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사회 » 제네바에서 온 편지: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제네바에서 온 편지: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2014년 1월에 있었던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유혈사태를 돌아봅니다. (편집자)

습관이 습관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세 살 버릇 본능 된다

습관은 곧 자기 진화를 거듭하여 본능이 된다. 습관이라는 관념조차 없어지고, 습관과 몸이 물아일체(物我一體)에 이른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인간의 습관은 모두 사악하다”고 했나 보다.

인간을 정복했을 때에도 인간의 악덕을 받아들이지 마시오. 어떠한 동물도 집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잠을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장사를 해서는 안 되오.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하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동물도 자신과 같은 동물 위에 군림하여 압제를 행해서는 안 되오. 힘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똑똑하거나 순박하거나 우리는 모두 형제요.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되오. 모든 동물은 평등하오.

– 조지 오웰, [동물농장] 중에서

동물 농장

조지 오웰, 동물 농장(動物農場, Animal Farm), 1945

기업에도 습관은 있다

습관은 인간의 전유물은 아니다. 기업과 같은 ‘비인격적 주체’에게도 예외가 없다.

가령 이런 경우다. 20여 년 전부터 한국의 기업은 남미에 보세공장을 만들어 나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옛날 원양어선과 중동 건설 이후 다소 뜸했던 해외 진출의 신세계를 열어젖힌, 이른바 직접투자였다.

하지만 직접투자라고 해서 돈만 가는 게 아니다. 돈을 투자하는 기업의 습관도 따라갔다. 곧 사달이 났다.

남미 여성노동자, 아이를 잃다

한 보세공장의 여성노동자가 고단한 노동을 하면서도 뱃속에서 키워온 아이를 잃었다. 장시간 노동 탓에 임신 말기에 좋지 않은 징조가 생겼다. 그녀는 ‘한국인 감독’에게 병원에 가게 해 달라도 부탁했다.

공장은 곧 군대라고 믿었던 ‘작업장 십장’이자 감독은 이 부탁을 거부했다. 당일 할당량을 끝내면 보내주겠다 했다. 별도리 없이 늦게까지 일을 마치고 나서자 병원을 찾았다. 너무 늦었고,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 기업은 모르쇠였고, 공장 라인은 계속 돌아갔다. 그러곤 얼마 후, 돈벌이 시원치 않자, 이 기업은 몰래 그 나라를 떠났다. 공장이 군대였다면 자신의 병사를 지킬 법한데, 병사는 버리고 무기만 회수해서 달아나 버렸다.

아시아에 ‘원산폭격’ 수출하다

이게 신호탄이었다. 아시아에 진출하면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아시아 친구들로부터 ‘원산폭격’이니 ‘앞으로 전진’ 등등의 ‘전문 용어’ 뜻을 묻는 이들도 늘어났다. 폼잡고 한마디 하고 분위기 좋았던 토론장이 내 한국인 국적이 알려지면서 순식간에 싸늘해지는 일도 생겼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나 잘하세요’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중 한 장면

따가운 눈빛에 몸 둘 바 몰라 하면서, 나는 뻔뻔함을 배웠다. 난 지금도 나의 국적을 묻는 질문을 좋아하질 않는다. 뭉구리고 대충 답변하고, 다른 질문으로 선제공격하는 용의주도함도 아마 그때부터 연마하기 시작했을 거다.

캄보디아 유혈 사태

캄보디아는 2013년 7월 총선을 치렀다. 28년째 장기 집권 중이었던 훈센 총리는 다시 승리해 5년 동안 집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150만 여 표가 사라지는 등 총체적인 부정선거라며 야당과 반대자들은 항의했고,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특히 최저임금 월 80달러를 월 160달러로 높여달라는 야당과 시위대의 요구는 연말이 되자 더욱 강해졌다.

최저 생계도 불가능한 월 80달러의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높여달라고 캄보디아 노동자는 요구했다.  (사진: dw.de)

최저 생계도 불가능한 월 80달러의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높여달라고 캄보디아 노동자는 요구했다. 사진은 2013년 12월 말 시위 참석자의 모습. (사진: dw.de)

시위대는 한국 기업들이 몰려 있는 프놈펜 경제특구와 카니다아 공단에서 파업 동참을 호소했고, 이 와중에 캄보디아 군경이 투입됐다. 1월 2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노동자들을 캄보디아군은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그리고 당시 한국 기업들은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프놈펜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 벽 (2013년 12월 30일)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75878499@N03/11647289144/in/photostream/ Luc Forsyth, no1 CC BY NC)

프놈펜 시위대를 막고 있는 경찰 벽 (2013년 12월 30일)
(사진: Luc Forsyth, CC BY NC)

특히 911공수부대가 투입됐는데, 911공수부대는 한국 기업인 약진통상과 서로 담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프놈펜 경제특구).

911 공수부대는 1월 2일, 시위대에 대한 폭력진압을 주도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분노했고,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결국 사달이 났다. 1월 3일 폭력진압에 시위대에 캄보디아 군인들은 AK-47 소총을 난사했다. 최저임금과 관련된, 전형적인 ‘생계형’ 파업이었는데, 거기에 총을 쐈다. 이 사태로 최소한 5명이 사망했고, 2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1월 3일 유혈 사태는 당시에는 911 공수부대 짓으로 알려졌지만, 현장 시위에 참여했던 여러 노동자는 캄보디아 헌병 짓이라고 증언했다.)

2014년 1월 3일  https://www.flickr.com/photos/75878499@N03/11980917804/  Luc Forsyth, CC BY NC

캄보디아 프놈펜 카나디아 유혈 사태가 벌어진 2014년 1월 3일 모습
Luc Forsyth, CC BY NC

1월 3일의 유혈사태 직후 시위는 한풀 꺾이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캄보디아에서 최저임금을 높여달라는 노동자의 목숨을 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겉으로 표현되는 시위가 잦아들더라도 그 모순이 끝나지 않은 한 캄보디아는 시한폭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2014년 1월 28일에 벌어진 캄보디아 프놈펜 시위 모습  (사진: Luc Forsyth, CC BY NC)

2014년 1월 28일에 벌어진 캄보디아 프놈펜 시위 모습
(사진: Luc Forsyth, CC BY NC)

습관이 본능이 되면, 자신이 어느 나라에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 (또는 오늘날) 한국에서 했던 방식으로, 당신의 유전자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된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죽음

방글라데시에서도 최저임금이 문제였다. 일찍이 이 나라의 최저임금 문제는 곧 한국 기업의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본능적인 꼼수를 발휘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본급은 올려주면서, 상여급과 같은 부가급여를 삭감해 버렸다. 구색은 맞추었고, 기업은 손해 본 게 없었다.

노동자들이 항의했다. ‘공권력’은 다시 투입되었고, 한 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전매특허 등장, ‘외부 세력 개입’

동시에 한국에서 써먹던 전매특허까지 동원되었다. 이번 사태는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해당 기업이 주장했다.

다행히도 (기업에는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불문가지인 이 해당문구가 한국 밖에서는 독해 불가다. 그러나 상관없다. 습관이 본능을 넘어, 유전자로 자기 발전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도 매우 기이한 현상일 게다.

해당 기업들과 고위 관계자들은 아마도 이런 비상대책회의를 했을 것이다.

‘이리 싸가지 없고, 불평 투성이고 게으르니, 아직 배 곪고 가난하다. 이런 국민성 때문에 평생 잘 먹고 살긴 글렀어. X같은 XX들. 이참에 몸둥이로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실제가 아닌 상상 속 상황임 -편집자)

거울을 보라, 무엇이 보이는가

본능의 최대 장점은 자연스러움과 행동의 과감성, 신속성이겠다.

하지만 본능은 외롭다. 남들은 인정해 주질 않는다. 그래서 아마 지금 억울하고 외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럴 때는 시장에 가서 거울 하나 꼭 사길 바란다.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길 바란다. 주름이 늘어난 것 말고는 보이지 않는가? 그럼 중병이다. 외통수다. 장기 요양을 권한다.

캄보디아에 대한 ILO 성명서

최근 캄보디아 파업 중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공격받고 체포된 일련의 사태에 대하여 ILO는 생명의 손실을 비난하며 동시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ILO는 캄보디아 정부에 독립적인 조사에 지체 없이 착수하여 경찰의 행동의 정당성 여부, 책임소재, 관련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을 따져볼 것을 요청하는 바다. 경찰력은 법과 질서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만 사용되어야 한다.

일련의 체포와 관련해서도 ILO는 노동자의 정당한 이해를 지키기 위한 행동과 관련된 이유로 노조원을 구금하는 것은 시민권과 노조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따라서 ILO는 캄보디아 정부는 더 이상의 폭력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촉구한다. 또한, 최저임금에 둘러싼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금된 노조지도자와 노동자를 석방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해주길 바란다.

ILO는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번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떠한 지원이라고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혀 둔다.

2014년 1월 13일

국제노동기구

(번역: 이상헌 ㅣ 원문: 국제노동기구)

추신.

국제노동기구의 긴급 개입과 성명서는 어떤 때에는 시간 낭비이자 우이독경이고, 또 어떤 때엔 역할을 한다. 2013년 10월과 11월, ‘전교조 법외노조화’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긴급개입 했는데, 구체적인 편지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캄보디아 건이 그 강도는 훨씬 높다고 보인다. 아예 인터넷에 공개했다. 공개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참고 문헌 

 

좋은 기사 공유하고 알리기
슬로우뉴스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후원해주세요. 필자 원고료와 최소한의 경비로 이용됩니다.

필자 소개

이상헌
초대필자

제네바에서 페이스북 하는 사람 (→바로가기)

작성 기사 수 : 39개
필자의 페이스북

©슬로우뉴스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슬로우뉴스 안내 | 제보/기고하기 | 제휴/광고문의
(유)슬로우미디어 | 전화: 070-4320-3690 | 등록번호: 경기, 아51089 | 등록일자 : 2014. 10. 27 | 제호: 슬로우뉴스 | 발행인: 김상인 | 편집인: 강성모
발행소: 경기 부천시 소사로 700번길 47 1동 506호 (원종동, 삼신) | 발행일자: 2012. 3. 26 | 개인정보관리/청소년보호책임자: 강성모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