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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립성을 거침없이 훼손하려는 SKT, KT, LGU+ 등 이동통신사업자의 여러 논리 중 그나마 설득력 있는 것은 ‘사용자를 위해’ 유선 및 무선 인터넷의 서비스 품질(Quality of Service)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위해 트래픽 관리는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사용자를 배려하는 트래픽 관리?

서비스 품질(QoS)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5년 이후 진행된 인터넷+집전화+TV 등 3개 서비스가 묶음으로 제공되는 결합상품의 대중화다. 이른바 3중 서비스(Triple Play)라고 불리는 이러한 결합상품에서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트래픽 우선순위 결정이다. 평일 밤 10시, 아파트 한 가정을 상상해 보자. 엄마와 아빠는 올레TV를 통해 IPTV 방식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고 1인 딸은 집전화(VoIP)로 친구와 대화 중이다. 그리고 중 3인 아들은 데스트탑 PC를 이용하여 인터넷 서핑 중이다. 같은 날 밤 이 가정과 유사한 사용 패턴이 이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동시에 발생한다. 이로 인해 망에는 교통체증과 유사한 트래픽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 KT는 3개의 ‘자사’ 서비스를 동시에 사용하는 가정을 대상으로 트래픽 관리에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트래픽 관리 순서는 IPTV, 전화, 유선인터넷 순이다. 사용자들은 평균적으로 전화가 잠깐 안 들리는 것보다 TV 화면이 멈추거나 망가지는 현상에 불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느려지는 현상을 자주 경험한 터라 이에 대한 사용자의 불만은 작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자사 서비스’에 대한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방식에서 이른바 QoS라는 트래픽 관리기법이 사용된다.

한편 지난 7월 13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은 무선 인터넷에서 SKT, KT, LGU+가 ‘타사 서비스’ 및 일부 사용자를 대상으로 트래픽 관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선 인터넷에 병목현상이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카카오톡, 페이스북, 라디오 청취 등 다양한 무선 서비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무선 인터넷 사용자마다 다양한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 및 중요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2011년 가을까지 나는 서울에 살았고, 내 사랑하는 짝은 베를린을 삶의 터로 삼고 있었다. 당시 우리 둘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서비스는 스카이프(Skype)였다. 버스 창 밖으로 비가 내리면 서울 거리의 모습을 영상 전화(mVoIP)로 전달하고, 벚꽃이 만발한 교정에선 으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마트폰의 스카이프 앱을 켰다. 안정적인 연결망을 위해 스마트폰 무제한 요금제 뿐 아니라 추가로 KT 에그(Egg) 서비스를 사용했다. 당시 나에게는 이메일보다, 게임 앱보다 또는 유튜브보다 스카이프를 언제, 어디서나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스카이프 앱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사용한다. 우선 순위에서 한참 밀린 것이다. 이렇게 사용자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무선 인터넷의 다채로운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기 마련이다. 어떤 이에게는 지하철에서 네이버 뉴스를 소비하는 것이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 보다 중요하다. 어떤 이에게는 멜론 음악서비스가 카카오톡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어떤 이에게는 인터넷 야구 생중계가 유튜브의 음악 영상보다 유익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른바 ‘트래픽 관리 허용안’은 3개 이동통신사업자가 2천만 명이 넘어서고 있는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의 서비스 취향과 중요도를 조사 및 결정할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허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상상하는 한국의 미래는, 3개의 이동통신사업자가 2천만 명이 무선 인터넷을 통해 즐길 수 있는 무선 서비스 선택권 등 행복, 통신 복지, 자유를 결정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를 위해 이동통신사업자 3사는  2천만 명이 매일매일 어떠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지, 각 서비스를 통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언제 어디서나 들여다볼 수 있고 분석할 수 있는 권리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부여받았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함께 앱, 모바일 웹 등 무선 인터넷에 기초한 서비스의 폭은 나날이 다채롭게 확대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의 이번 안에 따르면, 무한에 가까운 모바일 서비스가 이동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몇 개로 수렴될 수도 있다.

2천만 명의 권리와 자유를 3개 이동통신사에게 헌납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는, 자사의 서비스에 제한되어 트래픽을 일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인 서비스품질(QoS)을 3개 이동통신사업자의 전지전능한 권리로 발전시켰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는 2천만 스마트폰 사용자의 자유로운 서비스 선택권을 박탈했다.  또한, 이번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에서는 이동통신사업자가 트래픽 관리를 위해 어떠한 원칙을 사용하는지, 어떠한 기술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2천만 사용자의 인터넷 일상을 어느 수준까지 분석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최소한의 투명성 장치를 찾을 수 없다.

도대체 누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이렇게 2천만 명의 권리와 자유를, 3개 이동통신사업자에게 헌납할 권리를 부여했는가? 이창희 방통위 통신경쟁정책과 과장은 지난 7월 13일 위의 기준(안) 발표 및 토론 자리에서 “mVOIP 문제 역시 시장에서 경쟁이 존재하고”, “시장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이용자나 콘텐츠 업체들에 불리하게 기준을 설정하지 않을 것“이라 설명하면서 시장경쟁이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과 사용자 선택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창희 과장은 연간 20조 원이 넘는 이동통신 시장규모에 사업자가 단 3개 존재하는 시장에서 ‘시장경쟁 효과’를 운운하고 있다.

한 나라 통신시장의 경쟁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의 놀라운 인식수준에 절망한다. 나는 3개 이동통신사업자 사이에서 작동한다는 시장경쟁 효과에 나의 망 권리와 나의 망 자유를 위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문성과 공익을 대변하는 치열한 자세를 확인할 수 없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나의 망 권리와 나의 망 자유를 위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부당하게 빼앗길 위기에 처한 나의 망 권리와 나의 망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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