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이 어느 날 문득 당신의 이름을 차단하고, 부정한다. 당신의 정체성은 국가로부터 거부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2011년 5월 1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송진용 씨의 트위터 @2MB18nomA를 접속차단했다. 그리고 그는 이 접속차단 조치에 반발해 이 조치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행정소송 1심 패소 직후, 송진용 씨와 그 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를 만나 이번 행정소송의 쟁점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 판결. 사건 2011구합25296 시정요구취소. 판결선고 2012.5.3.)
1. 트위터 아이디 @2MB18nomA를 둘러싼 법적 공방
민노씨(이하 ‘민’): 우선 트위터 아이디(ID)이자 인터넷 주소의 일부로서@2MB18nomA의 법적 성질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주민(이하 ‘박’): 저희는 이걸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보는 그럼 의미가 있는 모든 게 정보냐, 이렇게 해석을 해야 하는 건지. 저희가 봤을 때 인터넷에서 규제대상이 되는 정보라는 건 적어도 그런 의미의 폭넓은 정보가 아니라 직접 사람들이 읽고, 그걸 통해서 뭔가 감정이라든지 지적으로 뭔가 자극을 받고, 이런 식의 정보라고 생각했어요. ‘내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컨텐츠’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고선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 발생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것(@2MB18nomA) 자체를 정보라고 보는 것이 저희가 봤을 때 너무 지나치게 사전적인 의미에 가깝게 판단한 것 아닌가 싶어요. (민: 너무 기계적인 해석이다?) 그렇죠. 기계적으로 해석한 거죠. 원래 법의 규정 취지가 아닌 아주 기계적으로, 사전적 의미로 풀어버린 게 아닐까. 그래서 오히려 보장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좁혀버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민: 그런데 여기서 송진용 씨께선 이 아이디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저는 추정을 하고요. (송진용: 네, 그렇죠.) 이것은 개인 차원에선 실존적 결단이면서, 사회적 의사표시이기도 한데요. 이게 재미든 뭐든 간에 말이죠. 즉, 개인적 선택이면서 공적 메시지라는 차원에선 ‘의미 있는 정보’가 되죠. 그렇지 않나요?
송진용(이하 ‘송’):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으하하하. 아이디에 담긴 의미로선 맞는 말씀이신데, 개인 차원에서 아이디를 만들고, 트위터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건 별개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이게 정보일 수는 있지만, 심의대상이 되는 정보, 즉, 유통되는 정보가 아니다. 아이디, 인터넷 주소(URL)는 정보식별체계로 봐야 하지 않나,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차원에선 법률상 심의대상이 되는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 저도 아까 말씀드린 게 같은 취지거든요. 사전적 의미의 정보는 되지만 ‘이 법’에서 규제하려는 정보는 아니라는 거죠. 마치 이런 걸 생각하시면 돼요. ‘집회’라고 했을 때 집시법에 집회에 대한 개념 규정이 없어요. 그래서 사전적으로 해석해요.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되느냐. 2인 이상이 모이면 집회가 되죠. 그렇게 되면 인간의 모든 회합이 다 집시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현재 법원은 집회를 사전적 의미로 해석해요. 그런데 집시법을 따로 규율했던 취지는 ‘집회’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실질적으로 위험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집회’를 법에서 따로 규율한 거거든요. 사전적 의미의 집회와 집시법이 규율하려는 집회는 다르다, 이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고요. 뭔가 실질적 위험성이 있는 집회를 집시법이 규율하는 집회라고 해야 한다는 거죠. 이 사건 정보도 마찬가지고요.
민: 법원이 법률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단순히 사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 네, 법원은 규범적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사전적 해석에 그치고 있다. 규범적이라는 건 사전적으로 정의된 걸 다시 여러 가지 규범(여기선 ‘법’을 가리킴)의 규정 취지라든지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좁혀서 해석해주는 건데, 그걸 안 하고 그냥 사전적으로 해석해버리니까, 결론적으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집시법도 인간의 모든 회합을 대상으로 포섭할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커지게 된다는 거죠. 두 명 모였는데, 경찰이 ‘어, 이거 집회네!’ 이렇게 해버리면 집시법 적용이 되는 현상을 결국은 법원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죠. 여기에서 규율하려고 했던 ‘정보’는 사전적인 의미의 정보가 아니라 ‘컨텐츠’의 개념이다. 그러니까 뭔가 맥락이 있고, 사람들이 읽으면서 감정적 요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서적이거나 아니면 지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지, 그냥 단순하게 인터넷 주소 정도는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민: 저는 @2MB18nomA, 이 아이디, 혹은 인터넷 주소를 접하는 순간, 뭔가 사회적인 맥락이 확~ 다가오고, 정서적으로 뭔가 ‘아, 이런 뜻이구나!’ 다가오거든요? 보통의 상식적인 시민이 @2MB18nomA를 봤을 때, ‘아, 이건 메시지가 이런 거구나’ 맥락이 있는 거고, 그게 느껴질 것 같다는 거죠.
송: 하하. 누가 봐도 욕설로 보고, 또 욕설을 연상하게끔 만든 거죠.
박: 에효~~ (긴 한숨) 맥락이 느껴지죠. 느껴지는 건 있는데!! (혼잣말로, “일팔놈아. 일팔놈아…”) 그러니까 저는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도를 따졌을 때, 이 법에서 규율하려고 했던 규범적 의미에는 못 이르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민노씨 입장도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견 그런 의견이 타당하더라도 인터넷 주소까지 심의 대상이 되는 정보로 확장해선 안 된다. 엄격하게, 좁게 해석해야 한다.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위헌성이 추정되거든요. 그런데 그 폭을 넓혀서 해석한다는 건 위헌성의 폭을 넓히는 결론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좁혀서 해석을 해줘야 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인터넷 주소를 ‘이 법’에서 말하는 정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물론 이견은 있을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 인터넷 주소 자체가 맥락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 자체도 하나의 ‘컨텐츠’로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을 할 수 있지만, 정리하자면, 그 정도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송: 심의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욕설이라는 게 접속을 차단할만한, 이용해지를 시킬만한 그런 건가? 예를 들어서 술자리에서 욕할 수도 있고, 정치인 비판할 수도 있는 건데.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욕설로 표현된 것을 무조건 차단할 것인가? 방심위 회의록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 ‘대통령에 대한 비하’ 한 집안의 아버지’라는 이야기까지 하면서 문제 삼았거든요. 행정법원이 방심위 손을 들어줬지 않습니까? 욕설이 접속차단할만한 과도한 부분이 있냐, 또는 사람들에게 이게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그런 게 있냐, 방심위도 그렇고, 행정법원도 이게 욕설이라고는 인정하면서도 이게 과도하다거나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준다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즉, 특정인에 대한 욕설이라고만 판단을 했지, 이게 과도하다거나 불쾌감을 준다고는 판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과도한지, 왜 불쾌감을 주는지는 판단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 박주민 변호사, 지금 송진용 씨께서 말씀하신 게 맞나요? “특정인에 대한 욕설이라고만 판단”한 것이고, “과도하거나 불쾌감을 준다고는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는 송진용 씨 말씀이요.
박: 지금 판결문에서 … 과도한 욕설이라고 봤죠. 왜 과도하고, 왜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주는지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하는데 법원이 그 부분을 확 넘어가서 그냥 ‘이거는 그거다’라고. 이게(판결문 중 이 부분) 다섯 줄 밖에 안 되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 사건 정보는 대한민국의 통상적인 사회평균인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인을 지칭하여 욕설’하는 내용의 정보로 받아들여진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심의규정 제8조 제2호 바목 소정의 ‘과도한 욕설 등 저속한 언어 등을 사용하여 혐오감 또는 불쾌감을 주는 내용’의 정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시정요구의 처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고의 위 주장도 이유 없다.” (판결문 중에서)
이게 법원이 많이 쓰는 표현인데, “사회평균인”이 봤을 때 그렇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을 이렇게 써버리죠. 그런데 요즘 대통령 욕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2. 사건의 쟁점
송진용 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 나이 또래, 대학 교육을 받은 한국 남자가 대개 그렇듯 대학 시절 데모에도 참여한 이른바 386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을 접했고, 트위터라는 공간을 만났다. 대단한 사회운동을 하려던 것도 아니었고, 투사가 되고픈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어느새 송진용 씨는 @2MB18nomA 혹은 임영박으로 불리는 투사 아닌 투사가 되어 있다. 그 싸움의 장은 좁게 보면 ‘표현의 자유’이고, 넓게 보면 온라인이 새로운 존재 공간으로 자리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한 개인의 ‘존엄과 정체성’이다.
민: 사건의 구체적 쟁점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박: 저희들이 주장하는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정도 되는 것 같아요. 1) 송진용(임영박) 님의 계정이 처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우선이고요. 2)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게 무슨 “과도한 욕설 등 저속한 언어 등을 사용하여 혐오감 또는 불쾌감을 주는 정보”냐 즉, 과도하지 않다. 누구나 대통령 욕할 수 있는 그 정도에 해당한다는 게 둘째고, 3) 이 심의결정 자체가 내부 규정을 위반한 거 아닌가, 즉, 절차적 흠결이 있다. 이 사건에만 해당한 (작은) 쟁점을 떠나서 큰 쟁점으로는 방심위가 이런 식으로 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합헌 판결이 나와버려서…. 허허. 행정권력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건 위헌적이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여기에 대해선 ‘할 수 있다’라고 판결이 나와버려서… 허탈하죠.
민: 지금 말씀하신 헌재 판결은 언제 났나요?
박: 지난 2월쯤 나왔죠. ‘방심위의 인터넷 심의가 위헌이 아니다’는 헌재 판결이 나오는 바람에 이번 판결(@2MB18nomA에 관한 행정소송 사건)도 주루루 나와버린 거죠. (관련기사: “방심위 인터넷 심의 위헌 아니다”, 전자신문, 2012년 2월 23일)
민: 그럼에도 가장 다툴만한 쟁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 전 솔직히 큰 틀에서 방심위의 처분행위가 합헌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이걸 뒤집긴 어렵고, 다시 한번 헌법재판소에 가야겠죠. 그거 말고 개인적으로 다퉈보고 싶은 게, 대상성보다는 처분사유가 있느냐는 부분에서 다퉈보고 싶어요. 과연 @2MB18nomA라는 이게 과도한 욕설이나 저속한 정보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냐, 이 부분을 이 사건에선 다투고 싶고, 또 하나 다퉈보고 싶은 건 심의 규정 자체의 위헌성입니다. 1심 법원이 다섯 줄로 판단한 ‘과도한 욕설이나 저속한 정보에 해당하냐’라는 부분을 다퉈보고 싶어요. 물론 이거 말고도 다른 쟁점들도 다 다툴 겁니다.
민: 그런데 심의규정 자체의 위헌성은 지난 2월에 합헌 판단을 내렸다고 하셨잖아요?
박: 방통위 설치법 21조 4호와 시행령 8조의 위헌성을 다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해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선 심의할 수 있다”고 되어 있거든요? 이걸 왜 한번 더 다투고 싶냐면, 이게 이미 헌재에 올라가 있는데요. 행정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넣어서 각하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다퉈보고 싶은 거죠. 이 사건에 대해 위헌법률신청을 낸 뒤에 헌법소원을 내려고요.
민: 그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 법원이 사회적 평균인이 봤을 때 불쾌감을 느낀다는 건데요. 이건 어떻게 보면 국가원수 모독죄, 이런 관점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대통령을 욕하는 걸 보고, 대통령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기분이 나쁠 것 같지는 않거든요. 날 욕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대통령을 욕하는 것 자체로 우리 사회가 참 민주화됐구나, 느낄 것 같은데 말이죠. 가령, 제가 이명박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이 막 이명박을 욕했어요. 그걸 보고 제 기분이 나빠질까요? 일반적인 평균인이. 이명박 대통령 자신도 기분이 나빴겠어요, 설마? 대통령이 이런저런 비판은 당연히 감수하는 자리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거니 생각하겠지.
민: 이번 1심 판결을 한 단어, 한 문장으로 함축해서 논평한다면?
송: 비상식,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박: 구태의연하다. 일반인의 감성에도 부합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인터넷 환경에도 부합하지 않은 고루한 대통령 모독죄가 있었던 그 때의 감정으로 판단한 거 아닌가 싶어요.
민: 이번 사건을 통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뭘까요?
송: 세상에 트위터 아이디라는 건 정말 하찮고 별것 아닌 걸 건드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트위터 아이디를 접속 차단하는 나라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답답한 현실이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소통이 전혀 안 되고, 거창하게 말하면,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민: 가족들 반응은 어떤가요?
송: 딸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건 자체를 잘 이해하기 어렵고… 와이프 경우엔 행정소송까지는 모르고, 형사소송 같은 경우에는 왜 경찰, 방심위, 검찰.. 등에서 공문이 맨날 날라오니까, 그걸 보고 깜짝 놀라고, 무슨 일이냐고 궁금해하기도 하고, 왜 아이디를 이딴 식으로 만들어서 고생하느냐고 하기도 했고요. 지금 현재는 응원까지는 아니어도 이해하는 편입니다.
3. 사회적 책무와 기회비용 사이에서
민: 사건 당사자로서 사건 자체가 아주 괴로울 수도 있고요. 괴롭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 시간을 계속 빼앗기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잖아요. 개인적인 희생으로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다른 기회비용을 버리면서까지 행정소송을 진행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가끔은 그냥 때려치울까, 이런 생각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론 외부의 시선 때문에, 언론에서도 조명되고, 나를 지켜보는 기대 어린 시선도 있기 때문에 버텨야 하나, 이런 생각도 솔직히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라면.
송: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죠. 귀찮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경찰, 검찰 조사도 받고, 법원에도 가고… 언론과 전화 인터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물어보죠.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한때는 아이디를 폐쇄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생각도 해봤고… 하지만 너무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이디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 싸움의 동력이랄까요. 외부의 시선도 중요하고, 자기 내부의 동력도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싸움의 의지를 곧추세워주는 그런 동력이 존재하나요?
송: 하다 보니까 지친다는 느낌, 힘들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요. 완전히 넉다운 된 상태도 아닙니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 이 싸움을 선택했기 때문에 빼앗기는 물리적인 시간은 얼마나 되나요?
송: 강제로 어디 불려 가서 빼앗긴 시간 말고, 제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런 개인적으로 선택한 시간들까지 합치면 정말 많은 시간이죠. 예를 들어서 트위터에서 어떤 주제로 번개를 한다든지, 이런 것도 별 목적이 없는 것 같지만, 사람들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 거거든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게 사실이죠.
민: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 기회비용인데요. 그런 측면에서 말씀해주신다면요? 기회를 빼앗겼다랄까.
송: 전혀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박: 행정소송의 경우엔 꼭 출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물리적으로 시간을 빼앗기는 건 별로지만, 신경을 많이 쓰시겠죠. 아무래도. 자기의 정당성이란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야 하니까.) 사실 형사소송의 경우엔 고등법원에서도 무죄가 나왔고, 대법원에서도 낙관적으로 전망해서 별걱정은 이제 안 하고 있는데요. 행정소송 경우엔 제가 계속 트위터를 하고 있는데, 제 존재 자체를 국가로부터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뭐랄까 어쩔 수 없이 낙담하게 되더라고요. 위축도 되고요. 약간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감정으로 싸우는 건 아니고, 싸워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싸우는 거니까. 그리고 판결이 소송비용이 일차적으로 당연히 원고의 일차적인 책임이니까, 만약에 2심에서도 패소하는 경우엔 부담으로 올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볼 문제고, 저 혼자 감당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려고요.
민: 소송비용은 얼마나 예상하세요?
박: 저쪽(피고인 방심위)에서 변호사 비용으로 얼마나 쓰느냐가 문제겠죠.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변호사회를 경유해서 돈이 들어가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데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게 비율을 계산해서 하거든요. 가령 천만 원 이하인 경우엔 0.05% 청구한다든가, 그래서 액수가 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당연히 부담은 되시겠죠. 한 400만 원 나올 수 있죠.
민: 한 개인에게만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건 참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결단이나 의지 말고, 주변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이랄까요.
송: 저는 계속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으니까,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트위터 아이디 하나 때문에 접속차단까지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함께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직접 만나든 안 만나든, 트위터 상으로도 체감되거든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트위터 이용자로서 서로 생활하고 교류하는 거니까요. 가장 큰 힘이 되는거고. 변호사님도 계시지만,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그리고 민변이나 언론인권센터 같은 시민단체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으니까. 함께 활동도 하고, 모임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많이 힘이 되고요. 혼자로는 버거울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사 아이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런 것도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저에겐 힘이 되죠. 계속 패러디가 나오고 있어서요. @2MB18nomX 님 경우엔 접속차단이 되셨는데, 아까 변호사님도 잠깐 말씀하셨듯, 행정소송을 건너 뛰고 개별적으로 그 분 혼자서 헌법소원까지 하셨더라고요.
민: 이런 일련의 활동들이 나로 인해 비롯됐다는 뿌듯함, 동료애?
송: 하하. 네네, 동료애랄까, 동지애랄까, 하하 그렇습니다.
민: 그럼에도 외부 반응이 아쉬웠을 때는 없었나요?
송: 크게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작은 아이디가 언론 인터뷰로도 나오고, 만평에도 등장하고… 어떻게 보면 과분하죠.
민: 하지만 기성언론의 반응을 보면, 점점 그 관심이 식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 한겨레, 경향, 미디어오늘 등을 제외하고는 전혀 취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민: 냉정하게 따져서 이 사안의 뉴스가치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박: 평상시 같으면 좀 뉴스가치가 있을 텐데, 통진당, 언론사 파업 등등 지금 이슈가 너무 많거든요. 국민들이 신문 들여다보기가 겁날 거예요. 신문보기가 힘든 나라죠. 평상시 같으면 국민들 상당수가 온라인을 이용하고, 소셜네트워크서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중 있게 다룰 만한 사건임이 분명한데, 워낙에 이슈가 많으니까, 그래서 아마 핫이슈들 때문에 묻히는 것 같습니다.
4. 그래도 내가 싸우는 이유
민: 좀 식상한 질문인데, 삶의 좌우명 있나요? 꽤 의지적인 삶을 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송: 하하. 저 그런 거 없습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까, 아니 이왕이 아니라, 평상시에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닌데, 어떤 공간에서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제약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위축되거나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민: 좋은 말씀이신데, 독자들이 읽기엔 너무 당위적인 말씀으로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당당하게 살거야!’ 이런 특별한 계기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송: 그런 계기 없었습니다. 하하.
박: 오히려 아주 평범하셨고, 평범하게 트위터를 접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하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거죠. 그러면서 느끼게 된 게 트위터도 맘대로 못하는 이런 상황이 말이 되나? 끝까지 싸워서 좀 더 자유로운 사회가 되는 데 이바지하자, 이 자체로 하나의 계기이면서 에피소드 아닐까요? 하하하.
민: 저는 임영박 님을 피해자나 희생자라고 부르는 건 부당하다고 느끼고, 오히려 ‘생존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피해자의 느낌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투사나 생존자의 느낌에 가까운가요? 굳이 구별을 하자면요. 기성언론에선 이런 사건의 주인공들을 국가기관의 희생자, 피해자라는 관극틀로만 바라보고, 수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송: 피해자로 보는 시각도 사실 좀 부담스럽고요. 그렇다고 투사나 영웅은 아니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부당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탄압받는 사람, 하지만 거기에서 생존한 사람에 가장 가까운 것 같아요.
박: 그런 프레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성언론에선 사건 당사자의 입장을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기사를 쓸 수가 없겠죠. (송진용: 하하.) 가끔 주간지나 월간지를 보면 좀 다른 기사들을 보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경향도 있긴 하지만…. 심층적이지 못한 기사들 때문인 것 같아요.
민: 싸움을 하시면서 기뻤던 기억들, 이 싸움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보람이랄까요?
송: 일단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함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 올린 글 때문에 검찰에 불려 가고, 재판받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계시거든요. 많은 분들을 만나보면, 위로해주시기보다는 공감하고, 응원해주니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트위터 공간 자체에서 또 오프라인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이 아이디 하나 때문에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저희가 희망버스를 조직해서 버스를 두 대를 빌리니 세 번을 빌리니… 이러면서 세 번에 거쳐서 다녀왔었죠. 그때 제가 주관을 했었습니다. 희망버스를 조직해서 순전히 트위터에서만 모아서 부산을 1박 2일로 세 번 갔다 왔죠. 그리고 형사재판에서 고등법원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아주 기뻤죠.
민: 학창 시절, 대학 시절의 송진용은 어땠나요?
송: 중고등학교 땐 전혀 모범생은 아니었고요. 약간 공부엔 게을렀죠. 하하. 3학년 때, 군대에 다녀왔고, 아무래도 90년대 초에 주로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때는 학생회가 소위 운동권이었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죠. 데모에도 참여하게 되고요. 평범하고, 무난한 운동권이랄까요. 하하
민: 10년 뒤에 이 사건을 회상한다면… 어떤 소회를 갖게 될 것 같으세요?
송: 아까도 말씀드렸듯,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 트위터 아이디 때문에 접속 차단당하고, 벌금을 받네, 불이익을 받네, 아이디가 욕을 뜻한다고 욕하지 말라고 행정기관이 강제적인 처분을 하고, 십 년 뒤에는 ‘이런 황당한 사건이 있었네, 이런 시대도 있었네’ 회상할 것 같고요. 개인적으론 아주 의미 있는 기억이 되겠죠.
민: 형사소송, 특히 고등법원 무죄판결의 의의에 대해 짧게 들려주신다면요.
박: 상당히 오랫동안 93조 1항에 대한 이야기해왔는데, 전면적인 위헌은 아니더라도 한정위헌 판결이 나와서 형사소송에 좋은 영향을 미쳤죠. 아, 이렇게 조금씩 바뀌는구나. 형사재판 무죄가 나오는 걸 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계란으로 바위치기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죠.
송: 고등법원이 SNS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라서 아주 고무적이었죠.
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박: 항소심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민: 그런데 표정이 밝지가 않아요. 하하) 지금 고등법원이 좀 더 보수적이거든요… 그래서…
송: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형사소송은 이길 거라고 판단하고 있고요. 행정소송도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의 기회비용을 생각해도 이긴다면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결실이지 않을까 생각할 것 같아요. 트위터에서 지지와 격려를 많이 해주시는데, 형사소송도 그렇고, 행정소송도 그렇고, 저 스스로도 싸우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려고 노력하거든요. “힘 내라” “응원합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승패를 떠나서 끝까지 끝까지 저항하고, 끝까지 싸우는 자체가 이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 초 인주찾기 컨퍼런스 <심의를 심의한다>에 발제자로 참여한 송진용 씨는 그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인용한 바 있다.
김대중,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입니다.” (원문 출처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
이 행정소송은 송진용 씨가 행정기관인 방심위를 상대로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사건이다. 대한민국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한 아이디를 국가기관으로부터 ‘허락’받아야만 하느냐고 송진용은 질문한다. 이는 비단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한 존재의 근거에 대한 문제제기다. 송진용 씨와 박주민 씨는 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의 권력 행위는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름을, 그 정체성을 지울 수 있는 선택은 오직 공론화된 토론과 대화를 통한 자기 스스로의 결정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송진용과 박주민의 입장을 반대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저마다의 철학과 체험에 따라 다를 것이고, 어떤 것도 유일한 정답은 아니리라.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대통령에 대한 욕설을 연상하는 이유로 한 존재의 온라인 정체성, 그 이름을 ‘차단’을 하고, 그 존재를 공동체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 열린 사회가 아니다.