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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와 이삭줍기: 최저가와 최고만 살아남는 글로벌 양극화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 레위기 19장 9절, 10절

성경에 등장하는 이 대목은 마을 공동체의 관습 중 하나를 나타낸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사짓는 마을 공동체에는 역사적으로 독특한 관습이 있었다. 논밭의 곡식을 추수할 때, 모퉁이까지 모두 철저하게 긁어 들이지 말 것. 떨어진 곡식 이삭은 줍지 말 것.

그 이삭은 자기 전답이 없거나 가난한 이들에게 가도록 하는 암묵적인 관습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삭을 누가 주워가긴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게 누군지 잘 몰랐다. 그냥 으레 누가 들고가나 보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어느 날 사람 A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청소기를 공짜로 나눠주겠다. 대신 이삭을 모아 우리 상회 웹사이트에서 곡식을 팔지 않겠는가? 수수료는 10%로 하자.”

그래서 사람들은 청소기를 얻어 이삭을 모았다. 그리고 마을 바깥의 도시에 상회를 통해 떨어져 있던 이삭을 모아서 마저 팔았다. 그래서 먹고살 만했던 사람들의 소득은 더 늘었고, 도시 사람들은 쌀 걱정을 좀 덜 하게 되었다. A의 상회는 번창했다. 누군가가 이삭을 못 먹게 된 것 같은데, 사실 중요하진 않은 일이다. 이것이 농업으로 비유한 ‘최초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퍼블릭 도메인 돈 공유 경제 유로

이삭과 유휴자원

앞서 이삭으로 비유한 것들은 현대 경제로 치면 다양한 자원을 모두 포함한다. 공간, 시간, 차량과 같은 재화, 기술, 서비스, 지식.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을 한 경제의 유휴자원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것들이 언제나 사용 중인 건 아니다. 오히려 여유가 많이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이다. 차량을 자주 타는 것은 아니나 없으면 안 되어서 차량을 가진 사람은 자가용을 놀리기 쉽다.

그런 환경에서 차량을 공유하면 나는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경제와 비즈니스를 각각 공유경제, 공유경제 비즈니스라고 부르면 된다. 즉 실제로 공유(sharing)하는 것이 아니라, 임대(rent) 계약을 실시간으로 맺었다 풀었다 하는 것으로 마치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공유경제 기업들의 사업모델은 역시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이런 것이 가능하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은다. 그리고 알아서들 계약을 맺고, 대신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공유경제 비즈니스다. 이렇게 말하면 대체 임대업과 뭐가 다르냐고 물어볼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두 가지가 다르다.

하나는 공유경제 하에서 플랫폼을 가진 기업은 직접 아무것도 거래하거나 고용하지 않는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임대업에 비해서 훨씬 적은 단위를 이용자들이 거래한다는 점. 렌트카와 달리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는 정확히 이용한 거리만큼 비용을 지불한다.

우버 vs. 모범택시 (출처: 우버) http://blog.uber.com/ubervsmobum

우버 vs. 모범택시 (출처: 우버)

유명한 공유경제 기업들이 있다.

이런 기업들의 가치평가는 엄청난 수준으로, 우버는 무려 45조 원, 에어비앤비도 10조 원이 넘는 가치평가를 받았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1. 우선 IT와 모바일 기술이 성숙하면서, 사람들이 더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수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이삭’이 있다는 사실과 그게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마주쳤으며, 거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2. 또한,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인 불황과 양극화로 인해 사람들은 뭔가를 사서 쓴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소득이 늘지 않다 보니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3. 그리고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로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대규모 자본이 투자처를 찾아 나섰다.

그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공유경제 기업들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룩했다.

이런 공유경제의 순기능은 아주 확고하다. 개인의 입장에서 비용을 아끼기 편해졌고, 공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더 넓은 시장과 만나게 된 것이다. 즉 수요와 공급 모두 효율성이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심화하면서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다.

파괴적 혁신 혹은 그냥 파괴

서두에 언급한 비유로 돌아가 보자. 사람 A는 처음에는 마을 하나와 도시 하나에서 그런 비즈니스를 생각해 냈다. 실제로 에어비앤비의 유래는 세 명의 공동 창업자가 자기들 방에 매트리스 세 개를 깔고 시작한 것이다. 거기까지는 파괴적 혁신이다.

그런데 A가 하다 보니 욕심이 난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는가. 이삭이 떨어져 있는 양은 원래 제한되어 있다. ‘남는’ 자원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그러려면 두 가지 중 하나는 확실히 해야 한다.

  1. 더 많은 마을과 더 많은 도시를 끌어들인다
  2. ‘이삭’에 만족하지 않는다

실제로 공유경제 기업들은 둘 모두를 노리고 있다.

우선 1번 경우, 작년 논란이 된 바 있고 지금도 가시지 않은 우버 논란에서 볼 수 있듯, 많은 공유경제 기업이 전 세계로 진출하는 중이다. 공유경제 비즈니스의 규모는 ‘이삭’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휴자원의 공급이 없으면 공유경제 비즈니스는 유지될 수 없지만, 공유경제라는 형태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가져갈 수 있다. 공유경제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막대한 금액을 투자받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그것이다. 잘만 하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할 수 있다는 확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결국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삭줍기에 만족해야 하는가? 세상의 곡식을 우리 상회를 통해서 거래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 작 (Millet, Des glaneuses , 1857)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1857년 작 (Millet, Des glaneuses , 1857)

더 많은 마을과 도시를 끌어들이는 것이 유휴자원의 ‘양’을 늘리려는 생각이었다면, 이삭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유휴자원이라는 개념을 바꾸려는 생각이다. 즉, 남는 것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빌려주고 빌려쓰는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자. 그 부분에서부터 공유경제의 ‘공유’는 본격적으로 다른 것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파괴적 혁신이 파괴로 변하는 순간이다.

우버는 아예 리무진을 대여하고, 기사를 모아 직접 서비스를 하기 시작했다(포인트는 그럼에도 우버가 어떠한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점). 에어비앤비는 원래 남는 방을 숙박용으로 내주는 것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에어비앤비로 수익을 내기 위해 부동산을 사거나 집을 새로 짓는다. 앞서 언급한 태스크래빗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공급하는 사람들의 전문성이 높아지고, 공급하는 사람들이 ‘전업으로’ 그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유휴자원이 고갈될수록 공유경제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이전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리무진을 빌리고 기사를 모아 서비스를 하면 그건 유사 운송업일 뿐이다. 에어비앤비를 위해 방을 사서 민박 장사를 하면, 그건 그냥 숙박업이다. 태스크래빗에서 생계를 유지한다면 태스크래빗은 그저 아웃소싱 기업과 미국판 알바천국의 중간쯤이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공유하는 ‘형식’과 공유경제 기업들로 인한 경제 자체의 변화다.

공유라는 ‘형식’

공유경제가 소비자들에게 매력이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실제로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싼가 하는 부분이 문제다. 이삭이 실제로 많이 떨어져 있었다면 그건 원가가 공짜에 가까우니 실제로 싸다. 그런데 에어비앤비를 위해 집을 짓는 상황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 비용이 내려가는 것은 실제로 비용이 내려가는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숙소의 좋고 나쁨을 기업의 보장 및 손해배상 책임이 아니라 다른 이용자들의 ‘별점’으로 판단해야 하거나, 소송을 걸어도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이역만리의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으로 바뀌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공유는 자발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태스크래빗이 ‘최저임금’을 인정하게 된 것은 2014년이었다. 즉, 공유라는 형식은 유휴자원이 실제로 있을 때는 가치를 창출하지만, 유휴자원이 아니라 원래 있던 영역에서 경쟁하게 될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벌어지고 있는 일은 똑같다. 그러나 구매나 대여가 ‘공유’가 되는 순간, 구매나 대여 상황에서는 기업 자체가 부담했던 위험과 불안정성에 대한 비용이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역으로 전가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니 문제가 안 될 뿐이다.

에어비앤비로 원래 임대를 해서는 안 되는 곳에서 임대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여행자들이 일으키는 소란이나 문제는 방 주인도, 에어비앤비도 책임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숙박업이었다면 문제 제기를 할 곳이 명확하다. 업체가 크다면 손해배상에 관한 문제도 쉽다. 애초에 그런 방을 숙박 용도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를 통해 공유가 가능해지면서 내부화(internalize)되었던 비용이 역으로 외부로 전가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소비하는 사람도 실제로 ‘세입자’나 ‘소비자’의 권리를 누리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공급자는 공급자대로 하는 일만 바뀌었는데 입장이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가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태스크래빗이 대표적이다. 하는 일은 아르바이트와 똑같은데 아르바이트 노동자로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건 몇 배로 어렵다.

즉, 공유라는 형식만이 오로지 앞서나갈 뿐, 다른 모든 제반 조건은 그대로다. 결국, 노동착취에 관한 문제는 거의 해결이 안 되고, 온갖 종류의 리스크가 공급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이런 문제 제기를 공유경제 기업이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공유경제 기업들이 수익을 내는 원천 중 하나가 이런 안전성 확보와 규제 감수 비용을 깎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구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여건이 안 되는 ‘유휴자원’을 배제해야 하고, 기업이 져야 하는 보증 부담도 커진다. 결국, 보장하는 수준이 비슷해질수록 공유경제 서비스가 갖고 있던 강점이 희미해지고, 비즈니스가 어려워진다.

https://flic.kr/p/2Psbqf Mark Rain, CC BY

공유경제? 안정성과 규제 비용은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출처: Mark Rain, CC BY)

모두가 적이다

공유경제 하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하나 더 있다. 더는 이삭을 줍는 것이 아니라 곡식 그 자체를 거래하게 된 것 까지는 그렇게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떨까. 도시 사람들이 다른 마을에서 곡식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것이다. A의 웹사이트를 보고 그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는 이 마을에서 곡식을 사지 않는다. 그 상황을 타개하려면 내가 가격을 낮춰야 한다.

우버에는 아주 인상적인 기능이 하나 있다. 기사들에게 ‘별점’을 매길 수 있다는 점. 달리 말하면 기사들이 다른 기사들과 더는 동업자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택시를 타던 시절에 별점을 매기는 걸 떠나 기사를 ‘평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버는 그것이 가능하며, 에어비앤비로 동네 여관이나 민박집 역시 그와 같은 평가가 가능해졌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적으로 시장이 돌아가면 살아남는 건 가장 좋고 가장 가격이 낮은 서비스뿐이다. 원래도 그것이 시장논리긴 하지만, 공유경제 하에서 자투리 자원까지 실시간으로 묶이게 되면 개개인이 받는 경쟁 압력은 이전보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지기 시작한다. 개개인이 맞이하는 ‘최저가’의 기준이 예전의 업계 단위, 동네 단위보다 훨씬 더 커짐에 따라 가격 인하의 압력이 급격히 커지는 것이다.

유명 공유경제 기업들이 서비스하는 많은 영역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경쟁 구도를 축소시킨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운송이나 아르바이트다. 택시 운임이나 최저임금은 자율이 아니다. 과당경쟁을 억제하고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유경제라는 개념 자체가 이 시도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최저가의 기준이 달라졌고 개인들의 서비스를 좀 더 엄격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면서, 공급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급격히 확대된다.

직장에 다니면서 택시의 승하차 거부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업주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왜 문제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자는 퇴근하면 소비자다. 공급자의 소득이 양극화하는 것은 곧바로 소비자의 소득이 양극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러 시장들 사이의 울타리가 깨지고 연결되면서 시장의 양극화가 극대화되는 과정이다.

더군다나 공유경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모든 것은 공유될 수 있다. 가장 만만한 것이 차나 집이었을 뿐. 오히려 쉽게 지역을 옮기기 어려운 공간이나 차량이 아니라 지식과 기술이 되면 어떨까.

이미 아마존과 같은 기업은 ‘지적 노동’에 대한 공유경제를 시작했다.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s)라 불리는 플랫폼이다. 지금이야 별 볼 일 없는 잡일을 거래할 뿐이지만, 온라인 협업 도구들이 쏟아지는 마당에 어째서 제3세계의 천재가 내 일자리를 랜선으로 뭉개버리지 못하겠는가? 결국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으로 최저가와 최고인 사람만이 살아남고 절대다수는 상황이 악화하는 글로벌 양극화로 이어진다.

디지털 유목민과 합리적 소비

유휴자원을 유용하게 써보자고 시작했던 공유경제는 이미 세상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무언가를 소유할 필요성 자체를 낮췄다. 동시에 그런 글로벌한 연결망이 모든 사람들의 베이스캠프를 부수고 도로를 놓는 중이다. 어떤 사람은 그 도로를 통해 다른 사람의 땅을 점령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역으로 점령당할 것이다.

공유경제 하에서 모든 사람은 기업가이면서 동시에 노동자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얻게 된다. 기업가의 자유와 노동자의 안전성을 동시에 손에 넣기보다는 기업가의 불안정성과 노동자의 처우를 동시에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로서는 정말로 앞으로의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사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공유경제에서 언급되는 ‘합리적 소비’란 애당초 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차를 사는 대신 빌려 탄다면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실업자가 된다. 그런 변화가 어떻게 합리적일 수가 있겠는가? 빌려주고 빌려 쓰는 모습이란 사는 사람이 없어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사실 누가 돈이 있는데도 남의 것을 빌려 쓰고 싶어하는가?

모두가 얼마나 그렇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어떤 곳에서도 안정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 인간이 얼마나 유목민처럼 살 수 있는지, 또는 인간이 얼마나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서로 시험하고 시험당하는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정부도 인간도 자유롭지 않고 오로지 자본과 기술만이 그렇다. 다수의 ‘생존’과 관계된 문제는 이렇게 다수의 손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이 글은 필자가 [20’s timeline]에도 기고해 발행한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원칙에 맞게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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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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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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