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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놓고 한일 양국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소녀상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일본 정부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대사와 영사를 귀국시켰고, 통화스와프 협상 등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016년 12월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944.html
한일 ‘위안부’ 합의 1년을 맞은 2016년 12월 28일, 부산 시민은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경찰과 동구청은 소녀상이 설치된지 4시간 30분 만에 이를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과 대학생을 경찰, 동구청 공무원들이 끌어내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316.html
하지만 경찰과 동구청은 소녀상이 설치된 지 4시간 30분 만에 소녀상을 강제 철거했다. 소녀상을 지키는 시민과 대학생을 경찰, 동구청 공무원들이 끌어내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설치된지 4시간 30분 만에 경찰과 동구청에 의해 소녀상이 강제 철거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316.html
끝내 경찰과 동구청에 의해 소녀상이 강제 철거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구청 공무원이 철거한 소녀상을 보이지 않게 덮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316.html
구청 공무원이 철거한 소녀상을 보이지 않게 덮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소녀상이 철거된지 이틀만인 12월 30일, 일본 국기가 올려다 보이는 부산시 동구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재설치됐다. 소녀상에 꽃다발을 전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944.html
소녀상이 철거된 지 이틀만인 12월 30일, 일본 국기가 올려다보이는 부산시 동구 주부산일본국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재설치됐다. 소녀상에 꽃다발을 전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윤병세 이 갈등은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 정부와 한국 국민 간의 갈등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편인지 한국 편인지 모를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인 부산 동구는 일본의 요구대로 소녀상을 철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사진)도 “국제사회에서는 외교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어떤 시설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입장”이라고 말해, 한국 외교장관인지 일본 외무상인지 알 수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병세, “조형물 설치 바람직하지 않다”

윤병세 장관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 자신이 초래한 일이기 때문이다. 소녀상을 둘러싼 지금의 갈등은 1년 전인 2015년 12월 28일, 국민 몰래, 심지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조차 제쳐놓고 박근혜와 아베 정부가 밀실에서 만들어낸 합의의 결과다. 국가 자존심도 내팽개친 채, 공식 사과 대신 돈을 받는 것으로 해결을 보려 한 한국 정부는, 소녀상에 대해서도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서명을 해줬다. 그러니 지금 어느 나라 정부, 어느 나라 장관인지 모를 모호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의 소녀상 자체를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보지만, 특히 부산에서는 그 위치 때문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부산의 소녀상은 일본 총영사관 담벼락 가까이 설치되어 있다. 사람이나 차량이 드나드는 입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건물과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때문에 트집을 잡고 있다.

일본이 부산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이다. 1961년에 체결된 이 국제 협약은 원활하고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위해 각국 외교관에게 특별한 권리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중 제22조는 다음과 같다.

[box type=”info”]

1.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다. 접수국의 관헌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는 공관 지역에 들어가지 못한다.

2.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하여도 공관 지역을 보호하며, 공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특별한 의무를 진다.

3. 공관 지역과 동 지역 내에 있는 비품류 및 기타 재산과 공관의 수송수단은 수색, 징발, 차압 또는 강제집행으로부터 면제된다.

[/box]

부산 영사관 부근의 소녀상과 관련되는 부분은 제2항 중 “공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품위의 손상(disturbance of the peace of the mission (consular post) or impairment of its dignity)”이다. 말하자면 담벼락 옆에 소녀상을 세운 게 영사관의 안녕을 교란하거나 영사관(일본)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윤병세 장관이 “국제사회에서 외교 공관 앞에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 입장”이라고 한 것도 이 맥락이다.

일본과 윤병세의 논리는 과연 합당한가 

과연 이것이 합당한 논리인가. 추론과 외국 사례를 통해 따져 보자.

[dropcap font=”play” fontsize=”55″]1.[/dropcap] 부산의 소녀상은 그 위치상 영사관을 출입하는 사람이나 차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단지 높은 담벼락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기만 할 따름이다. 오가는 시민들이 이 소녀상을 잠깐씩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영사관의 안녕이 교란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영사관의 안녕 교란이란, 예컨대 동구청이 소녀상을 철거하러 나섰을 때 벌어진 아수라판 같은 게 그에 해당할 것이다. 가만 놔 두면 안녕이 교란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YouTube 동영상

[dropcap font=”play” fontsize=”55″]2.[/dropcap] 따라서 소녀상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는 일본(그리고 ‘일반적 입장’을 말하는 윤병세)의 주장을 좀 더 직접 뒷받침하는 것은 ‘품위의 손상’이라고 볼 수 있다.

품위가 손상되는 짓을 해놓고 품위를 지키겠다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품위를 지키려면 품위가 손상되는 일을 벌이지 않으면 된다. 이미 그런 일을 벌였다면, 그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성하고 반성하는 것이 품위 있는 태도일 것이다.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려는 상대국 시민의 조형물에 대해 파르르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더 품위가 손상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dropcap font=”play” fontsize=”55″]3.[/dropcap] 소녀상으로 인해 일본의 품위가 손상된다고 치자. 따라서 비엔나 협약의 해당 조항에 따라 한국 정부가 일본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치자.

하지만 소녀상을 세운 한국 국민의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은가? 역사적인 공공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정성껏 모금하고 소녀상을 만들어 세운 부산 시민의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은가? 이들의 입을 막을 권리가 외국 정부에 있는가? 어떤 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 안 되고 다른 곳에 가서 하라고 할 권리가 외국 정부에 있는가?

국제 조약도 법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국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지위를 갖는다.

[box type=”info”]헌법 제6조 ① 헌법에 의하여 체결 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box]

그러나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서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듯 헌법은 국제 조약을 포함한 법률보다 우선한다.

헌법은 추상적인 국민의 열망과 의지를 반영한다. 헌법은 그 자체로는 미완이다. 공동체는 헌법 구체화 법률들을 통해 헌법정신을 실현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어떤 법률, 국제 조약도 헌법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box type=”info”]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box]

따라서 ‘품위의 손상’ 같은 모호한 이유를 들어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엔나 협약과 비슷한 지위를 가진 많은 국제 조약들이 표현의 자유를 인민의 기본권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pdf) 제19조,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pdf) 제19조 등이 그렇다.

[dropcap font=”play” fontsize=”55″]4.[/dropcap] 드물지만 외국에서 비엔나 협약 22조가 문제가 된 사례가 없지 않다. 이 사례들은 대부분 비엔나 협약에도 불구하고 외국 공관 인근에서 자국민의 평화로운 시위나 표현물 게시를 보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표현의 자유

 

영국 국기 영국 사례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 한편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고등판무관 건물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이 건물 인근에서는 늘 시위가 벌어졌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1984년 여름 어느 날, 경찰은 시위대를 남아공 공관에서 떨어진 곳으로 몰아내려 했다. 비엔나 협약 22조 때문이었다. 시위대를 물러나게 하라는 남아공의 요구가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공관 근처에서 벌어지는 항의 시위를 불편하게 생각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시위대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경찰은 퇴거 명령을 따르지 않는 시위자들을 체포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 이들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영국 법원은 ‘품위의 손상’이 벌어지려면 욕설이나 모욕적 행동(abusing or insulting behavior)이 동반되어야 하며, 평화로운 정치적 시위는 그러한 내용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미국 국기 미국 사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중심가에는 외국 대사관이 곳곳에 널려 있다. 워싱턴에는 이 대사관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의 주법(District of Columbia Code § 22-1115)이 있었다. 대사관 건물로부터 500피트(약 150m) 안에서는 해당 외국 정부를 ‘공공연한 증오(public odium)’나 ‘공공연한 악평(public disrepute)’의 대상이 되게 하는 깃발, 현수막, 플래카드 등을 게시할 수 없고 3인 이상이 모여 집회를 열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한 법이었다.

1986년에 시민활동가 세 명은 당시 소련과 니카라과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이들을 비난하는 게시물을 들고 대사관들 근처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었다. 그런 일이 주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해당 법률이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 소송을 냈다.

재판은 1심,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미국 대법원은 절반의 판결을 내렸다. 해당 지역에서 집회 하는 것을 금한 조항(congregation clause)은 합헌이라고 인정했고, 표현물을 게시하는 것을 금한 조항(display clause)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외국 공관 인근의 표현물 게시 금지가 위헌인 이유는 물론 시민의 정당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막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대법원은 특히 이 조항이 표현물의 내용에 따라 규제를 가하기 때문에(content-based restriction) 문제라고 보았다. 외국 정부의 품위 손상을 염려한다는 말은, 해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일 때 문제가 됨을 의미한다. 해당국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해당국의 품위 손상을 야기하지 않으므로 허용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표현물의 내용에 따라 어떤 것은 규제하고 어떤 것은 허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 법은 이처럼 내용에 따라 표현을 규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간주한다.

미국 연방법에도 외국 공관을 보호하는 조항이 있기는 하다. ‘외국 공직자, 공식 초청자, 보호해야 할 인물에 대한 보호'(18 U.S. Code § 112)가 그것이다. 여기서는 외국 공관에서 100피트(약 30m) 이내 공간에서 3인 이상이 집회하는 일을 금한다. 그러나 이것은 외국 공직자 등을 협박, 강제, 위협, 공격하거나 정상적인 임무 수행을 방해할 목적으로 행해질 때에 한한다. 표현물을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

호주 국기 호주 사례 

호주에서는 시위자가 외국 대사관 앞에 늘어놓은 표현물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나오기도 했다. 호주 법원은 이런 명령을 내는 데 적용한 규정(시행령)이 비엔나 협약을 수용한 상위법에 합당한다는 판결을 냈다.

인도네시아 군부가 동티모르를 무력 진압하던 1991년 11월, 호주에서는 인도네시아 대사관 인근에서 항의 시위가 열렸다. 한 시위자가 학살에 항의하는 뜻으로 대사관 밖의 잔디 위에 흰색 십자가들을 늘어놓았다. 호주 외교부장관은 이 십자가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발부했다. 이 명령에 불복한 시위자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십자가들이 실제로 제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재판의 쟁점은 이 십자가들이 제거되어야 하는가, 혹은 제거하라는 명령이 옳은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런 명령이 의존하는 시행령이 상위법에 합치하는가로 모아졌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시행령이 법안에 어긋나므로 무효라고 판결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고 합법 판결을 내렸다. 2심의 3인 재판부는 각자 자신의 의견을 따로 냈는데, 2대 1의 판결이었다. 합법 판정을 내린 두 판사는 시행령이 상위 법안의 범위 안에 있어서 문제가 없다고 보았고, 불일치 판정을 내린 한 판사는 외국 공관을 보호하는 법령이 매우 중요한 국민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령과 모순이 되므로 무효라고 보았다.

법령의 일관성을 따지다 보니 종합적으로는 정부 명령에 손을 들어준 결과가 됐지만, 표현의 자유를 고려하게 되면 외국 공관 주변에 설치한 평화적 표현물을 보장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은 외국 사례들, 그리고 상식적인 추론을 적용하면 부산 동구의 거리에 세운 소녀상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이 평화의 상징물을 마뜩잖게 생각하는 과거 전범 국가 일본이 있고, 당사자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덜컥 서명해준 국적 불명의 한국 정부가 있을 뿐이다.

12월 28일. 소녀상을 끌어안고 끝까지 지키려 하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1105316.html
12월 28일. 소녀상을 끌어안고 끝까지 지키려 하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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