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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에서 장애아동들과 토요일마다 놀아주는 “토마토학교”에서 애들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하루 다녀오면 낮에 찍은 사진이 1,000여 장에 달했는데 저녁에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리뷰할 때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 후 몇 시즌을 더 같은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사진이 예뻐서 숨 막히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빛을 2차 평면에 담는 이 매체와 기계의 매력은 과연 땀나는 하루와 사연이 더해질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걸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내 나름의 공부 노트를 써두자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제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진 찍자’고 제목 붙여 ‘사진 노트’라는 말머리로 슬로우뉴스에 연재해온 이 글 뭉치는 사실 2011년 말부터 작성한 쪽글로 흩어져 있었던 거죠.

가끔 제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생로병사 다큐멘터리 보며 이면지에 받아적은 점방 주인에게 병을 치료해달라 부탁하는 격이라고 할까요? 훌륭한 강좌와 책과 사진 찍는 모범이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피사체들이 저어기 밖에 널려 있으니 찌라시로 훑은 이런 말 놀음은 가벼이 읽어주셨으면, 그래서 괜히 제가 쓴 무슨 말 때문에 “내가 인터넷에 보니까 사진이 이런 거라던데?” 따위의 생각은 품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서울 은평구, 2011년
서울 은평구, 2011년

남아 있는 걱정

뭐든 막상말로 정리하려고 하면 쉽지 않잖아요? 슬로우뉴스에서는 “사진 노트”를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서 게재했지만, 원래 저는 사진의 시선과 방향, 렌즈의 초점거리와 화각, 사진의 노출, 사진의 표현과 사진가의 의도, 사진파일의 관리와 보관, 라이트룸 다루기, 포토샵, 사진가에게 유용한 기타 프로그램, 스피드 라이트와 사진 조명, 사진의 역사와 사진가들, 현대사진 이야기 등으로 주제를 나누고 소주제로 분절하여 ‘사진’에 대하여 공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룸이나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 매뉴얼 강좌는 굳이 제가 계속해서 작성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고, 저 자신도 이제 사진파일을 아이폰과 맥북에서 거의 보정, 백업하고 있어서 집필을 중단했어요. 사진 조명은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겉핥기도 불가능하더군요. 사진의 역사와 사진가들은 아직도 보고, 읽을 게 너무 많아서 제 관점을 담아 글을 써낼 깜냥이 되지 못하네요.

카메라 들고 뷰 파인더 보는 남자

게다가 이렇게 연재로 엮어 공개해버리니까 체계적이고 사전식 정보를 게재하는 일이 ‘사진을 찍는다’는 행동에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게 아닐까 의심도 들었습니다. 마치 ‘좋은 사진’이란 것이 어딘가에 있는데 준비를 잘한 사람은 카메라에 그것을 건져낼 것이고, 정보지식이나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요.

대어를 낚을 꿈을 꾸는 어부의 유비(類比)인데, 그것은 스포츠나 찰나의 순간을 건져 대회에서 입상하기 위해 장소와 시점과 찬스를 물색하는 사진가들에게는 적합할지 몰라도 전 그런 유비가 해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들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와 같이 제목을 달아 책을 찍어내듯 공포를 마케팅하는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는 접근이라 생각하지요.

좋은 사진보다 중요한 건 좋은 기억

좋은 사진은 아직 낚지 못했으나 미미한 확률로 남아 있는 어떤 ‘인상’이 아니라 정신없는 하루 뒤에 별안간 찾아오는 한숨이나 탄식 같은, 좀 더 생리적인 경험입니다. 그것은 100% 우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기획할 수도 없어요. 어떤 사진은 수년을 돌아 다시 나타나 갑자기 다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어제 강렬했던 젊은 날의 이미지가 오늘 아침에는 늙은 주름처럼 푸석한 사진 한 장이 됩니다.

따라서 경험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과업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함께 상상해보죠.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딸아이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물고기처럼 낚으려고 객석의 모든 엄마가 딸의 눈을 마주하는 대신 캠코더나 카메라의 LCD만 보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딸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엄마가 말합니다. “얘가 왜 웃질 않지?” 그 표정이 그 표정을 담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지요.

사진 찍는 장면

엄마는 무엇을 찍었습니까? 그날 찍은 것은 딸아이의 현장이 아닙니다. 딸아이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캠코더만 보고 있는 모습을 딸아이에게 경험하도록 하는 어머니의 무심함 자체였던 거죠. 그것은 건져 올렸지만 이미 죽어버린 커다란 물고기와 같습니다.

이토록 이야기 안으로 깊숙이 삽입되는 사진 찍는 일과 사진가의 경험이란,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을 사진이라 부르라고 말합니다.

“괜찮아, 아빠가 다 눈으로 담았어.”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기엔 말도 못하게 아름다워서 안 찍기로 했어.”

이미징 도구가 과잉인 시대에 오히려 희소하고, 유일하면서, 가장 개성 있게 사진 찍는 방법이 아닐까요? 사실 근사한 이미지와 왠지 너무나 매끄러운 ‘감동 휴먼 스토리’는 매일 네이버 뉴스에 올라오는데 어차피 내가 찍는 사진으로는 ‘충격’, ‘뒤태’, ‘경악’ 키워드로 점철된 실시간 검색 리스트에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사진기를 두고 다니거나, 카메라 앱을 뒤로 밀어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꾸 어디서 본 사진들과 겨루지 마세요. 단지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미 좋은 ‘빛’이 아니던가요.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사진 찍으러 나갈게요.

2015년 1월.

두 손으로 든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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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덕분에 라이트룸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쉽게 설명해줘서 이해하기 좋았고, 이번 글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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