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 그냥 또라이 한 명이 사람을 죽인 거예요.”
요즘 이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언제나 따라붙는 말도 있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여성인데 여성도 잠재적 범죄자 아닌가요?”
가장 슬기로운 대처는 이런 말을 내뱉은 사람과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것이다. 나는 이런 헛소리에 대고 더는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여성들마저 남성들의 이러한 협잡에 가까운 논리에 설득당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사건 하나만으로는 가해자를 어떤 기준에 의거해 분류할 수 없다. 가해자는 성별, 국적, 인종, 연령 등등 여러 가지 속성을 지녔을 것이다. 그중 어떤 속성이 살인에 영향을 미쳤는지 사건 하나만을 보고서는 알 수 없다. 이는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해자가 지닌 여러 속성들 중 어떤 것이 피해자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사건 하나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죽인 사건이 무수히 많이 벌어진 탓에 엄청난 분량의 자료가 쌓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 유형을 어느 정도 포착할 수 있다. 통계를 분석해 의미 있는 가설을 세워 볼 수도 있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학적 연구 결과들을 참조하면 살인 통계에 대한 분석에는 더욱 확고한 설득력이 실리게 된다. 우리가 그러한 분석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살인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23분 35초마다 한 건씩 일어난다는 성폭력 범죄[footnote]2014년 8월 27일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정용기 의원(새누리당)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1~2013년간 자료에 의하면, 여성 1,100명당 한 명 꼴로 성범죄에 희생되고, 범죄시계에 따르면 23분마다 한 건의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남. 참고로 ’23분 35초’의 기준년은 2013년. (참조: 아시아투데이, 편집자) [/footnote]의 가해자는 대부분이 남성이다. 사나흘에 한 명꼴로 여성이 죽어 나간다는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 역시 대부분 남성이다.
언론에서 흔히 ‘묻지 마 살인’으로 보도하는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반면 여성이 남성을 성폭행했다거나 여성이 연인인 남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거나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묻지 마 살인’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여기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서로 다른 세계
통계가 아니더라도 남성과 여성은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여성은 남성에게 늘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 누구를 조심해야 할지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알고 있다. 남성이다.
여성은 인적 드문 밤거리를 마음 놓고 걷지 못한다. 골목길을 혼자 걸으며 귀에 이어폰을 꽂지도 못한다. 늦은 밤 혼자 택시를 탈 때마다 택시 번호를 친구나 가족에게 전송해야 하며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벽에 나 있는 구멍에 휴지를 뭉쳐 쑤셔 박아야 한다.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성들을 일상적으로 따라다닌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남성은 전부 다 잠재적 범죄자’라고 주입하는 주변 남성들 덕분에 유지되고 강화된다.
물론 남성은 여성이 일상적으로 품고 살아가는 두려움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밤거리에 나가면 살해나 강간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술 취한 남성들이 어디에나 널려 있다. 심지어 남성은 만취해 길바닥에 누워 잘 수도 있다. 여성은 상상도 못 할 얘기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서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청할 수도 있고, 공중화장실에 자신을 찍는 몰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여성에게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살아가는 남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조심하라’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남성이 존재하기는 할까?
젠더폭력, 그리고 ‘조심하라’는 말
무수한 범죄 통계와 실제 성범죄 및 강력범죄 사례들, 그리고 여성이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 두려움과 그 두려움의 실제적 원인이 되는 남성들의 존재, 이러한 사항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젠더폭력’이라는 유형의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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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이란?
젠더폭력은 상대 성에 대한 혐오를 담고 저지르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을 말한다. 여성을 공격하는 여성폭력과 남성을 공격하는 남성폭력이 있는데, 젠더폭력은 대개 여성폭력으로 통한다. 젠더폭력은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강간), 가정폭력, 성매매 등이 대표적 형태다. (위키백과, ‘젠더폭력’ 중 발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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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이 가능할 수밖에 없고 또 너무나도 쉽게 확산될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춘기 남성부터 노년기 남성까지 성인 여성 대부분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남성의 육체적 완력이 여성보다 강하다. 둘째,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는 여성을 남성의 통제에 따르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하고, 이 경우 폭력은 가부장제의 틀 안에서는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남성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된 조건 속으로 편입된다. 강한 완력과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 힘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유일한 질서라 생각하는 남성은 아무 거리낌 없이 여성을 때린다. 폭력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만, 성범죄와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스토킹 등을 처벌하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결함을 간파한 남성은 역시 아무 거리낌 없이 여성을 때리거나 강간한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는 범죄 실행이 가능한 존재들에게서 죄책감이라는 마지막 안전장치마저 제거해 주고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집단, 즉 여성에게 생존의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여성을 향한 ‘조심하라’는 말에는 바로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작년 강남역에서는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이유로 공중화장실에 잠복해 있던 남성이 여성을 골라 살해한 살인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남성이 여성이 혼자 일하는 왁싱샵에 쳐들어가 금품을 갈취하고 강간을 시도한 끝에 결국 여성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이 있었다(참조: 한국일보).
두 사건은 개별적으로만 들여다보면 범죄자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사건과 너무나도 흡사한 유형을 보이는 사건들이 이미 너무나 많이 존재해 왔다.
남자가 여자를 죽인다
남성이 여성을 죽인다. [footnote]대검찰청이 제공하는 범죄 통계 문건(‘2016 범죄분석’)을 기준으로 살피면, 강력범죄에서 피해자의 비중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하면 현저히 높고, 가해자의 비중도 남성이 여성보다 높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다만, ‘2016 범죄분석’에는 여성 피해자가 남성에게 살해당한 경우나 여성에게 살해당한 경우, 혹은 남녀 혼성 공범에게 살해당한 경우 등 가해자 성별-피해자 성별을 매칭하는 통계는 제공하지 않는다. 다른 관련 통계들도 살펴봤지만, 살인사건에서 ‘성별 매칭’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왜 ‘성별 매칭 통계’를 제공하지 않는 걸까? 통계청과 대검찰청에 각각 문의했지만, 만족스러운 답은 얻지 못했다. 해당 자료는 원본 자료로 있(었)을 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공식 답변의 근거로 제공할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앞으로 해당 항목이 사회적으로 중요해지면, 향후 통계에서는 반영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대검찰청의 답변이었다.
혐오 범죄의 사회적 관심과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이 문제의 사회적 함의와 중대성을 고려하면, 당연히 앞으로는 살인사건을 비롯한 강력범죄에서 ‘성별 매칭 통계’가 범죄 통계의 대표적인 공식 문건이라고 할 수 있는 대검찰청의 ‘범죄분석’에 공식 항목으로 포함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직접 통계로서 (성범죄의 맥락에서) ‘남성이 (주로) 여성을 죽인다’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상식과 경험칙에 의하면 넉넉하게 그것이 진실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더불어 간접 자료, 가령 데이트 폭력이 원인이 된 살인사건의 증가, 데이트 폭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등을 고려하면, 더욱 이 명제(진술)는 진실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리라 본다. (편집자) [/footnote] 어찌 그것이 가능했는가? 남성이 여성보다 육체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은 남성의 손에 마땅히 통제당해야 하는 존재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한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에.
두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도 두 사건과 흡사한 사건들은 무수히 많았다. 두 사건 사이에 있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그리고 왁싱샵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 흘러간 2주라는 시간 동안에도 여성은 계속해서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하고 있다.
여기서 어떤 패턴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대단히 기괴한 일이 될 것이다. 눈앞에 있는 현실을 외면하려 해선 안 된다. 여성이 남성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은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사건에 비하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끔씩 여성이 남성을 살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조차 대부분 극심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이 최후의 수단으로 결행한 정당방위로서의 살인이다.
진실과 똑바로 마주하자. 어떤 남성은 여성을 죽인다. 그런 남성이 전체 남성 중 일부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모든 남성이 범죄자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남성이 언제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은 모두 갖추어진 사회에서 우리는 산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남성은 몸소 범죄자가 된다.
물론 여성이 가해자로 존재하는 범죄도 있다. 여성도 남성을 폭행하거나 살해한다. 그러나 여성은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신체적 조건도 사회적 조건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완력은 남성보다 못하며, 가부장제는 범죄는커녕 짧은 옷을 입거나 흡연을 하는 등 여성의 사소한 ‘일탈’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다른 어떤 사건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무수히 존재한다면 데이터를 분석해 거기서 어떤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살해하거나 강간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범인은 여성이라서 범행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초등생을 제압할 수 있는 완력이 있다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피해자를 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어린이집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들이대지만, 애초에 전형적인 여초 직종에서 여성 가해자의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게다가 어린이집 아동학대까지 포함해 전체 아동학대 가해자의 성별 통계를 보면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footnote]2015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에 아동학대로 판단된 11,715건을 대상으로 학대행위자의 성별을 분석한 결과, 남성은 전체의 57.5%에 해당하는 6,736건, 여성은 4,967건(42.4%)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약 1.4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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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단순하다. 여성 혐오 범죄 혹은 젠더폭력은 존재한다. 남자들이 실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여자들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주변 여성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심하라’는 말이 바로 젠더폭력의 존재를 입증한다. 불특정 다수의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지 않는다면 굳이 여성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도, 최근의 왁싱샵 살인사건도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이자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자행된 젠더폭력이다. 두 사건만 보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두 사건의 앞뒤로 존재하는 무수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의 범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가해자의 성별이라는 명확한 속성을 제거해 버리는 순간 젠더폭력은 영원히 근절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모든 사건은 연결되어 있다. 언뜻 보면 개별적인 사건들로 보이는 여성 혐오 범죄들은 사실상 가부장제라는 살인마가 벌이는 연쇄살인 사건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은 끊임없이 살해당했고, 지금도 살해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해당할 것이다. 이 피의 고리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지극히 단순한 본질에 대해 거듭 이야기해야 한다. 남성들이 비로소 귀를 기울일 때까지.
‘남성이 여성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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