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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빠 대 나꼼까: “여기 바보가 있다!” [특집]

내 트위터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들을 팔로우(follow)하면, 그 사람들이 쓰는 글들이 시간순(Timeline)으로 내게 보인다. 만일 그들이 쓰는 글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다면, 블록(Block)이나 언팔로우(Unfollow)를 하면 된다. 그럼 이제 그 글들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내 트위터는, 오로지 내 취향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 트위터의 편향성을 지적하는 것은 트위터를 묘사하는 거의 모든 글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진부한 문구가 되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트위터의 기능이 바로 리트윗(Retweet)이다. 리트윗은 타인의 글을 아주 간편하게 전파할 수 있는 트위터 특유의 기능이다. 마음에 드는 글이 있다? 그럼 리트윗 버튼을 누른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나를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글을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팔로우하지 않는 사람의 글도 다른 사람이 리트윗을 하면 접할 수 있다. 이 리트윗 기능이, 나만의 트위터, 내가 선택한 사람들의 글만 올라오는 나만의 폐쇄적인 세상에 아주 작은 창문을 열어준다.

그런데 이 리트윗 기능이 조금 이상하게 이용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있다. 리트윗 버튼을 누른다. 그럼 나를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 “뭐 이런 글이 있느냐”며 조리돌림 한다. 나는 역시 이 글은 바보 같은 글이고 나의 견해가 옳았다며 자화자찬하고, 그 조리돌림에 일견 이성적인 척 한 마디를 보탠다.

“나꼼수 빠는 역시 답이 없다.”
“나꼼수 까는 역시 답이 없다.”

그들이 줄곧 외쳐왔던 “쫄지마 XX”의 구호. 총선 최대의 이슈로 부상한 김용민 막말 파문. 야권연대 패배에 따른 책임 공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슈가 총선을 전후해 트위터 등 SNS를 점령했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웠던 이슈는 역시 ‘나꼼수’였다.

총선 막판 가장 큰 이슈였던 김용민 막말 파문만 살펴봐도 그 논쟁은 정말 격렬하고 거세게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뭐 이런 식이다.

“8년 전의 발언으로 국회의원 자질을 평가하는 건 무리다!”
“이 발언은 단순히 음담패설이라 문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성이 담겨 있어 더 문제인 것이다!”
“부시가 여자냐!”

“새누리당은 표절에 성추행, 이것보다 김용민 후보의 발언이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느냐!”
“새누리당과 비교해 도덕적으로 그나마 낫다고 해서 그 발언을 감싸줄 수 있느냐!”

“미국의 침략전쟁과 포로 학대에 대한 비판을 성인방송에 어울리는 언어로 격렬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강간하겠다는 표현을 쓴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리고 그 끝에는 반드시 그 품평이 따라붙는다.

“나꼼수 빠는 / 까는 역시 답이 없다.”

그러나 실상, 트위터에서 이 김용민 막말 파문을 둘러싸고 가치 있는 논쟁이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번에 140자만 쓸 수 있는 한계, 팔로우와 언팔로우로 만드는 폐쇄성의 한계 등 여러 가지 지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진지하게 주고받는 양자 간 논쟁은 트위터의 시스템상 양자를 모두 팔로우하고 있지 않은 이상 제삼자에게는 보이지조차 않는다. 정상적인 논쟁이 이뤄지기 어렵다.

그리고 그 마지막으로 남은 작은 창구, ‘리트윗’ 기능조차도 정작 진지한 반론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적진의 의견 중 가장 바보 같은 의견을 찾아내어 이를 조리돌림 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허지웅의 리트윗

하나의 트윗을 리트윗하고, 그리고 한 집단 전체에 그 이미지를 덮어씌운다. 심지어는 허지웅 씨같은 유능한 칼럼니스트조차 이런 식의 트윗을 즐겨 한다.

탁현민의 리트윗

탁현민과 무관한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탁현민을 관련자로 싸잡아 엉뚱한 비난의 말을 남긴다. 탁현민은 이를 리트윗하고 그 이상의 비난을 돌려주는 것으로 해명을 대신한다.

트위터에는 타인의 트윗을 '혐오물'로 표현하고 이를 인용하는 '혐오물봇'까지 등장했다. 유명인들의 발언은 물론 무명씨의 트윗도 적잖이 올라온다.

트위터에는 타인의 트윗을 '혐오물'로 표현하고 이를 인용하는 '혐오물봇'까지 등장했다. 유명인들의 발언은 물론 무명씨의 트윗도 적잖이 올라온다.

그들은 리트윗을 통해 상대를 내 영역, 내가 만든 세계 속으로 소환하고 그 무식함을 실컷 조롱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상대 진영 전체에 그 무식한 이미지를 덮어씌우고 그것이 저들의 전부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단순한 방식이, 통한다. 내가 만든 세계이므로. 내 팔로워들이란 곧 내 말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므로. 물론 그게 통하는 것 역시, 내가 만든 세계, 나의 트위터 속에서만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트위터 밖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MBC, KBS는 “트위터에 인종차별 글이 난무한다”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그러나 정작 그들이 인용한 것은 팔로워/팔로잉 수가 100 남짓인 영향력 없는 인사들의 단편적인 발언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한겨레 기자 허재현 씨, 법학자 홍성수 씨, 칼럼니스트 한윤형 씨 등 진보적 인사들이 인종차별을 강하게 비판하던 글들까지 뒤섞어 마치 트위터 전체가 인종차별에 나선 것처럼 싸잡아 묶었다. 이 역시 트위터의 특징을 악용한 조리돌림의 한 양상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 바보가 있다!” – 트위터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위터식 조리돌림. 모든 글이 동등하게 노출되는 공개 게시판과 달리 극히 일부의 글만을 취사선택해 노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위터는 어쩌면 공론의 장이라기보다 이미 처음부터 여론 조작과 조롱, ‘우리 편 착한 편, 상대편 못된 편’ 논리만을 극대화하는 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40자의 세계는 여전히 잘도 흐르고 있다. 그 조리돌림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여기 바보가 있다!”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아홉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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