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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선진화안 단상: 다음엔 또 누구에게 무엇이 사라질까

나는 중앙대학교 졸업예정자다. 요즘 논란인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이하 ‘선진화안’)에 대해 몇 가지 자문자답하고자 한다.

요즘은 개인적인 일에 바빠서, 다시 말해 졸업을 앞두고 내 갈 길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학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 뭐지? 솔직히 오늘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 같은 학생들도 참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집에 걸어오는 길에 생각해봐야지 하다가 세 시간 사십 분 동안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좀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글로 써보려 한다.

우선 선진화안은 민주적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학내 구성원에 대한 형편없는 대접이자 부당한 행위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보다 계획안 자체에 관해 생각해봤다.

두산 중앙대

난 철학 배운 덕분에 삶의 목적이 생겼다 

나는 고등학교 때 철학 반이었다.

10개 반 중에서 철학 반은 1개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철학 반을 없앴을 때 나는 화가 나서 학교를 나가지 않기도 하고 선생님들을 미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입학한 후 내 대학 생활은 어떠했는가? 철학을 전공했지만, 배우면서 학자가 될 능력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더불어 세상이 넓다는 것과 학문은 재미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다른 공부에도 관심이 생겼다.

나는 듣고 싶은 수업은 다른 전공을 선택해서 배웠다. 자신이 없으면 청강을 하거나 책으로라도 읽었다. 연극, 물리, 정치, 경제, 문학, 심리학, 역사, 회계 등 타과 전공 수업으로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난 지금 이수한 학점이 157학점이나 된다(졸업학점은 140학점이다). 나는 전공으로 배운 철학 덕분에 진로와 삶을 설계하는 과정에 큰 도움을 얻었고,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시민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목적도 생겼다. 

선진화안, 매력적이지만 섬뜩하다 

나에게 선진화안은 매력적이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다양한 수업을 들어본 후 충분히 숙고한 뒤에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섬뜩하다고도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우리 과에서 연구자와 학자가 되고 싶다는 진로를 가진 학우는 소수다. 내 짐작으로는 전체의 15~20 %정도다. 그리고 나머지는 저마다의 직업을 얻는다. 이렇게 학자 되고 싶은 친구들이 많지 않다.

전공제를 실시하여 학자가 되고 싶은 친구들만 전공을 선택해 심도 있게 공부하게 하면 학과에는 교수님이 학생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비용편익분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제적 마인드에서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릴 게 분명하다.

‘미안하지만, 자꾸 앵꼬 나니까’ 해당 전공을 없애자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비인기 전공 폐지가 뭐가 나쁘냐고? 

그래서 그게 나쁜 것인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고 따라서 돈을 많이 내지 않기 때문에 폐지되는 것이 나쁜 것인가? 나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전공을 운영할 수가 없다는 마찬가지 이유로 모든 대학에서 그런 전공을 폐지한다면, 그 사회는 그나마 남은 전공자도 없는 채로 운영된다.

뭐가 문제냐고?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도 대학, 사회의 여론을 만들고 지성을 이끄는 곳도 대학인데 대학에서 전공자가 배출되지 않으니 사회를 바꿔나갈 하나의 원동력, 하나의 구심점, 하나의 리더가 없어지는 것이다.

전공 하나가 아니라 학문 단위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철학 한 과목, 물리학 한 과목, 조금씩 기초가 뿌리 뽑히고, 기초 없이 지어진 구조물이 튼튼할 리 만무하다. 전공은 물론이지만, 사회의 건강한 발전도 그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

입학만 목표인 학생들 vs. 원하는 걸 잃어버릴 학생들 

한편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과는 정반대로, 별로 원하지 않는 전공을 배우는 학생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학자가 되고 싶은 소수 때문에 다른 학생들은 별로 애착도 없는 전공을 붙잡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선진화안을 따르더라도 원하지 않는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을 거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전공 공부가 아니라 대학 입학 그 자체고, 원하는 것을 이뤘다.

물론 막연하게 그저 학교에 입학하고, 인기 있는 전공을 어떤 고민도 없이 선택하는 학생들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건 뭔가 순서가 잘못된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것에 관심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학생들 목소리를 듣는 게 급선무 아닐까?

중앙대 곳곳에 붙은 '선진화안'에 관한 대자보들. (사진 제공: 에민)

중앙대 기둥마다 붙은 ‘선진화안’에 관한 대자보들. (사진 제공: 에민)

총장님 왈, 선진화안은 사실은 인문학 발전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문의 발전과 더불어 학문 공동체는 물론이고 그 학문 공동체가 토대로 삼는 사회 전체의 발전이다. 학교도 학과도 학내 구성원 모두도 모두 원하는 것일 것이다.

중앙대 ‘선진화안’이 실은 인문학 발전안이라는 총장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서 인문학을 몇 학점 의무로 이수해야 졸업을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하긴 100명이 40학점씩 듣는 것보다 600명, 아니 6,000명이 6학점씩 듣는 것이 따지고 보면 더 많은 사람을 교육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나는 인문학을 확산할 수 있다면 이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수강 인원을 늘리는 걸 마냥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두 가지 이유에 의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1. 수강 신청 경쟁 심화

첫째, 수강 신청 경쟁이 심화할 것이다. 강의실의 ‘콩나물 시루화’는 더 좋은 결과는 아니다. 수강 인원이 늘어나면, 학교 당국은 그에 비례해서 교수 임용을 늘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이미 그렇게 잘해왔다면 수강신청 전쟁은 없었을 거다. 수업 중에 화장실에 가는 건 포기해야 할 만큼 작은 강의실에 숨 막히게 앉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2. 인문학 고사, 학문의 질 저하  

둘째, 인문학 수강자가 많다는 게 인문학에 심도 있는 탐구를 가능하게 하는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더불어 인문학 6학점이 졸업하려면 반드시 따야 할 학점이기 때문에 수강한 학생들에게 인문학이 어떤 의미일지도 자명한 노릇이다.

학부에서는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대학원에서는 심도 있는 탐구가 가능할 것인가? 박사에서는 가능할 것인가? 기초도 부실한 학문에 심도를 더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학문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총장은 ‘맹목적 비난’이라고 서운해했지만, 선진화안을 인문학 죽이기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앙대

선진화안 추진하는 진짜 이유 두 가지 

인문학도 많이 듣게 하고, 교수도 충원하며, 기존 학과도 유지하는 것은 왜 안 될까? 그렇게 하는 것이 인문학 확산을 확실히 보장하는 방법이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화안은 사실 인문학 확산에 대해선 별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선진화안을 통해 학사구조를 재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 가지다.

  1. 출산율 감소로 인한 대학 입학 정원 감소
  2. 사회가 원하는 인력의 수요-공급의 불일치 해소

왜 출산율은 자꾸 줄어들까? 왜 취업은 그렇게 힘들까? 왜 30년 전보다 영어도 잘하고 더 노력하고, 더 대외활동하고, 더 자격증 따는 지금 대학생들은 왜 그렇게 일할 곳이 없을까?

기업 맞춤형 학생 키우면 취업난 사라질까? 

출산율 감소와 산업 구조 재편에 따른 취업난을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키워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두 가지 이유에 의해서 불가능하다고 본다.

1.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첫째,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아무리 키워도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채용 인원은 정해져 있거나 오히려 점점 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격화된 취업 경쟁은 양질의 일자리 숫자가 줄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취업준비생 모두가 10시간 더 공부해도, 모두가 경영학을 전공해도, 해결 불가능한 구조다. 직장을 구하는 대졸자는 최소한 매해 20만 명이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기업 일자리는 최대한 낙관적으로 잡아도 매해 2만 명이 안 된다. 그나마도 점점 줄어든다. 비정규직 처우는 더 열악해진다.

위장도급이나 부당해고 같은 문제도 노동자가 대처할 방안은 더 줄어든다. 오히려 파업 이력은 이직과 재취업에서 불이익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러니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운동은 위축할 수밖에 없고, 일자리 질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그 열악한 일자리를 피하기 위해, 더 좋은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 배출을 위해 학사구조를 선진화한다지만, 어차피 다 같이 한 노력이 보상받을 길은 없다. 이제 우리는 서로서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2. 노동 환경이 앞으로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둘째,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차 사고 집 사고,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꿈을 꾸는 거라고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던 저런 조건들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빚을 내고,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친구와 동료를 돌볼 시간도 없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더 힘들다.

이렇게 살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린 와중에 대학이 그 사회에 맞춰 가야 된다니 졸업 예비생으로서 암담한 기분이다. 사회 전체적인 발전보다 자기 스스로 앞길이 캄캄한데, 사회나 학문, 인간적인 가치에 대해 신경 쓸 여유를 도대체 어떻게 가지게 된단 말일까?

출산율 감소가 문제라면 그 원인에 대처하고 있는가? 열악해지는 노동 조건에 대처하고 있는가? (그냥 마가렛 대처가 롤모델인가? -_-)

[45년의 시대정신](켄 로치, 2012) 중에서 영국 민영화 과정 발췌.

[45년의 시대정신](켄 로치, 2012) 중에서 영국 민영화 과정 발췌.

모두가 전공을 경영, 경제로 한다고 해서 기업이 1명 채용 할 것 2명 채용하나? 정작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로 도대체 무엇을 바꿔서 무엇을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이게 제일 답답하다.

학교야, 솔직하게 말하자 목표는 ‘취업학원’이라고

차라리 학교가 솔직하게 말하면 좋겠다. 졸업생 취업률 높여 앞으로 얼마 태어나지 않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선택하는 학교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지하게 ‘취업학원’으로 중앙대학교의 목표를 정하고, 집중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다.

세계적인 철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영국에도 철학과가 없는 대학은 있다. 그런 학교는 박물관학 등 다른 학문으로 특성화되어 있다. 중앙대학교도 ‘경영’으로 제일 유명하다거나 뭐 그렇게 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중앙대학교가 ‘취업만이 장땡’이라는 걸 학교의 목표로 세웠고, 거기에 맞는 학제를 만들어 간다면, 학문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특성화한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라는 점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학문을 위해서가 아닌 돈을 위해서 학교를 운영한다면, 돈 받고 학위 파는 학위 제조사가 될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을 쫓는 다른 학교들도 그렇게 변화해 간다면, 장기적으로는 그런 변화를 중앙대가 선도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미래는 나에겐 섬뜩하다.

다음엔 누구에게 무엇이 사라질까? 

내 고등학교와 대학교 생활을 돌이켜 보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철학 반이 폐지되었고, 대학에서도 그렇게 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철학 반을 없앴던 선생님들과 철학 대신에 강요되었던 커리큘럼을 미워했으며 등교하는 것도 싫어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그러면서도 삶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나는 그런 부당한 사실을 애써 잊어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삶의 또 다른 다음 단계를 위해 일요일인 내일도 아침 8시에 도서관 가서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갈 것이다.

인간이라면 귀 기울여야 할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고등학생에게서 철학 공부가 없어졌듯, 대학생에게서 인문학이 없어질 것 같다. 다음에는 누구에게서 무엇이 사라질까?

봄인데도 싸늘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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