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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deo Modigliani, "Seated Man with a Cane"(1918)
Amedeo Modigliani, “Seated Man with a Cane”(1918)

때는 1918년, 초상화의 달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지팡이를 짚고 앉은 아저씨의 초상화를 그렸다.

사라진 모딜리아니의 그림 

오스카 스테이너이 그림은 파리에서 골동품을 거래하던 영국 국적의 유대인 오스카 스테티너(Oscar Stettiner, 사진)가 소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스테티너는 천주교도 아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어서 급히 피난을 떠난다. 그렇게 스테티너는 아내의 고향인 시골 마을로 피신했다.

한편 파리를 점령한 나치는 1941년, 임시 관리인을 지명하여 그가 남기고 간 골동품과 예술품들을 네 번에 걸쳐 급하게 처분한다. 가구, 은 식기, 샹들리에 등 골동품과 함께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그림 세 점과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의 그림들도 섞여 있었고, 총액은 500만 프랑에 달했다.

그런데 네 번째 마지막 판매물품 중, 그러니까 1944년 7월 3일 오전 10시, 갤러리 전시 설비와 창, 금고 판매 물품 중에 “모딜리아니 그림 한 점”(un tableau de Modigliani)이 포함돼 있었다. 전쟁 이후, 스테티너는 파리로 돌아와, 이때 판매된 물건들의 반납을 요청하면서 모딜리아니 그림이 “남자 초상화”(portrait d’homme)라고 묘사했다. 그림의 정식 제목이나 크기 등 다른 정보는 없었다.

바로 이 장소에서 그림의 매매가 이뤄졌다고 한다. ⓒTORSTAR NEWS SERVICE (재인용 출처: metronews.ca) http://www.metronews.ca/news/world/2016/04/07/panama-papers-might-hold-new-evidence-on-modigliani-painting.html
바로 이 장소에서 그림의 매매가 이뤄졌다고 한다. ⓒTORSTAR NEWS SERVICE (재인용 출처: metronews.ca)

하지만 스테티너는 이 그림을 누가 샀는지 알고 있었다. 존 반 데 클립(John Van der Klip) 갤러리가 이 작품을 사들였는데, 갤러리는 문제의 모딜리아니 그림을 다른 곳[footnote]M. Mariage Eu[/footnote]에 넘겼고, 그림은 또다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미국인 장교에게 25,000프랑에 판매됐다. 이때부터 모딜리아니의 이 그림의 행방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게다가 스테티너도 1948년에 사망하여 추적이 중단됐었는데, 그의 아내나 딸 모두 그림의 추적을 포기했었다. 

다시 떠오른 ‘지팡이 아저씨’ 

그러던 중 1996년, 크리스티의 경매에 이 그림이 갑자기 나타난다. 이때 역시 갑자기 나타난 IAC[footnote]International Art Center[/footnote]가 이 그림을 구매했다. IAC는 파나마에 있다. 이제 이 이야기의 윤곽을 아실 것이다. 

몬덱스 제임스 파머 현재 프랑스 농부로 사는 스테티너의 외손자인 필립 마에스트라시(Philippe Maestracci)는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대해 아내나 장모로부터 어떤 말도 못 들었었다. 그때 마에스트라시에게 접근한 한 사내가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나치 약탈 예술품 찾아주기 전문회사인 몬덱스(Mondex)의 창업자 제임스 팔머(James Palmer, 사진)다.

몬덱스에 관한 평판은 좀 엇갈린다. 예술품을 ‘원래’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대가로 그림의 가치와 상관없이 무조건 30%의 수수료를 챙기는 이 회사는 근거가 얕든 깊든 무조건 덤비고 보는 곳으로 유명하다. 스테티너의 손자는, 돈이 아닌 ‘할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이 그림을 되찾기로 마음을 먹는다.

‘할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림을 되찾기로 결심하다 

때는 2011년, 마에스트라시[footnote]당시 그의 변호팀은 Dunnington, Bartholow and Miller LLP이었다[/footnote]는 미국 뉴욕 연방법원을 통해 헬리 나흐마드(Helly Nahmad)와 아버지인 다비드(David Nahmad), 그리고 IAC에 그림을 반환하라는 소를 청구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이 소를 각하[footnote]소 제기의 조건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 즉 미국 연방법원이 다룰 일이 아니라는 의미[/footnote]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2012년 마에스트라시는 소를 취하했다.

Valery Hache, AFP Photo/Getty Images
나흐마드 가문의 수장이자 예술품 딜러 다비드 나흐마드 (출처: Valery Hache, AFP Photo/Getty Images, 재인용 출처: news.artnet.com)

그러다가 2014년, 마에스트라시는 뉴욕주 법원에서 다시 한 번 소환장을 청구한다. 이번에는 2011년의 반환소송 청구와는 좀 달랐다. IAC에 대한 정보를 조사할 수 있도록 뉴욕주 법원에 요청하는 식이었다. 보통 소환장 청구는 본격적인 소송 전에 하는 행위로 인식돼 있으며, 뉴욕주 법에서 허용된다.

하지만 나흐마드 가문은 이 그림의 소유주가 IAC이지 자기들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갤러리(Helly Nahmad Gallery)에서 전시했던 것은, IAC로부터 ‘대여'(loan)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뉴욕주 대법원까지 상고됐던 이 소송은 2015년 11월, 역시 기각됐다. IAC가 파나마이니, 뉴욕의 헬리 나흐마드 갤러리(Helly Nahmad Gallery)를 상대로 하지 말고 파나마에 가서 IAC를 상대로 소 제기해야 하고, 스테티너가 실제로 모딜리아니 그림을 소유했다는 증거 문서가 없으니, 마에스트라시 역시 적절한 원고가 아닐 수 있다면서 말이다.

파나마 페이퍼 사건의 소용돌이에 빠진 ‘지팡이 아저씨’ 

출처: Arnulfo Franco / AP, 재인용 출처: lemonde.fr) http://www.lemonde.fr/idees/article/2016/04/09/un-monde-sans-fraude-est-il-possible_4899334_3232.html?utm_medium=Social&utm_source=Twitter&utm_campaign=Echobox&utm_term=Autofeed#link_time=1460219503
간판에서 파나마 페이퍼의 주역(?)인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가 보인다. (출처: Arnulfo Franco / AP, 재인용 출처: lemonde.fr)

자, 그리고 파나마 페이퍼 사건이 터졌다.[footnote]1천150만 건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조회 회피처 자료 ‘파나마 페이퍼스’를 통해 폭로된 방대한 의혹 사건이다. 2016년 4월 4일(현지 시간) 파나마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footnote] 그리고 IAC가 나흐마드 가문 소유의 페어퍼 컴퍼니임이 드러났다. 물론 마에스트라시는 다시 소를 제기했다. 레바논 출신의 모나코 영주권자 가족인 나흐마드 가문(역시 유대인이다)은 거물 예술품 딜러다. 그리고 문제의 모딜리아니 그림은 1996년 구매 이후 행적이 공개돼 있으며, 현재는 제네바에 있는 자유무역항(port franc) 창고에 보관돼 있다.

제네바 자유무역항, 여기가 미술관이라면 세계 최대의 작품 소장처라고 한다. (출처: Geneva-freeports.ch, 재인용 출처: news.atrnet.com https://news.artnet.com/market/switzerland-freeport-regulations-367361 )
제네바 자유무역항, 여기가 (만약에) 미술관이라면 세계 최대의 작품 소장처라고 한다. (출처: Geneva-freeports.ch, 재인용 출처: news.atrnet.com)

문제의 파나마 페이퍼에 따르면,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제네바 지사는 스위스의 UBS 은행과 함께 1995년, IAC를 만든다. 이를 다비드 나흐마드의 형인 주제페 나흐마드가 만들었으며, 나중에는 다비드가 모두 인수한다. 하지만 이들 경영진은 가려져 있었고, 뉴욕주 법원에 증명 서류를 송달해야 할 때가 오자, 누가 서명을 하느냐로 고민했었다. 결국, 모색 폰세카 직원이 대신 서명을 해줬다.

IAC의 직원은? 한 명도 없다. 특히 레티시아 몬토야(Leticia Montoya)라는 모색 폰세카의 직원은 10,967개 회사의 이사진 중 일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몬덱스는 바로 이 점을 잡고 늘어지고 있으며, 수세에 몰린 나흐마드 가문은 “회사를 누가 가졌는지가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원고가 과연 그림의 소유주였음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있다.

소더비에서 판매할 당시에 촬영된 사진 (출처: JANE MINGAY FOR THE TELEGRAPH) http://www.telegraph.co.uk/news/2016/04/07/panama-papers-reveal-owners-of-valuable-modigliani-stolen-by-naz/
소더비에서 판매할 당시에 촬영된 사진 (출처: JANE MINGAY FOR THE TELEGRAPH)

과연 마에스트라시는 할아버지의 그림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나흐마드 가문이 미국 국세청을 만나는 일이 더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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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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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이성진 님께

    확인이 늦어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Palmer가 맞습니다. 편집상 확인했어야 했는데 소홀했네요. 이렇게 꼼꼼하게 조언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문 해당 표기는 정정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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