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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뷰징을 하면서 매일 타사의 기사를 베꼈다. 이 회사의 직원 다수가 그렇게 어뷰징을 했다. 이 회사는 날마다 작성한 기사가 몇 건인지 날마다 사내 게시판에 게시했다. 다른 곳에서도 인사고과 때문에 주기적으로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의 통계를 낸 적이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기사의 내용이나 품질도 평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다른 모든 요소는 배제한 채 오로지 기사 작성 건수만을 실적으로 인정했다. 내가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날은 별로 없었다. 어뷰징이 아무리 남의 기사를 베끼는 일이라고 해도 나는 언론사 경험이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사회 초년생이거나 언론과 관련 없는 일을 했었기 때문에 출발선이 달랐다. 이렇게 기사 작성 건수를 강조하는 어뷰징팀이 하나 있고, 또 여러 회사가 어뷰징팀을 갖고 있다.

그들은 기사를 서로 베낀다. 나중에는 내가 베낀 기사가 어디서 베낀 것인지도 잊는다. 한번은 내가 베껴온 기사 하나가 트래픽 순위에서 중상위권을 차지했다. 팀장이 이 기사를 누가 썼냐고 물었다. 나는 기사의 제목을 쓴 것은 기억했지만 기사를 어디서 베꼈는지는 고사하고 기사가 무슨 내용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렇게 대답했다. 팀장은 나를 크게 칭찬했다. 기사를 하도 많이 써서 기사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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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1: 내부적으로 표절을 방지할 인력과 시간 부족

표절한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표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도 이로 인한 마찰이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표절 여부를 확인할 시간도 인력도 없다. 가끔 오랫동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는 검색어가 나오면 같은 검색어로 기사를 계속 양산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내가 표절한 기사를 다른 회사에서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기사에서 맞춤법이 틀린 것을 수정해 내가 소속된 회사의 기사처럼 꾸며서 냈다. 신문사에서는 같은 기사를 하루에 몇 번씩 보고 또 봐도 다음 주면 기사에 맞춤법 오류가 있었다며 평가서가 날아오고는 했다.

나는 어뷰징팀에서 기사를 표절하면서 맞춤법만 한 번 보고 올렸다. 신문을 제작하면서 수없이 들여다봐도 오류가 나오는데 긁어와서 딱 한 번 본 기사에 오류가 없을까. 미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서 해당 검색어가 내려오지 않은 경우 기사를 추가로 재생산하기 위해 포털에서 기사를 검색하는데 내가 못 고친 맞춤법 오류를 그대로 갖고 있는 기사가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확인하지 못한 오류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우연히 내가 올린 기사를 타사가 표절한 사실을 알았다고 치자. 어차피 내 기사도 표절한 기사라 할 말도 없다.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의 단독 인터뷰를 따냈는데 그 기사를 타사가 그대로 긁어다 붙였다면 그런 경우에는 상대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를 지워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공들인 기사를 표절한 경우라도 대개 이 선에서 마무리된다.

이유2: 원저작자의 소송 의지 부재

둘째, 기사의 원저작자가 소송을 의뢰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전까지 내가 일하던 언론사들은 주로 정부가 보내는 보도자료를 받았다. 지금도 정부 주요부처를 검색해 들어가면 정부가 작성하는 보도자료들을 볼 수 있다. 정부의 보도자료는 말 그대로 보도할 수 있는 자료다. 그 자료를 토대로 기자가 취재를 해서 기사를 작성한다. 개략적인 주제문과 표로 이루어진 정보 더미 같은 문서라 보도자료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정부의 보도자료를 처음 보면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가지고 언론사마다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보도자료를 상상하다가 여기서 보도자료를 받아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연예기획사나 방송사의 예능 또는 드라마 프로그램 홍보 담당자가 보내는 보도자료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기사였다. 홍보 담당자가 기자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아예 기사를 작성해서 보낸다. 목적이 홍보가 되고 보니 과장이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기사는 기사였다.

이 회사는 ‘부디 제 글을 복사 붙여넣기 해주세요’라는 요지의 글을 하루에 수백 통씩 받았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는 한 번 읽히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읽었다고 다 복사 붙여넣기 해주는 것도 아니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들어가거나 기자 입맛에 맞는 보도자료만 복사 붙여넣기 해도 상당히 많은 양의 기사를 내보낼 수 있다. 자기들이 알아서 기사를 써 보내는데 기자가 굳이 힘들게 취재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들어오는 보도자료는 당연히 복사 붙여넣기로 기사를 내도 법적 분쟁에 휘말릴 일이 없다. 법적 분쟁은 고사하고 홍보 담당자와의 관계에서 갑의 위치를 잡는다.

보도자료를 복사 붙여넣기한 타사 기사를 우리가 베끼고 우리가 베낀 기사를 또 다른 회사가 긁어간다. 그러니 한 사안에 대한 기사가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똑같은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 어뷰징이라고 하지만 어뷰징 소스의 대부분은 이렇게 날아오는 보도자료에서 기인한다. 걸릴 일이 없는 표절인 셈이다.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단어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리고 널리 알렸으니 성공한 거겠지만 정보 소비자는 잔뜩 쌓인 인터넷 쓰레기를 마주하게 되고 기자는 갑이 되는 대신 자신의 무능을 드러낸다. 날마다 일어나는 이 힘겨루기에서 늘 홍보 담당자와 포털이 승리한다.

하루는 기사로 된 보도자료를 복사 붙여넣기하고 또 하루는 기사 표절을 하면서 언론사는 타성에 젖고 언론사는 취재하지 않는 언론, 언론 아닌 언론으로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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