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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싫어하는 착한 원순 씨에게 바치는 노래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밤에는 노래를 한 곡 들읍시다. 서울인권헌장의 제정을 무산시킨, 설득과 화합을 노래한 박원순 시장의 아름다운 뜻을 되새기며.

딕시 칙스, Not Ready to Make Nice

그래미(Grammy)는 그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세계 최고의 음악인으로 여겨질 정도로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이다. 그런 그래미 중에서도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 등 4개 부문은 특히 큰 영예로 여겨지는데, 어떤 해에는 종종 이 영예를 한 음악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독식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2007년에는 바로 이 노래와 이 음악인이 그 영예를 안았다. 딕시 칙스(Dixie Chicks)의 “Not Ready to Make Nice”라는 노래다. 제목의 뜻을 풀어보자면, “화해한답시고 좋게좋게 넘어갈 준비 따윈 되어 있지 않아.” 정도일까.

노래는 처음부터 흔한 클리셰에 반(反)하는 도발로 시작한다.

“용서라, 듣긴 좋네.
잊어버리라니, 가능할지나 모르겠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왜 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 이 노래의 배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전쟁 준비하는 부시를 비판하다

원래 딕시 칙스는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컨트리 음악인이었다. 그런데 2003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운운하며 이라크 전쟁을 준비하자, 영국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던 그들은 콘서트장에서 부시의 정책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인 게 부끄럽군요!”

“Just so you know, we’re ashamed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s from Texas.”

딕시 칙스의 메인 보컬 나탈리 메인즈는 부시와 같은 텍사스 출신이다.

딕시 칙스가 그 발언을 한 것은 세계를 뒤흔든 9·11 테러에 대응하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그런 부시 대통령이 일개 딴따라에게 노골적인 비아냥을 들었으니 극우주의자들의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극우주의자들은 USA를 외치며 딕시 칙스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닥치고 노래나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Shut up and sing, or your life is over)”는 위협 편지를 보내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조차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외국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극우주의자들 편을 들곤 했다.

[딕시 칙스: 셧업 앤 싱] (2007)

이 일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딕시 칙스: 셧업 앤 싱] (2007)

컨트리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국들은 더는 딕시 칙스의 노래를 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DJ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는 딕시 칙스에게 발언을 사과하고 군인을 위한 무료 공연을 열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했고, 심지어 부시 대통령 본인마저도 그 발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했다.

그러나 이렇게 인생이 송두리째 뒤집혀버린 후에도 딕시 칙스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발언의 당사자인 나탈리 메인즈는 물론, 함께 살해 위협이나 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다른 두 명의 멤버도 결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딕시 칙스는 자신들을 향한 무시무시한 칼 뒤에 극우단체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었음을 파헤쳤고, 사람들에게 자유의 의미와 자신들의 정당함을 납득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거대한 국가주의의 파도 속에서 그녀들은 싸웠고, 저항했으며, 그리고 비로소 명곡을 탄생시켰다.

그게 이 노래다.

극우주의자들의 폭력에 굴복하라고?

“슬픈, 너무나 슬픈 일이야.
엄마가 딸에게 ‘이방인을 미워하라’고 가르친단 건.
내가 세상에 던진 한 마디가
대체 누굴 그렇게 벼랑 위까지 몰고 갔기에
닥치고 노래나 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편지를 쓰게 만든 것일까”

“It’s a sad sad story
when a mother will teach her daughter
that she ought to hate a perfect stranger.
And how in the world can the words
that I said send somebody so over the edge
that they’d write me a letter
sayin’ that I better shut up and sing
or my life will be over”

“Not Ready To Make Nice”. 이것은 극우주의자들의 폭력에 굴복할 생각이 없으며, 진정한 자유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임을 못 박은 가장 세련된 선언문이었다.

용서하라. 잊어라.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성인군자처럼 멋진 얘기다. 하지만 용서하는 것이, 설득하는 것이, 또 화해하는 것이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고 그의 권위에 침을 뱉었다 해서, 사회의 이방인이 되고 모든 게 나락으로 떨어지고, 심지어 살해 위협까지 받는 상황이 정말 설득과 화해와 용서로 해결해야 할 일일까?

당신은 딕시 칙스에게 그 극우주의자들을 설득하고 손을 내밀고 용서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엔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육우당이란 사람이 있었다. 죽은 사람이다. 그는 열아홉 살에 목을 매고 죽었다. 그가 목을 매기 얼마 전, 한기총은 동성애자를 두고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육우당은 동성애자였다.

육우당(六友堂, 본명: 윤현석, 1984년 8월 7일 ~ 2003년 4월 26일)은 대한민국의 학생 운동가 출신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시민운동가이자 시조 시인, 작가, 평론가이다. 아마추어 연극 배우이자 성악가이기도 했다. 2003년 4월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19살의 나이로 동성애자의 인권을 요구하며 목을 매 자살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 육우당 (활동가)

신의 지으심으로든, 혹 다른 섭리의 결과든, 혹 그저 우연한 조합에 의해서든 –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리고 지금 당신의 곁에서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런 그를 죄인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짐짓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은 이해는 하지만 내 곁에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함으로써 죄인이 되었고, 더럽고 역겨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짐짓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겨우 이해는 구했지만, 감히 옆에 가서는 안 되는 불가촉천민이 되었다.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그의 선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지개빛

어떤 이들에게, 육우당은 존재만으로도 죄인이자 혐오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이것이 논의하고 합의할 문제인가. 나는 죄인도 아니고 혐오스러운 존재도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리 생각한다니 그럼 죄인은 맞지만 혐오스러운 존재는 아닌 것 정도로 하자, 그렇게 합의해야 하는가.

때로는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있다

딕시 칙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으로 비난받고 있었고, 반전을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딕시 칙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수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점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주의자들의 목소리는 더는 보통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딕시 칙스는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등 주요 세 부문을 독식하며 음악적인 명예를 완전히 회복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극우주의자들의 의견과 ‘합의’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그들과 좋게좋게 화해할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래미는 그 선언에 내려진 선물이었다.

합의하고 설득하고, 갈등을 풀고 화해하는 과정은 소중하고 분명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죄인이자, 더럽고 역겨운 존재로, 내 옆에는 오지 말았으면 하는 존재로 여기는,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비하하고 차별하는 그런 목소리에 대해서까지, “좋게좋게 지낼 준비”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인간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헌장을 부정하는 원순 씨에게 바친다

서울인권헌장 제정이 무산되었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여 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4개월 동안의 논의를 거쳐 채택된 것이다.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된 항목에서 이견이 있었으나, 숙의 끝에 출석위원 2/3의 찬성으로 50개 항이 모두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원순의 서울시는 설득과 합의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만장일치를 주문했는데 표결로 처리되었으므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장 박원순의 정확한 입장을 기다리기도 했으나, 그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 간담회에 참석, 헌장 제정과 관련해 “논란과 갈등이 야기되어 죄송하다”고 말하며 “사회갈등이 커지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발언해 이런 서울시의 입장에 쐐기를 박았다.

(참고: 최초로 박원순 시장의 해당 발언을 보도한 기독신문 강석근 기자에게 위 슬로우뉴스에서 인용한 두 발언이 1) 박원순 시장 직접 발언인지 여부 2) 해당 발언을 녹음했는지 여부를 확인했고, 강 기자는 두 질문에 관해 ‘그렇다’고 답변했다. 다만 서울시 측에는 여러 경로로 전화했지만, 전화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 편집자)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같은 인간인 이상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헌장이 ‘표결’을 요한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에선 넌센스건만, 이마저도 부정하고 만장일치를 요하는 서울시의 입장은 당혹스럽다. 사람 좋은 원순 씨의 이미지를 이어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이견이 있겠지만, 대선을 위한 전략으로서는 그럴듯한 전략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좋게좋게 지내는” 길을 택했다.

“Not Ready to Make Nice”, 이 노래는 바로 그런 그를 위해 선물하는 노래다. 가사를 조금 바꾸어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설득, 듣기엔 좋은 말이지.
화합, 그럴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지만,
여전히 더러운 죄인 취급을 받으며 그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슬픈, 너무나 슬픈 일이야.
엄마가 딸에게 ‘이방인을 미워하라’고 가르친단 건.
누군가가 그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는 것이
대체 누굴 그렇게 벼랑 위까지 몰고 갔기에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타버릴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게 만든 것일까

나는 좋게좋게 지낼 준비 따위 되어 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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