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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는 지난 10월 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의 한 대여 회의실에서 편집위원 회의를 열었다. 오프라인 회의로는 오랜만이다. 편집장 민노씨와 편집위원 7명이 모였다. 이 매체의 편집위원은 23명이지만, 대부분 따로 생업을 갖고 있고 해외 체류 중인 위원도 있다. 오프라인으로 일사불란하게 모이기가 쉽지 않다. 이날 모임도 공식으로는 작년 송년회 이후 처음이다.

편집장은 모임 사흘 전에, 회의에서 논의해야 할 안건들을 정리하여 온라인으로 회람했다.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았다.

“11월 18일 유예기간 끝나는 신문법 시행령 대책”

이 안건이 토의 안건 중 첫째가 된 것은 긴급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슬로우뉴스]는 3주 뒤면 인터넷 신문 등록이 취소되고 ‘무허가 매체’가 될 운명이었다. 4년 반의 역사를 거치며 독특한 철학과 색깔을 기사로 보여주었고 주류 매체가 갖지 못하는 시야로 세상을 조망해 왔다. 그래서 애독자도 숱하게 생긴 나름 인기 매체다. 하지만 그런 것 다 소용없다. 11월 18일부터는 그냥 무허가 매체다.

‘무허가’라는 관형어가 우리에게 일깨우는 느낌은 대개 일정하다. 무능, 무책임, 사기, 열등, 위험, 야매… 이런 느낌은 이 말과 함께 쓰여 등장하는 단어들에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무허가 건물, 무허가 의료인, 무허가 의약품, 무허가 식품, 무허가 식당, 무허가 조업 등이다.

무허가 판자촌 (사진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CC BY 3.0)
무허가 판자촌 (사진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CC BY 3.0)

따라서 등록이 취소되어 비등록 매체가 된다는 것은 법망에서 벗어난다는 실체적 의미 말고도,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사기성이 짙고 열등하고 위험한 야매 매체가 된다는 느낌을 준다. 멀쩡하던 [슬로우뉴스]는 11월 18일 하루를 전후로 하여 갑자기 그런 매체로 전락하게 된다.

이 매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매체 2천3백여 개도 똑같은 운명이었다.

돈이 없는 매체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신문법 개정안

1년 전인 2015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법령 개정안 하나를 내놓았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핵심은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그전에는 취재 및 편집 인력 3명의 명부만 제출하면 매체로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이 인력을 5명으로 늘렸고, 이들이 언론사에 고용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상시 고용 증명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2015년 11월 19일부터 시행되었으며, 이미 등록이 되어 있는 인터넷 매체에 대해서는 1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다. 그 기간이 끝나는 2016년 11월 18일까지 개정안의 내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매체는 등록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11월 19일 시행

시행령을 개정한 이유는? 문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너무 쉬운 인터넷 신문 등록제로 인해 매년 1천 개씩 늘어나던 인터넷 신문 급증 문제가 이번 신문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소되면, 경쟁 심화로 나타났던 선정성 및 유사 언론 문제 등이 해결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보도자료

[슬로우뉴스]는 이미 등록을 한 상태였으므로, 1년 유예 기간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그 1년 동안에 상시 인력 5명을 고용하고 이들에게 상당한 월급을 준다는 증명을 제출할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연 매출액이 최소 1억 원은 되어야 한다. 검은 손으로 수백억, 수천억을 떡 주무르듯 하는 인간들에게는 껌값일지 모르지만, 뜻만 높고 손은 텅 빈 [슬로우뉴스] 같은 매체에게는 어이없는 얘기다. 다른 수천 개 인터넷 매체도 마찬가지다. 하릴없이 등록이 취소되고 무허가 매체가 될 수밖에.

문체부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말하자면 새 개정안은 그 취지야 어떻든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매체를 만들어 공식으로 언론 활동을 하는 길을 원천 봉쇄하고,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경우는 망하게 하거나 무허가의 낙인을 찍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론을 탄압·억제해온 유구한 역사

신문은 중세 말에 정부 소식을 전하는 뉴스 레터 형식으로 시작됐다. 당시로서는 뉴 미디어였던 종이와 인쇄술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왕이나 권력층의 소식, 국정 홍보 사항 따위를 새 매체에 실을 때까지는 좋았다. 매체가 흔해지자 정객들이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부를 비판하고 자기네 정견을 쏟아내는 통로로 신문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언론이란 것이 권력을 지키고 체제를 유지하는 데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전제 정부들은 신문 탄압과 억제에 돌입했다. 강다짐으로 신문들을 폐간시키기도 했고, 자유주의 등쌀에 그렇게까지 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다양한 편법을 썼다. 종이 값을 대폭 올리거나 엄청난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영국에서는 신문 1부당 인지대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래서 ‘뉴스페이퍼’가 아니라 ‘뉴스행커칩’, 뉴스를 담은 손수건까지 등장했다. 종이로 발행하면 인지대를 물리므로, 면 소재 손수건에 뉴스를 인쇄해 발행한 것이다.

면 직물에 인쇄한 신문 ‘정치적 손수건’ (이미지 출처: Notabilia)
면 직물에 인쇄한 신문 ‘정치적 손수건’ (이미지 출처: Notabilia)

언론을 억누르고자 하는 정부의 시도는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독재 국가나 권위주의 체제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일은 대개 과거사가 되었다. 누구나 자기 뜻을 여러 사람에게 자유로이, 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는 더욱 그렇다. 현대 민주 국가에서 언론을 억압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물리거나 그 활동을 국가가 허가하고 승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종사자 숫자 따지는 신문법 개정안과 시행령은 위헌

설득력 없는 명분을 내세우며 종사자 숫자를 따져 언론 등록증을 내주려 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은 언론과 시민단체의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이 시행령이 언론을 둘러싼 3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 인터넷 언론을 억제하려는 정부
  2. 광고 수주 경쟁자를 줄이려는 기존 주류 언론
  3. 사이비 언론에 시달리는 재계

의도야 어쨌든 인터넷신문이 대량 폐간되는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분석은 인터넷신문 85%가 정리된다고 보았다.

이미지 출처: visualpun.ch, CC BY-SA 2.0
이미지 출처: visualpun.ch, CC BY-SA 2.0

황당한 일이 벌어지도록 가만히 둘 수는 없다. 개정안이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난 12월 28일, 신문법과 해당 시행령이 헌법에 규정된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는 헌법 소원이 제기되었다. 청구인은 인터넷신문 법인, 기자·임원 등 종사자, 독자, 인터넷 매체 창간을 준비하는 사람 등 모두 63명에 달했다.

이들은 청구서에서 시행령 등이 아래와 같은 위헌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실질적 허가제로 기능함에 따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언론 허가제 금지 원칙을 위배함
  • 자본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차별 및 고용인 숫자를 지정하지 않는 종이신문 등 타 매체들과 인터넷신문을 차별함
  • 사이비 언론 행위는 고용인이 많은 대형 매체가 더 많이 저지르는 게 현실
  • 진입 장벽을 높임으로써 사회적 소수자 등이 목소리를 낼 기회를 원천봉쇄함

헌법 제21조 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꼼수를 부리지 않으면 무허가 언론이 되는 현실

이미 인터넷신문으로 등록한 [슬로우뉴스]는 1년간의 유예 기간이 끝나고 등록 취소가 될 시기가 다가오자 대응 방법을 여러 가지로 모색했다. [슬로우뉴스] 편집위원이기도 한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세종포스트]에 실은 글 “’5명 미만’ 언론, 퇴출 피하는 세 가지 꼼수”에서 △ 상시고용 증명을 대체하는 방법 △ 월간지나 계간지로 재등록하는 방법 △ 큰 신문사의 지사나 지역판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슬로우뉴스]의 경우 어떤 방안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고 어이없는 기준을 적용해 인터넷 매체 활동에 족쇄를 채우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11월 19일 이후 등록이 취소된 ‘무허가 언론’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등록이 취소된다고 해서 당장 취재, 기사 발행 등 언론 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록을 거친 ‘정식 매체’가 누리는 언론 보장, 예컨대 관공서 출입 및 취재, 기자회견 참석, 보도자료 입수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비등록 야매 매체라는 낙인으로 인해 다른 활동에서도 불이익을 겪게 될 것이다.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체를 드러내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포털과의 협업 관계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는 점도 심각하다.

국가의 언론 활동 통제를 위헌 확인한 헌법재판소

신문법 시행령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슬로우뉴스] 모임이 있던 10월 27일 오후에 내려질 예정이었다. 두 날짜가 겹친 것은 오로지 우연이었다.

이날 저녁 [슬로우뉴스] 모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첫 번째 안건 “11월 18일 유예기간 끝나는 신문법 시행령 대책”은 논의 대상에서 삭제되었다. 모임 서너 시간 전에 나온 헌법재판소 결정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문제의 시행령이 헌법을 위배하였다는 결정을 내렸다. 편집위원들은 서로 축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사진 출처: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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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결정문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 등 위헌확인” 중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 언론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은 정보의 획득에서부터 뉴스와 의견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언론의 기능과 본질적으로 관련되는 모든 활동이다. 이런 측면에서 (5명 이상을 상시 고용할 것을 규정한) 고용조항과 (이러한 사실을 문서로 제출할 것을 규정한) 확인조항은 인터넷신문의 발행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으므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
  • 인터넷신문의 부정확한 보도로 인한 폐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덜 제약적인 방법들이 신문법, 언론중재법 등에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 인터넷신문이 거짓 보도나 부실한 보도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보도를 한다면 결국 독자로부터 외면 받아 퇴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의 특성상 독자들은 수동적으로 인터넷신문을 받아 읽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기사를 선택하여 읽고 판단하며 반응한다.
  • 인터넷신문 기사의 품질 저하 및 그로 인한 폐해가 인터넷신문의 취재 및 편집 인력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문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폐해는 주요 포털사이트의 검색에 의존하는 인터넷신문의 유통구조로 인한 것이므로, 인터넷신문이 포털사이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근원적인 방법이다.
  • 급변하는 인터넷 환경과 기술 발전, 매체의 다양화 및 신규 또는 대안 매체의 수요 등을 감안하더라도, 취재 및 편집 인력을 상시 일정 인원 이상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인터넷신문의 언론으로서의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 고용조항 및 확인조항은 소규모 인터넷신문이 언론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음에 비하여, 인터넷신문의 신뢰도 제고라는 입법목적의 효과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법익의 균형성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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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매체가 난립하여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판단대로, 이러한 상황은 독자의 선택으로 정리되어야 할 일이지, 국가가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어 정리할 일이 아니다. 사이비 언론이 문제라면, 이를 규제하는 기존 법안으로 처리하면 된다. 인터넷에만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 들이댈 이유가 없다.

검열

인터넷을 기회보다는 도전으로 생각하는 정부 권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규제하고 싶어한다. 공중파나 케이블 채널에 적용되는 방송법을 이른바 인터넷 방송에 적용하러 나서는 것처럼 인터넷의 특수성을 도외시한 규제를 가하러 나서기도 하고, 반대로 인터넷신문에만 적용되는 시행령 조문을 새로 제정하는 것처럼 인터넷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규제를 가하러 나서기도 한다. 그야말로 제 편한 대로다. 그 과정에서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나 기업 활동의 자유가 일상적으로 침해된다.

[슬로우뉴스]는 무허가 매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등록 매체로 전락하는 신세를 아슬아슬하게 면했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또 다른 장면에서 쉼 없이 벌어진다. 말문 틀어막기 좋아하는 정부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이 첩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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