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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와 특종은 과대평가되었다 [특집]

robertivanc (CCL : BY)

종사자든 구경꾼이든 흔히 생각하는 언론의 로망은, ‘속보’와 ‘특종’이다. 누구도 모르던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오로지 내가 터트린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업인 분야에서 이것만큼 직관적으로 훌륭한 미덕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도 더 빠른 속보를 위해 많은 기자들이 날밤을 새고 있고, 특종을 위해 취재처를 돌고 또 돌고 있다. 언론사들은 피 튀기는 경쟁을 하고 있다.

한가지 문제는, 그것이 턱없는 과대평가라는 점이다.

과대평가된 가치

과대평가라는 말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도나도 무턱대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달려드는 모습, 그리고 그것에 몰입하느라 다른 더 중요한 가치들을 방치하거나 해치는 일을 비판하는 것이다.

우선 속보라는 가치를 생각해보자. 신속한 뉴스가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실제로 유용한 정도의 속도 이상을 경쟁하기 위해 무의미한 낭비를 하고 있지 않나 돌아볼 필요는 차고 넘친다. 예전의 제도화된 언론 시스템에서는 일간신문이 하루 한번(조 석간으로 두 번), 방송뉴스가 아침 저녁 주요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시간대가 정해진 정기적 뉴스전달을 했다. 그 사이에 생기는 틈새는 연합뉴스 등 뉴스통신사가 채웠는데, 이들은 그 대신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접점이 적고 주로 다른 언론사들을 경유해서 전달되곤 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그런 틀거리는 크게 바뀌었다. 회사조직으로서의 언론사들은 기존 체계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데, 뉴스 유통 환경은 훨씬 복합적으로 진화했다. 지금은 온라인을 통해서 언론사가 24시간 뉴스를 뿜어내고, 통신사도 속보를 언론사 제공은 물론이고 대중들에게도 직접 뿌리고, 뉴스는 언론사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와 기타 공간들에 빠르게 확산된다. 트위터 같은 한층 경량화된 정보전달 관계망은 예전에는 취재 소스로서 언론을 경유해야 했을 이들이 직접 뉴스를 실시간으로 터트릴 수 있다.

뉴스사이클은 사람의 일반적 생활주기보다 촘촘해졌다.

언론사 뉴스가 정시발간이 아닌 24시간 풀가동이 된 것과 아예 언론 외적인 뉴스 유통까지 가세하자, 뉴스사이클은 사람의 일반적 생활주기보다 촘촘해졌다. 물론 사람들의 생활 역시 점차 디지털 유목민화된다느니 늘 연결되어있다느니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일어나고 일하고 마치고 쉬고 자는 생활주기가 있다. 사람은 그런 생활 주기 안에서 뉴스에 주의력을 할애할 수 있는 구간과 없는 구간이 있는데(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속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미 뉴스생산의 속도는 그것을 넘어섰다. 그렇기에 대규모 금융 거래 같이 실시간 정보가 업무에 필수적인 전문분야, 구조가 필요한 재난 상황, 스포일러(예:스포츠)를 피하고자할 때 등을 제외하면, 생활 주기를 넘어선 속보는 종종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생활 주기 자체를 압박하는 스트레스에 지나지 않게 된다.

물론 각자의 주요 관심 분야마다 속보를 원하는 영역이 다르기는 한데, 그 안에서조차 정말로 속보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속보에 단순히 길들여진 것인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신제품 전자기기 발표, 특정 정치 후보의 당선결과 같은 것이 분초를 다투는 일인가, 아니면 다음날 잘 정리된 내용으로 봐도 큰 상관이 없는 일인가. 아니 정말로 분초를 다투는 일이라고 해도, 어차피 신속하게 단신만 전하는 것은 통신사들이 하고 있고 트위터 등에서 1차 소스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다. 이 언론 저 언론 너도나도 같은 것에 뛰어들어봤자, 바닥을 향한 출혈 경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종, 혹은 단독 역시 비슷한 맥락에 있다. 남들이 아직 주목하지 않은 새로운 화제를 발굴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인 것이 아니다. 다만, 온라인의 정착과 함께 이미 뉴스환경은 다양한 뉴스 유통방식이 넘치고, 수많은 언론사와 기타 뉴스전달자들이 실시간으로 달려들어서 조금이라도 화제성이 보이는 내용은 서로 카피&페이스트를 해가는(그나마 양심이 있는 소수의 회사는 인용 처리 비슷하게라도 하지만)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특종이란 기자 개인의 자존심에 득이 될 수는 있어도, 기타 영역에서는 꽤 의미가 작아졌다.

특종이 의미를 지녔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해당 화제에 대해 누릴 수 있는 일시적인 담론 독점 효과, 둘째는 더 뛰어난 취재력을 지녔다는 언론 브랜드 향상이다. 즉 이 소식은 A언론의 기사를 봐야한다, 다른 곳에서는 못한 것을 해낸 A는 우월한 언론이구나 뭐 그런 식이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환경변화 덕분에 독점 효과의 기간이 형편없이 짧아졌다 – 화제성이 있는 내용이라면 기껏해야 수 시간, 경우가 나쁘면 수 십 분에 불과하다. A언론에서 발표한 소식을 보고 B언론이 취재에 들어가서 며칠 후 그들도 관련기사를 내는 고전적 방식이 아니라, A언론의 기사를 그대로 복사한 후 단어 한 두 개만 바꾼 후 마무리를 “…이라고 A언론이 보도했다”라고 올리는데 시간이 걸릴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이 실시간이 아닌 자신의 생활주기에 맞추어 뉴스를 펼치는 그 순간에는, 원래 특종을 때린 A언론의 기사, 그것을 복제한 B-Z언론의 기사들이 한꺼번에 포털에서 쏟아진다.

언론브랜드 효과라는 후자의 경우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큰 화제의 사건이라면, 다른 매체들 역시 엄청난 물량으로 복제기사 및 후속보도를 쏟아내고, 그 속에 최초의 단독 특종 따위는 금방 잊혀진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저널리즘 관행에서는 소스에 대한 존중이 매우 희박해서, A언론의 기사를 가져와놓고는 “한 언론에 따르면” 정도로 뭉개는 경우가 허다하다. 온라인상에서 원래 기사로 링크를 달아주는 경우는 거의 천연기념물급이고 말이다. 즉 특종이 대단한 내용일수록 특종의 효과를 누리기 힘들다. 단, 지나치게 논쟁적이어서(예를 들어 흥미롭지만 근거가 부족한 의혹, 취재윤리 문제가 상당한 내용 등) 화제성만 챙기고 책임은 함께 업어가고 싶지 않은 내용은 예외다.

몰입속에 잃는 것

반면에, 이쪽을 추구하느라 생기는 폐해가 만만치 않다. 우선 속보의 경우, 조금이라도 빨리 탈고해 내느라고 갈수록 검증을 갈수록 건너뛴다. 속보에서는 다수 소스로 확인하는 삼각검증 절차가 종종 사라지는 것은 물론, 같은 기사를 무조건 4-5개로 쪼개는 것도 흔하다. 맞춤법 같은 기초적인 교열과정도 없이, 무조건 인터넷으로 온 세상에 송고하고 본다. 개별 기사의 내용 문제보다 좀 더 구조적으로 들어가자면, 속보 양산을 위해 기자들의 업무 부담 가중은 물론이고 미숙련 인력으로 짜인 ‘속보팀’을 운영하여 더욱 함량미달의 기사가 양산된다. 특히 속보팀의 경우 인터넷에서 떠도는 재미있는 유행 내용들을 적당히 긁어서 문화트렌드 혹은 해외토픽으로 채워 넣는 사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소스 신뢰성에 대한 검증은 거의 논외로 취급되고 있다.

속보를 양산하는 것은 한국에서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로 인한 왜곡이라 생각하기 쉬우나(실제로 그런 면이 상당하나), 나름대로 세계적 현상이다. 예를 들어 언론규범을 비교적 충실하게 추구하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뉴욕타임즈만 해도 그런데, 다만 좀 더 체계적으로 매체 채널을 관리하여 속보와 일반 기사의 기본 작성법이나 유통 경로를 아예 달리하곤 할 따름이다. 트위터 속보, 속보기사를 내놓은 후 보충자료의 지속적 연동 같은 것 말이다.

이미 임계점을 지난 상황에서의 속보경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오늘날의 속보 경쟁은, 속보가 의미 있었다고 여겨졌던 과거의 뉴스매체 환경 기준을 현재의 변화된 뉴스매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잣대로 엉뚱하게 동원하는 격이다. 더 빨리 소식을 내놓는 쪽이 승리자라는 구도가 완전히 틀려먹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임계점을 지난 상황에서의 속보경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빠르고 엉터리인 뉴스를 양산하는 곳으로 점찍혀봤자 어느 짝에 쓸모 있겠는가.

특종/단독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른 곳에 노출되기 전에 내놓느라, 속보의 문제를 고스란히 품게 된다. 게다가 특종의 화제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내용 과장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 역시 세계적 현상으로, 멀게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 당시에 르윈스키 스캔들을 특종 터트린 인터넷 뉴스매체 드럿지 리포트의 사례가 있다. 해당 사안의 원래 취재 정보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 취재 검증 중이었던 사안을 중간에 정보를 유출 받아, 드럿지가 검증이고 자시고 그냥 펑 터트렸다. 그 후 큰 난리가 나서 더 사건조사가 진행되니 맞아떨어진 것은 그저 결과론일 뿐이다. 아니면 좀 더 가까운 국내 사례로 누구나 쉽게 기억할 만한 것이라면, 결국 가짜로 판명난 신동아의 ‘미네르바 인터뷰 특종’이 있다. 솔직히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초기 히트작 신정아 인터뷰 역시, 화제성은 높지만 알맹이 없기는 만만치 않았다. 심층 분석으로서의 특종보다는(이 경우는 종종 오히려 기획연재의 형식으로 돌리게 된다) 폭로 형식의 특종이 훨씬 흔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종 경쟁은 공식적 정보 출처의 제한이 심할 때(즉 비공식 출처에 대한 의존이 높을 때) 더욱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사안 분석력/전달력 자랑이 아니라, 소스 장악력 자랑에 매달리는 것이다. 공식적 정보 유통에 빈틈이 많고 소위 ‘비선’에 대한 환상이 큰 한국 현실에서 더욱 절실한 문제이기는 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의 특종보다는 두고두고 돌아올 레퍼런스를 노려라.

그래서 결국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당신들, 속보와 특종을 포기하라. 속보와 특종을 규제하는 언론법을 만들자. 뭐 이런 식의 무리한 주장을 떠받들 만한 바보는 없으리라 우선 전제하도록 한다. 우선 크게 세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진지하게 뉴스미디어를 추구한다면, 다시 뉴스사이클을 중시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정리하고 소화된 내용의 기사가, 생각과 말의 속도와 같아진 트위터를 속도라는 종목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정리된 내용을 통한 사안의 이해 확산이 바로 전문 직종으로서의 언론이 지니는 장점인데, 결국 장점으로 승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SNS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활용하는 다른 층위로 결합시켜야할 따름이다. 여전히 주요 소식은 24시간 뉴스사이클, 의견과 정보 종합은 1주일 사이클, 심층 분석은 월간 사이클, 특집 기획은 계간 사이클이라는 흔한 기본틀에서 사고하면서 조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금의 특종보다는 두고두고 돌아올 레퍼런스를 노려야 한다. 먼저 터트렸다고 왕이 아니라, 극심한 관심 경쟁 와중에 결국 사람들이 이곳을 자꾸 언급하고 링크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기에 사안의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쪼개고 분석하는 것이 훨씬 중장기적으로(즉 당장의 실시간 이외의 모든 기간 동안) 가치가 있다. 사안에 대한 풍부한 맥락화 또한 비슷한 방향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찾아낼 수 있는 체계적 아카이빙과 접근성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속보와 특종에만 매달리면 그런 설계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셋째, 담론의 지속성을 챙겨야 한다. 비슷한 주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매달리는 것 말이다. 하나의 속보/특종보다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계속 이후 상황을 책임지고 다루어준다는 지속적 신뢰성이 브랜드에도 더욱 유효하다. c일보만 해도 ‘자본주의4.0’이라는 심히 구린 캠페인이나 ‘게임은 마약이다’라는 창피하기 그지없는 기획을 단지 그들의 기획글들에서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우려먹는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생각의 깊이도 사회적 함의도 중요한 경향신문의 ‘새로운 사회계약’ 캠페인은 딱 특집 기간에 꼭지들 나왔던 것 외에는, 지금 어디 있는가. 강정마을도 그렇다. 2012년 초에 결국 들이닥친 발파작업 시작에 대한 속보는 넘치지만, 시기별 주요 플레이어와 논란이 모두 정리되어 있고 지금도 업데이트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타임라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물론 그런 작업을 위한 지속적 관심에 소요되는 노동력이 만만치 않고, 그것에 비해 속보/특종만큼 순간폭발력의 조회수를 올리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사안에 대한 장악력, 언론의 품격과 브랜드를 책임지는 것은 지속적 담론의 향방이다. 신문지와 라이터기름만큼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결국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불은 계속 꾸준히 타고 있는 숯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은, 그리고 아마 비슷한 맥락에서 제안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방안들은, 숨돌려가며 생각도 좀 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느린’ 뉴스의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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