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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업데이트

지난주 토요일(2016년 3월 5일)은 ‘슈퍼 토요일’, 지난 화요일(3월 8일)에는 ‘미니 화요일'(혹은 슈퍼 화요일 2) 경선이 있었다.

크루즈 최고의 날 

먼저 공화당부터 이야기하자면, 토요일 경선은 크루즈 최고의 날이었다. 비록 승자독식(winner-take-all) 경선은 아니었지만, 캔자스와 메인에서 1위를 하면서 트럼프의 상승세에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까지 주었다. 특히 메인에서의 승리는 크루즈의 지지층이 남부 기독교인들에 편중되어있다는 불안감까지 씻어주었다. 트럼프는 켄터키와 루이지애나 승리를 거뒀다.

DonkeyHotey, CC BY
DonkeyHotey, CC BY

크루즈가 뜻밖의 선전을 하자 공화당 기축세력들은 크루즈에 대한 반감을 억눌러가며 “트럼프만 아니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못해 크루즈에 희망을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고 미니화요일이 되자 상황은 다시 원상복귀. 트럼프는 대의원 59명의 미시간을 비롯해 미시시피, 하와이에서 승리를 챙겼다. 물론 승자독식은 아니므로 전체를 가져가지는 않았다. 이에 비해 크루즈는 아이다호 하나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루비오와 케이식이 경선에서 버티는 이유 

루비오는 이제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지난주 수퍼토요일이 되기 전에 나온 언론보도에 따르면 공화당 기축세력의 생각을 충실히 반영하는 폭스뉴스의 경영진이 “루비오는 더 이상 안되겠다”며 그동안의 은근한 지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제 루비오는 대의원 99명의 승자독식인 플로리다에 유일한 희망을 걸고 있지만, 자신의 안방인 플로리다에서조차 트럼프에 밀려 언더독(underdog; 이기거나 성공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이 된 상황이다.

이제 레이더에서 사라진 루비오 (출처: Max Goldberg, Marco Rubio, CC BY) https://flic.kr/p/B6f3R7
이제 레이더에서 사라진 루비오 (출처: Max Goldberg, “Marco Rubio”, CC BY)

오하이오 주지사 케이식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렇다 할 성적을 못내고 있는 케이식은 역시 승자독식인 오하이오에서 66명의 대의원을 노리고 있지만, 그 역시 안방에서 트럼프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https://flic.kr/p/kvdqFN
힘겹게 싸우고 있는 케이식(출처: DonkeyHotey, “John Kasich – Crimes Against Ohio Voters”, CC BY)

물론 이 두 사람이 대의원 확보 싸움에서 트럼프를 이길 가능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선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이 공화당 기축세력의 기대를 받고 있는 후보들이다.
  2. 만약 트럼프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약진해서 트럼프의 대의원 충족을 막아낸다면 중재 전당대회(contested convention)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중재 전당대회가 성립되면 대의원들의 일부가 자유표로 풀리고, 그렇게 풀린 대의원들이 전당대회 중에 트럼프를 대신할  수 있는 다른 후보를 밀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어디까지나 트럼프가 전당대회 전에 1,237명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458명을 확보해서 1위를 달리는 트럼프는 오는 15일에도 좋은 성적을 예상한다. 만약 루비오와 케이식이 자신의 주를 지키지 못하고 모두 트럼프에 밀려나면 다음 주 화요일은 사실상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굳어지는 날이 될 것이다.

민주당 상황

크루즈가 선전한 토요일은 민주당에서도 1위인 힐러리 클린턴이 추격을 허용했다. 힐러리가 루이지애나 하나에 만족하는 동안 샌더스는 캔자스와 네브래스카를 챙겼다. 루이지애나가 가장 많은 대의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 힐러리가 얻은 대의원 수는 샌더스(53명)보다 약간 많은 56명이었지만, 샌더스는 뒤이은 화요일에 네브래스카에서도 승리를 해서 힐러리를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 같은 남부에만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앞으로 샌더스가 힐러리를 이기려면 표싸움에서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캔자스, 네브래스카, 미시간에서 힐러리를 이겼다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힐러리는 남부·소수인종의 후보, 자신은 북부·중서부의 후보라는 차별점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당대회까지 포기하지 않고 힐러리를 괴롭힐 수 있게 된 것이다.

트럼프와 샌더스, 사실은 같은 지지기반?

미시간이 트럼프와 샌더스를 택했다는 것은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석이 잘 되지 않는 찜찜함이 남는다. 바로 ‘샌더스와 트럼프는 혹시 동일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바로 그거다.

물론 그런 궁금증은 나만 가진 게 아니었다. 하지만 미시간의 선택으로 그런 의문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언론은 일제히 샌더스와 트럼프가 공유하고 있는 지지기반이 무엇인지를 다루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사 세 개만 꼽아보면:

위의 기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무역(trade)이다. 아버지 부시와 빌 클린턴의 정책으로 유명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등장했고, 많은 제조업을 하던 기업은 멕시코로 떠났다. 특히 미국 중서부의 공업지대는 공동화현상이 나타나면서 ‘녹이 슨 지역’(Rust Belt)이라는 별명까지 붙어버리게 된 것이다.

Balpin, "Rust Belt Penrose", CC BY SA https://flic.kr/p/oCbBtz
Balpin, “Rust Belt Penrose”, CC BY SA

그런 별명은 그냥 상징적으로 붙은 게 아니다. 가령 오하이오주의 영스타운(Youngtown) 같은 도시에서는 과거에는 잘 나갔겠다 싶은 큰 건물과 공장들이 시뻘겋게 녹슨 채 방치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10여년 전 처음 영스타운 공항에 내렸을 때, ‘난생처음 들어보는 타운치고는 공항이 제법 크구나’하고 생각했더랬다.

영스타운이 한 때 ‘잘 나가던’ 도시였고, 그렇게 전락한 것이 전부 NAFTA가 남긴 흔적이라는 건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이제는 자동차공업의 도시 디트로이트도 그런 길을 걷고 있고,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미시간 주의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자유무역이라는 이슈

자유무역협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뜨거운 이슈다. 대개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진보당은 반대하고, 보수당은 지지하는 쪽이다. 따라서 버니 샌더스가 미시간의 유권자들을 상대로 자유무역을 비판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들까지 나서서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면서 포퓰리스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뒤로 감춘 것은 힐러리에 대한 공격이다. 빌 클린턴은 레이건 이후 오른쪽으로 돌아선 미국사회에 맞춰진 중도성향의 대통령이었고, 자유무역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물론 힐러리도 마찬가지고, 공화당의 기축세력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원의장인 공화당의 폴 라이언이나 오바마 대통령도 자유무역 확대를 원한다.

무역

문제는 이번 선거가 유독 포퓰리스트 성격이 강하고, 각 당의 기축세력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에 힐러리 같은 기축세력에 기반을 둔 후보들은 몸을 사리고 [footnote]힐러리는 현재 오바마가 추진하는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에 대한 태도를 몇 차례 바꿔가며 명확하게 하지 않고 있다 [/footnote] 샌더스 같은 포퓰리스트 후보들은 마음껏 이런 태도를 공격하며 자유무역의 피해지역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진짜 모습은 진보적? 

가디언의 기사는 더 흥미롭다. 기자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트럼프에게 끌릴까?”하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작정을 하고 트럼프의 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몇 시간을 투자해서 자세히 시청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트럼프를 싫어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기자는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의 내용에 놀랐다고 한다.

인종주의적이고 저속한 소리만 할 줄 알았는데, 정작 자세히 들어보니 연설 시간의 상당 부분을 진지한 주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도저히 공화당 후보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든 진보적인 주장들도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

그가 발견한 사실은 트럼프가 연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이민문제도, 인종문제도 아닌 무역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과거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조약으로 얼마나 많은 기업이 미국을 떠났고, 그로 인해 실직자들이 늘었다는 것, 그리고 제약산업과 군수산업이 정부의 힘으로 불공정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샌더스가 주장할 만한 내용이 트럼프 입에서 나오고 있더라는 사실이다.

트럼프와 샌더스 (출처: Gage Skidmore, CC BY SA)
트럼프와 샌더스 (출처: Gage Skidmore, CC BY SA)

즉, 그 두 후보를 지지하는 미시간 유권자들의 눈에는 힐러리와 루비오, 젭 부시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모두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로비에 눈이 어두운 워싱턴의 닳고 닳은 정치인들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샌더스와 트럼프는 어떤 후보들보다 공통점이 있는 “비슷한” 후보들이다.

물론 둘이 자신을 차별화하는 방법은 다르다. 샌더스는 무소속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정치인생이 그 보증이고, 트럼프는 (적어도 그의 말에 따르면) 돈이 너무 많아서 선거에서 로비스트의 돈이 필요 없고, 로비스트에게서 도움을 받지 않았으니 대통령이 되어도 갚아야 할 은혜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둘을 비슷한 후보로 묶으려면 일반적인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 그리고 기자도 언급하듯 그들의 그런 공통점은 대부분 언론의 선거보도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트럼프에 관한 보도에서는 그가 만들어내는 소음으로 인해 그의 진지한 주장은 거의 전달되지 않고, 샌더스 역시 언론은 특정 프레임에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자만큼은 열심히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후보의 지지자들은 모두 “언론이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왜곡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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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미국쪽의 분석 기사들도 틈나는대로 찾아보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선 분석기사가 그다지 많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가뭄에 단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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