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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수령 인터뷰 15(상): 건축계, 서로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 (김인철 편)

리수령 인터뷰는 리승환 특유의 직설적인 질문과 거침없는 파격으로 다양한 전문가/관계자와 함께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칩니다. 이번 회에선 대한민국의 토건, 건축, 아파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한민국 건축계의 최고봉에 서 계신 김인철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편집자)

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퇴근 후 술먹기, 술먹고 정신줄 놓기, 정신줄 놓고 다음 날 지각하기, 지각하고서는 출근 카드 찍지 않기 등 다양한 취미를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김인철 :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건축가. 설계사무소 아르키움의 대표이자 전 중앙대 교수. 중앙대 도서관 리모델링호수로 가는 집어반하이브파주 웅진씽크빅김옥길 기념관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계속해서 남기고 있다. 저서로는 공간열기가 있다. 점잖게 생기신 외모와 달리, 인터뷰를 접하면 알겠지만 독설가를 넘은 악설가.

대한민국 호화청사 이야기가 시끄럽다. 이상한 브랜드 이름의 아파트가 복제품처럼 서울의 모습을 더럽힌다. 4대강과 디자인 서울은 죽도록 욕을 먹고 있다. 이상한 광경이다. 모두가 욕하는데 이런 문제는 전혀 멈추지 않고, 점점 막 나가고 있다. 그래서 건축계의 대가 김인철 교수님을 찾아갔다.

토요일인데도 출근해서 직원들을 굴리며 줄담배를 피우던 그는 4시간 넘게 대한민국 건축계에 대해 애정이 넘치는 독설을 퍼부었다. 건축과 도시를,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연과 경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이 글이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전문적 내용이 은근 많아서 건축 전공 광전사 님께서 도움과 교열을 봐주셨다.

건축가 김인철, 건축가를 말하다

리 : 안녕하세요. 우선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대부분 사람을 모를 거니까(…)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철 : 일단 직업으로는 건축가지.

리 : 보통 설계사라고 하지 않나요?
철 : 남들은 안 불러주는데 우리가 자칭해. 남들은 설계사,건축사… 사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뭐라고 불려야 할지 애매하게 여겨. 왜냐면 건축에 대한 개념이 없으니까. 우리가 건축가라 자칭하는 것은 아무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으니까, 우리끼리는 건축가라고 하는 거지.

건축을 단순히 건물 만드는 행위, 즉 ‘건설’이라 생각하면 단순히 집을 지어주는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건물, 하드웨어는 건축의 결과물이야. 그 전까지 어떤 건물을 어떻게 만들지는 소프트웨어고. 바로 이 소프트웨어, 건물을 만드는 생각을 만드는 사람이 건축가야.

리 : 왜 굳이 다른 말이 아닌 ‘건축가’라는 말을 쓰는 겁니까?
철 : 보통 화가나 음악가는 퉁쳐서 ‘아티스트(artist)’라는 말을 쓰잖아. 그런데 아트(art)라는 말은 원래 지금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기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서 유래했거든. 그래서 좀 혼용해서 쓰이고 있는데 사실 장인하고 예술가는 달라. ‘장인(artision)’은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예술가(artist)야. 그러니까 예술가는 기술은 기본적으로 익힌 사람이지. 박지성이 골 넣는 건 트래핑하고 드리블하는 기본기가 있으니까 가능한 거잖아.

건축도 마찬가지야. 단순히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냉난방 잘되게 튼튼하고 편리한 건물만 짓는다면 그건 공학이야. 이 공학을 바탕으로 만든 사람의 생각을 넣을 수 있으면 이건 창작이지. 그 기술을 멋스럽게 표현하면 그건 예술인 거고. 집 만드는 기술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으면 예술이 되는 건데, 이런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家)’라는 호칭을 넣어야 한다고 봐.

리 : 그렇다면 설계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예술가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철 : 그렇지는 않아. 학교에서 대학교에서 건축공부를 하면 길은 둘이라고 자주 이야기하거든. 설계 기술자로 가는 길이 있고, 설계 기술자의 길을 가다가 어느 경지에 도달해서 자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사람은 건축가가 되는 거지. 아닌 사람은 그냥 건축 기술자야. 자네도 이런 걸 헷갈려 하는 이유가 뭐냐면… 기술자와 건축가를 구분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야. 일반인들이 구성하고 있는 게 사회인데 그 사회가 건축을 어떤 창작 행위로 보는 게 아니라 부동산 활동, 경제 활동, 건설 활동, 그리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술적인 활동으로만 보니까 뭔가가 더 들어간다는 생각을 못하는 거지.

리 : 그 선을 긋기가 참 애매한 것 같습니다.
철 : 대한민국에만도 700만채의 건물이 있어. 그 집들이 다 건축가가 지은 게 아니야. 부동산 업자, 동네 아줌마, 목수 아저씨가 지은 거지. 그렇게 지은 결과를 가지고 건축이냐, 건물이냐… 좀 진부하긴 하지만 이를 구분하는 건 지어진 집, 건물, 결과물이 ‘그 건물을 이용하거나 그 건물을 보는 사람들에게 감성의 자극을 주느냐, 못 주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 감동을 만들 수 있으면 건축가라는 거지.

‘나는 가수다’ 보면 사람들 몸이 찌릿찌릿 거리면서 박수 치잖아? 건물 보고 ‘나도 만들겠네.’ 라는 생각을 주는 건 감동이 없는 거야. 들어가니 기분 좋고, 누가 어떻게 만들었지 궁금하고, 뭔가 다른 게 느껴진다면 그건 감동을 준 거야. 예술이라고 하는 게 기술을 구사하는 것만으로 끝나면 기술이지만, 그 기술이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남들에게 내 감각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게 예술이라는 거지.

나가수 감동의 한 컷

그가 건축계에 뛰어들기까지

리 : 어쩌다가 기능인과 예술인이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십니까?
철 : 우리 역사가 식민지 지나고 전쟁하고… 가난한 상황에서 그저 ‘잘살아보세’ 정신으로 다들 정신없이 지냈잖아. 여유 있게 자기 공간을 가진다는 생각을 못했어. 그러다가 80년대부터는 아파트 붐이 불어서 서로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를 따지던 그런 시기를 지나왔어. 그러면서 사람들 머리 속의 건축은 프리미엄 얼마가 붙느냐…이게 주제가 되어버린 거지.

리 : 어쩌다가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까?
철 : 숙명… 그런 건 아니고. -_- ;;; 하다보니까 이길로 왔어. 하다 보니까… 원래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내가 반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려서, 화가가 되어야 하나 생각을 했는데… 그 때만해도 화가가 된다고 하면, 동네 베레모 콧수염에 꽁초 주워 피는 거지로 봤거든. 6남매 장남인 내가 그런 비루먹은 화가가 된다는 건 조선민으로 용납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 계속 미술반 활동을 했는데 건축과 간 선배가 나를 꼬시더라고. 나를 뭐라고 꼬셨냐면… “순수미술보다는 응용미술 쪽으로 해야지. 이런 건 종이에다 붓으로 깔짝깔짝대는 거잖아. 남자가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대지 위에 작품을 세우는 게 건축인데, 뭘 그렇게 깔짝대냐. 가느다란 붓으로 그림 그리고 그러냐.” 이러는 거야. 그 말 들으니까 ‘아, 괜찮겠다. 부모님께도 건축한다고 그러면 괜찮다고 할 거고…’ 그래서 선택한 게 건축이었어.

리 : 홍대 건축과를 들어간 걸 볼 때 공부를 잘하셨나 봐요?
철 : 그건 좀 다른데…우리 때 미대, 음대 가는 학생들은 수학 시험을 안 보고 들어갔어. 국어, 영어, 국사, 실기였거든.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학책 친구들 다 주고 공부를 안했어. 원래 미대 가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다른 건축과는 다 공대로 되어 있었거든. 수학 안 보는 건축과는 홍대가 유일했어. 그래서 홍대로 가게 된 거지. 정작 들어오니까 건축은 수학 못 하면 안 돼서 좀 골치 아팠지만.

리 : 친구분들도 다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철 :졸업할 때 동기가 60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은 교수가 됐고, 또 한두명이 설계건축사 자격증 따서 소장이 됐는데 아마 건축가는 아닐 거야. 건축가라 떠들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지. 나머지는 다 설계 기술자 가거나 전혀 다른 영역으로 가버렸어.

리 : 어떻게 혼자만 건축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철 : 재밌어서 그런 것 같아. 뭐든 그리면 누가 만들어준다는 게 재미있었다. 나보고 직접 만들라면 귀찮아서 못했을 거야. 조각, 그림은 직접 해야 하잖아. 노래도 직접 불러야 하고, 연극도 직접 해야 하고. 근데 우리는 그냥 설계도면 끄적거리면 지어주거든. 내가 선천적으로 좀 게으른 인간이야. 몸으로 하는 건 못 해. 어딜 가든 춤같은 거 못 춰. 체질적으로 안 돼. 머리 굴리는 것만 하는 건데… 뭔가 내가 생각을 만들면 누군가가 지어주고, 만들어준다는 거. 그런 게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지.

리 : 몸 쓰는 거 싫어한다지만, 젊었을 때 펜싱도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철 : 고등학교 때… 펜싱은… 워낙 내가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지라 이렇게 되면 몸치로 남는 게 아닌가 생각으로, 뭔가 운동도 하나 해야지 해서 하다가… -_-; 고등학교 때 별의별 운동부 다 있었는데, 하러 가봐야 먼저한 놈들에게 배워야 하는데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아무도 안하는 걸 해야지 하는 마음에 선택했어.

내 작업하는 스타일하고도 관계가 있는 것 같은게, 난 남이 하는 거 별로 하고싶지 않거든. 뒤집어서 일종의 역발상같은 걸 하게 되는 이유가 남이 했던 걸 모방, 반복하는 걸 싫어해서 그래. 대학교 때는 군대 갔다가 복학 하니까 학교에 펜싱부가 생겨서 가끔 사범 노릇하고 그랬어. 졸업하고 난 뒤 먹고 사는 거 바빠서 전혀 운동할 생각은 못했고…

리 : 승부욕이 엄청난 것 같습니다.
철 : 나는 바둑도 둘 줄 모르고, 장기도 둘 줄 몰라. 보통 장기나 바둑 배우는 건 어릴 때 집안에서 높은 사람들이 알려주는 거잖아. 그런데 내가 배울 시기 놓치고 보니 이미 친구들이 다 하고 있야. 거기 끼이니까 내가 맨날 져. -_-;;; 그래서 그냥 안 했지. 좀 자존심, 자만심 같은 그런 거 때문에, 어디 가면 내가 최고여야지, 2등은 싫어.

이 말을 남기고 선동렬은 바로 2위를 한다(…)

한국 건축에 대한 관심과 4.3 그룹의 탄생

리 : 집요할 정도로 한국 건축의 전통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었는데,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철 :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 우선 책에도 썼지만 내가 살던 곳이 진해였어. 진해는 일본이 진해만을 군항으로 만들며 개발된 신도시야. 국내 최초이자 진남포와 함께 둘뿐인 계획도시지. 가운데 로터리가 있는데, 이거 파리의 도시계획을 베낀 거거든. 난 거기가 한국적인 고향인 줄만 알고 살았어. 내가 살던 집은 그 때 해군 고급 장교들 위한 요정으로 쓰던 집을 적산가옥으로 조상님들이 받아서 쓴 집이었거든.

리 : 집이 요정을 하셨습니까. -_-;;;
철 : 요정을 한 건 아니고 -_-;;;그냥 산 거야. 여튼 내 방이 2층이었는데, 창문으로 2층 벚꽃이 막 들어와. 집안 구조도 그렇고 정원도 그렇고 일본의 드라마같은 곳에서 살았어. 그렇게 유년기 지나고 부산에 갔어. 당시 광복동, 남포동은 일본인이 많이 살았거든. 그래서 건물 분위기, 거리 분위기가 일본과 유사했어.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지.

그렇게 대학교 졸업하고 도제로 들어가서 3년쯤 됐을 때 을지로 롯데호텔을 짓게 됐어. 그 때 일본인이 와서 한일합작설계를 했거든. 그래서 7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출장으로 자주 왔다갔다 했는데 나고야에 제품 검사 하러 갔다가 구라시키(倉敷市)라는 도시에 관광하러 갔어. 여기가 메이지 유신하고 최초로 유럽식 건물을 짓기 시작한 일본의 근대건축이 시작된 동네야.

대충 이런 삘

리 : 그래서 요정을 가셨습니까?
철 :……

리 : 죄송합니다. 하던 말씀 계속하십시오.
철 :그 때 받은 쇼크는 지금도 생생해. 구라시키의 거리가 전혀 낯설지가 않은 거야.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어. 그게 데자뷰인가 그럴 정도였으니. 분명 처음 오는 곳인데 왜 나한테 친숙하게 다가올까? 그게 진해가 일본이 만들어서 그런 거야. 개천, 벚꽃, 돌 깐 것, 우체국… 다 똑같은 거야. 나에게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내 땅에 있지 않고, 남에 땅에 있었던 거야. 정말 쇼크였지. 민현식 교수는 마산 사람인데, 이 양반도 같은 이야기를 했어. 마산도 일본이 만든 도시거든.

거기서 마치 외국에 입양된 애가 부모 찾아가듯, 내 아이덴티티는 뭔지 생각하게 됐어. 그래서 전통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 정작 내 것은 모르고 지냈으니까. 사실 진해에서도 계획도시 한 발 벗어나가면 한옥, 초가집 있었어. 거기 친구집 놀러가면 내가 살던 집이랑 전혀 다른 거무튀튀하고 시꺼먼 그런 데였는데, 그게 내 거란 말이지… 이런 생각을 했지.

리 : 그래서 바로 본격적으로 파고든 겁니까?
철 : 그건 아니야. 내가 일전에 일본의 건축전문전시장에서 한국 건축가를 40대 건축가를 3명 골라서 한국 건축전을 기획했어.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을 대표해서 건축한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거기 뽑혀 버린 거야. 그쪽에서 여러 관람객과 이야기하는데 그 사람들이 한결같이 “니 건축이 뭐냐?” “니 건축의 시작은 어디 있냐?”고 물었어.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한국을 베이스로 하는 건축을 할 거라 생각한 거지.

그런데 내가 ‘한국건축이 이런 거다, 그래서 이렇게 작업한 거다.’라고 설명할 수 없는 거야. 내 건축에서 한국적 냄새가 나는데, 그 배경이 뭐냐고 묻는데도 대답할 수가 없었어. 그냥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냄새가 나겠지… 이런수준이었던 거야. 내가 몰라도 내 땅을 너무 모른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70년대 말 데자뷔의 경험과 80년대 말 내 건축의 정체를 물어오는 질문들을 듣고… 이제는 한국 건축에 대해 연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거지.

리 : 10년 넘어 연구는 안하고… -_-; 뭔가 인터벌이 깁니다?
철 :왜 그렇게 인터벌이 기냐고 하면… 사실 그 동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연구실 들어앉아서 어쩌고 할 여유라는 게 전혀 없었어. 그 시기는 다들 정말 절박하게 살았으니까… 그런데 뜬금 없이 ‘내가 하는 게 뭐지?’라는 질문에 부딪히니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다 혼자서는 안되겠다… 공부도 끝나고 몇십년 됐으니 공감대 가진 건축하는 친구들끼리 4.3그룹을 만들었어. 소위 말하는 스터디 그룹같은 거였지. 서로에 대한 크리틱도 하고 해외의 좋은 건축 많이 보러 다녔지.

리 : 그래서 뭔가 변화가 생겼습니까?
철 : 르 꼬르뷔제라 하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가 있어. 인도에 꼬르뷔제가 설계한 건물이 몇 개 있어서 인도에 갔는데, 생각이 확 바뀌었어. 꼬르뷔제는 인도라는 공간에 비교하면 지나가는 돌멩이에 지나지 않는 거야. 인도라는 어마어마한… 인도의 역사, 풍토, 종교가 주는 무게에 비하면 꼬르뷔제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거지. 그 다음부터는 여행의 목적지가 완전히 바뀌었어. 잉카, 모로코 등 소위 원초적이고 원시적인(primitive) 곳들로 갔어.

리 : 갑자기 웬 정글의 법칙 촬영입니까(…)
철 : 전통에 대한 관심 가지고 한국건축 답사 다니면서도 맥을 집지 못하다가 비로소 깨달은 거지. 건축은 결국 그 땅에서 시작하는 거고, 그 땅의 특별함이 건축에 반영되는 거야. 그래서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성질을 읽어내지 못하면 전통건축을 읽어낼 수가 없어.

전통건축 엄청 공부하고, 100명 넘게 박사학위 받았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만들지 못한 이유가 뭘까? 우리 전통 건축을 서양의 건축방법론으로 분석하니까 안되는 거야. 분석 잣대가 달라야 해. 그렇게 원초적 것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 건축도 원초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 거지. 서양의 풍토와 역사와 그 속에서 만들어진 방법론을 풍토가 전혀 다른 곳에서 받아들이는 건 넌센스야. 남자를 여자의 신체구조로 분석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지.

리 : 그렇게 결성된 4.3 그룹은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철 : 전시도 하고 이벤트도 하고… 순수한 동호회라기에는 뭐하지만 학연, 지연 떠난 건축 전문집단이 처음 생겼으니 나름 의미는 있었지. 좀 아쉬운 것은 4.3 그룹이 다들 같은 고민을 했지만, 그 사람들이 뭔가 결론을 내지는 못하고 흐지부지 끝났어.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전통논쟁은 계속 있었는데, 이걸 정리한 게 메타볼리스트(metabolist)라는 그룹이거든. 아라타 이소자키(磯崎新), 쿠로카와 키쇼(黒川紀章) 같은 사람들이 메타볼리즘을 선언해. 건축과 도시는 무기체가 아닌 유기체다라는 식의 정리를 하면서 전통논쟁을 끝내버린 거지. 그런데 우리, 4.3 그룹은 그런 결과물을 얻지 못했어.

메타볼리스트들의 작품은 여기를 참조

리 : 결국 일본 아저씨들보다 능력이 딸린 거군요(…)
철 : 우리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계가 뭐냐면 시간의 누적, 즉 시간의 층이 얇다는 거야. 아까도 건축가라 했지만 캥기는 게 진짜 내가 건축가일까 싶을 때가 있어. 메타볼리스트 중 쿠로카와 키쇼는 아버지, 할아버지도 건축가였어. 3대째에 이르러서 쿠로카와 키쇼가 나온 거야. 어떤 일가를 이룬다는 게, 당대에서 이뤄지는 건 천재가 아닌 한 불가능해. 아버지 방, 할아버지 방에 쌓인 온갖 건축 서적들이 있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건축을 한 놈하고, 대학 입학 때까지 아무 것도 모르다가 먹고 살기 위해 나이 스물이 넘어서 눈 뜨고 공부한 놈하고 어찌 게임을 하나…

그런 면에서 메타볼리스트들과 달리 4.3 그룹 멤버는 다 나같이 어쩌다 건축하게 됐고, 하다보니 잘할 수 있을까 싶어 같이 모여서 고민해보자 했던 그룹이야. 그런 사람들이 결론 내기까지는… 시간의 백업이 안 되었지 않나 싶어. 그래서 흐지부지 되고, 이제 다들 나이도 50~60넘어가고…어쨌든 4.3 그룹 활동을 한 건 그런 의미는 있을 거야. 건축이 단순히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의 산물이라 떠들 수 있었다는 것이, 김원, 김석철 등 대표급 되는 선배들에게도 굉장히 자극이 될 수 있었으니까. 학생들에게도 ‘건축을 저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이런 게 의미있지 않나 싶고.

리 : 다들 성공하셨습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철 : 4.3 그룹 활동을 열 몇 명이 했는데 승효상이 젤 성공했지. 나머지 중에서 3-4명은 건축을 접었고, 시골서 그림 그리는 친구, 대학 교수 된 친구… 이래저래 다양해. 그렇긴 한데 나름대로 다 자기 길들 가고 있어.

리 : 나름 열심히 연구했을텐데 의외로 건축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의아합니다.
철 : 우리가 머리 싸매고 발로 뛰며 연구할 때 굉장히 많은 사람이 미국, 유학,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 이 양반들이 우리가 처음 보는 책들 막 들고 들어오더라고. 그러다보니 일반 대중들도좀 헷갈릴 것 같아. ‘건축이 저런 거야?’, ‘저게 좋은 건축인가?’ 하며 말이지.그런데 건축이란 어떤 것이라는 보편성, 보편적 가치를 만들지 못하고 외국 거를 무비판적으로 막 갖고 들어 오는 거야. 실제 나라 경기 좋아지니까 외국 건축가들이 와서 짓기도 하고, 어떨 때는 거의 마스터베이션 수준의 집도 지어주고… 이런 현상이 생겨서 점점 건축에 대한 보편적 동의를 만들지 못하고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지.

건축계, 비평이 없는 문화가 문제다

리 : 그런데 동의가 없다는 건 선생님이 보는 한국 건축도 학계에서 정립된 건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철 : 한국 건축에 대해 생각의 각도를 좀 바꿨으면 하는 게 뭐냐면… 내가 말하는 한국 건축은 내가 본 한국 건축이야. 이건 누구에게 동의를 얻을 생각도 없고, 누구에게 한국 건축은 이렇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어. 그냥 내가 그냥 그렇게 본 거야. 한국 건축에 대해 많은 담론이 있었고 연구 결과가 나오고 했는데도, 지금까지 정립된 건 없어. 다 자기가 대표선수라고만 떠들고, 아무도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건 없어.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아무도 비평이 없어. 예로 대한민국 건축역사학회라고 건축을 역사로 보는 학회가 있어. 거기서도 반응이 없는 거야. 읽어봤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읽어본 놈이 있다면 김인철이가 한국의 건물 배치는 이렇다 하는데, 틀렸다거나 맞다거나 이런 반응이 있어야 하지 않아? 나도 교수였고 사무실도 있는데, 왜 그런 건지 이해가 안 돼. 내가 하는 이야기가 역사학자들 입장에서는 아마추어가 떠드는 이야기라서 무시한 건지, 아니면 한국건축 전공도 아닌 현대 건축하는 김인철이 짚어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리 : 서로를 까지 않는 아름다운 건축계로군요!
철 : 지금까지 나보고 책 잘못 썼다는 놈이 없어. 이게 문제야. 크리틱이 없어. 건축 전반이 다 이래. 이게 건축계 세상이 아직 좁아서 그런데… 비판과 비평을 구분을 못해. 잡지사에 비평이 실릴 때 보통 친한 사람들로 써. 그런데 내 후배나 비평할만한 놈에게 부탁을 하면 걔들 쓰는 게 비판적으로 나오겠어? 하나마나한 주례사나 나오지. 바닥이 좁다보면 부딪힐 거고, 뭐라 잘못 까면 어쩌냐는 생각에 함부로 못 쓰는 거지.

근데 자꾸 서로 까야 돼. 그걸 일반인에게 보여줘서 건축이 그리 단순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지. 그런데 다 점잖게 굴어. 뒤에서는 호박씨 까면서. 욕하고 로비하고 남의 일 뺏어가고 이런 놈들이 점잖은 척하는 거 보면 기도 안 차지.

리 : 요즘 한겨레 구본준 기자가 비평을 종종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철 : 요즘 구본준이가 비평하겠다고 나서는데 난 그런 친구가 좋아. 학연도 관계 없고 안면몰수하고 그러는 거니까. 내 거 가지고 까도 좋고. 나라고 항상 잘하는 건 아니니까.

리 : 말 나온 김에 구본준 씨 비평에 대해서 평하자면.
철 : 음… 우선 구본준이가 나한테 좀 삐쳤을 거야. 기사를 조선, 중앙에 주고 자기한테는 안 주니까. 근데 내가 뭐 정치색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야. 한겨레는 독자가 한정돼있으니. 이왕이면 많이 보는 데 내야지.

댄디한 남자로 연출한 구본준 기자. 블로그는 여기.

리 : 저기요… 그거 물은 게 아니거든요. -_-;;;
철 : 구본준이가 정말 건축에 관심이 많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야. 나랑 여행도 많이 했고, 건축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러는데… 아쉬운 거는 실무 경험이 없고 건축 전공이 아니니까 아직도 좀 얇아. 좀 더 깊이를 갖는, 소위 말하는 현상을 보는 게 아니라 본질까지 꿰뚫을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내공이 좀 부족해. 겉으로 만들어진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니… 그래도 구본준 기자 같은 사람들이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 이 바닥이 다들 자부심만 넘치고 비평을 안 하니까 주목을 끌 수가 없거든. 이슈 메이커가 좀 나와야 해.

리 : 비평이 존재할 때 주목도 뿐 아니라 더 나은 건축물이 만들어진다고 보십니까?
철 : 당연하지. 비평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그거야. 이번에 일본 갔을 때 a+u라는 잡지 편집장과 이야기하다가 그런 생각을 했어. 그 사람이 잡지 편집자 입장에서, 좋은 건축물을 소개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로서의 역할이야. 좀 더 본질적인 비평의 개념은 건축가로 하여금 함부로 못하게 하는 거지.

건축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100% 못해. 돈의 문제, 행정제도의 문제, 오너의 돈 문제 등 각종 문제가 있거든. 그래서 건축가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구현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자기들 입장에서 편한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해. 그래서 건축가는부단한 타협의 요구를 받아. 공간을 어찌 바꾸자, 재료를 뭐 쓰자… 그런 요구들과 타협하지 못하게 하는 게 비평가의 역할이야. 설계비 받으려면 저 사람 시키는대로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타협하면 비평가들이 뭐라 씹지 않을까?’ 이런 생각,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 가지게 만드는 게 비평가야.

리 : 하지만 한국은 그런 게 없다?
철 : 우리가 겁내는, 누군가의 시점을 의식하게 하는 대상이 없어. 비평가가 비평을 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그 돈 들여서 호화청사같은 거나 만드는 거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턴키 방식에서는 호화롭게 설계하지 않으면 당선이 안 돼. 눈에 번쩍 뛰는 걸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과장할 수밖에 없거든.

예로 내가 설계한 어반하이브 같은 거 내밀면 무조건 떨어져. 유리 잔뜩 붙고 삐까뻔쩍하고 그래야 붙어. 어반하이브는 지어졌으니까 아는 거지, 도면이나 모형으로 보면 다들 긴가민가해. 건축이 가진 치명적 약점은 그거야. 어떤 아이디어가 완공되기 전까지 건축가의 머리 속에만 있거든.

리 : 3D 모델링이 있지 않습니까?
철 : 건축은 지어진 후에 사람이 들어가는 공간이야. 사람 눈높이로 실제 모형 상상하려면 3D로는 안돼.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은 한계가 있어. 실제로 지어놓고 가서 봐야 알아. 예로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봐. 거기 가면 신이 존재하는 공간이라 사람들은 느끼지? 그런데 그거 축소해서 만든 미니어처에 어디 신이 있겠어? 있을 수가 없어. 어반하이브야 저질러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때 저렇게 집을 지을 수 있구나 하는데… 실제로 구청에 심의 들어갔을 때 심의위원들이 다들 긴가민가했어.

리 : 그런데 용케도 통과가 됐습니다?
철 : 심의위원들이 다 후배라서 -_-;;;

리 : 학벌을 까더니 벌써부터 학벌이 나옵니다(…)
철 : ……

건축은 완성되기 전까지 설계자만이 그 모습을 알 수 있다

리 : 자… 그러면 설계를 보면 사람들이 완성된 모습을 모른다에 대한 해설을…
철 : 네팔 방송국도 3D 만들고 도면 그리고 하지만, 내 밑에서 일하는 조준형이까지도 내 생각하고 달라. 이 건물 완성될 때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는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거야. 현장에서 하라고 그러면 재료가 없다, 기능공이 없다면서 난리야. 별의별 항의가 다 들어와. 원불교 캄보디아 교당을 가지고 예를 들어 줄게.

리 : ……
철 : 멋있지?

리 : ……
철 : 멋있잖아?

리 : 네…
철 : 여기 보면 벽돌이 구멍이 뚫려 있잖아? 인도차이나반도는 해저가 융기한 땅이라서 바닥이 진흙, 뻘이야. 우리는 집짓는 개념이 ‘튼튼하게’가 우선이야. 얘네는 그보다 경량화가 중요해. 가볍게 짓지 않으면 땅밑으로 내려가거든. 우리는 벽돌을 1500도 정도로 굽는데, 얘네는 700-800 도 정도로 구워서 경량화시켜. 거야. 요걸 잘 이용하면 뭔가 디자인이 되겠다 생각으로 공사를 했지. 아래 벽돌을 봐봐.

리 : 오오…
철 : 이 벽돌을 이렇게 쌓아라 했더니, 시공자가 못하겠대. 자신들의 방법에 어긋날 뿐 아니라 삐뚤삐뚤하게 쌓으면 뭐가 안 맞고… 그래서 그냥 일단 하라고 했어. 이렇게 비뚤어지게 쌓고 구멍을 메우지 않고 고대로 마감할 거라 했어. 그랬더니 원불교 교무들이 결사반대야. 모기, 도마뱀 들어오고 바깥 자동차 소리 들어온다고.

리 : 굉장히 합리적인 이야기군요. 아무리 그래도 예불 드리는데 도마뱀이 나타나면(…)
철 : 그래서 내가 물었지. 당신 사는 캄보디아식 현대주택에 샤시 달고 모기장, 방충망 치고 사는데 모기 안 들어오냐고. 어차피 모기, 도마뱀 다 들어와. 또 더 근본적인 거, 이 교당 짓는 게 당신 편안하게 살려고 짓는 거야, 캄보디아인들 편하라고 짓는 거야? 캄보디아 사람들 위해서 짓는 거잖아. 그러면 자기들이 쓰던 재료, 방법론으로 만든 건축으로 들어가면 편하게, 친숙하게 느끼겠지. 그러면 교세 확장에도 도움이 될 거고.

그래서 이걸로 갔어. 결과적으로 이런 패턴이 되도록… 공사하던 과정… 우리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던 60-70년대 공법으로 지었어. 콘크리트를 질통으로 부어넣고… 이렇게 쌓다가 보면 줄이 안 맞으면 또 헐고 새로 쌓고… 이렇게 쌓아가는 과정에서야 건축가가 원한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되.

리 : 반응은 어떻던가요?
철 : 바깥 온도가 37-38도였는데 아무도 덥다는 사람이 없어. 통풍이 잘되니까. 이 건물 논리는 간단해. 종교공간을 만들어야지. 종교공간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잖아? 캄보디아에서 사람들이 어디 모이겠어? 열대지방이니까 그늘만 있으면 모여.

그래서 커다란 그늘만 하나 만들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지. 콘크리트 지붕에 대나무 발 씌웠어. 여기 위에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만 네 개 달리고 에어콘도 없어. 에어콘 틀고 2중창 쓰는 것과 열어놓고 선풍기만 돌리는 것과의 차이라는 거지. 요즘 친환경이라고 하면서 에어컨 짱짱하게 돌리던데 그게 무슨 친환경이야?

리 : 아무튼 그리 복잡한 아이디어는 아닌데, 어찌 아무도 못 알아먹었습니까?
철 : 사실 여기 사람들 쓰는 그대로 벽돌을 쓰려고 한 것 뿐이야. 힘은 콘크리트가 해결해 주고. 우리처럼 벽돌이 힘 받게 안하고, 그냥 칸막이로만 쓰고. 밤이 되면 빛이 새어나오는 모양새까지 고려한 거지… 난 그런 생각 하고 한건데.. 아무리 설명해봐야 실제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누가 “와~!”하고 좋다고 생각하겠어… 이건 건축가 머리 속에만 있는 거야. 이런 결과가 될 거다라고, 실제로 보여주기 전까지 아무도 내 말 안 믿어.

리 : 굳이 캄보디아식으로 지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굳이 그 방식을 고집한 이유는 뭡니까?
철 : 그 사람들에게 맞춰야 하니까… 사람의 감각이란 게 그 풍토에서 비롯되거든.

리 : 감각이 풍토에서 비롯된다?
철 : 이게 앙코르와트에서 바탐방을 가면 두 시간 반 동안 이런 지평선만 보면서 가야 돼.

 

리 : 저 위에 쉬크한 전깃줄은 뭐죠 -_-?
철 : 이상한 거 보지말고(…) 이게 캄보디아 일반적 풍경이야. 이에 비하면 우리 땅, 우리 풍경은 매우 특별한 거지. 우리 언어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로 색깔 형용사가 많이 발달했다고 하지? 빨강 하나만 해도 수십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리는 녹색, 청색은 잘 구분 하지 않아. 파랗다 하면? 푸르다 하면? 뭐가 다르지? 구분 잘 안해서 쓴다는 말이야. 그게 의심스럽다 했는데, 여기 딱 보는 순간 알았어. 캄보디아 풍경은 물과 딱 구분이 간다는 거지.

근데 한국 산과 강 풍경을 보면 잘 구분이 안 가. 어디까지 green이고 어디까지 blue인지 애매해. 보통 물 그림이라 하면 blue로 칠하지. 물에 숲이 반사된 우리의 땅에서는 blue와 green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 이처럼 소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감각을 결정하는 요소가 풍토에서 비롯돼. 그러니까 그 나라 사람들에게 맞춰서 설계하는 거지.

행복을 만드는 건축가 김인철

리 : 건축 경기가 요즘 꽝입니다. 건축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한마디를…
철 :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경기가 안 좋다, 전망이 밝지 않다고 하는데 40년간 설계하면서 경기 좋았던 적 한 번도 없어. 일반인들이 말하는 경기는 부동산 경기야. 아파트 잘 팔리고 못 팔리는 걸로 경기경기경기경기하는데…

리 : 정말 경기 일어날 것 같군요.
철 : ……

리 : 인터뷰를 계속하겠습니다.
철 : 경기 나빴던 적은 97년 IMF 외환위기 때 정도? 그 외에는 일감이 그래도 죽 있었어. 경기 이야기는 좀 어불성설인 게… 사람이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한 집은 짓게 되거든. 인간의 생존 기본 조건은 의식주잖아. 그 중에 주를 우리들이 맡는 거고. 결국 자기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이걸 경기를 탓하는 건 좀 한심한 거고.

리 : 그렇다면 건축을 하려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철 : 재미. 재미있으면 하지말래도 할 거고, 재미 없으면 아무리 경기 좋고 해도 안 해. 나는 이 일 하는게 재밌어. 그 재미를 보면서 먹고 사는 것도 해결이 돼. 그 이상 뭘 더 바라냐? 때부자 되겠다는 생각도 없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서, 내가 꿈꿨던 상상이 실행되는 프로세스를 즐기는데. 날 찾아온 건축주들에게 설계비 이야기할 때가 젤 곤란해. 지금도 내 마누라는 나보고 사기꾼이라고 해.

리 : 현명한 사모님을 두셨군요(…)
철 : ……

리 : 죄송합니다. 왜 사기꾼이라고(…)
철 : 남의 땅에, 남의 돈으로, 남의 손으로 집 짓고 내 거라고 하니까. 난 아이디어 하나만 제공해. 봉이 김선달이지. 물론 아이디어 제공하려고 온갖 고생을 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집에 내가 투입한 건 아이디어뿐이고, 그걸 갖고 내 거라고 이야기하잖아. 그게 재미있어서 하는데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 좀 이상하잖아.

리 : 수많은 건축전공자들의 악플이 예상됩니다.
철 : 물론 나도 미안해하면서도 철저하게 받지.

리 : ……
철 : 그리고 남보다 많이 받아. -_-v

리 : ……
철 : 그래도 심정상으로는 건축주에게 미안해. 여튼 그런 과정이 나한테는 하나의 재미야.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놀면서 일이라고 하고 있으니까 그거 말고 뭘 더 바라겠어? 새로운 세상 보고 새로운 집을 내 아이디어로 만드는 게 얼마나 즐거워. 네팔에 방송국 설계 재능기부 할 때도 생고생했어. 비행기 안 떠서 내 나이에 15시간 걷기도 했었는데…

리 : 다시 그 고생 하라고 하면 도전하겠습니까?
철 : 아니. -_-;;;

리 : ……
철 : 내 나이가 몇인데 그 생고생을 해… 그런데 그동안에 칼리간타키 강 주변, 가장 깊은 계곡이라는 해발 3천 8백 미터서 내려가면서 사람들 일상을 그 사람들 눈높이로 봤어. 이런 기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지. 돈 벌고 안 벌고를 떠나서 건축하다 보면 이런 재미를 느낄 때가 굉장히 많아.

리 : 귀족 비즈니스라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철 : 나도 애들 앞에서 내 마누라가 나보다 많이 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기는 하는데(…) 그것도 좀 오해야. 나한테 설계 의뢰하는 사람들도 상류층은 별로 없어. 호수로 가는집은 그냥 시골사람이었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안하려고 했지. 춘천에서 1시간 더 가야 하는 거리인데, 30평밖에 안 되니까 밑지는 게 당연하고…그래서 거절할려고 했다가 땅 보고 생각 바뀐 게 그 땅이 예술이었거든.

도시에서는 이런 집 못 지어. 옆집 일조권 등등 생각하면서 설계하다보면 정말 제약 없는 데에서 설계하고 싶어져. 그런 조건을 그 땅이 가지고 있었어. 주변 환경이 그야말로 수려하고 빼어나서, 막말로 아무 거나 지어도 멋있을 거 같은 거야. 점하나 찍자고 생각했지. 그래서 집주인에게 내건 조건이 내가 하자는대로 해야만 설계해준다고 했어. 감놔라 팥놔라 하면 안 할 거라고… 결과적으로 다들 행복해졌지. 남자의 자격이랑 조선일보 나오면서 나는 더 유명해졌고, 집주인이랑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졌고. 이런 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건축의 재미가 아닐까 싶어.

리 : 집주인은 그렇다 치고 주변사람들은 왜 행복해진 겁니까?
철 : 땅값 겁나 올라서 다 팔았거든.

리 : ……
철 : ……

리 : 책 제목이 ‘공간열기’인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철 : 책 제목처럼 보이게 하려고 열기(列記)라는 한자를 썼는데 리스트업했다는 거야. 이중코드인데 한자 의미는 내 작업들을 전통건축과 열거한 거고, 열기(open)라는 건 그동안 내 작업을 생각해보니까 우리 공간은 열린 공간이었거든. 가두는 공간이 아니라 펼친 공간이더라고 그래서 그 공간을 열었다, 공간 열기가 우리 건축이고 내 건축이라는 의미로 만든 게 공간열기야. 영어로 쓰면 The space open이라고 쓰고. 이걸로 이래저래 특강도 계획 중이고.

리수령 인터뷰 15(중): 호화청사, 도시경관을 망치는 아파트, 왜 끊이지 않는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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