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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기괴한 제목으로 출간된 만화 [고스트 바둑왕][footnote]원제는 ヒカルの碁 (Hikaru no Go / 히카루의 바둑). 이 만화의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는 2000년 전후로 프로 기사가 된 기사들이 늘었다고 한다. 이때 바둑에 입문한 세대를 ‘히카고(‘히카루 노 고’의 줄임말) 세대’라고 부른다. 90년대 한국 바둑의 맹위로 인해 쇄락기를 맞이했던 일본 바둑계의 숨통을 틔워준 만화라 할 수 있다.[/footnote]은 헤이안 시대의 바둑 기사가 바둑의 끝을 보고 싶어 원혼이 되어서 현대까지 남아 있다가, 소년에게 빙의하여 바둑을 가르치는 만화이다. 마치 인공지능이 바둑을 배우듯 바둑을 배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스트 바둑왕 표지 (좌: ©슈에이샤, 우: ©서울문화사)
고스트 바둑왕 표지 (좌: ©슈에이샤, 우: ©서울문화사)

2014년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DeepMind)는 2016년 3월 한국의 바둑 기사 이세돌[footnote]이세돌은 KBS 한국판에서 [고스트 바둑왕] 끝에 나오는 바둑교실 [신나는 바둑나라]에 진행자로 출연했다.[/footnote]과 격돌하게 된다. 인공지능 발전에 따라 머신러닝(기계학습)에서 딥러닝으로 고도화하는 이 시기에 이세돌과 딥마인드와의 결전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구글 딥마인드를 바라보는 프로그래머의 관전 포인트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추천 서비스를 구현한 아마존웹서비스(AWS) 머신러닝이 대표적인 기계학습 인공지능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애저 ML(Azure Machine Learning)로 누구나 쉽게 기계학습을 통해 추천·분석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애저 ML의 장점은 많은 코딩 없이 파워 포인트를 다루듯 드래그 앤 드롭을 통해 쉽게 머신러닝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ML 스튜디오 스크린샷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ML 스튜디오 스크린샷

과거 일부 전문가가 고가의 워크스테이션이나 슈퍼컴퓨터를 통해 연구가 가능했던 분야를 이제는 누구나 클라우드 상에서 상용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아는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서비스, 아마존의 상품 추천 등이 머신러닝을 이용한 것이다. 주식이나 금융 분야에서도 알게 모르게 머신러닝이 맹활약 중이다.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겼을 때는 무작위 대입(brute force)을 이용했다. 반면 바둑은 파생되는 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무작위 대입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 평가되었다. 하지만 기계(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딥러닝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한계는 점차 극복되고 있다.

딥마인드와 같은 딥러닝이 한 단계 더 발전할 경우 프로그래머는 그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에 대해서 어느 순간 공개된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쇼핑몰이나 쇼핑 앱을 만든다고 가정할 때 내 취향에 맞춰 새로운 상품과 상품의 추천 기능을 저렴하게 클라우드에서 API 형태로 자신의 앱에 기능 통합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쇼핑몰과 앱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footnote]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개인비서 애플리케이션.[/footnote]의 경우 영어를 비롯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에서 자연어로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호텔 예약을 할 경우 사용자가 원하는 가격과 조건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단순한 검색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 비서나 집사처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거대 기업의 연구 결과가 클라우드를 통해 오픈 소스와 클라우드 서비스로 유입될 경우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개인 비서처럼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곧 가능할 것이다. 게임의 경우 더욱 실감 나는 인공지능 NPC 캐릭터가 스스로 학습하면서 온라인에서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플레이어들과 적극적으로 공유하게 될 것이다.

바둑의 끝, 신의 한 수를 탐구하려는 바둑인의 관전 포인트

구글의 딥마인드는 딥러닝 기반의 인공지능으로 인터넷 바둑 고수[footnote]필자는 타이젬(tygem.com) ‘철이(P)’ 미스터리[footnote]온라인 바둑 서비스 타이젬의 이용자 철이(P)는 2009년부터 온라인 바둑 고수들을 꺾으며 20연승을 거두고 제6회 동양종합금융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에서 우승하는 등 화제를 일으켰다. 당시 박영훈 기사나 이창호 기사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었으나 끝내 누구인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footnote]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킹은 하지 않는다. 그는 고스트 바둑왕에서 최종 보스인 박영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footnote]의 기보[footnote]바둑이나 장기의 대국 순서를 기록한 것.[/footnote] 16만 개를 통해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인터넷 바둑이기 때문에 레벨이 높은 고수의 바둑 기보가 많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양한 포석을 둘 수 있는 바둑 초반에는 딥마인드가 오래된 포석을 사용한다.

포석이란 바둑에서 전쟁을 하는 방식이다. 바둑에서 백에게 주는 덤이 4집 반에서 7집 반으로 발전했듯 바둑을 두는 방식인 포석 역시 치열하게 발전했다. 포석은 유리한 자리에 바둑돌을 놓는 패턴이기 때문에 1970년대보다 2000년대의 포석이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바이블이라는 것도 존재하여 혼인보의 포석은 세월을 넘어 지금도 유효할 정도로 현대 바둑 기사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오래된 포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파고(AlphaGo)가 가진 약점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알파고는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MCTS)[footnote]Monte Carlo tree search[/footnote] 기술과 “심층신경망” (DNN)[footnote]Deep Neural Network[/footnote] 기술을 혼합하여 평균적으로 최적의 공간에 수를 놓는다. 기존 44% 수준에 머물던 인공지능의 예측 확률을 57%까지 높였다고 한다. 이 말은 바둑돌이 반상에 더 많이 올려갈수록 알파고는 최적의 공간에 돌을 올려놓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알파고와 판 후이 첫 번째 대국 기보
알파고와 판 후이 첫 번째 대국 기보

대마가 잡히더라도 상대의 대마를 잡으러 달려가는 저돌적인 이세돌의 기풍과 파괴성으로 인해 초반에 알파고가 바둑돌을 던지는 상황이 된다면 그 패인은 알파고는 낡은 포석과 학습 기보의 수준 때문이었다는 것으로 지적받을 것이다. 이에 더불어 흑을 잡으면 놀라운 승률을 보이는 이세돌이 흑을 잡는다면 승률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균적으로 실수가 적은 알파고의 최적 포석 알고리즘은 그리 허술하지 않아 보인다. 이세돌 역시 알파고가 알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무림 비급과 같은 비장의 한 수(묘수)는 있을 것이다. 이세돌이 위기에 몰리게 되면 고이 간직했던 묘수를 사용할 것이고, 이는 알파고에 치명적으로 통할 것이다. 하지만 대국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파고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한 번 쓴 묘수는 딥마인드가 학습하고 대응 방법을 찾아감에 따라 다시 통하기 힘들 것이다.

바둑의 입장에서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대결이 끝이 아니다. 과연 바둑의 덤이 7집 반이 끝인지 그 이상을 줘도 흑이 유리한지를 알파고와 국수들은 함께 찾아갈 것이다.

바둑이라는, 신이 우주에서 숨긴 한 수를 찾는 길에 이제 인류 혼자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알파고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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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info” head=”기보, 누구의 것인가? – 저작권 문제”]

구글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자유로운 접근을 주장하고 있고, 저작권이 지난 도서에 대해 디지털화를 지원하는 등 정보의 이용에 대한 독과점을 경계하고 있다. 사실 기보라는 것은 대국이 끝나면 신문 등에 공개되지만, 명시적으로 저작권 이슈가 존재한다. 이런 저작권 이슈로 폭풍의 기사 이세돌 역시 잠시 손을 놓기도 했다.[footnote]2009년 당시 기보의 관리 주체, 수익 배분율 등에 관한 정확한 협의 없이 한국기원이 기보에 관한 저작권을 일괄 관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등의 문제로 6개월 정도 휴직을 한 적이 있다. 참고로 바둑 기보를 과연 저작물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footnote]

알파고는 기보에 대한 저작권 문제로 인해서 온라인 바둑에 공개된 기보로 트레이닝을 했다고 한다. 혼인보의 기보는 누구도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에 벌어지는 대국은 대국자인 바둑 기사가 대회를 개최한 기원이나 대회 개최 측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관례이다.

알파고가 아니더라도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정상급 기사들이 둔 바둑 기보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저작권이 풀려야 한다. 그리고 바둑을 둔 기사들 역시 기보 판매로 인한 수익도 보장 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인간이 쌓은 지식을 더 빨리 습득하고 AI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가 인류와 인류의 지식을 더욱 발전하게 할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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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이루지 못한 미생, 딥마인드가 남겨 놓은 것

딥마인드는 이번에 폭풍의 기사 이세돌에게 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딥마인드는 잠도 자지 않으며 무한의 시간이 존재하고 이세돌과의 격돌로 인해 더 높은 차원의 포석과 묘수를 학습하게 될 것이다.

바둑에서 인류 패배의 시간은 다가올 것이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딥마인드는 미생이다.

[고스트 바둑왕] 최종 보스 고영하 (© 슈에이샤)
[고스트 바둑왕] 최종 보스 고영하 (© 슈에이샤)

[box type=”note” head=”흑돌 그리고 핸디캡”]

혼인보와 4집 반

일반적으로 바둑은 먼저 바둑돌(흑돌)을 반상에 올린 사람이 유리하다. 통계적으로도 흑을 들었을 때의 승률이 백을 들었을 때보다 높은 기사가 많다. 바둑의 이해가 늘어감에 따라 두 번째로 바둑돌(백돌)을 놓는 기사에 대해 골프의 핸디캡처럼 덤을 주기 시작했다. 흑을 쥔 기사에게 핸디캡을 주지 않으면 흑이 압도적인 승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근세 바둑의 시작인 혼인보[footnote]本因坊. 일본의 바둑 가문.[/footnote]를 일본 기원에서 관리함에 따라 1940년 본인방전[footnote]혼인보센(本因坊戰)[/footnote]이라는 대회가 열리게 되면서 백에게 4집 덤을 주는 핸디캡 룰을 적용했다. 흑이 4집 이상의 차이로 이겨야 승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 룰은 무승부 문제 때문에 반집이 추가되어 “4집 반”이라는 핸디캡이 공식 프로 바둑 리그에 도입되었다.

혼인보 슈사쿠 (本因坊秀策. 1829.6.6 ~ 1862.9.3). 일본 에도 시대 최고의 바둑 기사 중 하나.
혼인보 슈사쿠 (本因坊秀策. 1829.6.6 ~ 1862.9.3). 일본 에도 시대 최고의 바둑 기사 중 하나.

참고로 지금도 영어권과 각종 대회에서 바둑의 용어가 일본식인 것은 일본이 현대 바둑을 체계화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go”를 검색하면 구글에서 만든 go 언어가 검색되는 것보다 바둑의 일본어 표기인 go가 검색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국수 조치훈이 본인방전을 10연패 한 이후 본인방전에서 5번 이상 연속 우승한 사람에게는 명예 혼인보의 이름을 수여하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고 한다. 이 규칙에 따라 조치훈은 10연패 한 공로로 곧바로 제25대 혼인보가 되어 ‘혼인보 치훈’이라 불리게 되었다.

응씨배와 7집 반

점차 바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짐에 따라 4집 반이 과연 적절한 덤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시작되었다. 한국 대한일보사가 1973년 백남배를 개최하면서 5집 반을 덤으로 정했다. 곧이어 바둑의 본류인 일본 본인방전에서도 1974년부터 5집 반이 일반 룰로 적용되었다.

바둑에 대한 종주국이라 생각했던 중국은 바둑의 맹주가 중국임을 알리기 위해 세계 바둑 대회를 개최하려 했다. 대만의 대부호 응창기는 기존의 일본식 덤(핸디캡) 룰이 흑에게 여전히 유리하다 생각했고 통계를 통해 분석한 결과 8점(한국식 계산으로 7집 반 정도)의 덤을 주는 응씨배 룰을 만들었다.

1988년 7월 21일 자 경향신문 기사. 제1회 응창기배에 조훈현, 조치훈 9단이 출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88년 7월 21일 자 경향신문 기사. 제1회 응창기배에 조훈현, 조치훈 9단이 출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중국은 중·일 바둑 교류전을 통해 11연승을 한 철벽의 수문장 녜웨이핑(섭위평)이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그는 문화혁명기에 부르주아의 도락인 바둑을 둔다는 이유로 흑룡강성 돼지 농장에서 돼지집을 지키는 강제 노역을 한 경험이 있던 사람이었다.

정식 바둑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일본 최강의 바둑 기사 3명을 같은 날 삭발하게 만들었다. 일본 기사의 처지에서 패배하면 삭발하겠다는 공언을 했지만 결국 철벽의 수문장인 녜웨이핑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 최강의 기사들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같은 날 굴욕스럽게 삭발했다고 한다. 이렇게 커가는 중국 기사들의 실력을 믿고 대만의 부호 응창기는 새로운 바둑의 룰로 일본의 바둑을 누르고 바둑의 중심에 서려고 했다.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

국제 대회의 모양새를 만들어야 했기에 한국의 바둑 기사도 초대되었다. 문제는 단 한 명의 바둑 기사만이 출전권을 받은 것이었다. 일본 5장, 중국 4장, 대만 3장의 출전권에 비춰보면 한국은 들러리, 찬밥 대우를 받았고 확률상 한국의 우승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녜웨이핑은 간절했다. 흑룡강성 돼지우리에서 바둑을 둔다는 이유로 노동교화형 을 받았던 그가, 그 처참한 상황에서도 머리 속에서 바둑을 두었고, 중국 바둑 부흥의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나 조훈현은 더 간절했다. 한국은 바둑의 변방이었고 홀로 출전했기에 무게는 남달랐다. 다섯 번의 팽팽한 승부 끝에 녜웨이핑(섭위평)은 1988년 조훈현에게 응씨배 첫 우승을 헌납할 수밖에 없었다. 국수 조훈현의 우승[footnote]웹툰 [미생]에서는 조훈현 9단이 바둑왕이 된 응시배의 마지막 대국의 기보가 매 회 나왔다.[/footnote] 이후, 세계 바둑의 주도권은 근세 바둑의 룰을 만든 일본에서 실리적인 바둑을 두는 한국으로 힘의 균형이 이동하게 되었다.

응씨배 우승 트로피를 받는 장면 (©한국기원)
응씨배 우승 트로피를 받는 장면 (©한국기원)

이런 바둑의 치열한 혈전을 통해 덤이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를 치열하게 찾아갔다. 한국은 2003년 제3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덤 6집 반을 채택함으로써 선수가 두는 유리함을 6집이라 인정하였다. 현재 일본은 6집 반, 중국은 덤을 7집 반으로 흑이 가지는 유리함을 평가하고 있다.[/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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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바둑 기보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저작권이 풀려야 한다. 그리고 바둑을 둔 기사들 역시 기보 판매로 인한 수익도 보장 받아야 할 것이다.”
    대가 없이 저작권을 풀라고 하면서 기보 판매 수익 보장?
    공짜를 팔아서 수익을 보장? 어떻게?

  2. “바둑 기보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저작권이 풀려야 한다. 그리고 바둑을 둔 기사들 역시 기보 판매로 인한 수익도 보장 받아야 할 것이다.”

    대가 없이 저작권을 풀라고 하면서 기보 판매 수익 보장?

    공짜를 팔아서 수익을 보장?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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