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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말하지 않은 대학 축제 의상 논란의 10가지 디테일

대학 축제의 상업성과 선정성 논란이 뜨겁습니다. 특히 의상은 그 (표면적)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2014년 9월 21일 축제 의상 등을 규제하는 ‘2014년도 청파제 규정안’을 온라인에 공개했습니다.

이 문제를 취재한 박은하 기자가 대학 축제 의상 논란을 한 번 더 꼼꼼하게 짚어봅니다. (편집자) 

대학 축제 의상 논란을 취재했다. 그 취재에 바탕해 대학 축제 의상 논란과 관련해 언론이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 열 가지 디테일을 설명한다. 더불어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그 열 가지 디테일에 내 의견을 덧붙인다.

언론은 대학축제 의상 논란과 관련해 적잖은 기사를 발행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정말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한 기사는 얼마나 될까?

언론은 대학축제 의상 논란과 관련해 적잖은 기사를 발행했다. 하지만 이들 기사 가운데 진지하게 대학문화를 고민한 기사는 얼마나 될까?

1. 대학 축제 포스터가 룸살롱 홍보 전단지와 흡사하다

숙명여대는 양반이다. 대학 축제 선정성 논란 관련 연합뉴스 기사에 사용된 메이드 카페 콘셉트의 포스터는 숙대 모 학부에서 제작한 것인데, 그나마 기사에 실어도 괜찮다 싶을 정도로 얌전하다고 느껴진다. 다른 대학 홍보 포스터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룸살롱 홍보 전단지와 거의 흡사하다.

연합뉴스가 숙명여대 축제와 관련해 기사에 인용한 한 단과대의 포스터

연합뉴스가 숙명여대 축제 의상을 규제한 숙대 학생회 조치와 관련해 기사에 인용한 한 단과대의 포스터

간호사·교복 콘셉트 의상, 여성 모델의 위치, 모델이 몸은 비비 꼬되 은근히 얼굴은 전부 노출 안 시키는 기법, ‘오빠, 빨개요’, ‘교복, 수갑, 가죽 치마, 이벤트’, ‘000학생회 수갑 차러 오세요’ 따위의 문구, 전단지를 스캔해 오면 음료수를 서비스 해준다는 마케팅, 특유의 글 자체 폰트까지.

대학 축제 포스터

선정성을 좇는 인터넷 뉴스조차 차마 못 쓴 포스터를 제작한 대학이 한두 곳이 아니다.

2. 예술계열 학부에서 유독 선정적 포스터가 많았다

“유독”이란 표현에는 오해 소지가 있다. 어느 계열이나 요정 혹은 룸살롱 분위기 흉내 낸 것은 비슷한데 예술계 경우는 아예 똑같아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전공자의 실무 능력이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서울 모 대학 예술계열 학부 주점 포스터는 병원을 콘셉트로 했다. 병원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캡을 쓰고 흰색 레오타드에 빨간 스타킹을 신은 간호사가 거대하고 길쭉한 주사기 위에 올라타 ‘오빠 주사 맞고 갈래?’라고 손짓한다. ‘섹시한 남녀의사 진찰받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의 붉은 입술이 찍힌 다른 버전의 포스터도 있다.

대학 축제 포스터

많은 손님을 이끌려고 의도적으로 선택한 전략일 수도 있고, 섹시 콘셉트의 자기표현 욕구일 수도 있다. 예술대 특유의 금기에 대한 저항과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문점. 자기표현의 욕구라면 왜 포스터 풍이 어쩌면 하나같이 똑같을까? 더구나 가장 개성을 추구해야 할 거 같은 예술대학에서? 이 시대 가장 잘 통하는 미의 기준인가? 자기표현을 하고 싶은데 주위를 둘러보면 모델이 이뿐이기 때문일까?

3. 간호대는 간호사 콘셉트 포스터를 제작하지 않는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간호대 주점 포스터에는 간호사를 성적 코드로 상징화한 포스터를 볼 수 없었다.

환자에게 성희롱 당할 위험에 항상 노출된 간호대 학생이 이 포스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수익을 위한 전략이든 자기표현 욕구든 간호대 학생은 이런 포스터를 제작한 예술대 학생에게 항의할 권리가 있나? 정말 나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표현의 욕구로 섹시 간호사 콘셉트 복장을 미친 듯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간호대 학생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가? 이렇게 서로 다른 요구가 충돌할 때 가장 총괄적 의사결정 기구인 총학생회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가? 양자 간 타협 불가능한 상황이 올 때 어떤 요구를 존중해야 하는가?

4. 손님으로 왔던 남학생들은 킬킬거리고 축제 사진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닌다

‘여자 다리 보고 싶으면 00대로 가라’
‘김치년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일베에 최근 몇 년간 축제 사진과 함께 올라온 문구다. (링크는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올해는 어느 대학 주점이 가장 화끈하다”더라는 평판이 동년배 남학생들 사이에 돌아다닌다. 엉덩이, 다리 등등을 촬영한 사진도 볼 수 있다.

주점에 불참해 자신의 사진이 올라와 있지 않더라도 여기서 여학생들이 느끼는 공포감과 불쾌감은 일부 여성학자들의 주장대로 가부장주의, 순결이데올로기에 투항한 퇴행의 증거인가? 당연한 불쾌감인가? ‘저 00학교 다니는데요’라고 할 때 키득키득 웃음과 함께 ‘아 그 축제 때 화끈하던…’ 이라는 반응을 겪은 학생들의 불쾌감은 왜곡된 학벌주의인가. 이런 분위기에 시달리던 여학생들이 복장규제 규정에 쌍수 들고 환영하는 것은 자유를 저버리고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 버린 비굴한 모습인가?

5. 왜들 그렇게 주점에서 돈을 벌려고 안달하는가?

이 부분은 취재를 못 해 부끄럽게도 잘 모른다. 다만 내 경험에 비춰 추측해볼 수는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04년 언저리에는 학내 주점으로 번 돈은 다른 곳에 기부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학우들에게 폭리다매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학내 주점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과/반 단합을 추구하고 재밌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주된 고객도 외부 손님이 아니라 평소 후배들 볼 일 없는 과 선배들이었고,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수익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자가 날 거 같으면 여학생들이 벗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처박혀 있던 고학번 선배를 불러내 의리에 호소했다. 그런 분위기가 사그라질 2006년 무렵에도 어느 과에서 학내 주점으로 얻은 비용으로 과방 내 낡은 소파를 교체했다가 욕을 먹었다. 잘은 몰라도 이런 문화가 2014년 현재 말살됐다는 것은 알 수 있다.

6. 상당수 학생이 불쾌하다면서 그런 주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었던 건가?

주점은 운영하는 곳은 주로 과/단과대/동아리인데, 실무는 여전히 과 단위로 움직인다. 상당수 대학에서 그 과가 어떻게 운영되느냐면, ‘이거 좀 어떻게 안 되나요?’라고 물어볼 분위기 자체가 안 된다. 옛날의 과 분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어느 과에 가든 집회 좀 다니고, 여성주의 책 좀 읽으면서 무게 잡고, 문제 생기면 잘 따지고 무언가 운동권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은 1~2명 이상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집회에 다니지는 않고 자기 취미활동에 더 몰두하거나 소위 ‘정치에 큰 관심 없는 학생’이라고 분류되더라도 그런 운동권과 수업 같이 듣고 밥 같이 먹으며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단 대학인데 최소 이것만은 지켜야 하지 않나?’라는 분위기가 존재했‘었’다.

그 분위기에 대한 반발도 없지 않았다. 특히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기존 대학문화는 좌 편향 억압라고 반발하던 목소리도 적지 않게 터져 나왔다. 실제로 억압을 느낀 사람도 제법 됐다. 이 문제로 2000년대 중반 무렵 각 과별로 좌우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 2008년쯤을 거치면서 새로운 종류의 합의를 하고 싸움을 종결했다. 정치색은 각자가 다른 거니 서로 아무것도 강요하지 말자. 아무것도 합의하지 말자.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은? ‘비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중문화에 관한 내용이나 오로지 즐거울 수 있는 노는 활동뿐이다. 대학에서 싸움이 사라졌다.

논란이 된 주점 호객행위처럼 그저 노는 활동일지라도 모두가 즐거울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후기~이명박 정부 거치면서 불만이 있어도 뭔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타인을 강요하고 억압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요구를 속으로 삭이고, 과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대학생의 일상적 삶으로 정착됐다.

그런 분위기에 토론이 가능하고 사회적 의제를 논의하고 싶은 학생들은 다양한 학생들이 몰려있는 과를 떠나 비슷한 성향의 학생들이 모인 사회과학 동아리, 학내언론 등으로 간다. 즉, 요즘 대학에는 운동권과 아닌 사람이 섞여서 뭔가 공통의 지반을 갖는 공동체가 거의 없다. 운동권들은 운동권끼리만 놀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끼리 놀고, ‘운동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쿨시크 놀자판 분위기’도 싫은 학생들은 과를 떠나 원자로 떠돌다 취업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즉, 간호사 이미지 클럽 분위기의 주점을 싫어할 만한 사람들은 축제하기 전인 3월에 이미 그런 주점을 처음부터 열지 않을 곳을 찾아 떠나고, 남은 사람들이 “얘들아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니?”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수년째 불문율이 된 공간에서 주점을 연다. 어우동 복장을 한 채 “선배가 시키니 그냥 했다”라는 대답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는 이유다.

7. 그래도 의상 금지 외에 다른 노력은 없었나?

지난해에도 숙명여대 총학은 ‘축제 기간 과도한 선정적 주점을 열지 말자’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축제에 대한 비판은 몇 년째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서 터져 나왔다. 급기야 올해 칼을 빼 들었다. 의상 규제 외에도 ‘오빠’, ‘자기야’ 등 유흥업소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활용하는 호객행위 금지 등의 규정이 포함됐고, 어길 경우 벌금 등도 부과됐다. 해당 규정은 각 과/단대 학생회 집행부가 참여하는 의결기구를 통과해 결정됐다.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축제 의상 등 규제안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발표한 ‘청파제 규정안'(1페이지)

숙명여대 총학생회 규제안 (2페이지)

숙명여대 총학생회 ‘청파제 규정안’ (2페이지)

8. 안팎의 반응은?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학교 바깥에서 비판여론이 일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만 보자면 비판하는 사람 중에는 남성이 많다. 총학생회를 비판하는 여론의 대표적 예를 보자면 다음과 같다.

  • “학교의 명에, 학생 보호를 내세우며 야한 옷을 규제한다는 것은 오히려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퇴행”
  • “축제문화 근본을 살피지 않고 의상부터 규제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섣부른 규제”
  • “여성 스스로 여성을 억압하는 엄숙주의”
  • “아 역시 꼰대들 안 돼”
  • “금지만을 금지하라”
  • “학내 과도한 성 상품화 문제 인정하나 좀 더 토론과 논의를 거쳤어야 했다. 일방적 규제 선언이 문제였다”

이 사건을 통해 요즘 대학의 축제 문화가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과 분석도 나왔다.

  • “경쟁지상주의에 물들었기 때문”
  • “걸그룹 등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보고 자라지 못하고 그저 쿨하고 멋진 것으로만 인식”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 “취업난에 여학생들이 남자를 잘 만나 시집을 가는 것이 지상목표가 돼 짙은 화장과 야한 의상 경쟁을 하는 것”

9. ‘학생 보호’ 따위의 말을 한 숙명여대 총학생회는 어리석은가?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오빠 오빠’ 하며 고객들에게 매달리는 학우들을 보며 느끼는 불쾌감, 00대 출신이라는 말에 돌아오는 끈적한 시선과 음흉한 웃음, 축제 기간 여학생들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보기 위해 학교로 몰려드는 고객들을 보며 공포에 질린 학생들에게 본능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단어는 무엇인가? 선정적 의상 경쟁을 ‘축제라는 일탈적 공간에서 한 예외적 행위’라고 말하자니 아찔하도록 불쾌하고 실제 직장생활에서 나에게 불이익이 될 룸살롱 문화를 떠올릴 때의 좌절감은?

나는 정치 지도자는 쉬운 언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보다 ‘모멸감과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자’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더 잘 와 닿고 이해된다면 난 ‘보호’가 낫다고 본다. 최선의 언어선택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숙대 총학생회의 단어 선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앞서 예로 든 1~7의 제반 조건을 이해한 뒤에 비판하는 것일까?

10. 야한 옷 입고 싶은 여학생의 권리는 침해됐는가?

그걸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소수라서 눈치 보며 발언을 삼가고 있는지, 그동안 억지로 해 왔거나 하면서도 썩 좋다고는 여기지 않아 찬성하는 것인지, 별생각 없이 주점에 동참했기 때문에 규제 역시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인지. ‘야한 옷을 입을 권리’가 죄다 남성 비판자의 목소리로 쏟아져나오는 통에 묻혔는지.

학생회 방침에 당사자가 강력히 반발하며 일어나는 슬럿워크류 움직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슬럿워크야 애초에 성추행 피해 여성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계기가 돼 일어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목소리였고.

일각에서는 “남성들은 룸살롱 여성을 정작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룸살롱 여성을 흉내 내는 복장 자체는 가부장에 균열을 내는 전복성이 있다” 카더라.

마지막 질문: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한 상태에서 당신이 총학생회장이라면?

나는 정치적 결정은 절대적으로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상대적으로 최선의 방안을 택하는 것이라고 본다.

‘존 롤즈에 따르면’,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이론이 제공하는 틀 위에서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몇 년째 학교 주점 포스터는 죄다 룸살롱 전단지가 돼 가고, 축제 사진은 인터넷에 떠돌고, 주변 남학생들로부터 비하적 시선을 느낀다며 학교 전체 커뮤니티에서 호소하지만 정작 제 과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는 학생들, 격렬한 불쾌감을 느끼는 학생들, 현재의 분위기에 만족하는 학생들,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학생들, 왜곡된 간호사 이미지 때문에 실제 성희롱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학생들.

아무것도 논의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 돼 버린 기층의 과와 이를 대체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지만, 익명이어야 하는 커뮤니티를 조건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다. 지도자는 모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며 결국 더 우선시해야 할 가치를 선택해 지금의 제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모두 고려한 비판과 논평이 있었던가?

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 해체하듯, 숙대 총학이 기습적으로 무언가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몇 년 간 이 문제로 고민해 온 숙대 학생들 입장에서는 기습도 아니다. 내 경험과 취재에 따르면 총학생회의 결정은 합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의 비판자들을 더 이해할 수 없다. 한겨레 보도와 달리 남성 고객을 겨냥한 복장규제에 항의한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들과 남성 고객을 겨냥한 복장 경쟁을 제한한 숙대 총학생회 사이의 공통점을 오히려 찾아야 하지 않나.

(참고로 한겨레는 [꼰대스러운 ‘숙대 축제’, 그들만의 ‘드레스코드’]라는 기사에서 숙대 총학의 조처는 우리은행과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직원에게 강요한 ‘드레스코드’를 다시 보는 듯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면서, 숙대 총학의 “규정안은 쿨(Cool)하지 않”고, “한마디로 꼰대스럽”다고 썼다. – 편집자)

더구나 여자가 야한 옷을 입을 권리가 대부분 남성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 현실을 어찌 봐야 하나. 숙대 총학의 어설퍼 보이는 언행을 비판하는 먹물깨나 든 네티즌들, 2000년대 초반 이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자신이 물려준 사회에 대해 반성해본 적 있나. 일상적 공동체에서는 ‘아무것도 논쟁하지 말자’가 규칙이 되는 통에 쾌락이 최선의 가치가 되고, 운동권은 운동권끼리 놀고, 극우는 극우끼리 놀고 중간이 없는 커뮤니티의 모습은 비단 대학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습 축소판이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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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은하
초대필자.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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