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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 그중에서도 공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2015년 4월 첫째 주에 재미있는 소식을 하나 접했을 것이다. 바로 브론토사우루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두둥! 브론토사우루스의 귀환! (스타워즈 포스터 합성: 디플로)
두둥! 브론토사우루스의 귀환! (스타워즈 포스터 합성: 디플로)

머글과 덕후의 차이

“브론토사우루스? 유명한 공룡이잖아? 그게 뭐?” 이렇게 반응한 사람들은 아마도 어릴 때만 잠깐 공룡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이가 들면서 잊다시피 한 경우.

“브론토사우루스라는 공룡은 없어. 아파토사우루스라고 해야지. 가만, 브론토사우루스가 되살아났다고?” 이렇게 반응한 사람들은 그래도 좀 커서까지 관심을 유지한 경우로,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가 같은 공룡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브론토사우루스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아파토사우루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다 2년 먼저 명명되었기 때문에 국제동물명명규약 (ICZN: International Code of Zoological Nomenclature)의 우선권의 원칙에 따라 브론토사우루스가 유효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것을 안다면 공룡 애호가로는 꽤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아,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눈을 반짝거리며 코프와 마쉬의 공룡 화석 전쟁이 어쩌고 브론토사우루스, 아니 아파토사우루스의 골격에 다른 공룡의 머리가 부착되어 전시되어서 저쩌고 떠들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앞에 있는 당신에게 두 시간짜리 “짧은” 공룡 강의를 하고 싶어 안달 난 구제불능의 공룡덕후이니 주의하시길. 얼른 도망쳐!

공룡 화석 전쟁 

왼쪽이 오트니엘 찰스 마쉬, 오른쪽이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  "Cope-and-marsh" by George Bird Grinnell and Marcus Benjami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ope-and-marsh.png#/media/File:Cope-and-marsh.png
왼쪽이 오트니엘 찰스 마쉬, 오른쪽이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
(출처: “Cope-and-marsh” by George Bird Grinnell and Marcus Benjami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세기 후반은 미국 척추고생물학의 첫 번째 황금기였다. 부자들의 든든한 자금지원을 받은 고생물학자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콜로라도, 와이오밍, 네브라스카 등으로 향했고, 이곳의 중생대 지층들에서 수많은 공룡들의 화석을 발견해 이름을 붙여주었다. 고생물학자로서 가질 수 있는 영예 중 하나는 새로운 종류의 화석을 발견하여 그 화석들에 직접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Edward “Drinker” Cope)와 오트니엘 찰스 마쉬(Othniel Charles Marsh)는 이 황금기를 주도한 두 명의 고생물학자다. 처음에는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이지만, 나중에는 라이벌이자 앙숙이 되어 서로 상대방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공룡화석을 발견하고 새로운 종을 명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고 이것은 ‘공룡 화석 전쟁’(Bone Wars)이라고 부른다.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스테고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등 유명한 공룡들 중 상당수가 이 시기에 코프와 마쉬에 의해 발견되었다.

위기의 브론토사우루스

찰스 나이트 (Charles Knight) 의 브론토사우루스 그림. 뒤쪽에 보이는 것은 디플로도쿠스다. http://www.theguardian.com/science/2015/apr/07/brontosaurus-is-back-new-analysis-suggests-genus-might-be-resurrected
찰스 나이트(Charles Knight) 의 브론토사우루스 그림. 뒤쪽에 보이는 것은 디플로도쿠스다. (출처: theguardian.com)

화제의 주인공인 브론토사우루스를 발견한 것은 찰스 마쉬였다. 마쉬는 1877년에 거대한 용각류 공룡의 화석을 발견하여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Apatosaurus ajax)라는 이름을 붙인다. 2년 후인 1879년, 마쉬는 이보다 더 크고 더 완전한 용각류 공룡의 화석을 발견하고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Brontosaurus excelsus)라는 이름을 붙인다.

문제는 1903년, 시카고의 필드 자연사박물관에 근무하던 엘머 리그스가 이들 표본을 다시 조사하면서 생겼다. 앞서 설명했듯이 공룡화석전쟁 기간 중에 코프와 마쉬는 새로운 화석을 상대방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발견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성급하게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

리그스는 1877년에 발견된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의 표본과 1879년에 발견된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의 표본을 자세히 조사하고, 둘 사이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이 둘을 별도의 속으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결과,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 두 개의 속이 하나의 속으로 합쳐져야 하는데, 아파토사우루스가 브론토사우루스보다 2 년 먼저 명명되었기 때문에 우선권을 가져서 아파토사우루스만이 유효한 속의 이름으로 간주하게 된다. 즉,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는 1903년 리그스의 연구 이후 아파토사우루스 엑셀수스로 이름이 바뀌고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은 고생물학 문헌에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1903년 당시는 아파토사우루스든 브론토사우루스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만일 리그스의 연구가 곧바로 공룡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면 오늘 고생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기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브론토사우루스는 1980년대까지도 아파토사우루스를 대신해 어린이나 일반인들을 위한 책, 영화, 만화 등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름이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스본의 결정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가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리그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1905 년, 뉴욕에 위치한 미국 자연사박물관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는 거대한 용각류 공룡의 골격 전체를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당시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관장이었던 헨리 페어필드 오스본은 이 공룡 골격에 리그스의 연구를 따라 아파토사우루스라는 이름표를 붙여주는 대신 브론토사우루스라고 쓰인 이름표를 붙여준다.

리그스의 연구를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오스본이 왜 브론토사우루스라고 표기한 것일까?

리그스는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가 거의 동일하다고 보았지만,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 오스본은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 경우 오스본이 리그스의 결론을 반박하는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발표했다면 오스본의 생각을 우리도 자세히 알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스본은 새로 발견한 대형 육식공룡에 대한 논문을 쓰느라 바빴는지도 모른다. 1905년에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티라노사우루스를 명명한 사람이 바로 오스본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한 사람들은 거대한 용각류 공룡의 골격 앞에 놓인 “브론토사우루스” 라는 이름을 보게 된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브론토사우루스"의 골격. Photo courtesy of the AMNH Research Library. http://extinctmonsters.net/2014/10/30/bully-for-camarasaurus/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브론토사우루스”의 골격. (출처: extinctmonsters.net)

내 사랑 브론토사우루스

아파토사우루스의 골격에 “브론토사우루스” 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은 뉴욕의 미국 자연사박물관 뿐은 아니었다. 피츠버그의 카네기 자연사박물관은 물론이고 공교롭게도 엘머 리그스가 근무했던 시카고의 필드 자연사박물관 역시 아파토사우루스의 골격에 “브론토사우루스” 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해 놓고 있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 상황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1914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공룡 거티](Gertie the Dinosaur) 에서 시작해 1925년 코난 도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세계](Lost World) 라든가, 1960년대의 TV 애니메이션인 플린트스톤에도 아파토사우루스 대신 브론토사우루스가 등장하여 대중문화 전반에 훨씬 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다.

공룡 거티

1989년에는 미국 우정청이 발행한 우표에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이 사용되었고, 고생물학자들이 반발했지만, 미국 우정청은 브론토사우루스가 대중들에게 더 널리 알려진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만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에 실린, 책과 같은 제목을 가진 에세이에서 굴드는 이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미국의 고생물학 전문 과학작가인 브라이언 스위텍은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어린 시절 뉴욕의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본 “브론토사우루스” 화석에 어떻게 매료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2013년에 발간된 책에 [내 사랑 브론토사우루스] (My Beloved Brontosaurus)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My Beloved Brontosaurus | Brian Switek | Macmillan |20 13
My Beloved Brontosaurus | Brian Switek | Macmillan |20 13

브론토사우루스 우표 사건 덕에 고생물학자들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견해와 일반인들이 받아들이는 지식 간의 괴리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꼭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1990년대에 뉴욕의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공룡 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브론토사우루스” 를 퇴역시켰고, 어린이용 책들에서도 브론토사우루스 대신 바른 이름인 아파토사우루스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공룡애호가라면 나중에 이런 정보를 알았다 하더라도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와 애착 같은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어려서인지 그런 향수나 애착은 잘 모르겠지만…

논문의 분석 결과

대중적으로야 어찌 되었든, 학술적으로는 1903 년 이후 아파토사우루스가 우선권을 가지고 브론토사우루스가 유효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것에는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이번주에 에마누엘 초프, 옥타비오 마테우스, 로저 벤슨, 세 명의 과학자가 피어제이 (PeerJ) 라는 학술지에 장장 298 페이지에 달하는 긴 논문을 발표한다.

“디플로도쿠스과 (공룡, 용각류) 에 대한 표본 수준의 계통발생학적 분석 및 분류학적 개정 A specimen-level phylogenetic analysis and taxonomic revision of Diplodocidae(Dinosauria, Sauropoda)”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단순히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이들이 포함된 디플로도쿠스과(Diplodocidae)라는 공룡의 한 그룹을 택해서 해당 그룹에 속하는 공룡들 및 이들과 비교적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공룡들의 모든 주요 표본, 총 81개의 분류 단위 (operational taxonomic unit)에 달하는 화석들을 직접 관찰하고 꼼꼼하게 계측했다. 그리고 이 표본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는 477개의 특징들을 하나하나 자료화해서 계통발생학적 분석을 수행했다.

Tschopp et al., 2015
Tschopp et al., 2015

결과로 나온 분지도에서 디플로도쿠스과에 해당하는 부분을 확대한 것이 위의 그림이다. 디플로도쿠스과는 아파토사우루스아과와 디플로도쿠스아과로 나뉘고, 아파토사우루스아과는 다시 크게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부분에 해당하는 논문의 결론은 1903년 엘머 리그스 이후로 뭉뚱그려서 아파토사우루스 속으로 간주하던 공룡들의 분지도를 그려보니 비교적 뚜렷하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 중 한쪽에는 마쉬가 1877년에 명명했던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A. ajax)가, 다른 한쪽에는 마쉬가 1879년에 명명했던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B. excelsus)가 포함되어 있으니 앞쪽의 그룹을 아파토사우루스 속이라고 부르고 뒤쪽의 그룹을 마쉬가 명명했던 속명을 되살려 브론토사우루스 속이라고 부르자는 것이다.

“호(呼) 브론토사우루스를 허하노라.”

논문이 발표되고 나서 다수의 해외 매체에서 관련 기사를 보도했고, 국내에서도 몇몇 매체에 브론토사우루스가 이름을 되찾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들의 초점은 대동소이해서, 그동안 어린이들이 사랑해온 대표적인 공룡 브론토사우루스를 브론토사우루스라고 부르지 못하다가 새로운 연구로 브론토사우루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공룡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정도로 보도하고 있다.

기사를 보면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정해진 모양의 공룡 속이 있고, 그와 매우 비슷한 아파토사우루스라는 정해진 모양의 공룡 속이 있는데, 1903년에 리그스가 그 둘을 같은 것으로 간주해 통합했다가 이번에 둘 간의 차이점이 확인되어 다시 분리된 것이라고 느껴진다. 호부호형을 허락받은 홍길동 같달까. 이런 관점은 일단 이해하기는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분류체계의 임의성

"Carolus Linnaeus" by Per Krafft the Elder - found on the 'net. Licensed under 퍼블릭 도메인 via 위키미디어 공용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olus_Linnaeus.jpg#/media/File:Carolus_Linnaeus.jpg
“Carolus Linnaeus” by Per Krafft the Elder 

이런 관점을 차근차근 파고 들어가 보면,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을 린네의 분류체계, 즉 종-속-과-목-강-문-계의 계층구조가 자연계에 원래부터 존재하며 사람이 하는 분류라는 작업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생물을 관찰하고 그 생물이 어떤 과, 어떤 속, 어떤 종에 속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브론토사우루스가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원래 “동물계” 라는 것이 있고, “파충강”과 “포유강”이 어떤 정해져 있는 실체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자연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체계보다 훨씬 복잡다단하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보다 자주 이러한 분류체계를 무력하게 만들곤 한다.

대표적인 예로, 전통적인 린네의 분류체계에 의하면 도마뱀이나 악어 등의 파충류는 파충강 (Class Reptilia)에 속하고 새는 조강(Class Aves) 에 속해 서로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룡은 파충류의 일종이므로 새는 공룡보다 상위의 계층, 즉 큰 분류군으로 간주되어 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공룡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공룡 연구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증거들이 수집되어 지금은 새가 공룡의 일종인 수각류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계층이 고정된 린네식의 분류체계를 엄밀하게 적용하자면, 기존에 “강” (Class) 라는 층위를 차지하고 있던 조강을 공룡상목-용반목-수각아목의 아래에 위치한 “과” 혹은 그 아래의 위치로 이동시켜야 할 것이다.

조강 밑에 있던 수많은 분류단위들도 그에 따라 몇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할 텐데, 이런 작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하면, 분류학이라는 학문은 자연에 이미 확고하게 존재하고 있는 종속과목강문계의 7단계 계층구조(실제로는 아목, 아과, 상강 등 여러 종류의 접두사가 붙어 그보다 훨씬 많은 단계를 가지게 되지만)를 “발견”하는 작업이라기보다는 복잡다단하고 무한에 가깝게 다양한 생물들을 사람이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경계선을 인위적으로 긋고 비슷해 보이는 생물들을 묶어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브론토사우루스라든가 아파토사우루스라든가 하는 것은 우리가 발견한 생물을 편의상 “속”이라는 그룹으로 묶어서 부르기 위해 붙이는 이름일 뿐이지 “아파토사우루스” 라는 공룡과 “브론토사우루스” 라는 공룡이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논문의 분지도를 다시 살펴보면, “브론토사우루스” 속에 포함된 종은 세 종류다.

  1. 첫 번째는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로 마쉬가 1877년에 발견한 원래의 브론토사우루스다.
  2. 두 번째는 브론토사우루스 파르부스로, 1902년에 발견되어 엘로사우루스 파르부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가 1994년에 아파토사우루스로 묶였다가 이번 연구로 브론토사우루스가 되었다.
  3. 세 번째는 브론토사우루스 야나핀인데, 이것은 1994년에 발견된 용각류 공룡으로 처음에는 아파토사우루스 야나핀이라고 명명되었고 1998년에는 에오브론토사우루스 야나핀으로 재분류되었다가, 이번에 브론토사우루스로 분류되었다.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와 아파토사우루스 로우이사이 두 종을 포함하여 이들 다섯 종의 공룡들은 서로 매우 비슷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연구가 수행되기 전까지는 아파토사우루스 속이라는 그룹을 만들어 그 안에 몰아두었던 것이다. 이번 논문에서는 각 표본들의 형태학적 특징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아파토사우루스라고 부르던 이들 공룡이 다시 뚜렷하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발견했다.

분류학적으로 보면 이렇게 그룹이 나뉘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그룹에 이름을 붙일 것인가,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하는 작업이 남는다. 이름을 붙이는 이 작업은 좀 더 주관적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몇 가지 가능한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안을 들여다보면 둘로 나뉘었지만 이들 전체는 예전에 아파토사우루스라고 부르던 그룹이었으므로 그 명칭을 그대로 두는 방법이다. 사실 이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매체에 보도되리라는 기대를 접어두어야 한다는 것만 빼면.

두 번째는 이들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인 아파토사우루스 속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만들어진 두 그룹을 구분하기 위해 아속(subgenus) 명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는 “아파토사우루스(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는 “아파토사우루스(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 가 된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긴 한데, 최소한 최근의 척추고생물학 분야 논문에서 아속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세 번째는, 다행히도(?) 두 그룹으로 나뉜 한쪽에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가 있고, 다른 한쪽에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 가 있으니 각각의 그룹을 “브론토사우루스” 속과 “아파토사우루스” 속으로 부르는 방법이다.

저자들은 나름대로 종과 속을 나누는 기준을 정하게 된다. 분석 대상이 된 공룡들 중 이미 잘 정의된 속 및 종이 있으면 이들의 특징들을 들여다보고 477개의 형태학적 특징들 중 특정 종, 혹은 특정 속이 그 내부에서 어떤 특징들을 공유하는지, 가까운 관계의 속과 형태상 차이가 있다면 몇 가지의 특징에서 차이가 나는지 등을 고려해 가능하면 객관적이고 수치화 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여섯 개 이상의 형태적 차이를 보여야 하고 그보다 큰 단위인 서로 다른 속으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열세 개 이상의 형태적 차이를 보여야 하는 것으로 기준을 정한다. 물론 이 수치는 이번 연구가 용각류 중에서도 디플로도쿠스과 공룡들을 주 대상으로 삼았고, 477개의 형태학적 특징을 분석했기 때문에 나온 수치이다. 다른 생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형태학적 특징들의 갯수가 다르다면 이들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논문의 저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좀 더 투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상세한 설명이나 근거제시 없이 이 표본은 무슨 속, 무슨 종이라고 결론만 말하는 것보다는 A라는 표본과 B라는 표본을 비교해 볼 때 이러이러한 형태적 차이 몇 개가 있기 때문에 A와 B는 다른 속으로 분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하는 것이 그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 결론을 향후에 반박할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아파토사우루스아과에서 볼 수 있는 두 개의 그룹은 두 개의 속으로 분류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각 속의 이름은 위의 세번째 방안에서 본 것처럼 아파토사우루스 속과 브론토사우루스 속이 되었다. 이 결론은 여러 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브론토사우루스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워낙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므로 연구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훨씬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고 매체에 보도될 가능성도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자신의 연구를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 과학자라면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있을 수 없다. 글자 그대로 꿩 먹고 알 먹는 상황. 그 덕에 브론토사우루스가 화제가 되어 필자에게도 글 쓸 소재를 제공해 주었으니 둥지 헐어 불도 때고.

논문이 발표되고 기사가 여러 매체에 보도되자 공룡애호가들은 좋은 이야기거리를 얻었고, 트위터와 각종 고생물 관련 블로그들에는 브론토사우루스 관련글이 쏟아졌다. 논문이 실린 오픈액세스 온라인 저널인 피어제이(PeerJ)도 며칠만에 논문 다운로드가 2000건을 넘어섰으니 쾌재를 불렀을 것이 분명하다.

떠들썩함을 뒤로 하고 논문의 내용을 찬찬히 곱씹어 보면, 결국 그 바탕에는 두 그룹으로 나뉜 아파토사우루스 속을 각각 아파토사우루스 속과 브론토사우루스 속으로 부르기로 한 저자들의 결정이 있다. 저자들이 공룡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공룡들은 우리에게 와서 브론토사우루스가 된 것이다.

논문의 의미

뉴스에 보도된 내용만 보면 브론토사우루스를 되살려낸 것이 이번 연구의 주된 논점인 것 같지만, 거의 300 쪽에 달하는 긴 논문의 결론이 그렇게 단순한 것일리는 없다.

고생물학적인 의미를 따져보면, 특정 분류군, 이 경우는 디플로도쿠스과라는 용각류 공룡의 큰 그룹에 속하는 주요 표본들을 모두 연구에 포함시키고, 477개의 형태학적 특징을 관찰하여 자료화한, 아주 상세한 대규모 연구였으며, 통계적 및 수치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종과 속을 분류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 등이 사실은 더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비슷한 종류의 연구는 물론 이전에도 여러 차례 수행되었지만, 이번처럼 디플로도쿠스과에 집중하여 표본 수준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477개에 달하는 특징들을 조사한 것은 처음이다. 공룡 연구에서 계통발생학적 분석에 사용되는 형태적 특징들은 200-300 개 정도면 많은 축에 속했다. 모르긴 해도 향후에 비슷한 연구를 진행할 연구자들은 은근히 압박감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논문으로 일단 브론토사우루스가 되살아나긴 했지만, 정말 브론토사우루스 속이 확고한 위치를 가질 수 있을지는 저자들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것처럼 다른 고생물학자들의 반응과 앞으로 발표될 관련 논문들을 지켜보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이들의 논문을 반박하는 논문이 출판되어 브론토사우루스를 다시 아파토사우루스로 통합해 버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분류학이라는 게 그렇게 확실하지도 않고 매일같이 바뀔 수 있는 거라면 그걸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며 미간을 찌푸리실 독자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어떤 종류의 과학이론이든 최종적이고 절대 변하지 않는 과학이론이라는 건 없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고 기존의 이론와 맞지 않는 관측결과가 생기면 기존의 이론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연구가 가능했던 것도 지난 15년간 새로 발견된 여러 용각류 공룡들의 표본들 덕분이므로, 향후 새로운 화석들이 발견되면 또다시 몇몇 공룡의 이름이나 진화 계통도 상에서의 위치는 바뀔 수 있다.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가 왔다갔다 하는 것은 사실 전체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고, 우리가 이해하는 전반적인 공룡 진화의 계통, 그리고 큰 분류 단위들의 상호관계 등은 많은 자료들과 분석 결과들이 쌓여가면서 더 분명해져가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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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과 웹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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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중간에 오타 있습니다. 계통도 아래, “논문 분석의 결과” 마지막 문단에서 브론토 와 아파토 모두 마쉬가 작명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슬로우 뉴스, 좀 더 느리게 퇴고해 주세요

  2. 둘 다 마쉬가 작명한 것이 맞지 않은지요? :)

    본문의 앞선 서술 참고: “마쉬는 1877년에 거대한 용각류 공룡의 화석을 발견하여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Apatosaurus ajax)라는 이름을 붙인다. 2년 후인 1879년, 마쉬는 이보다 더 크고 더 완전한 용각류 공룡의 화석을 발견하고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Brontosaurus excelsus)라는 이름을 붙인다.”

    교차 참고:
    https://mirror.enha.kr/wiki/%EC%95%84%ED%8C%8C%ED%86%A0%EC%82%AC%EC%9A%B0%EB%A3%A8%EC%8A%A4

    http://www.sciencetimes.co.kr/?news=%ED%9E%98%EB%82%B4%EB%9D%BC-%EB%B8%8C%EB%A1%A0%ED%86%A0%EC%82%AC%EC%9A%B0%EB%A3%A8%EC%8A%A4

  3. 와우- 정말 멋지네요. 와~~~~박수박수

    공룡 이야기 계속 해주세요. 네?네?네? 흐규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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