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99년 전인 1921년,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 부유한 흑인 상업지구(‘그린우드 지역’)가 있었다. 블랙 월 스트리트(Black Wall Street)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발전한 지역이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노예였던 사람들이 상점 주인들이 되어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니 백인들의 눈에 얼마나 꼴보기 싫었겠나.
털사 인종 학살 (1921)
백인들의 시기심은 결국 말도 안되는 사건으로 폭발했다.
한 빌딩의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는 안내양으로 일하던 17세 백인 소녀[footnote]사라 페이지(Sarah Page) [/footnote]의 팔을 한 흑인 구두닦이 소년(19세)[footnote]딕 롤랜드(Dick Rowland) [/footnote]이 잡은 사건이었다. 1921년 5월30일 미국의 현충일이었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흔들리는 바람에 균형을 잃었던 흑인 남자가 자기도 모르게 옆에 서 있던 여성의 팔을 잡은 건데, 이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면서 큰 사건이 되었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고 이 여성도 흑인 남성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흑인들을 꼴사납게 보던 털사 백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총을 들고 무장한 백인들이 흑인 상업지구를 습격해서 무려 이틀 동안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저질렀다. 알려진 거로만 26명의 흑인과 10명의 백인이 죽고, 8백여 명이 부상당했고, 1만여 명이 집을 잃었고, 35개 블록, 1,256채가 불에 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막 꽃을 피우며 성장하던 건강한 흑인 경제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건은 사실상 역사에서 사라졌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다
그러다가 이 사건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이제야 이 문제에 관한 책이 나오고,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있다. HBO [왓치맨] (2019) 시리즈 1회가 이 사건으로 시작한다.
흑인들은 게으르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고 나도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일본이 조선을 점령해서 산업을 모조리 빼앗고 허드렛 노동만 할 수 있는 차별 상황에서 ‘조선인은 타고나기를 게으르다’고 했을 때 그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눈 앞에 보이는 조선인들이 하나같이 일본인 기업가가 시키는 일을 제 때 안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국민성이 저래’라고 해도 틀린 말 아니라고 했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을 거다. 당시에 그런 기록들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주인될 기회가 생겨서 자립을 하고, 스스로의 민주국가를 이룰 수 있게 된 후 수십 년이 흐르니 어떤가? 그 때 열심히 일을 안 한 게 국민성인가, 아니면 그런 상황에 놓였던 건가? 일해도 내가 돈을 벌지 못하고 내 처지가 나아지지 않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 사장되면 출근이 즐거운 법이다.
경제적 차별… 레드라이닝
흑인들은 조직적으로 차별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흑인들의 월스트리트를 만들어내자 백인들이 몰려들어 무법적인 학살과 약탈을 해서 재산과 생명을 빼앗았지만 처벌은커녕 제대로 조사도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털사의 블랙 월스트리트가 꾸준히 성장했으면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흑인 경제에 재투자를 하며 경제를 키웠을지. 그랬을 때 백인들을 비롯해 우리 모두가 흑인들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얼마나 바꾸었을지. 그런데 그건 이제 역사적 가정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과연 그게 오클라호마 뿐이었을까?
왜 백인들은 좋은 동네에 살고 흑인들은 가난한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아는가? 구글 검색창에서 “레드라이닝(Redlining)”을 검색해보면 안다. 백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지독하게 흑인들을 경제활동과 이윤에서 배제해버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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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이닝(redlining)이란?
가난한 (흑인 밀집) 지역에 ‘빨간 선’(레드라인)을 긋고, 금융서비스를 차별한 것에 유래했다. 1960년대 시카고 대학의 사회학자 존 맥나이트가 명명했는데, 당시 존 맥나이트는 은행에 걸려 있는 지도에서 빈곤층이 밀집한 동네에는 ‘빨간 선’이 그어진 걸 발견했다. 동네의 실업률과 평균 소득을 고려해 신용 리스크가 큰 지역을 표시한 것이라고 은행 측은 답변했다. 즉, “피부색으로 차별하듯 주소에 따라 금융서비스를 차별한 것”(출처: 경향신문)이다. ‘레드라이닝’을 사전에서 찾으면 “(은행·보험 회사에 의한) 특정 경계 지역 지정((담보 융자·보험 인수를 거부함))”이라고 정의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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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인들 정말 잘 산다. 그다지 노력한 것 같지도 않은데 집안들이 다 여유가 있다. 그렇다보니 경제적인 모험을 할 수 있다. 사업을 해도 백인들의 세상이니 서로 투자해주고 도와주고, 망해도 집안이 넉넉하니 굶어죽을 걱정없이 대학 중퇴하고 모험할 수 있다. 성공하면 갑부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넉넉한 배경’이 백인들이 사는 동네의 꾸준한 집값 상승으로 인한 무임승차에 있다. 대단한 저택은 아니지만, 자녀들을 중산층으로 놓고, 상류층으로 올라가게 한 결정적인 안전망이 됐다.
함부로 욕하지 마라
흑인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지른다고? 백인들은 할 말 없다. 그들이 지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백인들도 안다. 모르는 백인들이 있지만, 이제는 많은 백인들이 안다.
그리고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지난 주에 센트럴파크에서 불법으로 개를 풀어놓은 백인 여성 에이미 쿠퍼에게 흑인 남성이 좋은 말로 개를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에이미 쿠퍼는 경찰에 “흑인 남자가 나를 위협한다”고 허위신고했다. 1921년과 달라진 게 있나?
흑인들은 그런 세상에서 산다. 흑인여성과 결혼한 뉴욕시의 시장도 흑인 아들이 십대가 되면 “너는 밖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경찰의 총에 맞는다”는 교육을 시켜야 하는 곳이 미국이다. 모든 흑인아들을 둔 부모가 그 교육을 시킨다.
이 모든 걸 모르면 흑인 욕할 수 있다.
1980년에 서울에 살았던 사람들, 전부 광주시민들 욕했다. ‘깡패새끼’라고, ‘빨갱이들’이라고. 정말이다. 다들 욕했다. 어쩌겠나? 방송이 전부 거짓말 하니 알 도리가 없는데. 법과 질서? 2016년에 광화문에서 한 시위? 황교안에 따르면 불법이었다. 당신이 당하기 전까지는 법과 질서가 중요하다. 당신이 당하기 시작하면? 화염병을 들고 썩은 세상과 썩은 법을 고치고 싶어진다.
광주가 당하는 일을 모르고 그들을 욕했던 서울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눈에 아무리 분명해 보여도 내가 모르는 사실들이 있을 수 있다. 남의 사정 모르면 겸손하게 뉴스를 열심히 찾아 읽고 배우는 게 훌륭한 자세다.
흑인들 함부로 욕하지 말라.
[footnote]참고로, 케네디는 이 문장의 출처로 단테의 신곡을 언급한다.(“Dante once said that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a period of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 하지만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중심(가장 깊은 곳)은 가장 차가운 곳이고, 케네디의 언급은 기억의 변주나 착오로 보인다.(편집자) [/foot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