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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2월 말 진행된 국회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이하 “20대 총선”)의 서곡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필리버스터 정국”은 국회의원들의 무제한 토론 릴레이라는 포맷 자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했다.

필리버스터가 우리에게 남긴 것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은 2001년 11월 국가정보원의 발의로 입법화가 진행되다가, 당시에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단체들의 반발과 국제연합(UN)과 국제 인권단체의 우려에 입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문민정부 들어서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 가장 심각하다고 평가받는 이 정부의 집권기 19대 국회의 말미에 18582의안이 수정안으로, 그것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의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통과된 것이다.

필리버스터 이후 기어이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시점에서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51대 39의 비율로 “민간인사찰의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답했다.[footnote]”국정원의 정보수집권한 강화는 테러예방에 필요하므로 찬성”한다는 의견이 39%, “국정원이 테러와 상관없는 일반인까지 사찰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이 51%로 집계되었다(출처: 한국갤럽, 2016년 3월 4일 기준. 응답률 20%)[/footnote] 테러방지법은 총 300명으로 이루어진 국회에서 과반수가 넘는 156표를 받아 통과된 법안이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반 이상이, 국민이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국정원 테러방지법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에 국가기관 사이트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의 사이트를 사실상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했다.

한국의 국회의원은 국회라는 헌법기관의 구성원인 동시에 국회의원 각 개인 자체가 헌법기관으로 기능한다.[footnote]출처: 헌법 및 헌법재판소법의 관련 조문 해석[/footnote] 따라서 국회의원은 헌법의 가치를 수호하고 헌법의 정신을 실현함으로써 존재 목적을 가진다. 테러방지법의 통과는 19대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명백한 이 법안에 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는 국민 인권을 얼마나 어떻게 지켰을까 

그렇다면 19대 국회의원 300명은 어떻게 입법기관으로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인권을 보호할 것으로 약속했던 것일까. 그리고 2012년 4월 11일 당선된 이후 지난 4년간 그 약속을 어떻게 지켜왔던 것일까.

테러방지법과 국가보안법을 포함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법안부터, 적극적으로 북한인권법, 인권교육지원법 등 적극적으로 인권을 보장하는 법안까지,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의 손으로 인권의 법제화와 인권정책의 향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20대 총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이 당선 당시에 내세운 인권과 관련된 정책 공약들을 상기하고 이들이 얼마나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켰는지 점검하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을 위한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인권

19대 총선 정당별 인권정책 공약 상황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지역구 의원을 배출한 정당은 총 4개 당으로, 새누리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이었다. 보수와 진보정당을 표방하느냐에 따라 경제와 국방 관련한 정책이 갈렸으나, 상대적으로 복지와 소수자 정책에서는 정책 확대와 예산 배정을 약속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인권정책과 관련한 공약은 명시적으로 ‘인권’을 내세운 경우는 적었다. 다만, 다문화 정책, 모성보호 및 아동·청소년 정책 등을 통해 인권적 가치가 반영된 정책 추진의 뜻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모성 여자 임산부 임신 사람 인간 인권 생명

19대 총선 당시 정당별로 내세운 10대 기본정책을 살펴보면, 14개 제출정당 중 ‘인권’ 키워드는 핵심 공약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인권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소수자와 소외계층 관련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정당별 정책 방향을 알 수 있었다. [footnote]정당투표의 정책기조를 나타내는 것이 10대 기본정책이라고 본다면, 56명의 비례대표는 사실상 이러한 정당 기본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제19대 국회의원선거 정당별 10대 기본정책.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 알리미[/footnote]

다음의 [표 1]은 2012년 4월 19대 총선 당시 정당별로 발표한 10대 기본정책 중 인권 및 소수자, 소외계층 관련 정책과 이에 해당하는 인권영역을 정리한 것이다.

인권 정책

새누리당: 대북정책과 학교폭력 그리고 인성교육 

새누리당 구체적으로는, 새누리당의 경우 지지층 중 중장년층이 많은 점을 강조해 고령화 사회 관련 대책과 일자리, 경제활성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것에 비해 인권과 관련된 정책은 대북정책과 학교폭력 및 인성교육 정도로 나타났다.

특히 대북정책은 후에 19대 국회 활동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인권법 제정과 함께 추진하는 대북제재안을 동반한 통일 관련 정책에 더 가깝게 나타났다. 북한인권법에 관해서는 후보의 성향과 전문분야에 따라 인도적 차원의 식량 원조, 대북제재와 관련한 후보 간 공약이 다르게 나타났다.

민주통합당: 보편적 복지와 무상의료 비정규직 차별 해소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의 경우 ‘보편적 복지’를 교육과 복지정책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무상의료 등을 통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와 연계된 정책을 내놓았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슈로 떠오른 비정규직 차별 해소 추진을 약속하며 노동인권과 관련한 해악들을 개선할 것을 후보별로 구체적인 공약으로 내세우고, 노동운동가를 후보로 영입하기도 했다. [footnote]필리버스터 정국 당시 주목받은 은수미 의원도 이에 해당하는 인사 영입이었다.[/footnote]

북한 인권과 관련해서는 대북제재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토대로 한 통일정책과 함께 북한인권을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새누리당과 눈에 띄는 차이가 없었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주거문제와 노동시간 단축 

통진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의 경우, 진보정당을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주거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주거의 문제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즉 기본권으로 인지하고 국가 책임의 영역으로 포함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두 진보정당 모두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비정규직 문제)를 통한 노동인권 개선을 주장하였다. 특히 비례대표 중에는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활동가 출신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진보신당의 경우 전국민 고용보험을 통해 노동인권과 함께 노동 안전망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지역구, 복지 인권 정책보다는 지역 현항 공약  

그러나 300명의 19대 국회의원 중 246명의 지역구 의원의 선거운동과 공약은 대부분 정책선거의 양상보다는 지역선거의 양상을 보였다. 정당의 10대 기본정책이 국가적인 과제를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지역구 의원들은 소외 ‘5대 공약’, 즉 지역경제, 일자리, 복지, 재개발·재건축, 유치·조성·건립으로 나타나는 지역 현안을 국회의원 활동의 방향으로 제시했다.[footnote]19대 지역구 국회의원 공약이행 평가 결과보고서. 출처: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footnote]

직접적인 지역의 발전을 약속하다 보니 오히려 장애인 시설, 노숙인 및 학교밖 청소년 보호시설 등의 복지시설에 대한 기피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전반적인 인권의식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공약이 일부 끼어있기도 했다.

거지 홈리스 노숙인 부랑아 복지 인권

이와 같은 19대 총선 주요 정당 기본정책과 공약사항을 통해 볼 때, 후보자 및 정당의 인권정책과 인권 이슈에 대한 입장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와 노동인권 등 범위를 넓혀 본다면, 노동자·여성·아동·장애인·탈북자 등 소수자에 대한 정책은 복지 및 노동 정책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인권정책이 주요 정책과 공약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직접적인 지역발전 공약을 내거는 국회의원들의 향후 행보에서 국가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기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대 국회 인권정책 공약 이행률

지난 2월 2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9대 국회의원 공약이행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지역구 국회의원 239명(전체의원 중 공석, 사고 제외)의 8,481개의 공약을 대상으로 약 3개월간 선거공약 이행 평가 결과, 공약이행 완료 비율은 51.2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19대 국회 회기 동안 접수된 18,843개 의안 중 직접 ‘인권’을 법안명에 포함하는 법안은 총 65건 이었다. [footnote]2016년 3월 29일 기준. 출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footnote] 이중 입법안 그대로 통과된 원안 가결은 총 11건으로 16.9%였으며, 6%에 해당하는 4건이 부결되거나 폐기되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 관련 법안으로 총 38건으로 58.5%를 차지했다. 그 밖의 27건 중에는 “북한인권법”을 포함한 북한 인권 및 탈북자 보호 관련 법안이 12건(18.5%)으로 개별 인권 이슈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과제의 조속한 이행 촉구 결의안”을 포함한 군 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이 9건(13.8%)으로 뒤를 이었다.[footnote]19대 국회 접수의안 처리 현황 자료. 출처: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footnote]

다음의 [표 2]는 19대 국회 인권관련 법안 처리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인권 정책 공약 19대 국회

장애인 인권 및 처우개선, 고용보장에 대한 법안은 훨씬 더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국회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를 중심으로 발의된 법안이 많았으며, 총 219건이었다. 원안 가결 및 계류 중인 법안으로는 ‘장애인복지법(일부 개정안)’과 노인과 임산부,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 장애인 특수교육, 주거권 및 노동권 보장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체 법안 중 장애인 관련 법안 역시 수정안과 일부 개정안을 제외하면 새로운 권익 증진 요소를 담은 입법화 시도가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체 법안 중 원안 가결 및 수정안으로 가결된 비율이 31건에 그쳐, 전체 발의 법안 중 14.2%에 그쳤다.

인권정책의 정책적 노력은 ‘미진’ 

19대 국회의원 300명의 의정활동만으로 한국 인권정책의 진전 혹은 퇴보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내외적인 우려 섞인 시각에 비해 입법화 활동을 통한 인권개선의 정책적 노력이 미진한 것은 사실이다. 인권정책은 추상적인 구호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입법화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구색을 갖추는 수준으로 부문별 공약에 겨우 올라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앰네스티는 대선 공약 중 인권정책을 분석하기도 하였다(우리가 원하는건 인권 대통령). 우리 정치권에서 인권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는 정당은 진보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현황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권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을 주요 정책기조로 채택하는 것은 사회운동가,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들에게만 기대할 수 있었다.

인권과 어울리는 ‘출신 성분’과 ‘지지 기반’을 가진 정치인에게 인권정책의 입법을 기대할 수 있다면 인권정책은 하나의 주변화된 정책 ‘분야’로 치부되거나 그보다 더 못한 복지 혹은 다문화 정책의 하위항목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지역구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지역개발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쉬운 길로 선호된다.

인권정책은 ‘지는 정책’인가?

그렇다면 과연 인권정책은 지역구 의원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없는 ‘지는 정책’인 것일까. 역발상을 해 볼 수 있다. 이기는 사람이 ‘지는 정책’을 취하는 경우는 없는 걸까.

캐나다 트뤼도 총리 

최근 북미와 유럽국가에서는 인권정책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작년에 선출된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의 경우, 양성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내각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민자의 국가’로 알려진 캐나다의 다양성 존중의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도 작용한 것이지만 트뤼도 본인이 선거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차별에 반대하고 다문화. 다양성, 소수자를 향한 감수성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트뤼도 총리(왼쪽)의 모습 (Renegade98, CC BY SA, 2015년) https://flic.kr/p/B2BK6M
트뤼도 총리(왼쪽)의 모습 (Renegade98, CC BY SA, 2015년)

트뤼도의 이러한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선언, 그리고 그의 선거 캠프에서 공약으로 내세우고 내각을 구성한 이후 지금까지 추진한 여러 정책들이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트뤼도는 백인 남성에, 이성애자이며 동시에 캐나다 전 총리를 아버지로 둔 소위 말하는 ‘이기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굳이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도 없었고 소수자와 연대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기득권을 누릴 것 같던 트뤼도가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자 그의 정치 저변이 확대되었고, 당선 후 그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캐나다 역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Yes We Can!”을 함께 외치던 이들은 유색인종, 저소득계층, 소수자였다. 그리고 그는 두 번이나 이겼다.

일주일도 남지 않은 20대 총선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간을 두고 20대 총선이 다가왔다. 원칙적으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의원을 포함해 비례대표까지, 그들의 공약 혹은 정당의 공약을 지지한 국민에 의해 선출된다. 19대 국회의원과 그들이 속한 정당들은 분명히 복지와 삶의 질, 무상의료 등 인권의 가치를 포함하는 언어로 이루어진 공약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했고, 그 결과 당선되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인권정책 입법활동에만 기대할 수는 없다.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제도화가 필요한 이슈를 제기하고, 의안 상정을 요구하는 것의 시발점은 무엇보다 시민인 우리 자신과 이런 시민의 의견을 수렴한 다양한 인권, 시민단체가 되어야 한다.

사실 인권정책은 아직 한국에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에 비해, 대표 공약이나 기본정책으로 채택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인권정책을 선도하지는 못할지라도, 19대 국회의 인권정책 의정활동을 살펴본 결과 알 수 있듯이 정당의 기본정책과 직결되는 인권 이슈에 대한 입법 활동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부터 시급하다. 또한, 지역구 내에서 발생하는 인권위기 상황을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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