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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깡 작가의 웹툰 ‘하면 좋습니까?’는 결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중 한 회는 커플이 동거하던 중,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담석 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병원에 데리고 간 사람이 법적 배우자가 아니어서 시술 동의서에 서명하지 못했던 일화를 담고 있다.

미깡, '그날의 일', 하면 좋습니까? 중에서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54372
미깡, ‘그날의 일’, [하면 좋습니까?] 중에서

보호자의 자격

사실 수술이나 시술 등 침습적 행위 전에 받는 동의서는 ‘본인’에게 받는 것이 원칙이다. 시술이나 수술동의란 내가 이러이러한 위험에 처함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위하여 그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을 동의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 동의는 남이 대신해줄 수 없다(환자의 ‘자기결정권’).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 환자가 의식불명이거나 기타 동의를 하기 어려운 물리적인 상황이라면 그때는 소위 ‘보호자’에게 동의를 얻고 치료를 진행하게 된다. 이 동의를 얻지 않은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고, 환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은 환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다(동의 문제와 민사상 손해배상).

응급실 환자 병원

주로 법원은 직계가족(아들, 며느리, 손녀 등)이 현장에 있는 경우 이들이 보호자의 자격에서 환자 대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정도로 가까운 가족이라면 환자가 어떤 의도로 어떤 결정을 할지를 알 것이라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법률상 가족이 아니더라도 위 웹툰과 같이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에 있거나 가까운 친구나 지인끼리 마치 가족처럼,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깝게 동거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라면 이들은 멀리 있는 법률상 가족보다도 더 환자의 마음을 잘 알 것이기에 이들에게 동의를 받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치료하는 병원 입장에서는 법률상 가족이 아니라면 그(들의) 관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가족관계에 있는 자가 동의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우리 사회도 가족형태가 다양화될 뿐 아니라 비혼인구, 1인 가구가 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나 연대관계에서 생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와 같은 시민연대계약(PACS)[footnote]시민연대계약(또는 공동생활약정, 불어 :Pacte civil de solidarite; 약자로 PACS)은 프랑스에서 시행 중인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 간의 시민 결합제도다. 다른 국가들의 시민 결합 제도와 마찬가지로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지만 결혼보다는 제한적이다. 프랑스 의회는 동성 커플에게도 법적 지위를 주기 위해 1999년 11월 시민연대계약법을 입법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시민연대계약’)[/footnote]의 방법으로 이들에게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병원에 방문하여 자기결정권을 대신 행사할 때의 불편한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Oteo, CC BY https://flic.kr/p/2XL9oD
Oteo, CC BY

의사의 의무

위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관련한 설명의무와 별도로, 의료법은 의료인에게 특정 행위를 할 때 반드시 ‘환자’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고,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의사에게 법률상 부과되는 의무로서, 위반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과태료는 흔히 주차 위반, 신호 위반을 한 경우 부과되는 행정법상 질서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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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제24조의 2 제1항

의사ㆍ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이하 이 조에서 “수술등”이라 한다)를 하는 경우 제2항에 따른 사항을 환자(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을 말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에게 설명하고 서면(전자문서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으로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설명 및 동의 절차로 인하여 수술 등이 지체되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여지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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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로 ‘자기결정권’행사와 관련한 보호자의 범위도 문제되지만, 이 의료법 조항은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을 때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데 우리나라 성인 중에 법정대리인이 별도로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그래서 실효성이 없고, 비현실적이다).

미성년자는 그 부모가 당연히 법정대리인이 된다. 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이 필요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없다. 그러나 성년자 중 의사능력이 결여된 사람은 법원에 신청하여 성년후견인을 둘 수 있고, 이 성년후견인이 법정대리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법은 ‘법정대리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대다수의 성년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대체 누구에게 동의를 받아야 의사가 의료법상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 아리송하게 규정하고 말았다.

의료법 상 '법정대리인'은 비현실적이다.
의료법 상 ‘법정대리인의 동의’는 의사 입장에서도 대체 누구에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 아리송하게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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