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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말,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단어는 단언컨대 필리버스터다. [footnote]필리버스터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의미하는 말이다. 통상 무제한 연설을 수단으로 삼는다.[/footnote]

5시간, 10시간을 넘는 야당 의원들의 ‘국회 안’ 필리버스터도 간절하고, 뜨겁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국회 밖 시민 필리버스터의 열기도 뜨겁다. 온라인을 통한 테러방지법 반대서명은 3일 만에 25만을 돌파했고, 23일 저녁부터 이어진 국회 정문 앞 ‘시민 필리버스터’도 계속 중이다.

시민 필리버스터

시민 대다수에게는 최근에서야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테러방지법 제정 논의는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참여연대는 2000년대 초부터 10년 넘게 테러방지법 제정 움직임을 반대해왔다.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에게 시민 필리버스터의 이모저모와 테러방지법의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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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 인터뷰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팀장

 

– ‘시민 필리버스터’를 간단히 소개하면. 

국회 안에서는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토론으로 설득하고 있지만, 국회 밖에서도 시민들이 참여할 방법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만들지만, 시민들도 법이 통과되지 않았으면 하면 하는 의견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참여연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테러방지법을 10년 넘게 반대해왔다. 직권상정까지 가게 된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 솔직히 화도 많이 난다. 시민 필리버스터를 통해 국회 밖 시민의 절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국회를 향한 시민의 압박이랄까. 동시에 법을 꼭 막아달라는 응원의 마음을 전하려는 취지다. 더불어 아직 테러방지법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시민의 관심도 불러올 수 있기를 바랐다.

– 현재 진행 상황은. 

온라인 반대 서명은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직권상정 저지를 위해 구상했다. 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이 전격적으로 직권상정했고, 이제 직권상정 반대를 넘어 법안 폐기를 촉구하는 시민서명을 진행 중이다. 온라인 반대서명을 통해 시민들이 많은 이야기를 남겨주고 계신다.

국회 앞에서도 시민들이 꾸준히 참여하고 계시다. 특히 낮에는 참여가 활발하다. 참여연대 트위터를 통해 현장의 모습을 그때그때 전하고 있다.

– 현장 분위기는?

그저께(23일) 밤부터 국회 정문 앞 시민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국회 정문 앞 한쪽 출구 앞에서 시민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국회 정문 앞은 집회신고가 안 되는 공간이다. 처음에는 1인 시위랄까, 1인 발언대로 시작했고, 시민들이 자기도 발언하겠다고 해서 점점 늘었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가자 테러방지법 통과시켜야 한다는 애국 쪽 단체에서도 나와 시끄럽게 앰프를 틀어놓는 등으로 방해(?)해 긴장감이 있기도 했지만, 멀리 부산에서 와 발행하는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참여 열기가 뜨겁다.

특히 ‘테러’라는 막연한 단어(참여연대는 ‘테러’라는 말의 사용 자체를 경계하는데)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밀착한 불안과 각자의 생각을 생활 속 언어로 생생하게 표현해주셨다.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생생하게 와 닿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카카오톡 사찰, 텔레그램 망명 사태… 그런 불안감이 실생활에서 계속 이어져 오고 있구나. 국정원 대선 개입부터 민간인 사찰까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계속해서 시민들이 구체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었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YouTube 동영상

– 인상적인 발언이나 참여자는?  

음악 하시는 분들이 음악을 통해 연주하고, 공연하면서 참여하시기도 한다. 그걸 “필리버스킹”(필리버스터+버스킹; 길거리 연주)이라고 해서 재밌었다.

– 오프라인도 그렇지만 특히 온라인 반응도 뜨겁다.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로 시끄럽지 않았나. 그때만 해도 테러’방지’라고 하니까 막연하게나마 테러를 막아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청와대에서 미는 정치권의 쟁점법안이라고 할 때도 야당조차도 이 법을 통과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명분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법의 문제를 알게 됐고, 그 위험성을 알게 됐다고 생각한다. 테러방지법이 ‘그저 방지’가 아니라는 걸 시민들이 느끼셨고, 그런 시민들의 각성을 우리도 느꼈다.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법의 문제를 쓰고, SNS에서도 시민들 스스로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공유하는 모습을 본다. 점점 더 통과해선 안 된다는 합의가 쌓여가고 있다고 느낀다. 직권상정이 된 막판에 와서야 이런 움직임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긴급서명 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hrtCpHOiQV2-WlSlqcGiQJis9V3CJ7fhHy25AFbtkkU/viewform?c=0&w=1
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긴급서명 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해도 서명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앞으로 국회 일정은 어떻게 되나.

3월 10일이 이번 임시회 기한이다. 야당이 그때까지 필리버스터를 할 수도 있다. 필리버스터는 한 명이 하면 다시 발언할 수는 없으니까 한 의원당 몇 시간씩 할당해서 300시간을 계획했다고 들었다. 그때까지 버텨주면 좋겠는데, 내일(26일)이 선거구획정 마감기한이라 이게 변수이긴 하다.

– 오늘 온라인 반대서명을 국회에 전달하는데.

“버텨달라”는 취지에서, 처음에는 29일까지 모집해서 그때 전달하려고 했는데, 요 며칠 서명 속도가 엄청나다. 그래서 좀 더 앞서 전달하려는 것이다. 시민의 뜻이 이렇게 뜨겁고, 절실하다는 점을 전하고 싶어서.

– 테러방지법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국정원이 과도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참여연대는 2000년대 초부터 10년 넘게 테러방지법 논의를 반대하고 있다.

앞서 ‘테러’라는 말이 막연하고, 추상적이라서 이 단어를 함부로 쓰는 걸 피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취지의 연장에서 테러방지법을 통해 국정원이 얻을 권한은 무제한에 가깝다. 추상적으로 규정된 권한을 통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무제한에 가깝게 권력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

쉽게 말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맘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된다. 국정원이 과연 이런 권한을 가질만한 자격이 되는가. 오히려 반대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국정원 개혁을 계속해서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 개혁이 하나라도 이뤄진 게 있는가. 완전히 거꾸로다.

개혁 대상인 국가정보원에 오히려 무제한 권한 몰아주기? http://www.nis.go.kr/main.do
개혁 대상인 국가정보원에 오히려 무제한 권한 몰아주기? 완전히 거꾸로다.

미국만 해도 CIA는 국내 정보 수집에는 전혀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은 자료조사 범위가 국내외에 미치고, 수사범위도 국내를 포괄한다. 국정원을 개혁해야 할 판에 국정원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려고 한다.

미국은 한시법인 테러방지법(애국법)을 통해 오히려 CIA가 국내 정보에는 개입하지 않는 계기가 됐는데, 우리는 그 반대인 셈이다. 참고로 미국은 애국법을 2015년 6월에 완전히 폐기했고, 일부 조항만 남겨서 ‘자유법’으로 대체했다.

– 앞으로 계획은.

국회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는 한 계속 함께한다. 국회가 버텨주기를 바란다.

– 시민, 독자께 한 말씀.

많은 분들이 관심을 주셔서 힘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신문과 종편만 보시는 분들은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모르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직접 국회 앞으로 와서 발언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문제를 아는 것만으로도 아는 것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쉬운 글로 테러방지법의 문제를 정리한 기사나 게시물이 많다. 이런 정보를 찾아보고, 스스로 판단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인에게 알리고, 그런 활동도 큰 참여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아는 것만으로도, 짧은 응원의 말 한마디로도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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