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김포공항 비정규직 미화원들 파업 '여긴 성추행,갑질 지옥…우린 개,돼지만도 못해'
출처: 여성신문

비정규직이라 그렇다.
아마 정규직이었다면 못 그랬을 거다.
그러니 정규직화해야 한다.

어느 관리자가 청소노동자에게 성추행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위와 같은 내용의 댓글을 보았다. 난 이 댓글 쓴 이의 선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 댓글이 현재 한국의 젠더 감수성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이라야 성희롱 당하지 않는다는 인식

대부분 직장 내 성희롱(sexual harassment) 문제는 젠더와 권력, 두 가지의 조합으로 발생한다. 위의 댓글대로라면, 이 문제는 ‘젠더 문제’가 아닌 ‘권력 문제’가 된다. 권력 문제를 막아줄 수 있는 정규직화가 이 문제의 해결이라는 이야기는, 반대로 그러한 보장장치가 없는 여성들은 이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또한, 이런 인식의 근저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추행 욕구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놓는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추행하게 되므로 ‘정규직 같은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그런데 성추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규직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건 당사자인 여성이 된다. 옆에서 “청소노동자들도 정규직이 돼야지, 엣헴~”하고 좋은 말 한다고 파견회사나 고용사업장이 알아서 정규직화해줄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찌 됐든 ‘정규직’씩이나 되어야 남성의 추행 욕구가 제어된다는 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box type=”note” head=”이런 인식도…”]

성재기: 여자의 노출이나 그런 것들로 남자가 여자에 대해서 흥분하는 건 이해 안 되십니까?

박용일: 아니죠, 성 충동하고 성범죄는 아예 다른 얘기예요.

성재기: 그러면 성범죄는 어떻게 일어나는데요?

이철희: 앞뒤 논리가 바뀐 거예요. 성 충동이 생겨서 성범죄를 일으키는 게 아니고요, 문제가 있는 사람이 성 충동이 생겼을 때, 범죄로 연결되는 거예요.

성재기: (노출 여성에게) 과실 책임이 있다는 거죠.

이인철: 노출은 과실이 될 수 없습니다.

-출처: 채널A “여러가지 연구소” 2013년 7월 방영분 중에서

채널A "이런저런 연구소" 방영분 중에서
채널A “이런저런 연구소” 방영분 중에서

[/box]

‘절박함’의 차이 

‘진보 마초’에 대한 여성들의 뿌리 깊은 불신도 이와 비슷하다.

여성 대부분이 여성주의에 눈을 뜨는 계기는 ‘개인의 경험’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젠더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체감하고 다른 여성의 경험을 자신의 입장에서 공감하는데, 거기다 대고 구조와 당위 등 거대 담론을 논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직 내에 젠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직 보위를 위해 문제를 덮고 가던 사례는 진보 운동권만이 아니라 어디든 남성중심 조직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뭣이 중헌디”의 기준으로 보자면, 여성에게는 젠더 문제는 개인에게 닥치는 실존적 위협의 문제이고, 남성에게는 내가 가해자가 아닌 이상 본인에게는 책임이 없는 타인의 문제이니 ‘엣헴~’하는 선비놀이가 가능한 게다. 여성은 다른 여성에 대해 피해자로서 공감할 수 있지만, 남성은 다른 남성에 대해 가해자로서 공감할 수 없으니까. 기껏해야 사회나 구조 탓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젠더 문제에 관한 절박함에 대해 남녀의 입장 차가 달라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셈이다. 남성에게는 왜 젠더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이 난리인지 이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를 권력 문제로만 바라보면… 

문제의 기사로 돌아가자면,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성추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규직까지도 필요 없다. 그냥 남성들이 성추행하지 않으면 된다. 아주 단순한 이 하나의 명제가 지켜지지 않는 것이 과연 남성의 문제인가 여성의 문제인가.

부연하면, 현실적으로 정규직화는 약자 보호를 위해 좋은 수단이며 이 글은 그것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젠더 문제의 해결에는 일차적으로 남성들의 인식 변화가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젠더를 빼고 권력 문제로만 치환하면 불특정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