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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은 선량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정치적 야망이 대단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정치적 영향력에 욕심을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니냐”고 반문한 적도 있었다. 지난해 8월 오세훈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그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을 때 그는 한 달 가까이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었다.

박원순의 덥수룩한 수염

안철수와 후보 단일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나타난 그는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느라 수염을 깎고 나올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그 수염은 의도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적 이벤트에 질린 유권자들에게 박원순은 최대한 정치인 같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야 했다. 덥수룩한 수염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민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지만 박원순은 백두대간 종주 중에 두 차례나 안철수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서울시장 후보를 자신에게 양보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1천만 원 상당의 등산 장비를 대기업에서 협찬받았다거나 월세 250만 원의 강남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박원순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는 깨지지 않았다. 그 무렵 인터넷에 떠돌던 박원순의 뒤축이 떨어져 나간 낡은 구두 사진은 그런 이미지를 더욱 깊게 각인시켰다.

박원순의 수염을 오세훈의 수염과 비교해볼 수도 있다. 오세훈은 무상급식 투표 사흘 전 기자회견에 수염을 깎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선언한다. 그만큼 고뇌가 깊었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겠지만 사실 면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하다. 오세훈의 수염은 감정이입은커녕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면도하지 않은 얼굴이 언론에 클로즈업된 건 결과적으로 마이너스였다.

정치인의 수염으로는 손학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2006년 8월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난 뒤 100일 동안 전국을 돌며 ‘민심 대장정’이란 걸 했다. 탄광에서 시커먼 얼굴로 컵라면을 먹는 사진이 신문마다 실렸고 “쇼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과 “쇼라도 좋으니 저렇게라도 해보고 정치하라”는 평가가 엇갈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날마다 신문에 실렸고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민주당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했다.

새끼 회색기러기와 각인 효과

알에서 막 태어난 새끼 회색기러기(greylag geese)는 처음 본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여긴다. 노벨상(‘생리의학’ 부문)을 수상한 생물학자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는 이를 ‘각인 효과'(imprinting effect)라고 규정했다. 부화 직후 13~16시간 동안의 ‘임계 기간'(critical period)에 새끼 회색기러기는 자신이 회색기러기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기간 동안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사람을 따르고 시계를 옆에 두면 시계 소리를 어미로 착각하기도 한다고 한다. ‘각인 효과’는 다 자란 뒤에도 오래 지속하는데 한 번 생기고 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Konrad Lorenz being followed by greylag geese (Anser anser), 1960. 출처: Nina Leen—Time Life Pictures/Getty Images, via http://www.britannica.com/

정치인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1억 피부 클리닉 공방은 “예쁘지만 못됐다”는 나경원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 정보는 취사선택되고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강화된다. 피부 관리에 얼마를 쏟아 붓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나경원의 미모는 경쟁력이 아니라 치명적인 약점이 됐고 털털하고 서민적인 박원순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선거 판도를 크게 뒤흔들었다.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을 우상화하면서 군부 쿠데타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영화 시작 전에 틀어줬던 대한뉴스도 국민들 정서에 깊게 각인됐다. 작업모를 쓴 박정희는 산업화를 진두지휘하고 성장을 주도했다. KTX 이전에 가장 빠른 기차는 새마을호였다. 새마을호가 무궁화호보다 더 빠르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부독재는 나쁘지만, 박정희가 키운 성장의 열매는 달콤했다.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이런 딜레마를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이 기타를 치면서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를 부르고 이명박이 국밥을 먹으면서 욕쟁이 할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재래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는 것도 치밀하게 기획된 이미지 정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은 기득권의 권위에 맞서는 저항의 이미지로 일찌감치 진보의 아이콘을 선점했지만,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명박은 이에 맞서 박정희의 향수를 끌어내 보수 세력을 결집하게 했다.

김용옥도 인정했듯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게 버스 환승 시스템이었다. 청계천은 그냥 보기에 좋을 뿐이었지만 버스 환승 시스템은 푼돈이나마 직접적인 혜택을 안겨줬고 박정희의 마법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허상이라는 게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명박은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혼란을 심어줬고 그런 전략은 진보정권 10년을 회의하던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 BBK

지난 대선의 불편한 진실 또 하나는 BBK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이명박이 당선된 게 아니라 애초에 상당수 국민들이 이명박의 BBK 실소유주 여부와 관계없이 그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정동영은 이명박의 도덕적 결함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노무현의 실패와 이명박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한나라당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됐을 거라는 외신의 분석은 BBK 공방이 놓쳤던 지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이명박이 생방송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수주 사실을 알리거나 아덴만호 구출 작전을 자신이 직접 지시했다고 밝히는 것도 이미지 정치의 중요성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에겐 원전 수주보다 원전 수주를 했다고 알리는 일이 더 중요했다. 전봇대를 뽑는 것보다 전봇대를 뽑았다고 국민들이 알아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허상이라는 게 드러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지를 깨는 것은 이미지다. 각인효과를 깨뜨리려면 더욱 강력한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 김형태의 강간미수 사건은 충분히 놀라운 이슈였지만 김용민의 막말 파문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김용민은 ‘나꼼수’ 열풍에 묻어가려는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의 문제였지만 김형태는 결국 개인의 문제였다. 김형태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사퇴시켰겠지만, 김용민은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민주통합당의 패인 가운데 하나였다.

박근혜는 이명박처럼 박정희 코스프레를 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박정희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그에게 투영한다. 박근혜의 침묵은 박정희의 추억을 불러오는 주술이다. 박근혜가 언론에 말을 아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독재자의 딸’에게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정희의 허상이 깨지기 전까지 이런 전략은 매우 유효하다.

안철수의 침묵 역시 비슷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음과 희망, 상식을 이야기하는 그가 현실정치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그가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할수록 몸값이 치솟는다. 국무총리 임용과 동시에 급격하게 무너졌던 정운찬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충실한 콘텐츠를 가졌느냐와 별개로 정치력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그가 정글을 장악할 수 없다면(그런 이미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정글에서 생존할 수도 없다.

노무현은 각인된 이미지를 뒤집는 데 성공한 흔치 않은 경우다. 노무현의 자살은 결과적으로 그의 실패를 보수 양당의 실패로 치환했고 그는 실패했을지언정 좋은 정치인으로 남게 됐다. 노무현은 그를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무거운 죄책감을 남겼고 좌초한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를 구분하기를 불편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때로는 잘못된 기억이 현실을 뒤흔들기도 한다.

정치와 언론의 기묘한 공생이 초래하는 정치의 실종

쏟아지는 정치뉴스는 정치 현상을 다루는 게 아니라 정치인을 다루는 뉴스인 경우가 많다. 정치가 언론에 예속되면서 언론이 정치현상을 재단하고 아젠다 세팅을 주도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에게는 어떤 정책을 펴느냐 보다 어떤 정책을 펴는 것처럼 비치느느냐가 더 중요하게 됐다. 경마중계식 보도가 넘쳐나면서 정치가 폴리테인먼트화(politainment: politics 정치 + entertainment 오락)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정치와 언론의 이 기묘한 공생 관계가 만드는 건 결국 정치의 실종이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오히려 이미지 정치의 함정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정치인은 끊임없이 이벤트를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려고 하고 언론은 이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콘텐츠를 판매한다. 대중의 관심이 실체를 은폐하거나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팔리지 않고 팔리지 않으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대중의 관심이 권력이동을 결정하지만, 대중을 흔드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은 종종 도구로 활용된다.

결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미지는 종종 왜곡되거나 조작된다. 이미지와 실체는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좋은 정치인처럼 보이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실제로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이미지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만큼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 쏟아지는 정보와 조작된 이미지의 사이, 언론 보도의 행간과 이면에 실체가 있다. 이미지를 좇을 게 아니라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열세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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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1. 이미지정치를 써보려고 했던 정치인이 있죠. 강용석 전의원이라고 유명한 그분이 있으시죠.

    이미지 정치는 언론플레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사람들이 속았다고 느끼는순간 깨지게 되지만 성공하면 거의 종교화되는 것 같습니다.

    왠지 괴벨스가 생각나버리는군요.

  2. 가끔 그런 생각도…
    국가와 지자체를 더 작은 단위로 나누고 정치를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하면?
    통제할 수 없는 거대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인간의 삶이 가엾죠.

  3. 전체적인 논지에는 동의를 하지만.. 고인이 된 분에게 “(자살로서) 좌초한 진보의 아이콘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 라는 식의 표현은 불편하네요. 필자의 해석과 대상의 의지는 명확히 구분해서 표현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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