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검사는 누구나 받을 수 있다. 16만 원가량의 검사비를 지불하면 누구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2월 7일부터. 각주 참조 -편집자).[footnote]보건복지부 코로나19 사이트에 올린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안내 문건에 따르면 민간의료기관에서 검사가 가능해진 건 2월 7일 이후로 보인다. 아래 문건을 참조. (편집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시약 긴급사용 승인, 의료기관까지 검사 확대: 2월 7일부터 민간 의료기관에서 검사 가능 (중앙방역대책본부, 2020. 2. 4)
-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례정의 및 검사기관 확대(중앙방역대책본부, 2020. 2. 6)
[/footnote]아무튼 여러 뉴스라든가 복지부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건 사실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자꾸 사람들을 설득해서 돌려보냈다.
“제가 보기에 코로나 가능성 없어요. 굳이 검사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의사들이 쓸데없이 검사를 남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공부가 부족했다. 현재 정부의 방침은 증상이 있든 없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검사받게 하는 것이다. 검사비를 전액 본인이 부담하기만 한다면. 이런 정부 방침을 어기고 있던 건 오히려 나였다. 내일부터는 원하면 누구든 군말 없이 검사를 해 줄 작정이다.
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코로나19 사례정의(감염병 감시, 대응, 관리가 필요한 대상을 정의하는 것)[footnote]출처: 한국일보, 의사환자? 능동감시? 너무 어려운 감염병 용어(2020. 2. 11)[/footnote] 최신 7판에 따른 검사 대상은 다음과 같다.
의사 환자(감염이 의심되는 환자)
- 확진환자와 접촉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 (기침, 호흡곤란 등)이 나타난 자
조사대상 유증상자
- 의사의 소견에 따라 원인미상폐렴 등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자
- 중국등 지역 전파 국가를 방문한 후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
- 국내 집단발생과 역학적 연관성이 있으며,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
16만 원짜리 ‘안심’
요새 코로나19를 검사받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곳이 확진자가 적어서일 것이다. 심지어 아예 증상이 전혀 없는 환자가 태반이다. 다들 무증상감염을 이유로 검사를 원한다. 하지만 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은, 냉정하게 말해서, 길 가는 멀쩡한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검사했을 때와 확률에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0은 아니지만, 극히 낮을 게 틀림없다.
증상이 아예 없고 역학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검사를 받으려는 이유는,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뉴스가 워낙 무섭고, 만에 하나 그럴 경우 자신이 누군가에게 병을 퍼뜨릴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16만 원을 주고 안심을 사는 것이다.
‘나는 공동체 생활을 하기에 안전한 사람입니다.’라는 인증인 셈이다. 이것만 있으면 더는 불편한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치 않다. 심지어 증상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음성이라는 인증만 받으면 마음껏 생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16만 원은 그리 큰 비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검사를 받았다고 해서 가능성이 사라지는건 아니다. 검체 채취 과정의 미흡, 바이러스의 낮은 역가, 너무 빠른 시기의 검사, 검사 자체가 가진 한계등으로 인한 위음성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음성 결과를 받아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코로나19를 조심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물론 역학적 연관성과 증상이 없는 환자라면 위음성 가능성이 극히 낮겠지만.
개인의 코로나19 검사, 전체에 이익일까?
아무튼 정부는 증상이 없더라도 돈을 지불하고 안심을 살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는데, 이건 국가 전체로 볼 때 과연 이득일까?
일견 생각나는 이익으로는,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심리적 여유를 되찾아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하지만 과도한 공포를 줄이는 다양한 사회적 노력을 등한시한 채, 검사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다른 이익으로는, 가능한 많은 환자를 검사하여 숨어 있는 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찾아내서 격리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전수조사할 자원이 모자라니, 의심되는 환자들만 비용을 지원하여 모두 조사하고, 나머지는 개개인이 내는 비용을 활용하여 검사 수를 늘리려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 가장 많이 나오는 불만이 ‘특정 집단의 선정’에 관한 문제와 ‘경제적 차별’의 문제이다. 전자는 왜 특정 종교를 지닌 이들은 무료로 검사받고, 일반 시민은 비싼 비용으로 검사를 받느냐는 불만이고. 후자는 결국 돈이 있으면 검사받고, 돈 없으면 검사조차 받지 못하는게 정의롭느냐는 문제 제기다. 실제로 비싼 비용을 설명 듣고는 검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꽤 많으니까.
불안와 경제력이 ‘검사’ 기준인 현실
나는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검사 기준에 굳이 쓸데없는 ‘뒷문’을 열어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뒷문이 있는 이유는 검사 기준에 관한 철학적 고민이 부족했던 거 같고.
개인에게 선택권을 남겨둠으로써 차별이 발생했다. 애초부터 사례정의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검사를 차단했어야 한다. 검사 수를 늘려 더 많은 감염자를 찾아내고 싶었다면, 의심되는 사례정의의 범위를 확대하는 걸로 해결했어야 한다. 기왕 자원을 소모할거라면, 조금이라도 가능성 높은 집단을 찾아내서 검사하는 게 사회적 효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은 심리가 더 불안한 환자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환자들이 훨씬 더 폭 넓게 검사받고 있는 실정인데. 이러한 정책은 사례정의 밖에서 환자가 자꾸 발생하여 문제가 되자, 그 책임을 환자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꾀하려한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의료자원 고갈’
사실 이러한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의의 문제보다 의료자원의 고갈에 있다. 검사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의료자원의 소모가 늘어난다. 코로나19 검사의 복잡한 과정에 의료진의 노동량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확률 낮은 검사에 불필요한 의료비가 지출된 셈이고, 또한 중증환자의 치료 등에 활용해야 할 한정된 의료자원이, 가능성 낮은 환자의 검사에 사용되는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 개인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고로 검사받을 사람을 정부에서 통제하는 편이 개인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보다 사회 전체에 훨씬 더 큰 효용을 가져다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