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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움베르토 에코

지난 2012년 7월 6일 조선일보에는 “종이책이 사라진다고? 인터넷도 사라진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에코가 가진 지적 권위 때문이지 아니면, 인터뷰에 담긴,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에코의 비판적 진단이 갖는 설득력 때문인지 모르지만, 해당 인터뷰 기사는 트위터 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에코가 말한 아래와 같은 주장은 조선일보 등이 한결같이 주장해 온 SNS 폐해와 네이버 등 포털에서 자극적인 제목 장사에 빠진 일부 인터넷뉴스업체 대한 비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TV는 지적 빈자를 돕고, 반대로 인터넷은 지적 부자를 도왔어.”

“(인터넷은…)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지적인 빈자들에게는 오히려 해로운 영향을 미쳐요. 이럴 때 인터넷은 위험이야.”

“블로그에 글 쓰는 거나 e북으로 개인이 책을 내는 자가 출판(Self Publishing)은 더욱 문제요. 종이책과 달리 여과장치가 없어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선별과 여과의 긴 과정이오.”

“특히 쓰레기 정보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한 지적 빈자들에게는 이 폐해가 더 크지. 인터넷의 역설이오.”

움베르토 에코의 이와 같은 자기 우월감에 빠진듯한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6년 재론 라니에(Jaron Lanier)는 ‘Digital Maoism(디지털 마오이즘)’에서 그리고 2007년 앤듀류 킨(Andrew Keen)은 “The Cult of the Amateur(아마추어를 추종함)”에서 웹 2.0, 공유 문화,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이 우매한 사용자를 선동하고, 기자와 교수 등 지식 엘리트를 공격하는 등 공산주의 또는 칼 맑스의 21세기 재현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또한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 등 검색서비스가 인간의 독립적 사고능력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다는 주장은 에코가 말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안타까워요. 휴대폰이나 카메라 없이는 요즘 아이들은 세상을 볼 수 없나 봅디다.”라는 비판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 문화에 대한 에코, 라니에, 킨 등의 주장에 동감을 표할 것인가 아니면 비판적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결국 인터넷이 가져오는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에 대한 영향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기차여행이 가져온 인식의 충격과 변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차 및 철도의 탄생이 미친 사회적 또는 문화적 영향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독일인 볼프강 쉬벨부쉬(Wolfgang Schivelbusch)는 1977년 “철도여행 이야기: 19세기 공간과 시간의 산업화에 대하여(Geschichte der Eisenbahnreise: Zur Industrialisierung von Raum und Zeit im 19. Jahrhundert, 영어번역 The Railway Journey: The Industrialization and Perception of Time and Space, 영어요약본 내려받기)”에서 기차와 철도라는 새로운 기술이 19세기 당시 어떠한 문화적 두려움과 거부감을 야기했는지 상세하게 실증하고 있다.

19세기 말 기차여행은 어떠한 문화적 충격을 당대 사람들에게 던졌을까? ‘장발장(레 미제라블)’을 창작한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달리는 기차의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얼룩으로 보일 뿐이다. 푸른 들판의 곡식이 노란 머리카락으로 보인다. 마을과 교회 첨탑 그리고 나무들이 미친듯이 춤을 춘다”. 걸어서 여행하거나 때론 마차를 타고 여행했던 공간이동 경험이 전부였던 빅트로 위고에게 달리는 기차의 속도는 보는 행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했다. 기차여행 이전에는 사물 각각은 인간의 눈에 그 자체로서 인지되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기차에서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사물은 항상 이웃한 사물과 함께 ‘괴상한 덩어리’로 인식되었다.

다시 말해 기차 여행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인식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인식체계는 늘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놀라움보다는 두려움이 지배적 반응이었다. 현대의 초고속 기차와 비교해보면 느려터졌던 당시 기차 속도에 놀라 스트레스와 두려움에 빠졌던 건 빅토르 위고만이 아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기차 여행이 동반하는 속도의 두려움 때문에 기차 여행길을 항상 위스키와 함께했었다고 한다. 기차여행이 가져다주는 시각적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디킨스의 방법이 위스키였다면, 이를 극복하자고 노력했던 실험의 결실은 바로 ‘파노라마’다. 파노라마는 사물을 그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연관된 사물과 함께 보는 19세기 사회적 시각의 산물이다.

기차여행은 당대 사람들에게 시각적 인식 외에도 또 다른 문화 충격으로 이어졌다. 언제 내릴지 모르는 사람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장시간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 당시 사람들에게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였다. 볼프강 쉬벨부쉬는 당시 신문 문화면 기사 분석을 통해 ‘낯선 타인과의 여행’이 많은 이들에게 심리적 질병으로 이어졌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처방전으로 등장한 것이 ‘여행 중 독서’다. 그 결과로 기차에 오르기 전 책과 신문을 사는 행위가 나타났다. 낯선 사람 앞에서 책을 읽는 행위는 마치 오늘날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처럼 고립과 단절을 의미했다. 이 때 탄생했던 개념이 ‘사적 공간(Privacy)’이다. 공적 공간(=기차)에서 단절된 개인 공간을 방해하거나 그 개인의 이른바 신상을 알려해서는 안된다는 기차 여행 예절이 당대 신문에 소개되었다.

미래를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렇게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고 확산할 때, 기술은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은 적지 않은 경우에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동반한다. 그리고 이 병리 현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새로운 사회적 습관 및 행동양식이 형성된다. 트위터 타임라인의 모든 트윗을 읽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가? 마치 서점에 있는 모든 책을 평생에 걸쳐 읽어야 한다면 이 또한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서점 스트레스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책을 읽어야 할 의무감을 벗은 지 오래며, 모든 책이 진실을 담고 있거나 유익하다는 생각과 작별한지도 오래기 때문이다. 네이버 뉴스케스트에 올라온 낚시성 기사를 클릭하며 호기심을 채우거나, 위키피디아의 폭넓은 집단지성보다는 네이버 지식인이 던져주는 단편적인 정보에 만족할 때도 있다. 이것이 에코가 말한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분별할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의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성장통’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아이에게 새롭게 인식된 사물은 언제나 혼란을 주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물을 빠르게 이해하고 수용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때론 환경변화가 주는 불확실성에 아파하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감 또는 스트레스에 직면할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에 다소 거리감을 두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과거를 되돌아 보며 “아~ 이런 변화가 있었구나!”라며 회고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용기를 내어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실험하고 그 부작용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어린아이가 용기있는 실험에 상처를 받을 때 우리는 “괜찮아(It’s OKAY!)”라고 위로하면서 아이의 또 다른 탐험을 독려해야 한다. 알랜 케이(Alan Kay)가 말했듯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이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움베르토 에코 씨, “당신의 상처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독기어린 비판도 괜찮습니다. 월드와이드웹과 함께한 인터넷의 역사는 이제 고작 20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 역사는 당신이 르부르 박물관 창밖으로 던진 ‘장미의 이름’보다 짧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월드와이드웹과 관련된 실험을 계속하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상처와 비판을 겸허히 듣도록 할게요. 우린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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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정수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메디아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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