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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스포일러의 불안을 고려해 줄거리 노출을 최소화한 글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스포일러의 불안을 느끼는 독자께선 이 글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box]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이 집단마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은 감히 하늘에 도전한 것에 따른 징벌이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고 하자, 신(神)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바벨탑 (대 피테르 브뢰겔, 1563년)
바벨탑 (대 피테르 브뢰겔, 1563년)

인류는 집단마다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종교를 믿으며, 다른 환경에서 살면서 하루도 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언어·종교·환경은 세계관의 근원이자, 가치관의 근본이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속성상 언어·종교·환경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증오의 근원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언어는 한편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남과 소통의 기쁨을 누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언어는 소통의 기본이다. 언어가 없이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 각각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만났을 때, 소통을 위해 언어를 공부하는 것도 사람을 위한 노력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처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언어다. 언어는 그렇듯 분열의 상징이었지만,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인류의 삶과 늘 함께하면서, 언어에는 역사와 문화가 반영되기도 한다. 언어는 그렇듯 삶의 애환이다.

‘컨택트’과 언어

에이미 애덤스·제레미 레너 주연, 드니 빌뇌브 연출의 [컨택트] (원제:Arrival)는 느닷없이 나타난 12개의 외계 비행물체가 전 세계 곳곳에 떨어지면서 일어난 일들을 영화로 그렸다. 원작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다. 12개라는 숫자는 범상치 않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서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컨택트

[컨택트]의 소재는 쉽게 말해, 언어학자와 외계 생물체의 소통이다. 인간과 외계 생물체는 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서로를 접한 경험도 없어서 서로의 언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애덤스 분)인 이유를 알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미지의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질 여유도 없고, 이유도 없다. 언어학자로서의 직업적 본능과 관심·애정이 있어야 영화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이스와 이론 물리학자 ‘이안 도널리'(제레미 레너 분) 외에는 소통을 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컨택트

외계비행물체에 있던 외계생물체들에게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콤비의 이름을 따서 애봇(Abbott)과 코스텔로(Costello)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과 외계 생물체는 각각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조심스럽게 소통에 나선다.

[컨택트]가 소통 과정을 묘사하면서 차용한 이론은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사용하는 언어가 인간의 사고 체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루이스와 이안은 “서로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사고체계도 같아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느낀다. 즉, 인간과 외계생명체가 소통에 나서면서 사고방식도 교류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언어의 사회성·역사성을 극대화시켜 영화로 형상화한 것이다.

영화 컨택트

언어는 사고체계를 표현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언어에는 사고체계를 표현하는 기호의 역할도 있다. 언어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로 구성된다. 즉, 외부적 표현과 내적 의미가 구조적으로 결합돼야 언어가 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사고체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삶은 알면서도 속아보는 것

[컨택트]의 각본은 매우 정교하다. 외계 생명체와의 교류를 토대로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컨택트]는 외계 생명체와의 교류에는 언어의 대표적 속성을 두드러지게 반영하는 묘사를 했다.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다시 인간의 삶으로 돌아와 인생의 단면을 흥미롭게 표현했다. 외계 생명체와의 교류를 통해 삶의 의미를 돌아본 것이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한 기법은 교차 편집이었다. ‘컨택트’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하나는 외계 생명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인류의 오해를 막고자 노력하는 언어학자로서의 루이스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희로애락을 뒤로 한 채 그리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루이스이다. [컨택트]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교차의 빈도를 높여 나간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루이스에게 남겨지는 것은 삶이라는 영원한 질문에 관한 답이다.

컨택트

사람은 때때로 뻔히 예상하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음을 안다. 그 결과가 좋더라도 할 수밖에 없고, 나쁘더라도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기쁨과 슬픔이 함께 닥쳐올 수도 있다. 사람은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일은 결국 한다. [컨택트]는 인생의 평범한 진실, 그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일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라는 가장 비일상적인 소재를 동원하고, 그런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전혀 다른 이야기 사이에 복선을 설정하는 탁월한 솜씨도 [컨택트]의 장점이다. 정교한 시나리오를 통해 평범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을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미지와의 조우’를 소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컨택트]는 그렇듯 평범하지 않게 시작해 평범하게 끝나면서,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간적인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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