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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과학저널의 상관관계를 가벼운 표현으로 다룬 글이 슬로우뉴스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가벼운 표현 때문인지 주변에서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는 사람들과 이미 졸업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그냥 웃는 사람도 있고, 말은 맞는데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반응을 보였습니다.

과학자는 언제까지 과학저널의 호구가 되어야 하나

그런데, 그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웃기게 표현해서 그렇지, 애런 스워츠도 넓게 보자면 저런 것들을 바꿔보겠다고 하다가 죽은 거 아닌가?”

마침 어제는 애런 스워츠의 기일. 자세한 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그의 사망과 관련하여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간략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왕성한 인터넷 활동가, 애런 스워츠

애런 스워츠(1986.11.8. ~ 2013.1.11.)는 능력 있는 프로그래머이자 저돌적인 인터넷 활동가였습니다. 그는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가졌고, 많은 것들을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애런 스워츠 (출처: Doc Searls, 2008_12_13_commons_panel_25 CC BY-SA)
애런 스워츠 (출처: Doc Searls, 2008_12_13_commons_panel_25, CC BY-SA)

그는 14세 때 RSS 1.0을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RSS는 참여, 공유, 개방으로 대표되는 웹2.0 시대에 탄생한 대표적인 컨텐츠 배포 포맷입니다. 이 포맷은 현재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슬로우뉴스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레딧그는 레딧(Reddit)이란 사이트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레딧은 스스로 “인터넷의 첫 페이지” (the front page of the internet)라고 부르죠. 예, 빌 게이츠버락 오바마 같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무엇이든 물어봐”(Ask Me Anything)를 진행하는 그 레딧이요. 애런은 인터넷의 다양한 소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서비스인 레딧이 만들어진 해에 바로 인수를 했었죠. 이듬해 콩데 나스트 퍼블리케이션스가 인수를 하면서 그다음 해 스워츠는 바로 해고됐지만 말이죠.

마크다운그는 마크다운이라는 문서 포맷의 개발에도 관여를 했습니다. 데어링 파이어볼(Daring Fireball)이라는 (매우 유명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존 그루버는 2004년에 읽기 쉽고 쓰기 쉬운 평문 형태의 마크다운 언어를 내놓았습니다. 매우 쉬운 문법을 가진 마크다운은 XHTML로 컨버팅이 가능하므로 많은 곳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다. 실제로 현재 개발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저장소인 깃허브(GitHub)에서 (살짝 변형 후) 채택해서 쓰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로고그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Creative Commons)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저작권 한도 내에서 창작물을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법적 도구를 제공하는 국제적인 비영리 단체입니다. CCL은 여기 CC에서 만든 라이센스를 뜻하죠. 애런은 이 CC의 초기 단계에도 참여를 했습니다.

디맨드 프로그레스 로고그 외에도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진보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조직인 “디맨드 프로그래스”(Demand Progress)라는 온라인 단체도 만들었습니다. 이 단체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정부개혁을 위해 사람들을 조직하고 정치세력을 압박하는 일을 합니다. 실제로 “디맨드 프로그래스”는 인터넷 검열정책인 SOPA/PIPA에 대항하는 캠페인을 열어 백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는 신념

인터넷에 존재하는 많은 정보 중 대중에게 자유롭게 공개되어야 하는 정보가 있다고 해보죠. 어떤 정보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퍼블릭 리소스 로고와 창립자 칼 말라무드칼 말라무드(Carl Malamud)와 그가 세운 “퍼블릭 리소스”(Public.Resource.Org)의 활동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퍼블릭 리소스가 주로 하는 일은 연방정부로부터 나온 각종 문서와 비디오 등을 스캔하고 디지털화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겁니다.

칼은 1993년부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기업 재정 정보를 온라인에 올리며 중요한 정보를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일에 앞장서왔습니다. 그리고 퍼블릭 리소스에서도 공공 문서를 공개하는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죠. 미국 연방법원은 각종 소송 정보와 문서를 “페이서”(PACER; Public Access to Court E-Record)라는 전자 열람 시스템을 통해 공개합니다.

페이서 웹사이트

일반 대중은 페이서를 통해 이 자료를 보기 위해 페이지당 8센트의 요금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애런은 이 정보가 세금으로 생산, 가공, 저장됐고 저작권과는 관계가 없으니 일반 대중에게는 무료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이 시스템으로 1억 5천만 달러의 잉여금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2008년 애런은 이 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도서관의 계정을 이용하여 전체 정보량의 약 20%에 이르는 2천만 페이지의 자료를 내려받아 퍼블릭 리소스에 공개를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19,856,160페이지) 이 행위는 아무런 법도 위반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모든 무료 계정을 막았습니다. 정부간행물출판국의 담당자는 페이서 시스템이 뚫렸으니 FBI가 조사한다고 밝혔습니다만 기소는 없었습니다. 칼과 애런의 변호사도 검토 끝에 그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했죠.

학술저널이 왜 유료인지에 관한 의문

이번에는 학술저널입니다. 애런 스워츠는 학술저널도 법원의 문서 열람 시스템과 같은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정부와 학교, 각종 사회단체는 연구비를 지원합니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그 연구의 결과물은 사회 구성원에게 공개되어야 마땅한 것 아닐까요? 돈 그 자체를 위해 연구를 하는 학자들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수많은 학자는 자신들의 연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유용하게 이용되길 바랄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글에서 언급하듯 많은 과학자는 자신이 돈을 내고 논문을 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논문이 저널에 실리면 좋아하죠.) 심지어 자신이 작성한 논문을 자신이 열람하려 해도 돈을 내야 합니다.

과학저널 액세스는 기본적으로 유료 서비스
대부분의 과학저널에 액세스를 하려면 이렇게 돈을 내야 합니다.

저명한 과학저널들은 연구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논문의 저작권을 가져가서 돈을 법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많은 사람의 접속권이 보장된 오늘날에는 다른 정보 유통 시스템이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애런은 정보 공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조금 더 앞세웠던 것 같습니다. MIT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유료 학술저널인 제이스토어(JSTOR; Journal STORage)의 시스템에 들어가 데이터베이스의 논문과 자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MIT와 제이스토어는 눈치를 채고 이를 연방검찰에 신고했지만, 1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바로 석방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제이스토어가 가진 데이터의 거의 전부인 480만 개의 논문과 문서를 내려받았습니다. 제이스토어는 소송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그의 기소를 유지했습니다.

개인적인 자살 혹은 사회 제도적인 타살

애런의 행위와 그에 따른 대응에는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영리 기관으로 온라인으로 논문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학교나 단체 등으로부터 구독료를 받아온 제이스토어 측은 “훔친 것은 훔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애런은 대학교의 연구원이었고, 그가 정해진 계정으로 논문을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한 편씩 열람할 수 있다면 480만 개의 논문을 차례로 열람하는 것은 과연 불법일까요. 몇 개 이상을 열람하면 불법일까요.

애런은 기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내려받은 자료를 공개하거나 제삼자에게 넘겨 영리활동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이스토어 서버에도 데이터는 그대로 존재했고, 제이스토어는 손해를 입은 게 없었습니다. 여기서 피해를 본 사람은 누구일까요.

공적인 의도로 생산한 정보들이 왜 몇몇 유통자들에 의해 닫혀 있는 것일까요?
공적인 의도로 생산한 정보들이 왜 몇몇 유통자들에 의해 닫혀 있는 것일까요?

그가 학교 네트워크를 이용해 많은 자료를 내려받긴 했지만, 이 행위에 통신 사기(wire fraud)와 컴퓨터 사기(computer fraud)를 적용해 최대 35년형과 천만 달러의 벌금형을 내리려고 한 정부의 시도는 과연 적절한 것이었을까요. 피해 당사자라고 할 만한 제이스토어가 소송을 그만두기로 했지만, 정부가 그의 기소를 유지한 건 그가 시스템을 무너뜨린 테러리스트나 훔친 물건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범죄단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검찰은 그의 집과 사무실 등을 여러 차례 압수 수색을 했고, 그는 12차례 법정에 출석해서 심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전부터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애런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맙니다.

그가 보지 못한 미래

IT 지식을 무기로 저돌적인 사회활동을 한 애런은 살아생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길지 않은 그의 생애 동안 많은 것들을 바꾸고 새로 만들어냈습니다.

만약 그가 제이스토어의 480만 건의 논문과 자료를 일반에 모두 공개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만약 누군가 그렇게 공개된 정보와 연구결과를 구조적으로 연결하고, 많은 연구원과 학자들이 그 정보를 볼 수 있었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여기 그의 바람과 정확하게 연결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고등학생 잭 안드라카는 15살 때인 2013년에 3센트의 비용으로 췌장암, 난소암, 폐암을 5분 이내에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센서를 발명했습니다. 이 센서를 이용한 방법은 기존 검사 방법과 비교해 2만6천 배 이상 저렴하고, 검사 시간도 168배 빠르며 4백 배 이상 높은 민감도를 가졌습니다. 과학 잡지를 통해 지식을 얻었고, 구글과 위키백과를 찾아 연구를 하던 잭은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부터 연구실 사용 허락을 받아 연구를 진행을 했습니다.

잭이 2014년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강연을 하며 스스로 밝힌 가장 큰 도전은 “과학 연구를 위해 과학 논문을 읽으려면 돈이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논문을 보기 위해 내야 하는 35달러라는 돈은 자신 같은 학생에게 매우 큰 돈이었다고 합니다. 잭은 이러한 논문을 유료로 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대중과 과학 사이에 견고한 벽을 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대학교들은 재정 상황이 좋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를 무료로 읽게 해주면 어떨까 하는 제안도 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는 2008년에 이미 자신의 학교에서 나오는 학술 논문과 연구자료를 온라인에 올리고 일반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네이처]는 2014년 12월 2일 다른 연구자에게 논문을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넓혔죠. 아직 인쇄나 내려받기는 안 되지만 리드큐브(ReadCube)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논문의 pdf 버전을 공유해 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열정을 가진 많은 실천가의 크고 작은 활동은 우리의 미래를 점점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미래를 구경할 수도 있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동참할 수도 있겠죠. 애런 스워츠는 그걸 온몸으로 보여줬고, 기존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포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어떤 변화는 이룰 수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점점 폐쇄적이고 일방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한 번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미래의 일부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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