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9월 29일 박주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사진)이 ‘스팀’(STEAM)에 있는 게임들이 등급 분류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돌렸다.
보도자료에서 박주선 의원은 “미국, 유럽, 독일, 일본 등에서는 등급분류를 받으면서 한국정부의 등급분류를 받지 않겠다는 스팀사의 이중플레이는 한국 법체계만 무시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보도자료를 언론이 인용해 보도하면서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에선 ‘난리’가 났다.
[box type=”info” head=”스팀(STEAM) “]
미국의 게임 개발사인 ‘밸브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해 운영 중인 온라인 게임 유통 시스템. 약 3,000개가 넘는 게임이 있고 6,500만 명의 이용자가 있다. 미국 내에선 독과점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리그베다 위키, ‘스팀(플랫폼)’ 중에서 발췌. [/box]
해외에선 등급 분류 받고 우리나라에선 안 받는다? 왜곡이다!
박주선 의원은 보도자료 안에서 ESRB, PEGI, USK, CERO 등 해외의 등급 분류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만 등급 분류를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정보는 명백하게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우선 해외 등급 분류 시스템과 우리의 등급 분류 시스템이 아예 전혀 다르다. 즉, 해외 등급 분류 시스템은 모두 민간이 하는 시스템으로 자발해서 등급 분류를 받는다. 위반한다고 해도 처벌조항이 없거나, 있더라도 과태료 정도다. 등급 분류를 받지 않는다고 법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사정이 다르다.
- 미국의 ESRB는 자율적으로 등급 분류를 받고, 시장의 유통 제한 또한 자율적이며 합의에 따른 것이다.
- 유럽의 PEGI 또한 자율 규제이며, 법률적 강제가 되지 않는다.
- 독일의 USK 역시 자율 규제이며, 독일 청소년보호법에 과태료 규정이 있을 뿐이다.
- 일본의 CERO도 자율 규제이며, 규제 위반 시의 제재도 없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박주선 의원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게임이 뭔지도 스팀이 뭔지도 모르는 게 정말 문제다. 박주선 의원만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작성한 보좌관도 저 등급 분류 시스템이 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나 하겠나. 그리고 또 이게 국회만의 문제이겠나? 이 나라에서 부모를 자처하는 세대의 총체적인 문제다.
게임 규제 논란은 ‘보수 vs. 진보’ 싸움이다? 아니다!
모든 게임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났는데, 이 문제를 흔히 정치논리(새누리당 vs 새정치민주연합 또는 보수 vs 진보)로 해설하고 있다. 아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둘은 모두, 적어도 게임 규제와 관련해선 이해가 같은 집단이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는 좌우도 없고 이념도 없다. 심지어 여러분이 ‘진보적’이라고 믿는 전교조도 아주 적극적으로 게임을 규제해야 한다고 믿는 단체다.
게임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들의 컴퓨터와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과 SNS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금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다. “우리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냥 헛소리가 아니라 저들의 시각으로는 정말인 거다. 내 아이가 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빠져 헤매고 있느라고 공부도 안 하고 친구도 안 만나고 있다는 거다.
10년쯤 지나면 해결될 문제… 하지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나는 기본적으로는 세월이 한 10년쯤 지나면 현재의 논란 대부분은 해결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 10년을 게임업계가 버틸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그건 별개 문제다.
당신이 외국 게임사라면 굳이 이런 ‘박해’를 받아가며 한국어 서비스를 만들겠는가? 그렇다. 한국어로 된 게임이 앞으로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게 우리가 감수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