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일주일 넘게 마음이 너무 아파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두 나라 아이와 여성, 노약자의 피해를 지켜보는 게 힘들다. 캐나다와 한국 안에서조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편을 나눈 친구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도 너무 큰 고통이다.

언제나 그렇듯 쉽게 말하고, 편을 나눠 서로 찌르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억울하게 죽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당사자, 그 고통은 그 어느 쪽이든 상상할 수조차 없다. 과연 이 싸움에 승자가 있을까? 테러든 전쟁이든, 늘 가장 큰 피해와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건 시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다.

타국과 타민족 간 분쟁이고, 너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딜레마다. 한쪽이 일방적인 악이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인 선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겠지만,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인 사건들은 언제나 어렵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약한 사람들이 항상 가장 크게 고통받고, 피해를 입는다. 가자지구 남쪽 라파에서 한 주택이 이스라엘 전투기에 격추돼 많은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숨졌다. 2023년 10월 17일. 사진은 모하메드 자눈. @m.z.gaza

치료라는 렌즈로 바라보기


침묵을 택해야 하나… 아니면 소신 발언을 해야 하나… 그조차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내 나름으로 ‘치료’라는 렌즈 속에서 내 관점을 만들고자 한다.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이라 비판해도 어쩔 수 없다. 한국에서는 의견을 내기가 되레 쉬울지도 모른다. ‘당사자성’이 전혀 없으니까.

테러와 전쟁 당사자는 아니지만, 캐나다는 테러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다. 끊임없이 테러 협박을 받고 있는 곳이다. 또한, 모자이크 문화의 나라답게 내겐 유대인, 이스라엘 친구와 동료 스승들이 있고, 무슬림과 팔레스타인 친구와 동료 스승들이 있다.

나는 무슬림도 유대인도, 이스라엘 사람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한데 어울려 모자이크 문화를 만들어 가며 사는 다민족 국가 캐나다에 살고, 그 말은 내 치료도 내 관점도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다. 나에겐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를 가진 클라이언트가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나는 ‘모자이크의 나라’ 캐나다에 산다.

내 클라이언트가 ‘만약’ ~라면


‘만약’ 내게 지금 하마스의 테러를 당해 납치되고, 강간당하고, 살해된 이스라엘인의 가족이 클라이언트로 있다면, 나는 내가 개인적으로 외쳐 왔던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그들 앞에서 외칠 수 없다. 그래선 안 된다.

같은 이유로 내게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인 폭력과 설움을 당해 온 팔레스타인 가족이, 하마스를 독립군으로 믿고 지지하는 클라이언트로 온다면 나는 그 앞에서 하마스가 테러 집단이라는 내 개인적 견해이자 캐나다 정부 입장을 피력할 수 없다. 이런 행동 역시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내가 믿는 인권이나 믿음이 맞는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리고 나는 이들 양쪽의 치료를 정치적이거나 나의 개인 신념 또는 종교적 이유로 거부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의료인의 직업윤리이므로.

나는 오롯이 그 ‘개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개인의 아픔을 들어 주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치료사이지만 동시에 인권 활동가인 나는 어쩌면 계속해서 딜레마에 서게 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꼭 해야만 하는 일은, 나 역시 어느 쪽도 다치지 않게, 그 딜레마에서 최대한 자유로워지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해 가며, 그 개인의 ‘치료’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치료사다. 내 치료엔 국경이 없다.
나는 인권 활동가다. 내가 믿는 인권은 개개인의 인권을 모두 살펴야 한다.

내 눈엔 ‘피해자’만 보인다


국제 정세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관해 고민하던 걸 치료에 대입해 보니 조금은 선명해졌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민족도 아닌 그 피해자 개인에게만, 다시 말해 피해를 당한 당사자와 그 당사자 가족의 아픔에 관해서만 공감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양쪽 다, 이스라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말이다.

내 눈엔 ‘피해자’만 보인다.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도, 대다수 아이와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은 죄가 없다. 죄가 없음에도 가장 쉽게, 가장 먼저 폭력에 놓이고, 유린당하고 살해되는 아이들과 여성들, 그리고 약자들만 보인다.

나는 시민보다 자신의 입지가 우선순위인 세계의 ‘모든’ 정치 수장들을 규탄한다. 나는 유린당한 모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모든 시민 약자, 특히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지지하며 연대하기로 한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악은 평범하고 선은 보편적이다.

“그들이 속한 그룹이 아닌, 개개인을 희생자로 인식해 주십시오.”
“Recognize individuals as victims, not the groups to which they belong.”

아픔의 시대에 사는, 야만의 시대를 목도하는 이 믿을 수 없는 참담한 참상을 보며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본다.

내 이스라엘 친구도
내 팔레스타인 친구도
내 무슬림 친구도
내 유대인 친구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그 누구도 다치지 않기를….

관련 글

2 댓글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