 들어가거나, 여초 카페로 돌아갔다.

교양파는 그저 메갈리아에 자신의 상상을 덧씌우고 ‘자신들이 이끄는’ 페미니즘 운동이 대성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메갈리아의 많은 유저, 혹은 ‘웜'(워마드)들은 그다지 바뀐 적이 없다. 교양파는 남성도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계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메갈리아의 핵심을 구성하는 죽창파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교양파는 교양을 주입하면 계몽될 것이고, 가부장제의 같은 피해자인 소수자 그룹과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죽창파는 그들은 아무리 교화하려고 해도 답이 없으며 멸절만이 답이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이들에게 ‘성평등 사회’는 장애인, 동성애자를 막론하고 모든 남성이 없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https://flic.kr/p/5YnR7B

João Carlos Magagnin, Die another day…, CC BY

그렇다면 왜 이런 전략의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페미니즘이 젠더 간 관계를 새로이 규정하고자 하는 전략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략은 단순히 계층이나 지역 등 사회적 구성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주체가 자신이 마주하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대안적인 전략을 평가하고, 그중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면서 전략은 구체화한다.

26개 국가에서 남성의 ‘성역할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요인에 대해서 분석한 김영미, 류연규(2016)의 연구에서 주요 변수로 제시된 것은 ‘연령, 교육 수준, 아동기 어머니의 취업경험 등’의 사회화 요인이었다. 한국은 ‘여성혐오 사회’다(적어도 성 불평등이 만연해있다는 것에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성역할 태도만 놓고 보았을 때 분명 교육 수준에 따른 차이는 존재한다.

통계적으로 학력 수준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더욱 심할 개연성이 크다. 투쟁 속에서 연대, 계몽, 교화를 포괄하는 페미니즘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 편히 ‘남혐’을 할 것인가? 이것은 만나온 남성들이 어떤 이들이었느냐에 달려있다. 그들은 같은 ‘한남충’을 만나왔지만, 동시에 다른 ‘한남충’을 만난 것이기도 하다.

성우-웹툰 사태 때 넥슨에서 여성들이 벌였던 시위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이 간극을 잘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남자친구와 함께 시위 현장을 찾았던 페미니스트 여성은 동료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던 여성들에 의해 욕을 먹고 쫓겨나야 했다. 왜 이런 자리에 남성을 데려오냐고.

이별

이 지점에서 죽창파와 교양파는 결별한 것이다. 나는 앞서 ‘메갈리아 정신’ 혹은 본질에 관한 논쟁에서 양 논쟁 당사자 모두 워마드를 마치 배경요소로 취급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진짜 간과한 이야기는 바로 워마드 본인의 이야기다. 메갈리아 현상이라는 폭발적인 사회 현상을 최초로 만들어내고, 그 야성적 폭력성을 통해 많은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준 이들이 누구인가?

지극히 논리적인 결과물로서의 워마드

메갈리아를 기점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페미니즘 양상이 바뀌었다고 할 때, 그 기폭제를 제공해준 이들은 역설적으로 페미니즘과는 오히려 관계가 없었다. 메갈리아 정신의 계승자는 워마드이며, 이것이 메갈리아의 역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구제 불능의 혐오종자라는 것도, 단순히 소수자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를 두고 분화한 존재도 아님을 역설한다.

워마드는 비합리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이들로 보이고, 일견 그런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이 겪은 계층 분화와 그에 따른 상이한 차별의 경험이라는 전제를 수용할 수 있다면, 워마드의 남혐은 그들이 겪은 체험에서 산출된 지극히 논리적인 결과물이다. 그것이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죽창파와 교양파는 결별했지만, 많은 교양파가 죽창화하는 상황은 메갈리아 현상에 관한 종래의 해석과는 다른 접근법을 여전히 요구한다. 문화적인 면과 전술적인 면에서, 나는 죽창파가 그들의 문화를 사회적으로 투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역사적 진보로 이어질 지 아니면 더 큰 역사적 반동과 부작용으로 이어질 지는 누구도 성급하게 단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메갈리아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손쉽게 낙인찍는 일을 어리석다고 할 수 있다면, 반대도 마찬가지다. 메갈리아가 가져다준 일시적 해방감을 소비해 자신이 어떤 지형 위에 서 있는가를 망각하는 것은, 스스로 이룩하고자 하는 성 평등을 다수에게는 가져다줄 수 없음을 의미할 따름이다.

(계속) 

참고 문헌

  • 권현지, 김영미, 권혜원. 2015. 저임금 서비스 노동시장의 젠더 불평등. 경제와 사회 107. 44-78
  • 김영미. 2015. 분절 노동시장에서의 젠더 불평등의 복합성. 경제와 사회 106. 205-237
  • 김영미, 류연규. 2016. 남성의 성역할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다층분석. 사회과학연구 32(2). 271-299
  • 김영미, 신광영. 2008. 기혼여성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가구소득 불평등의 변화. 경제와 사회 77. 79-106
  • 김혜경, 이순미. 2012. ‘개인화’와 ‘위험’. 페미니즘 연구 12(1). 35-72
  • 박기남. 2011. 20-30대 비혼 여성의 고용 불안 현실과 선택. 한국여성학 27(1). 1-39
  • 이순미. 2014. 가구생계부양 유형의 변화와 여성 내부의 계층화. 한국여성학 30(2). 1-52

  1. 남연갤 기원설은 ‘메르스 신화는 없다’ (박가분, 2016. 7. 25)를 참고. 여담으로 나는 박가분이 제시하는 남연갤 기원설의 근거 자료는 타당하다고 판단하지만, 박가분이 메갈리아에 취하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2. 강준만, 강지원, [빠순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인물과사상사, 2016) 78쪽

  3. 예를 들어, 지역별 차이가 주로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에도 반영되는 것을 보여주는 미국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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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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