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국 선언의 의미는 재미언론학회 1978년 창립 이래 최초로 재미 언론학자들이 시국 선언을 하게 되었을 정도로 현 사태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론학자로서 현 정권의 퇴진은 물론이거니와 언론 본연의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복원하여 올바른 역사의 사관으로 남길 바라는 강한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 나승안 (재미언론학회장, 켄터키대학교 교수)
재미 언론학자들이 ‘박근혜 퇴진’을 위해 한목소리로 마음을 더했다. 북미 지역에서 언론학이라는 단일 분야로서는 ‘사상 최초의 집단행동’이다.
재미 언론학자 시국 성명서(이하 ‘성명서’)의 진행에 참여한 김낙호(펜실베니아주립대, 필명: 캡콜드, capcold, 사진) 교수는 이번 성명서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사안의 엄중함이 물론 핵심 원인”이지만, “블로기즘으로 단련된 풀뿌리 추진력과 학회라는 학문 결속체의 조직력, 이 두 가지가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하 김낙호 교수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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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G 블로그로 유명한 한 교수께서 최초로 제안하고 진행하셨다.
– 성명서를 준비한 과정은?
시민 기자 활동경력이 상당한 강인규 교수가 문안 작성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문서 도구를 이용해 다양한 피드백을 얻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만 하루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재미언론학회(KACA)를 공식적으로 결합시켜서 대표성과 서명 확보 효율을 극대화했다.
– 단 하루 만에?
그건 아니다. 주요 참여자를 중심으로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전체적인 참여 범위와 일정 등을 세부적으로 조율했고,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만 사흘이다. 그리고 나흘째 보도자료를 완성해 언론사에 배포했다. 그래서 최초 제안에서 보도자료 배포까지 걸린 시간은 총 4일이다.
– 순발력 있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조직 위계에 의한 일방향의 경직성도 파할 수 있었고, 상향식 조율의 지난한 비효율도 피하면서, 사안의 시의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적절한 내용을 신속하게 모았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무엇보다 사태의 장본인인 청와대도 청와대지만, 정치권력과 한몸으로 결합한 재벌과 검찰, 그리고 뼈아프지만, 언론계의 책임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성명서에 “다수의 한국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공모자들”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언론학(정치 커뮤니케이션과 PR 등을 아우르는 제반 커뮤니케이션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번 시국에 더 자괴감을 느끼며 민감해야 할 이유다. 박근혜 정권이 처음부터 문제가 많이 보였음에도 이 정도까지 뒤로 전횡할 수 있던 것에 ‘부역 언론’의 기여도가 높고, 정권의 소통이 결여되고, 시민들끼리도 합리적 소통으로 민의를 올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결국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상에 드러낸 것도 언론이다.
그렇다. 최순실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낸 한겨레와 뉴스타파,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증거인 ‘최순실 PC(파일)’를 특종 보도한 JTBC 등 언론의 노력이 있었기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그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수 있었다.
–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사정이 궁금하다.
너무 산만해질 것 같아 성명서에는 넣을 수 없었지만, 한국에서 본 소통의 문제가 상당 부분 고스란히, 더 극악한 방식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탄생 과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이번 성명서의 의미를 자평한다면.
앞서 언급했듯 한국 미국 두 세계에서 동시에 착잡한 상황이 발생하고 그 파국의 배경에 무너진 공적 소통이 있다 보니,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언론학자라는 역할이 이런 성명서를 낼 수밖에 없도록 했다. 많은 재미 언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마음을 더했고, 그런 공감과 동의의 바탕에서 추진력과 조직력을 발휘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연구 대상으로도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재미언론학회(KACA)를 중심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연구 행사 추진도 논의하기 시작했다.
– 끝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 사태다. 시민사회와 학계가 따로 일 수 없다. 대한민국을 바로잡으려는 시민에게 학계가 연대를 표시하는 방법은 각자의 학문 분야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문제의식을 담아 표현하고, 이를 시민사회와 공유하는 일이다. 다른 전문 분야에서도 각자의 전문적 관심사에서 바라보는 문제의식으로 더 많이 연대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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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언론학자 시국 성명서
우리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측근 소수와 공유하며 전횡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민주국가’라고 믿어왔던 조국의 암담한 모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측근에 대한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를 방해하며 비호해왔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소위 ‘비선실세’들이 저지른 범죄의 공모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된 재단의 출연금을 늘리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기업 총수들을 만나 수백 억의 돈을 요구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주범이고 최순실 일행이 공범’이라는 지적은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연설문은 물론, 외교와 안보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국정 자료를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 연설은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통치행위의 가장 중요한 형태입니다. 이것을 사적 통로로 유출했다는 것은 민주적 사회운영 원리에 대한 중대한 위반입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라고 인정했고,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더불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과 이후 대통령이 취한 첫 조치는 검찰의 조사통보에 불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부산의 ‘엘시티 비리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게 “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명했습니다. 그가 이 지시를 내린 날은, 검찰이 대통령을 조사하기로 통보한 날이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있어야 할 사람이 조사를 지시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 모든 사태는 대통령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 최소한의 판단 능력도, 법의식도, 윤리적 양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에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해 대대적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2014년에 300명 넘는 국민들 목숨이 물속에서 꺼져가고 있을 때 대통령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2015년에는 위헌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강행했습니다. 그런 뒤 올해 터진 것이 권력 사유화와 전횡 사건입니다. 하나하나가 탄핵 사유에 해당할 심각한 실정과 범죄 행위입니다.
우리들은 언론학자로서, 날로 악화하는 한국의 암울한 언론 상황 또한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6년 ‘국경없는기자회(RSF)’는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를 180개 국가 가운데 70위로 낮춰 평가했습니다. 이는 앞의 언론 자유 감시 단체가 한국을 평가하기 시작한 이래 최하위 성적으로, 민주화 이후 우리의 언론상황이 최악에 도달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의 언론 자유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우연도, 놀랄 일도 아닙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언론을 길들여 왔는지 보여주는 문건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이 나서서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 제소, 고소와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불이익을 주고, 호의적 언론에는 포상을 주도록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현재 많은 언론 매체가 ‘비선실세’ 의혹을 파헤치고 있지만, 모든 언론이 제대로 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언론들은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칭찬하고 허물을 덮어주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이들이 현 정부의 유효기간이 끝나가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새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을 검증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수의 한국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공모자들입니다.
현재 국민들은 수백만 개의 촛불을 든 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정 공백’이나 ‘사회 혼란’이라는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고 하지만, 무자격자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만큼 혼란스럽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게 내버려 두는 것만큼 나쁜 선례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하야하라.
- 하나, 수사당국은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을 남김없이 수사하고 처벌하라.
- 하나, 야당과 여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라.
- 하나,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연의 사명을 수행해야 하며, 정치권은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수행하라.
재미 언론학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 세계에 고발함으로써 한국에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워 온 대한민국 국민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2016. 11.20
북미지역 언론학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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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명인 180인 명단
(가나다순 / 한글성명, 영문대학소속 / 2016.11.21일 갱신)
강인규(Penn State University, Behrend College), 강지연 (University of Iowa), 강진애(East Carolina University), 고혜승(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곽노진(University of Michigan), 곽영선 (SUNY at Buffalo), 권경희(Arizona State University), 기연정 (University of Alabama), 김 영(Marquette University), 김경석 (Towson University), 김광석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김기태 (University of Buffalo), 김낙호(Penn State University Harrisburg), 김병욱 (University of Iowa), 김보경(Rowan University), 김보형(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김성수 (University of Georgia), 김소정(High Point University), 김수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김수진 (Louisiana State University), 김수형 (Temple University), 김승수 (University of Colorado-Boulder), 김여진(Central Connecticut State University), 김연수(James Madison University), 김영수(University of Kentucky), 김영지(MIT), 김원경 (Michigan State University), 김유승(DePaul University), 김유정(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김은실 (University of Florida), 김은영(University of Alabama), 김은지(University of Pennsylvania), 김정아(University of North Florida), 김주영 (University of Georgia), 김주옥(Texas A&M International University), 김지수(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김지영 (University of Hawaii), 김지원(Syracuse University), 김지원(Texas A&M International University), 김진숙(Michigan State University), 김진숙(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김태민 (Fayetteville State University), 김태현 (California State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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