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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이 노래한 7·80년대의 사회사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빌리 조엘은 1949년에 태어나 70년대와 80년대에 전성기를 구가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다. 내가 빌리 조엘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음악 자체가 뛰어나서지만, 그의 노래들을 특히 애정하는 이유는 주제 면에서 항상 빌리 조엘이 살던 시대의 공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런 노래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1. 업타운 걸(Uptown Girl)

 

1983년에 나온 이 노래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노동계급의 Downtown man이 상류층의 Uptown girl에게 구애하는 내용을 담은 흥겨운 노래다. 이 노래 자체는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노래는 아니고, 빌리 조엘의 연인이던 엘렌 맥퍼슨과 나중에 아내가 되는 크리스틴 브링클리를 소재로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쇠락해가는 블루칼라 정비소의 모습, 그리고 점차 미국 사회에서 강해지던 동질혼 경향(학력과 가정환경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결혼)을 생각해보면 흥겨운 노래 뒤에 씁쓸한 맛을 느낄 수도 있다.

 

 

2. 피아노맨(Piano Man)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973년에 나온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이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경험을 토대로, 또 그 시절 자신이 바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에 모여서 피아노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인생의 짐을 더는 풍경을 그렸다.

 

 

3. 앨런타운(Allentown)

 

1982년에 나온 노래로, 펜실베니아 주의 유서 깊은 철강도시였던 앨런타운과 베들레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노래다. 제2차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세계 모든 나라를 압도하던 미국의 철강업은 전후 경쟁국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었고, 80년대가 되자 북동부의 수많은 철강도시(Steeltown)들의 노동자들은 차츰차츰 해고당하며 실직자가 되었다.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고, 과거 번성했던 노동조합도 스러지고, 사람들도 이제는 무기력해졌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났던 이 고향 앨런타운에서 계속 살아가리라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곡이 나온 해를 생각하면 미국 제조업의 문제는 최소 40년은 된 문제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앨런타운 노동자들의 비극에는 한국 철강업의 신화적 성공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4. 소련으로 돌아왔어(Back in the U.S.S.R)

 

사실 이 노래는 빌리 조엘의 노래가 아니라 1968년에 나온 비틀스의 노래다. 하지만 여기에 구태여 소개하는 이유는 빌리 조엘이 이 노래를 더 ‘역사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987년 빌리 조엘은 미국 가수 중 최초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콘서트를 열 수 있었는데, 그 때 소련에서 부른 노래 중 하나가 바로 “소련으로 돌아왔어”이다.

영상을 보면 노래를 시작하기 전 빌리 조엘이 ‘Do you like Beatles?’라고 묻고, 통역이 ‘Bitls lyubite(비틀스 좋아하세요)’라고 전해주자 환호성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는 것부터 인상적이다. 특히 몸을 불사를 정도로 열정적인 빌리 조엘의 공연과, 꿈에 그리던 미국 가수의 라이브를 보며 감격하는 소련 관객들의 반응도 볼만하다. 냉전 체제가 평화롭게 끝날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 차있던 그 무렵, 당대 분위기에 이 노래만큼 어울리는 노래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5. 레닌그라드(Leningrad)

 

1987년 소련 공연에서 빌리 조엘은 레닌그라드에서 빅토르 라지노프라는 서커스 광대와 알게 된다. 거기서 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아 1989년에 낸 노래가 Leningrad이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고 힘겹게 삶을 살았던 빅토르의 이야기와, 철의 장막 반대편에서 소련인들의 핵공격을 두려워해야만 했던 자신의 삶을 교차하면서 과연 두 나라가 무엇 때문에 40년 동안 냉전을 했던 것인지 의문을 던지는 감동적인 노래다. 철의 장막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을.

물론 이후 역사는 이 노래가 희망했던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러시아는 끔찍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잔혹한 이행기를 거쳤다. 그 상처는 러시아가 늘 미국에 맞서 날카롭게 발톱을 들게끔 만들었고, 2010년대에 들어 두 나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곳곳에서 부딪히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빅토르 라지노프와 빌리 조엘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던 것 같다. 2015년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빌리 조엘이 라이브를 했을 때, 마침 빅토르가 뉴욕에 와 있었고 빌리 조엘은 그를 위해 이 노래 레닌그라드를 불러주었다.

 

 

6. 우린 그 불을 지르지 않았어(We didn’t start the fire) 

 

이 노래도 1989년에 나온 것이다. 냉전이 끝나갈 무렵, 1949년부터 1989년까지 자신의 40년 인생 동안 미국 사회에서 이슈가 된 수많은 사건과 인명을 나열하는 재밌는 형식의 노래다. 이 노래의 탄생 비화도 상당히 재밌다. 막 40세가 된 빌리 조엘은 어느 날 21살짜리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갓 21살이 된 이 청년은 1989년이 20대들에게 얼마나 힘든 때인지 투덜투덜 댔다고 한다. 이에 빌리 조엘은 “우리 21살 때도 그랬어. 베트남 전쟁, 마약, 민권운동….”라고 답했다는데, 그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빌리, 당신이 유년기를 보낸 50년대는 아무 일도 없던 시대였잖아요?”

빌리 조엘이 여기서 깜짝 놀라서 “한국 전쟁하고 수에즈 위기가 뭔지는 아니?”라고 물었고, 이 때의 대화에 영감을 받아 자신이 태어난 1949년부터 당시 1989년까지 40년의 세월을 수놓은 사건들을 가사로 써보기로 했고 그 결과 나온 노래가 이 노래다.

이미지 원본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합성 이미지 제작: SOUMYAROOP ROY (soumyarooproy@yahoo.com), 재인용 출처: i.kym-cdn.com, https://i.kym-cdn.com/photos/images/original/001/135/120/aaf.jpg

노래에 등장한 인물과 사건을 정리한 이미지 타임라인(이미지 원본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합성 이미지 제작: SOUMYAROOP ROY (soumyarooproy@yahoo.com), 재인용 출처: i.kym-cdn.com)

기성세대가 참 ‘X같은’ 세상을 물려줬다고 불평하는 21살 청년에게 응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불은 우리가 지른 게 아니고, 세상 시작할 때부터 늘 그래왔다고 말하며 자신을 둘러싼 시대 상황을 흥겹게 노래하는 게 참 인상적인 노래다. 저 때 투덜거렸을 청년은 60년대생일텐데, 그 60년대생들이 이제 기성세대로 온갖 욕을 먹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저 노래보다 늦게 태어난 입장에서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표준적으로 자리잡은 미국적 생활 양식을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도 노래랑 잘 어울린다(다만 중간까지 아들이 나오다가 딸로 바뀌는 게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감).

냉전과 함께 테어난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빌리 조엘이 한 시대를 떠나보내며 부른 노래라는 것도 여러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스탈린, 공산 중국 같은 것으로 시작한 가사가 락앤롤과 콜라 전쟁으로 끝나는 것도 40년에 걸친 시대의 변천을 너무 잘 드러내준다. 본인이 의도한 가사는 아니었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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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임명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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