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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떡수는 곧 사망선고다: 알파고에 대한 인공지능적 고찰

지난 이틀간 충격적인 알파고와의 대국 결과를 지켜봤다.

이세돌 0 : 2 알파고

로봇공학자로서 딥러닝의 강력함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결코 딥러닝의 능력을 간과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5:0으로 이번 대국을 이길 것이라는 생각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주변에선 이세돌 9단의 이번 대국을 두고 “100만 달러짜리 용돈”이란 얘기도 심심치 않게 오갔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고 이세돌 9단은 복 받은 사람은커녕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이미 제1국의 패배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더 이상의 충격은 없겠지…’라고 생각했었지만, 제2국에선 이세돌의 큰 실수가 없음에도 무난히 져서 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3국에서 더 큰 충격을 안겨줄까 봐 두려워졌다.

5:0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이세돌 9단. 이번 패배는 홍진호의 3연벙 패배만큼이나 큰 충격파를 가져올 것 같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바둑과 인공지능에 대한 내 수준부터 밝히고자 한다. 어린 시절 온게임넷(스타크래프트)과 바둑TV를 달고 살았고, 만사 제쳐놓고 각종 스타대회와 바둑대회 결승전을 쫓아다녔다. 비록 내 바둑 기력은 보잘 것 없지만,  ‘입스타’ 실력이 ‘스타’ 실력을 압도하듯, 바둑TV의 해설을 들으며 미약하나마 ‘입바둑’으로 참견할 정도 수준은 된다.

인공지능에 있어서는 다양한 딥러닝 알고리즘을 공부하기도 했고, 이와 관련된 기고들도 여러 차례 한 바 있으며, 인공지능 관련 책을 감수할 정도로 이번 대국을 이해하기엔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 개인 사정상 알파고의 논문들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진 못했다.) 대신 페이스북을 통한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파고가 동작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이해하고 있다.

제1국 분석: 이세돌(흑):알파고(백)

1국은 이세돌 9단의 호기심, 나쁘게 말해선 자만이 엿보인 대국이었다. 초반 포석이 그랬다. 참고도를 그려가며 자세한 설명을 하는 건 내 분수를 넘어선다고 생각하고 대신 각 장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실린 아래 링크를 참고하면 된다.

장면 1

장면 1

초반 포석에서 보자면 아래의 두 장면이 대표적인 시험수였다. “장면 1″에서 이세돌 9단(흑)은 보통의 감각인 상변 대신 우측 행마를 택하였으며, 이는 발 빠르게 두며 ‘어디 한번 공격해 와봐’라며 시험하는 것과 같았다. “장면 2″의 흑23 역시 공격을 유도한 약간의 무리수였으며, 알파고(백)는 이를 놓치지 않고 ‘머리를 부딪혀 가며’ 제대로 끊어갔다. 이렇게 상변의 돌들이 끊겨서는 “장면 3″까지 백이 기분 좋게 밀고 들어가며 백78로 초반에 벌려두었던 우측 집을 깨는 것까진 백의 권리였으며, 이후 계속 알파고가 주도권을 잡아나가게 된다.

장면 2

장면 2

장면 3

장면 3

바둑 얘기를 새삼 다시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면 1″이 펼쳐졌을 때 백이 올바른 방향인 상변으로 걸쳐가고 흑9 협공에 대해서도 우변에 기대며 다시 재협공을 하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바둑 인공지능은 “집을 짓는다”, “상대 돌을 제압한다”와 같은 부분 수읽기에 능했으며, 이를 목적으로 한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1에만 의존하다 보니 부분적으로 이기면서도 전체 판을 그르치는 우를 범하기 쉬웠었다.

하지만 알파고는 컨볼루셔널 뉴럴 네트워크2 (ConvNet)를 통한 패턴 인식을 통해 대세점을 정확히 짚어 갔으며, 이를 통해 ‘모호한 포석 상황’에선 수읽기보다는 패턴인식을 통한 추천으로 더욱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두어나갔다. 특히 패턴을 중시해야 할 때와 부분 수읽기를 중시해야할 때의 구분이 예술이었으며, 큰 실수 없이 주도권을 쥐어 나갔다.

이쯤에서 알파고의 알고리즘에 대한 훌륭한 요약설명인 이주열 님의 브런치 글을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딥러닝이 ConvNet에 입력한 피처(feature)들 (출처: 알파고 논문)

딥러닝이 ConvNet에 입력한 피처(feature)들 (출처: 알파고 논문)

보통 머신러닝은 그대로의 데이터를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집어넣기보다 좋은 피처(feature)를 가공해 집어넣는 것이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늘 머신러닝 연구자들의 고민이었다. 딥러닝의 장점은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 없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피처들을 모두 때려 넣으면(?) 이들의 상대적 중요도를 거대한 네트워크가 알아서 조정해준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알파고 각 착점지에 대해 무려 11가지, 48차원의 벡터를 입력값으로 집어넣었다. 결국, 이 바둑판에는 총 “19×19×48 = 17,328″의 고차원 벡터공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입력값을 ConvNet에 넣고 “기존 상태에 대해 최고 승률을 보이는 착점지는 어디인가? P(a|s)”를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였다 (이른바 Policy Network). 그리고 각 경우에 대한 가치평가(Value Network)를 모의게임(Reinforcement Learning)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 더욱 완벽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알파고는 "현재 상태에 따른 최고의 착점지"(좌측, ConvNet)와 이에 대한 가치평가(우측, Reinforcement Learning)을 반복적으로 이용하였다. (출처: 알파고 논문)

알파고는 “현재 상태에 따른 최고의 착점지”(좌측, ConvNet)와 이에 대한 가치평가(우측, Reinforcement Learning)을 반복적으로 이용하였다. (출처: 알파고 논문)

다시 바둑 이야기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이세돌 9단은 “장면 1″에서 좀처럼 두지 않는 수를 두었지만 사실 워낙 초반인 상황인지라 이 바둑 역시 누군가가 둔 바둑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한 판이 아니라 적어도 여러 판.

이러한 변칙에 대해 많은 인간은 상변을 타파해 나가는 전략을 꾀했을 것이며, “장면 2″의 끊는 장면 역시 “주변의 돌들이 강했을 때 날일 자는 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반영했을 수 있다. 아무리 예외적인 상황이더라도 빅데이터 앞에선 예외상황일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알파고의 첫 번째 힘이었다.

특징 1. 알파고는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

두 번째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알파고의 신의 한 수라 불린 백102.

장면 4

장면 4

이전까지 흑(이세돌)의 바둑은 불리하지 않았다. 특히 좌하귀의 백84, 86을 공짜로 먹었으니 더더욱 그렇다. 백(알파고)은 왜 이런 수를 뒀을까? 먼저 이전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장면 5

장면 5

“장면 5″에서 흑79에 대해 백은 그동안 불안했던 중앙 두 점을 백80으로 잡으며 두터운 수 혹은 완착을 뒀다. 흑은 한 수를 벌었다. 드디어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 상황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좌하를 공략해 이득을 취하고 반상 최대인 우상을 움직이거나 우하를 굳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백은 양걸침에 대해 거의 나오지 않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양쪽 기대기를 선보였고 백84, 86의 두 점을 헌납했다. 부분적으론 망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백102를 침입하는 신의 한 수를 선보였고, 이후엔 백의 독무대였다. 백은 결과적으로 가장 큰 곳이었던 좌상과 우하를 모두 가져갔다. 좌하도 잘 살아가면서 말이다. 흑은 도대체 한 게 없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물론 이세돌 9단의 방심과 실수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좌하에서 백 두 점을 헌납하며 과감히 선수를 뽑아든 알파고의 실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기사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발상이다. 부분적으로 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알파고는 좌하의 두 점보다는 우측 침입과 좌상귀 굳힘, 좌하귀 공략이 훨씬 큰 자리임을 냉정이 판단했다. 그리고 결국 이세돌 9단이 돌을 던질 수밖에 없을 정도의 차이로 만들었다. 알파고의 장점은 부분적으로 망하든 말든, 절대적으로 중요한 곳을 편견 없이 갈 수 있는 냉철함이다.

특징 2. 알파고는 편견이 없다. 알파고는 당신이 어디를 두든, 가장 유리한 착점지에 돌을 놓는다.

바둑엔 ‘손 따라 둔다.’란 말이 있다. 바둑은 사실 반상 위 어느 곳이든 착점할 수 있지만 포석 단계가 지나면 대부분 현재 두고 있는 곳에 이어서 착점하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하면, 이곳이 “급한 곳”이라 여겨지기 때문인데, 사실 “급한 곳”과 “큰 곳(집이 되는 곳)” 사이에서 가치판단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손을 빼기보단 같이 ‘손 따라 두며’ 현재 이슈인 전투에 집중하기 마련인 것이다. 이에 대해 상대방(인간)도 역시 그곳을 계속 이어두며 어느새 반상 위의 묘수 후보지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알파고는 냉정할 정도로 서로 간의 가치를 절대비교 했으며, 이에 따라 여러 차례 손을 뺐다. “장면 5″에서 흑이 걸쳤을 때 손을 빼고 중앙 흑 두 점을 잡은 것, “장면 4″에서 좌하에서 선수를 뽑아 우측에 침입한 것 역시 대표적인 예다. 알파고에게 ‘손 따라 둔다’는 편견 따윈 없었다. 지독할 정도의 냉정함, 그것이 인공지능의 장점이었다

후반의 떡수3에 대하여…

알파고는 후반에 어이없는 실수들을 저지르곤 했다. 예를 들면 제1국과 제2국의 아래와 같은 장면들이다.

장면 6

장면 6

장면 7

장면 7

이에 대한 자세한 상황 설명은 생략하겠다. “장면 6″에서 우측 백126을 잡힌 것은 보통의 바둑에선 승부가 뒤집힐 수도 있을 정도의 손해를 본 명백한 실수이며, 제2국에서 중앙 백 4점 (106, 108, 112, 116)과 우상귀 흑 6점(1, 33, 71, 131, 143)을 맞바꾼 것은 이보다 더 큰 손해이다. 이 장면이 나왔을 때 해설진들은 ‘드디어 역전의 기회가 생겼다’며 흥분했다. 이렇게 큰 실수는 보통 역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이러한 알파고의 “떡수”는 “어떻게 둬도 제가 이겼습니다.”라는 굴욕의 한 수와도 같았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알파고는 바둑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강해진다. 그만큼 승부에 대한 불확실성(uncertainty)이 줄어들고, 본인이 둘 수 있는 가지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알파고에겐 더 편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파고가 실수를 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왜 이런 떡수가 나왔을까? 비밀은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보상함수(reward function)에 있다.

알파고는 “최대한 집을 많이 짓도록” 움직이지 않는다. 알파고는 판을 이겼을 때의 보상을 +1, 졌을 때의 보상을 -1로 가장 보상이 큰 방향으로 돌을 움직이며, 떡수가 나왔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둬도 제가 이겼습니다.”, 즉,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최선의 경우에도 보상이 +1, 이런 떡수를 둬도 보상이 +1이니 그 중에서 아무 수나 뒀습니다.”

대국에서는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다. 이래도 +1이고 저래도 +1이니 알파고는 최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쪽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냥 쉽게 쉽게 점수를 내주며 판을 정리한 것이다.

특징 3. 알파고의 떡수는 승리선언이다.

막판에 떡수를 보게 되었다면, 그건 상대방이 돌을 던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소름 끼친다.

제2국의 시사점: 알파고(흑):이세돌(백)

이세돌 9단은 제2국에서 결코 실수해서 패한 것이 아니었다. 완벽한 실력의 패배였다. 그렇기에 제1국 패배 후에도 웃으며 인터뷰할 수 있었던 이세돌 9단이 제2국에선 그렇게 얼굴이 상기된 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딱히 악수도 없었다. 초·중반에 편한 흐름으로 흘러가던 바둑은 중반 이후 중앙처리에서 알파고가 압도적인 우위를 선보이며 이세돌 9단을 제압해 나갔고, 오히려 이세돌 9단이 알파고 수의 깊은 의미를 배워가며 둬야 할 수준이었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장면 8

장면 8

제2국은 특이한 몇 장면만 둘러보도록 한다. 첫 번째 의문수는 바로 흑(알파고)13이다. 이러한 진행은 프로의 바둑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진행이다. 온라인 바둑에선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보다는 하변을 벌리는 것이 100만 배 더 빈번히 나왔을 상황이며, 왜 이런 수가 나왔는지 의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알파고가 보인 약점일지도 모른다. 알파고는 많은 사람이 뒀던 패턴과 자신의 모의게임 속에서의 승률을 비교하며 둘 사이에서의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초반엔 돌들이 별로 없으니 이러한 평가를 하는 게 매우 어려우며, 따라서 흑13과 같은 좋지 못한 수가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상대방이 가지 않은 하변에 손을 뻗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좌측을 갈라갔다. 이것은 지난 대국의 패배 여파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이세돌 9단을 포함한 많은 바둑인은 “정상적’으로 둔다면 이세돌 9단이 질 리가 없으며 알파고의 실수들만 차곡차곡 포인트로 모으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세돌 9단이 바둑을 정상적인 바둑으로 돌리려 하변을 두지 않고 백14로 둔 것이다. 마치 “다시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와, 알파고!”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징 4. 알파고는 초중반 포석이 약점이다. 이곳에서 차이를 벌리지 못하는 한, 인간에게 승리란 없다.

결국, 알파고가 하변을 두게 되었고 바둑은 중반까지 평범한 흐름으로 다시 흘러가게 되었다. 이세돌 9단은 이길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것이다. 아직도 알파고의 후반의 힘의 무서움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장면 9

장면 9

결국 “프로도 배워야 할 수”인 흑81이 터진 이후엔 알파고의 독무대였다. 이 시점이 바로 인간의 우위에서 인공지능의 우위로 넘어간 결정적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전까진 좌측의 흑43 주변의 행마가 무거웠고 하변을 깔끔히 해결함으로써 백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제 남은 건 흑 상변만 적당히 깨고 우하 중앙의 흑만 지우면 백이 질 수가 없는 대국이었다.

하지만 백80의 침입에 대해 흑은 생각지도 못한 흑81을 꺼내 들었다. 그야말로 오늘의 묘수이다. 보통 공격의 정석이라고 한다면 좌상귀를 막아서며 상대의 집이 날 수 있는 곳을 막아선다거나 아니면 탈출하지 못하도록 씌워가는 것이 보통인데, 흑81을 두고 나니 백이 갑자기 갑갑해졌다. 이후 흑(알파고)의 공격에 대해 백(이세돌)은 상대방 수읽기 기세에 눌리며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침입수를 헌납하고 말았으며, 이후엔 “장면7″에서 보았다시피 ‘대손해’를 보고도 알파고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국면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공포 그 자체였다.

특징 5. 중앙처리는 알파고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기존에는 바둑 인공지능의 약점으로 중앙처리를 들었다. 포석은 대충 인간을 따라두고, 부분전술은 수읽기로 돌린다고 하지만, 중앙을 처리하는 데는 여러 돌이 얽혀있고, 예상되는 집을 산정하기도 어려운 만큼 좀처럼 컴퓨터가 잘하기 어려운 부분이란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중앙 부분을 처리하는 데 있어 오히려 인간보다도 훨씬 우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오히려 ‘감’으로만 중앙을 처리하던 인간은 알파고 앞에선 나약한 존재였다. 알파고는 인간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승리로 이끄는 중앙 부분 처리법을 알고 있었으며, 제2국 대국 와중에도 해설자들이 감탄을 자아내는 수를 여러 차례 뽐냈다. “놓이고 보니 알파고의 선택이 좋아 보이네요.” 이런 감탄을 연발하며 말이다.

바둑을 컴퓨터에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많은 분야에선 인간의 직관보다 데이터를 통해 배워야한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것을 비춰보면 매우 놀랄 일은 아니다. 그 시대가 온 것이다. 바둑도 데이터를 앞세운 컴퓨터의 분석을 배워야 할 시대. 이제는 연구생들이 알파고의 착점을 놓고 논의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을지 모르지만, 바둑의 포석이나 정석 역시 수십 년 동안 큰 변화를 겪어왔다. 예전엔 좋다고 여기던 포진도 현대에선 ‘너무 느리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바둑 진행에도 ‘유행’이 있다. 만약 절대적인 정답을 알고 있다면 그런 유행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만큼 바둑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아직 한참 모자라다는 것이다.

물론 알파고가 절대적인 정답이란 얘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기존의 편견을 걷어내고 대부분 인간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직도 포석에 약점이 있다. 하지만 경기 중에도 수백 판의 바둑을 미리 둬보는 알파고에게 인간과의 후반 승부는 식은 죽 먹기이며, 따라서 중·후반 중앙 싸움에 있어서 알파고는 인간이 배워야 할 스승이다. 소름 끼치고 놀랍지만, 이미 여러 사회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둑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알파고가 시사하는 인류 사회의 미래

인간이 모든 부분에서 우월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힘’에서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시기가 왔고, 이후엔 인간의 우월함은 힘이 아닌 ‘지능’이라 믿었다. 하지만 계산기의 발명 이후 ‘계산’이란 부분도 인간의 장점이 아니게 되었으며, 결국 인간의 장점은 계산이 아닌 ‘모호함 속에 지식을 찾아내는 능력’ 또는 ‘창의성’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복당할 위기에 처했다. 머신러닝의 발달 때문이다. 모호함 속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일을 머신러닝이 결국 해냈고, 나아가 알파고의 승리가 시사하는 바는, 이러한 패턴인식이 기존의 논리적 인공지능 방식과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멀게만 보였던 ‘논리(연산)’와 ‘경험(데이터)’이 처음으로 성공적인 합체를 이루는 순간이다.

그럼 정말 모든 분야가 정복된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바둑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보드게임”일 뿐, 세상에는 이보다 훨씬 모호한 일들이 많다. 아직 인간이 우위에 서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점점, 아주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결국, 미래엔 ‘인공지능 위의 인간’과 ‘인공지능 아래의 인간’으로 나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보다 많은 영역이 자동화 기기로 대체될 것이며, 오직 인공지능 위의 인간만이 엄청난 임금을 받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노동할 수 있다는 것은 일부만 노릴 수 있는 특권이 될 것이며, 미래사회는 ‘대부분이 고용되는 세상’을 벗어나 ‘대부분이 실업자인 세상’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기존엔 사회적 혁명이 민중의 피로 빚어졌겠지만 이젠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역습은 이보다 더 큰, 막을 수 없는 사회적 광풍을 몰고 올 것이다.

로봇

늘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이 우월함을 가지는 분야는 어쩌면 지능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능은 저렴한 CPU, GPU들의 연산 능력과 고도로 발달한 알고리즘에 의해 정복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내 살아생전에는 꼭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머리를 써서 노동할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일 것이며, 드디어 기계가 인간의 힘과 지능을 모두 압도하는 제2의 기계시대가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우월함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바로 “움직임”에 있다고 생각한다. DARPA 로보틱스 챌린지4에 나온 어리숙한 동작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동의할 것이다. 인간의 장점은 어쩌면 머리에 있지 않고 우리의 몸에 있다.

사람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CPU와 GPU가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 몸속의 수많은 근육과 이들의 협응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따라서 유연한 움직임을 결합한 지능이 인간이 지닌 우월함이 될 것이란 것이다. “인간처럼 사물을 인식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나요?”에 대한 정답은 가까워보이지만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는 로봇을 만들 수 있나요?”라는 답은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물론 이것도 언젠간 정복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복되기 전까지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뺏어간 상황에서 “몸을 쓰는 직업”들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인공지능 이후엔 “움직임”을 정복하려는 기술적 도전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T-Robotics(t-robotics.blogspot.kr)에도 실렸습니다. 글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1. Monte Carlo Tree Search. 기존 트리 탐색에 random selection 기법을 더해 효율을 높인 방식.

  2. Convolutional Neural Network

  3. 실착, 완착 등 좋지 않은 수를 속되게 이르는 말 (출처: 바둑용어사전)

  4. DARPA Robotic Chall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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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Terry
초대필자, T-Robotics 운영자

기술로써 마음 따뜻해지는 세상을 그리고픈 감성로봇공학자 Terry 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착한 '아둥바둥' 들로 좀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SNU Robotics Blog (T-Robotics.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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