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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세월호와 경기 위축 ‘시나리오 5’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은 “민생현장에서 서민들과 직접 호흡을 같이하는 업종 대표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는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중요한데 이런 징후에 선제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하면 소비심리가 얼어붙고 어렵게 살린 경기회복의 불씨까지도 꺼질 우려가 있습니다. 경기지표가 나빠진 다음에 뒤늦게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심리 위축을 최소화하고 경기회복의 모멘텀(계기)을 이어가야 하겠습니다.

– 박근혜, ‘긴급민생대책회의’, 2014년 5월 9일

간단히 줄이면, ‘세월호 여파로 소비심리 위축 조짐이 있으니 선제 대응해야 한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 ‘세월호 여파 소비심리 위축’ 발언

사실 이 문장만 두고 보면 맞는 얘기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고려해야겠지요. 이번 참사로 벌써 올해 경제성장률이 0.1% 포인트는 떨어진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얼핏 계산해도 2조 정도 됩니다.

더 나빠질 공산이 큽니다. 8조가량 예산을 조기 투입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나올 법한 생각입니다.

‘세월호 경기 위축 효과’는 잘못된 표현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세월호 참사 여파가 이렇게 크다면, 당연히 이렇게 경제적 여파가 큰 사건은 다시 없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겠지요. 또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유언비어나 사회적 불안도 없었겠지요. 모호한 ‘사회 불안’이라는 것만 문제 삼을 생각이셨다면, 번지수가 한참 틀렸습니다.

경제에 있어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가 아니겠습니까.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 박근혜, ‘긴급민생대책회의’, 2014년 5월 9일

그래서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 경기 위축 효과’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치 세월호라는 배 한 척이 큰 잘못을 했다는 뉘앙스입니다.

정확히 하자: 구조적 원인과 부실 대응에 따른 경기 위축

정확히 해야지요. 세월호라는 배 침몰 자체가 한국 경제를 침몰시킨다, 혹은 침몰시킬 수 있다는 표현은 상식적으로 어폐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과 ‘정부 부실 대응’에 따른 경기 위축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아래는 세월호 침몰에 대해 몇 가지 가상적인 상황입니다.

다섯 개의 시나리오

아래 다섯 개의 시나리오(가정적인 사례)는 경기 위축 효과가 커지는 순서입니다.

시나리오 1. 천재지변 + 전원 신속 구조 = 위축 효과 없음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이 생겨 배가 침몰했습니다. 하지만 선원은 침착하게 대응하고, 해경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초동 대처해 승객 전원을 ‘정상적으로’ 구조한 시나리오입니다. 경제 위축 효과는 없습니다. (배 손실 관련 비용 제외)

  • 모든 영역이 정상적으로 작동
  • 위축 효과 없음

시나리오 2. 정책 요인 + 전원 신속 구조 = 관광 수요 일시 감소

배의 무리한 불법 개조 등을 통한 과적과 규제 당국의 부실한 관리 감독이 침몰 원인이지만(정책 요인), 재난관리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해경 등이 신속하게 초동 대처해 승객 전원을 신속하게 구조한 시나리오입니다. 여객선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소비자의 관광 수요 감소가 초래할 수 있습니다.

  • 정부의 규제 감독 실패 비용.
  • 예: 수학여행 및 4월 말 여객선 이용한 관광 취소.

시나리오 3. 정책 요인 + 신속 구조 + 선원 미숙 + 소수 인명 피해 = 여객산업 중장기 타격

침몰 원인은 정책 요인이었고, 해경이 신속하게 구조했음에도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자신만 탈출하는 등 승무원의 미숙한 대처로 승객들 가운데 소수가 사망 실종한 상황입니다. ‘시나리오 2’보다는 관광 수요 감소 폭이 클테고, 더 지속적일 겁니다.

  • 정부의 규제 감독과 해운사의 선원 정책 실패 비용.
  • 예: 2014년 바다 이용한 관광 계획 취소 및 재검토, 여객선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음.

시나리오 4. 정책 요인 + 해경 부실 + 선원 미숙 + 대규모 인명 피해 = 서비스 산업 전반 타격

정부의 규제 감독이 실패하고, 회사의 선원 정책이 부실하게 작동했으며 재난 후 해경의 구조적 부실까지 겹쳐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상황입니다. 앞선 시나리오가 지역적인 관광 수요 감소였다면, 이 경우에는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 형성으로 관광뿐만 아니라 기타 서비스 분야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서비스 수요가 전반적으로 감소합니다.

  • 국가 단위의 재난 구조 실패 비용.
  • 예: 관광 산업 전체뿐만 아니라, 요식 산업 및 문화 산업에 영향.

시나리오 5.  정책 요인 + 총체적 부실 대응 + 최악 인명 피해 = 소비 심리 약화 전국화

침몰 과정과 원인뿐만 아니라 침몰 이후 대처에서 정부, 민간(회사), 승무원, 언론, 정당 등의 총체적인 부실이 ‘구조적’으로 개입한 시나리오입니다. 특히 국가가 ‘한 일이 없다’는 평가를 들을만큼 대처가 미흡하고, 인명 구조를 지체했으며 수습 과정이 장기화한 시나리오지요.

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계속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언론은 오보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정보 생산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정부와 언론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으니, 그 전달되지 않은 사실과 진실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가설과 억측은 늘어나고, 또 이런 과정에서 음모론과 유언비어가 사회 전체에 만연합니다. 정당은 눈치만 볼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세월호 침몰이 전국적인 정치사회 문제로 부각하고, 국민은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소비 심리 약화가 전국화하고 장기화해 서비스 수요뿐만 아니라 제조업 등으로 위축 효과 파급합니다.

  • 국가 실패 비용.
  • 예: 2014년 하반기 투자 계획 취소 또는 연기.

지금 대한민국은 ‘시나리오 5’ 국가 실패 상황

결국 세월호 침몰사건이 첫 번째 시나리오 대로 ‘정상적으로’ 전개했다면 경기 위축 효과는 당연히 없었겠지요.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은 다섯 번째 시나리오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경기 위축 효과는 ‘시나리오 1’과 ‘시나리오 5’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몇조 원의 규모가 될 경기 위축 책임은 누구에게 있어야 할까요? 경제 행위는 고도의 심리행위라고 하셨지요. 맞는 얘기입니다. 시민들이 불안해서 식당가고 놀러 가기가 힘듭니다. ‘국가의 실패’ 때문에 자식 잃고 울부짖는 유족들을 모른 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제도 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문제” 맞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그게 좋은 경제 정책이기도 합니다. 국가가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고서 그들에게 불안의 책임을 돌리다니요. 참으로 난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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