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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찍지 마세요, ‘인권’에 투표하세요

지난 4월 8일과 9일, 20대 총선 사전투표가 있었다. 사전투표율은 사상 최고치인 12%. ‘막장 공천’이라고 불리며 정치적 혼란이 거듭한 한국의 정치판. 그 속에서 정치인들은 마치 국민에게 ‘이래도 내가 좋아?’라고 진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그렇게 정치에 대한 냉소가 짙어지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국민은 투표한다.

그래도 선거는 놓을 수 없다

나는 지난 2월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던 중 국회 본회의를 방청했다. ‘누가 나를 국회까지 가게 하는지’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기는 했지만, 본회의를 방청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계속되는 필리버스터 중계를 접하면서 나를 감동시킨 것은 운동화를 신고, 밤잠도 못 자고 그 앞에서 조지 오웰을 읽고, 헌법을 읽는 국회의원들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엄청난 관심이었다.

시민 필리버스터

시민들은 2016년 필리버스터 정국과 테러방지법과 관련된 위키(Wiki)1 페이지를 만들고(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기상천외한 창의성과 유머감각을 동원해 각종 패러디를 통해 문제를 일반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이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통해 자행되던 인권침해와 사생활침해가 되풀이될 것을 염려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보 수집과 의견 표출이 이어졌다.

20대 총선 ‘인권’ 공약, 어디까지 봤니?

앞서 19대 총선 인권 정책을 살펴보고, 19대 국회의 인권 관련 의정활동을 점검하면서 든 생각은, 국회의원들은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권에 관해서는 당정 차원에서 약속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주요 4대 정당과 함께 녹색당의 20대 총선 10대 기본정책 중 인권 이슈와 관련된 공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2

20대 총선 인권 관련 정책

보수-진보 정당에 따라서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경제살리기와 복지국가에 대한 정책이 공통으로 나타난다. 주목할 점은, 지난 19대 총선 공약분석에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공통으로 나타나던 북한 인권, 즉 대북정책과 관련된 사항이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핵심공약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이다. 4대 주요 정당의 복지정책은 큰 틀에서는 사회경제적 및 문화적 권리 차원에서 인권과도 연결되는 정책일 수는 있으나, 좀 더 직접적으로 절대적 빈곤퇴치와 관련된 정책은 주거 문제 해결과 직결되는 정책에 한정됐다.

19대 총선 당시 핵심공약과 20대 총선 공약을 인권정책을 중심으로 비교해보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차별 없는 인권”으로 10대 기본정책으로 인권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이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양성평등을 10대 정책공약에 포함시킨 것이 눈에 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여성 정책과 양성평등 정책은 정책 공약을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데 있어서 우선순위에 들지 못했었다. 그러나 여성혐오를 비롯해 양성평등이 확립되지 않은 데서 비롯한 사회갈등이 계속되면서 주요 정당들도 양성평등을 제도 개혁이 필요한 주요 영역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권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녹색당의 정책이 눈길을 끌 것이다. 녹색당은 “녹색당은 여성∙소수자∙청년의 정치를 만듭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다양한 소수자 권리 보장 정책과 삶의 다양성을 제도화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특히 기존 정당들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지 못했던 인권 이슈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아직도 사회 전반적으로 논란이 계속되는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와 대체복무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도화시키는 동반자 제도가 그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투표 참여 연령 하향 조정 등 청소년의 인권과 사회 참여를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19대 국회보다는 더 많은 ‘인권과 관련된’ 혹은 ‘인권을 다루는’ 정책이 많아졌으니 한국의 인권 현실은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선거를 통해 뽑히는 정당에 소속되어 정당의 정책을 옹호하며 당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측면에서, 19대 총선 당시와 비교하면 정당별로 인권 정책,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은 분명 청신호일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자율적으로 입법활동을 하는 ‘1인 입법기관’으로서, 법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회의원 개인의 신념, 정치 성향, 군복무, 전과 유무 심지어 출신 지역에 따라 표를 던지기도 한다. 국회의원 개인의 ‘사람됨’은 언제나 구설에 오르고, 이들의 실언은 정치생명에 큰 영향을 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성소소자 인권단체인 레인보우 보트에서는 “제20대 총선, 절대 뽑지 말아야 할 성소수자 혐오 정치인 명단”을 발표했다. 그렇게 국회의원들이 명시적으로 내걸어 둔 공약과는 별개로 그들의 발언을 통해 후보 검증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에서는 반(反)여성 국회의원 후보들 10명을 추려내어 이들의 양성평등에 반하는 발언들과 함께 소개한 바 있다.

정치인들의 반(反)여성 발언을 소개한 기사 이미지. 글로 남는 법안이나 국회 본회의장이었더라면 이런 발언을 과연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비이성적인 발언들이다. ⓒ프레시안

정치인들의 반(反)여성 발언을 소개한 기사 이미지. 글로 남는 법안이나 국회 본회의장이었더라면 이런 발언을 과연 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의 비이성적인 발언들이다. ⓒ프레시안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권리 보장은 이제 소위 말하는 ‘대세’가 되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혐오 발언과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되는 몰상식한 언행으로 여겨진다. 하물며 실언이라고 넘기기에는 도무지 용납되지 않는 국회의원의 이러한 발언들은 개인의 인격과 인권 감수성을 넘어서, 자신의 정치 활동의 방향을 반영하는 일종의 ‘커밍아웃’(혹은 아우팅)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회의원들의 언행이 공유됨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는 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법안을 통과시키고 제도화를 주도하는 ‘사람’의 신념과 인권 감수성은 어쩌면 그가 커다란 벽보와 현수막에 걸어둔 미사여구보다 더 의미 있는 선택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인권을 수호하는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 인권과 소수자를 향한 감수성이 결여된 정치인일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사람’을 원한다

이제 총선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20대 총선 인권 정책과 관련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정책, 그리고 인권 보장을 의정활동은 국회의원들이 ‘대놓고는 무시 못 하는’ 정책 기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제 지켜지면 참 좋을 약속들, 모두를 위한 정책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없다. 따뜻한 봄날의 오랜만의 늦잠과 나들이를 포기하고서라도 우리가 투표장으로 향하는 데는 나름의 기대가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멋진 정책의 옷을 입은 약속 그 자체보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의 이익과 자신의 정치 생명을 잠시 유보하면서도 약속을 지킬 ‘사람’이기 때문이다.

손가락 약속


  1. 인터넷 사용자들이 내용을 수정·편집할 수 있는 웹사이트

  2.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보도자료, “정당10대 핵심공약 분석”, 녹색당 홈페이지 자료. “한눈에 보는 녹색당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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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신하영(스텔라)
초대필자. 교육학 박사. CC KOREA 자원활동가.

교육 현상을 연구합니다. 관심 영역은 인권과 문화, 공유와 교육이며 특기는 먹방입니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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